모두 유관순이다

이현숙展 / LEEHYUNSOOK / 李賢淑 / printing   2022_0824 ▶ 2022_0830

이현숙_경애_한지에 목판화_110×92c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현숙도 유관순이다 ● 목판화가 이현숙. 나이를 먼저 얘기해서 좀 뭣하지만, 1958년생 올해 65세다. 혼자 취미로 목판화를 하다가, 2017년 몇몇 목판화가들이 시민들과의 커뮤니티를 위해 개설한 '목판대학'과정을 1년간 수료한 뒤, 홀로 수년간 해 온 작업으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민미술학교인 목판대학을 거쳐, 잊제 본격적인 목판화작가로 등단하는 셈이다. ●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직장생활을 퇴직한 뒤 작업에 집중해서 작가가 된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다. 목판대학 과정에서도 유달리 집중도와 밀도가 높게 작업을 하던 그녀였다. 나는 그녀가 결국 전문적인 목판화가가 될 것이라 예측하고 눈여겨 보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렇게 자기 주제에 천착해서, 이렇게 수준을 갖춘 결과물을 내어놓을지는 몰랐다. 목판대학의 수업을 담당했던 일원으로 이현숙 작가에게 기쁘고도 고마운 마음이다. 늦은 나이에 쉽지 않은 작가의 길이지만, 이현숙의 집중력과 의지는 분명히 여러 난제를 극복하며 좋은 목판화가로 자리매김 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현숙_군상_한지에 목판화_92×185cm
이현숙_만신_한지에 목판화_92×61.5cm
이현숙_모두 유관순이다_한지에 목판화_170×600cm

이현숙의 이번 전시 타이틀은 「모두 유관순이다」다. 총 8점. 목판화로서는 만만찮은 크기의 작품인데,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가이자 배우 김탄실(김명순, 1896~1951), 화가 나혜석(1896~1949), 독립운동가 정칠성(1897~?), 무용가 최승희(1911~1969), 소설가 강경애(姜敬愛, 1907~1943), 만신 김금화(1931~2019), 전통 무용가 공옥진(1931~2012) 등과 여타 여성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문학인, 예술인 등의 여성 군상이 등장한다. 그 중 타이틀작인 「모두 유관순이다」는 33점의 초상과 글씨 7개 총 40점으로 구성된 가로 6m에 이르는 대작이다. 일제에 저항한 여성 독립운동가 33인(김경화·고강순·지은원·박경자·안희경·박양순·김마리아·한수자·왕종순·어윤희·안옥자·이도신·유관순 임명애·신경애·민금봉·윤경옥·박소순·노순경·박순임·신관빈·박숙용·이신애·최윤숙·박신삼·유해길·성혜자·이순금·이남규·최경창·박진홍·김조이·소은명)의 사진과 자료를 채증해서 이를 목판 초상화 연작으로 제작한 뒤 설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서대문형무소에 남은 수형표를 보고 무작위적으로 추출한 분들이다. 행적이 남아있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많다. 이름도 행적도 남아있지 않은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무작위로 선정해서 초상 작업을 한 것이다. ● 기실, 여성 선각자이자 독립운동가 인물초상 작업은 기존 윤석남, 류준화 작가의 돋보이는 회화작업이 이미 있었다. 이현숙의 작업은 시기적으로 이 작가들보다 후에 진행된 것이되, 화면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선각자적 위상(객관적 자료로 개념화된 기호)의 바탕에 작가의 감정을 좀 더 얹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일판다색(一版多色)의 소위 소멸법 목판화기법으로 인물의 캐릭터를 리얼하게 드러내는 방식에, 인물 표정이나 배경설정 등에서의 강조와 대비를 통한 주관적 표현성을 강조한 지점에서 그 차이를 드러낸다. 그 결과 이현숙의 여성성에는, 대상인 선각자 여성과 작가 자신의 심리가 묘하게 중층적으로 결합되어 실존화된 형상성이 두드러진다. 이는 작가 자신의 내면과 화면의 등장인물을 동일시하는 무의식과, 그들의 삶의 방식에 일정 정도 동화된 작가적 의식이 동시에 작동된 결과로 인해서 그럴 것으로 여겨진다. 비록 늦깎이지만 신예작가 이현숙의 자기 정직성이 있는 그대로 화면에 반영되어 나와서 그렇기도 하겠고.

이현숙_승희_한지에 목판화_92×61.5cm
이현숙_칠성_한지에 목판화_100×70cm

이 첫 개인전의 선명한 주제와 인물을 다루는 작가의 기량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또 형상성과 표현도 중언부언 없이 명료하다. 초상화 형식과 이미 자료 사진으로 제시된 뚜렷한 인물의 표정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인물 사진 자료의 불명료함이 오히려 평면 목판화 형식과 잘 조우가 되는 장르적 특성 때문으로도 보인다. 이현숙은 이 지점을 정확히 간파해서 그녀의 판각-프린팅 형식과 결합했다. 덕분에 신인 작가가 가질 수밖에 없는 어설픔을 상당 부분 카바하는 조형적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 물론 기성작가들에 비하자면 이현숙의 작업에서 발언과 작업 과정의 욕심이 많이 노출되는 건 사실이다. 표현성과 의도를 좀 더 절제함으로 결과하는 세련된 효과의 경험이 미진한 까닭이다. 묵직하되 무겁지만 않고, 단단하되 딱딱하지 않을 수 있는 세련됨 말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이현숙이 나이와는 상관없이 의욕적인 작가임을 강조하는 장점도 된다. 출발하는 작가에게는 '세련'보다는 '도전'과 '의욕'이 우선이기에 그렇다.

이현숙_탄실_한지에 목판화_63×92.5cm
이현숙_혜석_한지에 목판화_92×61.5cm

이번 전시는 바로 그런 이현숙의 싱싱한 직구가 선보이는 운동장이라 하겠다. 이는 결국 다음 개인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세련된 작품이 나올 것이란 예측이 자동으로 들게도 하는 것이고. 내가 볼 때 이현숙에게는 그런 감각과 판단력이 있다. 목판화란 장르 개념에 대한 사유도 충분하고. 강력한 직구에 더해 커브, 슬라이더, 싱커, 투심… 등의 구질을 다음 전시에서 보여줄 것이란 믿음은 그래서다. 그만큼 작업에 높은 집중도로 성실하다. '시민' 작가에서 '전업' 작가로 이행하는 첫 문턱에서 그녀의 시도와 도전에 박수를 보내는 건 그 때문이다. 성공을 지향하는 작가이기보다는 자신의 세계와 주제를 작업으로 증명해내려는 태도의 작가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현숙 작가에게 "이현숙도 유관순이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 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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