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오똑이를 세우다 Mother, the Force That Raises Motherly Ottogi

양순열展 / YANGSOONYEAL / 梁順烈 / painting.sculpture   2022_0826 ▶ 2022_0925 / 월요일 휴관

양순열_현현(玄玄) 53_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_200×200cm_2022 YANG Soon-Yeal_Epiphany 53_Gouache acrylic on canvas_200×200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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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신관 Hakgojae Gallery, Space 2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hakgojaegallery 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학고재 오룸 Hakgojae OROOM online.hakgojae.com

다시 「玄玄」에 관하여 ● 며칠 전에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우주의 신비를 가득 담은 선명한 사진들을 보내왔습니다. '한 여름밤에 도착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이 이미지들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심우주(深宇宙, Deep Field)'를 마주한 후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우주 공간에서도 그대로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불렀을 겁니다. 아마도 로마 교황청 사제들은 넓고 넓은 우주 속 그 어디에도 不在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좌절을 느꼈을 수도 있고, 하안거 중이던 스님들은 화엄경의 인드라망이 과학에 의해 '공식적' 지식의 지위를 얻었다고 흥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처럼 제임스웹이나 허블망원경이 보내온 신비롭고 황홀한 사진들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전율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시각에 의지하여 이미지를 생산하는 화가들이나, 그 이미지를 기반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들에게는 심각한 좌절을 안겨 주곤 합니다. 인간의 눈은 망원경이나 현미경과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원시적이고 퇴화된 감각기관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 안에 들어있는 우주나 세포의 세계를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미술은 눈이라는 인간의 신체성과 자연의 가시광선이라는 스펙트럼 안에서만 작동되어왔으며, 언제나 뉴턴역학이 지배하는 지구라는 공간 속에 갇혀 있었고, 문화인류학이나 미학이라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서사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 어쩌면 이 시대의 화가들이야말로 이러한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 모두를 뚜렷이 자각하고 있는, 2차원 평면에 갇힌 「플랫랜드」의 사각형 주인공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랫랜드」는 2차원 평면 세계에 살고 있던 사각형이 어느 날 3차원 공간을 조우하면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해 나간다는 수학 소설입니다. 이 책은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등 당대의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크리스토퍼 놀란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에게도 다양한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책이 존재가 속한 다양한 기하학적 차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생성'과 '문명의 탄생'들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양순열_현현(玄玄) 62_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_117×80cm_2022 YANG Soon-Yeal_Epiphany 62_Gouache acrylic on canvas_117×80cm_2022
양순열_현현(玄玄) Line-1_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_195×440cm_2022 YANG Soon-Yeal_Epiphany Line-1_Gouache acrylic on canvas_195×440cm_2022

양순열 작가 역시 화가인 자신을 평생 동안 괴롭혀온 두 가지 제약, 시각이 가진 생물학적 한계와, 2차원 평면에 갇힌 회화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은 채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신체성과 회화의 평면성이라는 약점을 겸허히 받아들인 그곳에서 생물과 무생물, 인간과 기계,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가 시작되고, 화면 속의 이미지들은 서로 끝없이 연결합(連結合) 되기 시작합니다. 그 속에서 2차원 평면은 언제나 공간과 맞닿아 있고, 그 공간은 시간과 일체가 되어 독자적인 우주를 형성해 나갑니다. 마치 설계도면이 건축물이 되고, 오선지 위의 음표가 교향곡으로 울려 퍼지듯이, 흩어져 있던 시간-공간-물질-에너지가 격렬하게 통합되며 새로운 차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게 활성화된 유전자(gene)와 밈(meme)들이 힘차게 약동하며 풍요롭고 장엄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순열의 작품들은 언제나 밝고 생기있는 에너지의 파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현대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말은 그 속에 '빈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공기가 가득 찬 풍선처럼, '빈 공간'이 없다면 어떤 팽창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무엇보다도 허블망원경도 없던 그 시절에 우주 속의 그 '빈 공간'을 상상하고 확신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곳은 이미 오래전에 동양의 철학이나 종교에서 無나 空으로 불러온 곳입니다. 동양사상과 아인슈타인의 현대물리학이 만난 곳도 바로 이곳이고, 제임스웹이 포착한 우주가 팽창하는 순간도 바로 이 '빈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동시에 이 '빈 공간'은 양순열 작가 앞에 놓여 있는 빈 화면이기도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서로 굴절되고 접합하며 영원히 새로운 사물과 차원을 생성해 나가고 있는 곳, 언제나 밝은 에너지와 생명의 약동으로 가득 차 있는 양순열의 화면 말입니다. 이 발견으로 그동안 신비주의나 미신으로 폄하되던 종교와 예술의 영역, 특히 동양의 종교와 철학이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 아인슈타인은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이성이 끝없이 연결합 되는 바로 이 '빈 공간'에서 '우주적 종교'를 통각 했노라고 말합니다. 이 위대한 물리학자가 고백한 궁극의 체험은 화엄경에서 깨달음의 마지막 경지로 남겨둔 '不可思議'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결코 깨달을 수 없음을 깨달으려는 것처럼, 양순열 작가도 2차원 평면에 결코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를 손에 쥐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의 「玄玄」 작업은 항상 이 점을 일깨웁니다. 이런 점에서 저에게 양순열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향해 의식의 전부를 열어놓고 있는 허블망원경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주뿐만 아니라 인간도 不可思議한 존재로, 영원히 풀리지 않을 신비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윤재갑

양순열_호모 사피엔스 10_브론즈에 카 페인트_48.5×43.5×41cm_2022 YANG Soon-Yeal_Homo Sapiens 10_Car paint on bronze_48.5×43.5×41cm_2022

어머니, 오똑이 (Motherly Ottogi)를 세우다 ● 인간이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한 그 위대한 순간 이후로, 인간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을 초월한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양순열을 평생 동안 쫓아다닌 큰 화두이다. 그리고 그는 일상의 어느 순간에서도 그 질문을 놓쳐버린 적이 없었던 작가임을 40여 년에 걸친 그의 방대한 작업이 보여준다. 심지어 1990년대 전반기에 이 작가가 그린 꽃, 나무, 자연풍경을 보게 되면 그때에도 이미 이 작가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매우 원대한 질문들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붓질에는 자신이 있었던 양순열은 그의 눈에 닿는 자연의 모습들을 소중히 그려냈다. 이 시기 양순열이 그린 그림들을 살펴보면 식물의 줄기는 무성하기 짝이 없고 다소곳해야 할 꽃잎의 모양새는 방사선으로 뻗어 나간다는 느낌을 준다. 옥수수를 그린 그림에서 옥수수 줄기는 화면 바닥에서 끝까지 치솟아 화면을 뚫고 나갈 듯 힘찬 기세를 보여준다. 2003-4년 연간에 그린 「화심(花心)」 시리즈에서는 몰골법을 사용해서 대상물의 모습을 생략하거나 과장하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그림들에서 작가는 꽃을 구성하고 있는 꽃대 한 줄기, 흐드러진 꽃잎 한 잎 한 잎에 마치 우주적 질서를 다 담으려는 듯 결연했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종이 위에 잉크와 펜을 사용해 그린 드로잉들은 선묘와 흩뿌리기 기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식물의 형상성을 훨씬 뛰어넘는 표현력을 드러낸다. 자연의 대상물을 재현할 때조차 작가의 의식은 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 보다 더 광활한 우주적인 차원을 그리려고 한 것이다. ● 1998년 양순열은 운주사를 답사하고 그곳에서 부처의 형상을 그린다. 처음에는 부처의 형상을 단독으로 묘사했지만 어느 순간 부처의 형상은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덩어리로 분리되는 듯이 그려졌다. 부처에서 인간이 분리되는, 혹은 인간에서 부처가 탄생하는 무의식의 발로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무튼 반복되는 부처의 그림들 속에서 양순열은 "호모사피엔스"라는 그의 필생의 주제를 도출해 내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수많은 그림들을 통해 시도됐다. 다분히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2007년의 「경배」, 「욕망」, 「깨달음」은 전기 "호모사피엔스" 시리즈의 종결판 같은 작품들이다. 세로 길이만 2M가 넘고 가로 길이가 4M, 5M가 넘는 대형 캔버스에 양순열은 인간의 욕망과 그와는 상반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배감, 존재론적 깨달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선 「욕망」이란 작품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회색빛 톤의 화면에 번데기 같은 덩어리 형상 5개가 그려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욕망의 형상화를 통해 작가는 욕망에 기인한 불안과 위태로움, 파국 등에 대한 상징적 언급을 시도했다. 반대 지점에 「경배」와 「깨달음」이 놓여 있다. 양순열은 「경배」라는 작품에서 두 사람의 인물을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에 그려 넣었다. 인간의 형상은 자세히 묘사되기보다는 인체 형상임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거칠게 그려졌는데 이런 표현방식은 오히려 「경배」하는 인물들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양순열은 어떤 미동에도 흔들림 없는 강건한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대지에 굳건히 발을 딛고 고개 숙여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깨달음」이라는 작품은 「욕망」과는 전혀 다른 인간과 자연 혹은 초월적 존재를 향한 신성한 마음의 은유를 보여준다. 마치 모아이 석상처럼 머리와 몸통으로만 구성된 원형적 형태의 인간이 화면을 가득 채운 이 그림에서 무엇인가에 대한 경배V의식을 수행하는 인간 군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득히 먼 고대의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 수행되었을 거룩한 의식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깨달음」이라는 작품은 2006년에 그려진 작가의 작은 드로잉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이 작은 드로잉에서 작가는 붉은 태양을 화면 오른쪽 위에 배치하고 그 아래에 여러 개의 선돌을 그려 넣고 붉은 물감으로 채색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의 서명이다. 「二ㅇㅇ六 太陽人 順烈」이란 또렷한 서명에서 우리는 작가 양순열이 어떤 각오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갈 것인가를 예상할 수 있다. 운주사 부처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관심이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일체화되어 나갈 것임을 선언하는 서명이다. 작가와의 대화중에 이 시기 호모사피엔스 형상들이 지닌 특징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형상들이 서 있는 형태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이 형상들은 양순열의 그림 안에서 마치 안테나 같은 기능을 한다.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 인간과 신, 인간의 꿈과 사랑 등에 주파수를 맞추며 호모사피엔스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 온 것이다.

양순열_호모 사피엔스 11_브론즈에 카 페인트_48.5×20.5×20cm_2022 YANG Soon-Yeal_Homo Sapiens 11_Car paint on bronze_48.5×20.5×20cm_2022

양순열이 2009년에 그린 「꿈과 사랑 어머니꽃(Dream & Love Motherly Flower)」이라는 작품 역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80x180cm, 족자 그림의 형식을 빌린 화면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수묵기법을 사용했는데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거칠고 진한 먹물의 번짐이 자리 잡았다. 화면의 중앙에는 뭔가 솟구치는 밝은 공간이 등장하는데 그 사이로 꽃의 형상과 하트의 형상이 오버래핑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양순열의 나이 오십, 지천명의 세수에 이르러 작가는 작품의 제목처럼 어머니꽃을 그렸다. 그런데 화면의 중앙과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부분에 등장하는 배부른 여성의 형상, 생명을 배태한 어머니의 표상이 금색 물감으로 슬며시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을 금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양순열은 영원히 변치 않는 모성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 모성애라는 주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이 작품이 보여준다. ● 호모사피엔스와 모성애라는 주제가 양순열의 예술세계에 등장한 이후로 이 작가의 작업 역량은 훨씬 더 폭발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Dream & Love」시리즈, 「클라라 슈만(Clala Shumann)」같은 초상 시리즈, 2009년 이후에 등장한 「아버지의 의자」, 「백미러」, 「땅콩」, 「워커의 조국」같은 오브제 작업들을 거치면서 양순열은 그의 모든 감각, 모든 감수성, 모든 환상과 상상까지를 다루는 창작의 열병을 견뎌냈다. 양식적으로는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양식을 드러낼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 단계에서 등장한 것이 양순열의 가장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는 오똑이 조각과 오똑이 형상이 후기 호모사피엔스의 회화적 비전으로 완성되는 「현현」 시리즈이다. ● 오똑이 조각은 2011년부터 제작됐다. 처음에는 양순열의 그림에 소품처럼 나타나는 소재였던 오똑이는 손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크기로, 작은 아이만 한 크기로, 등신대의 크기로, 혹은 3-4M의 큰 키를 가진 조각으로 만들어져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었다. 긴 치마를 입은 어머니 형상의 오똑이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모성애로서 자식과 세상을 감싸 않는 어머니의 사랑처럼 양순열의 오똑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다. 작가노트에서 양순열은 자신의 오똑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오똑이 Ottogi 네 마음의 汝 너의 오똑이 내 마음의 我 나의 오똑이 미술가의 상상세계로 오똑이 형상을 어머니 형상으로 모성을 투영해 보았다. 모성은 늘 사랑과 믿음, 비움과 숙임의 본질로 가능하다. 모성은 우주와 한마음이 되고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나아갈 때 가능하다. 우리 삶이 우상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적 같은 에너지 덩어리 자체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부적 같은 에너지 덩어리'인 모성은 어떤 그림으로 그려질까? 그에 대한 답은 「현현(玄玄)」에 숨어 있는 듯하다. 특히 작년과 올해 집중적으로 그려진 「현현」 회화들은 오뚝이 조각이 완전히 설명해 주지 못하는 모성의 우주적 차원에 대한 언급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2021년에 그려진 「현현유희」 연작을 보자. 양순열은 캔버스의 바탕을 칠흑처럼 검게 만들고 그 위에 작은 원들을 그려 넣었다. 그 원들은 바탕면에 비해 작지만 밝게 채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현유희」를 보면서 밤하늘의 별을 연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2022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별처럼 그려진 원들이 해체되어 선으로 연결되고 그다음 단계에서는 정돈된 선으로 뭉치더니 양순열은 그 선들에서 오똑이 형상을 소환해 내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오똑이 그림이라고도 부른다. 최근에 오똑이 형상은 일종의 만다라 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양순열은 모성이 태초의 우주로부터 기원된 근원적 에너지이면서 지금까지도 강력한 파장으로 인간과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에너지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 양순열은 이제 인간의 갖가지 욕망과 그에서 빚어지는 인류세의 종말을 순수한 모성으로 극복하자고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메시지는 그의 페르소나, 어머니 오똑이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인간성이 메말라버린 마천루의 대도시에서, 인간과 동물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황무지에서 양순열의 어머니 오똑이는 생명의 소중함과 인류의 구원과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 주는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 그 신념의 중심에 어머니 오똑이를 굳건하게 세워 모성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예술가, 양순열이 있다. ■ 최은주

양순열_호모 사피엔스 17_브론즈_18.5×17×48.5cm_2022 YANG Soon-Yeal_Homo Sapiens 17_bronze_18.5×17×48.5cm_2022

오똑이 Ottogi ● 네 마음에 汝너의 오똑이 내 마음에 我나의 오똑이 미술가의 상상 세계로 오똑이 형상을 어머니 형상으로 모성을 투영해 보았다. 모성은 늘 사랑과 믿음, 비움과 숙임의 본질로 가능하다. 모성은 우주와 한마음이 되고 인간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나아갈 때 가능하다. 우리 삶이 우상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적 같은 에너지 덩어리 자체이다.

호모사피엔스 Homosapiens ● 밤이면 밤마다 그날의 회상으로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하는 마음으로 빚어왔다. 20여 년 세월이 흘렀다. 이 호모사피엔스들은 어느 듯 梵我一如범아일여, Übermensch위버맨시, 天上天下唯我獨尊 천상천하유아독존을 되뇌고 있다. 나 또한 언젠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 양순열

양순열_오똑이 레인보우 01_Car paint on mixed media_25×25×65cm_2017 YANG Soon-Yeal_Motherly Ottogi Rainbow 01_Car paint on mixed media_25×25×65cm_2017 양순열_오똑이 레인보우 02_Car paint on mixed media_25×25×65cm_2017 YANG Soon-Yeal_Motherly Ottogi Rainbow 02_Car paint on mixed media_25×25×65cm_2017

Revisiting Epiphany ● A few days ago, the James Webb Space Telescope sent clear photos depicting the mystery of the universe to all homo sapiens inhabiting the planet Earth. Somewhat like "Christmas presents that arrived on a midsummer's night," these images must have brought tears to the eyes of some astronomers who, for the first time, witnessed the previously invisible Deep Field, or made physicists yell out in cheer by proving that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works even in cosmic space. The same images, however, might have deeply frustrated priests of the Roman Curia as there was no message from God anywhere in the vast universe, while giving excitement to Buddhist monks in summer retreat as they felt that science had finally given Indra's Net of the Avatamsaka Sutra "official" status. ● In this way, mysterious and rapturous photos sent from the James Webb or Hubble space telescope have touched and thrilled many hearts, but often seriously discouraged artists, who produce images based on their visual senses, and curators, who plan exhibitions based on those images, because photos of space make the human eye seem like a primitive, degenerate sensory organ not even remotely comparable to a telescope or microscope. The cosmic and cellular worlds observed through telescopes and microscopes are invisible to the naked eye and incomprehensible. For this very reason, art has been confined within the corporeality of the human eye and the spectrum of visible light; locked within the space of the Earth governed by Newtonian mechanics; and subjected to the anthropocentric narratives of cultural anthropology and aesthetics. ● Perhaps, artists of this era clearly recognize their own limitations and possibilities arising from such constraints, resembling the Square, the protagonist of 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 who is locked in a two-dimensional plane. Flatland is a mathematics-themed novel, where the Square living in a two-dimensional world one day encounters a three-dimensional space, which inspires in him a new awareness about the world. The book served as a creative muse not only for many contemporary and later scientists, including Carl Sagan and Stephen Hawking, but also for countless artists such as film director Christopher Nolan. The novel has been such an inspiration probably because it deals with fundamental questions about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the "birth of civilization" along with diverse geometric dimensions that beings inhabit. ● As an artist, Yang Soon-yeal has wholeheartedly embraced the two constraints that have troubled her all her life: the biological limitations of vision and the limitations of painting as a genre confined to two-dimensional planes. Paradoxically, however, where the corporeality of humans and painting's inability to transcend its two-dimensionality are humbly accepted, the coevolution of living and non-living things, humans and machines, and the microscopic world and the macroscopic world begins, and images on the canvas commence their relentless connection and integration. Amidst this transformation, two-dimensional planes are always in contact with spaces, which, in turn, become united with time to form an independent universe. Just as a blueprint begets a building and notes on music paper turn into a resounding symphony, the scattered time-space-material-energy continuum is powerfully integrated and presses on toward a new dimension. Genes and memes activated in this way throb with life and create a rich and majestic world. For this reason, Yang's works are always replete with bright and vibrant waves of energy. ● The greatest discovery of modern physics is the simple fact that the universe is constantly expanding. To say that the universe is expanding implies that there is empty space within it because, as in the case of a fully blown balloon, the universe cannot expand without filling empty space. In my view, the genius of Einstein lies, above all, in the fact that he imagined empty space within the universe and was convinced of its existence, at a time when there was no such thing as the Hubble Space Telescope. Interestingly, in Oriental philosophy and religion, such empty space has long been referred to as mu (無 nonexistence) or gong (空 voidness). This is where Oriental thought and Einstein's modern physics meet and where the universe captured by the James Webb telescope expands within itself. At the same time, this "empty space" is a blank canvas placed in front of Yang Soon-yeal. It is a place where time and space are mutually refracted and joined to eternally create new objects and dimensions, that is, a canvas of hers always filled with positive energy and the vibrancy of life. The aforementioned discovery about the universe shed a completely new light on the realms of religion and art, particularly Oriental religion and philosophy, which had previously been discounted as mysticism or superstition. ● Einstein said that it was this "empty space," where artistic imagination and scientific reasoning are endlessly connected and united, that made him apperceive a "cosmic religion." Perhaps, the ultimate experience confessed by this great physicist is something resembling the concept of the "unfathomable," the final stage of enlightenment mentioned in the Avatamsaka Sutra. As if trying to understand the impossibility of understanding, Yang paints the unpaintable on a two-dimensional plane. Perhaps, we all are beings grappling with eternally unsolvable riddles. Yang's Epiphany series always reminds us of this conundrum. In this respect, to me, she is like the Hubble telescope, for she has opened up her entire consciousness toward the endless universe. After all, it is not only the universe but also human beings that may remain unfathomable, that is, as eternally unsolvable mysteries. ■ Yun Chaegab

Mother, the Force That Raises Motherly Ottogi ● No one would deny that, since the epiphanal moment when humans first became aware of their own existence as humans, humans themselves have remained the object of their foremost interest. "Who am I?" "What is a human being?" "Does a deity that transcends humans exist?" "What makes humans human? — finding answers to questions such as these has been Yang Soon-yeal's lifelong passion, and her vast treasure trove of work accrued over more than four decades testifies to her relentless pursuit of these answers. Even her flowers, trees, and natural landscapes from the early 1990s suggest that she is harboring grand questions. Ever confident of her brush strokes, Yang illustrated the natural objects around her in the most sincere manner possible. A careful examination of her works from this period gives the impression that the stems of plants have been carelessly painted and that flower petals, rather than being demure, wildly radiate outwards. Similarly, in her corn painting, the stalk of a corn plant throbs with life, vigorously soaring from the bottom to the very top of the canvas as if to penetrate right through it. ● In her The Heart of a Flower (2003–2004) series, Yang depicts objects in a simplified or exaggerated manner using the so-called "boneless" technique, which is characterized by a lack of outlines. The paintings hint at the resolute nature of her mind, seemingly trying to instill a sense of cosmic order on each stem and petal of flowers in bloom. Her drawings from the same period, created using pen and ink on paper, reveal the expressive power that goes far beyond the figurative nature of plants, an effect achieved through the use of line drawing and the dripping technique. This suggests that the artist's consciousness seeks to portray fundamental and cosmic dimensions even when representing natural objects. ● In 1998, Yang visited Unjusa Temple, where she painted the Buddha. At first, it was in the form of a single Buddha, which, at some point, became divided into two lumps. Presumably, the transformation was a manifestation of her unconscious, where the Buddha became distinct and separate from a human being, or a human was born from the Buddha. At any rate, through her repeated painting of the Buddha, Yang was finally able to draw the subject that formed the crux of her life's work: homo sapiens. The questions of "What is a human being?" and "What kind of being is a thinking human?" have been posed in her numerous works. The Adoration, Desires, and Realization, her expressionist paintings from 2007, are the culminating works of her early Homo Sapiens series. On enormous canvases measuring four to five meters wide and more than two meters long, Yang sought to express human desires as well as their antithetical counterparts: existential awakening and adoration toward humans and nature. ● Let us first examine Desires. The painting features five chrysalis-like lumps against a gray background. By giving form to human desires, the artist attempts to provide a symbolic reference to the anxiety, peril, and calamity given rise to by desires. At the antithesis to Desires lie The Adoration and Realization. In The Adoration, Yang illustrates two human figures, each positioned on the left and right side of the canvas. Instead of being elaborately portrayed, the figures are large and roughly painted, barely recognizable as humans. Such mode of expression, however, creates the effect of accentuating the reverential attitude of these figures that harbor adoration. In this way, the artist paints strong people imbued with unwavering conviction. Standing firmly on the ground and offering a prayer of gratitude to a deity with their heads bowed, the two figures present a deeply moving spectacle to the audience. Similarly, in complete contrast to Desires, Realization presents a metaphor for a sacred mindset vis-à-vis humans, nature, and transcendental beings. It is not difficult to imagine a group of people performing a worship ritual based on this painting, where Moai statue-like archetypal human figures consisting only of the head and torso fill the entire canvas. It evokes a prototypical scene from a holy ritual conducted somewhere in some remote ancient era. ● Realization is a work directly related to a small drawing created by Yang in 2006. In this drawing, a red sun is positioned on the right side of the canvas along with several reddish standing stones below it. Here, what draws our attention is her clear signature that reads: "二ㅇㅇ六 太陽人 順烈" (which reads "2006, sun person, Soon-yeal"). The signature provides a clue as to with what determination she was developing her artistic world. It is also a declaration that her interest in homo sapiens, which began with her drawing of the Buddha at Unjusa Temple, will be amalgamated into her identity as an artist. My conversation with the artist led to one fascinating discovery about her homo sapiens figures from this period: Almost all her figures are standing straight. In Yang's works, these figures function as something akin to an antenna. Traveling back and forth between the conscious and unconscious worlds, the artist has continued to explore the existence of homo sapiens, attuned to the frequencies of humans and nature, humans and the universe, humans and deities, and human dreams and the very notion of love itself. ● Yang's Dream & Love Motherly Flower (2009) is another work that deserves attention. Measuring 80 x 180 cm, this scroll-shaped painting is rather complex. Created using the ink wash painting technique, it features dark and rough shapes produced by ink diffusion on the left and right side of the canvas. In the middle, there is a bright space that gives the impression of something soaring upward, where the form of a flower and that of a heart are seen overlapping. When she reached the age of 50, the age when one is said to be capable of understanding the decree of Heaven, Yang painted a motherly flower as mentioned in the title. Almost hidden in the area slightly left of the middle of the painting is the figure of a pregnant woman in gold, the representation of a mother conceiving life. It appears that, by painting this woman in gold, Yang sought to express everlasting motherhood that is never altered. This artwork thus suggests that her obsessive exploration of homo sapiens is broadening to include the subject of motherhood. ● Once her artistic world adopted homo sapiens and motherhood as dual subjects, Yang's artistic prowess began to explode in earnest. Her artistic journey from the Dream & Love series and portrait series, such as Clara Schumann, to her post-2009 objets d'art, including Father's Chair, Rearview Mirror, Peanut, and Fatherland of Combat Boots, is the result of the creative fever she had to tide over in order to express all her senses, sensibilities, fantasies, and imaginations. As for style, Yang has reached a phase where she can express her unique style of art while straddling expressionism and surrealism. What has appeared at this phase is the Epiphany series, where Ottogi sculptures and figures, which are considered her most representative works, have been perfected through the painterly vision of her late Homo Sapiens series. ● Her Ottogi sculptures were first produced in 2011. Ottogi, which originally had appeared as prop items in her paintings, were later made into palm-, child-, and human-sized sculptures, as well as gigantic 3–4 meter tall ones, and displayed around the world. Ottogi takes the form of a mother wearing a long skirt and never falls down. Just as a mother embraces her child and the world with maternal affection, Yang's Ottogi springs back upright of its own accord. In her artist's note, Yang speaks about her Ottogi in the following way: ● Ottogi (Roly-Poly) You (汝) within you – your Ottogi Me (我) within me – my Ottogi In the imaginary world of the artist, a motherly-shaped Ottogi is a reflection of motherhood. Motherhood is always made possible through the essence of love and trust, emptying and submitting. Motherhood is made possible when the mind becomes united with the universe, when one moves forward not only with other humans but also with everything that exists. Motherhood is the very chunk of energy that drives our lives upward like an auspicious talisman. ● As seen above, the artist regards motherhood as a "chunk of energy" that lifts us "like an auspicious talisman." If that is the case, how can motherhood be depicted in paintings? The answer to this question appears to be hidden in the Epiphany series. Mostly created over the previous and current year, Yang's Epiphany paintings make it possible to speak of the cosmic dimension of motherhood that cannot be fully explained through Ottogi sculptures. Let us first delve into her polyptych called Epiphany Play. Here, the canvases are painted in pitch darkness, against which background she has drawn small circles. Compared to the size of their backgrounds, these circles are quite small but bright in color, so it is only natural that the artwork evokes in many viewers images of stars in the night sky. In 2022, Yang's star-like circles came apart and reconnected through lines. They were then united in the next step through orderly lines, where she conjured up the form of Ottogi. The artist refers to this as an Ottogi picture. In her recent works, her Ottogi figures are evolving into a form of mandala structure. Through this series of processes, Yang attempts to prove that motherhood constitutes the fundamental energy originating from the early universe and that it has remained the very energy that can save humans and the world with its vibrant waves. ● Yang Soon-yeal has grown into an artist who talks about overcoming, with the power of innocent motherhood, human desires and the resultant demise of the Anthropocene. This message of hers is conveyed to people through motherly Ottogi, her persona. On a bomb-exploding battlefield, in a skyscraper-packed megalopolis with the remnants of our dried-up humanity, or in a wasteland with starving humans and animals, Yang's motherly Ottogi is an existence that reminds us of the preciousness of life and that makes us dream of human salvation and a peaceful future. The conviction that all beings in the universe reflect one another and are mutually connected — at the core of this conviction, an artist has firmly raised a motherly Ottogi as a reminder of the power of motherhood. The very artist dedicated to this cause is none other than Yang Soon-yeal. ■ Choi Eun-ju

Vol.20220826b | 양순열展 / YANGSOONYEAL / 梁順烈 / paint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