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 Black Forest

손은영展 / SONEUNYOUNG / 孫銀英 / photography   2022_0826 ▶ 2022_0907 / 일요일 휴관

손은영_Black Forest #01_한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75×143.5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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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영 홈페이지_soneunyoung.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토요일_1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와이아트 갤러리 YART GALLERY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28 한영빌딩 B1 3호 Tel. +82.(0)2.579.6881 yartgallery.kr blog.naver.com/gu5658

"검은 숲은 침묵한다." (마티아스 클라디우스 Marthias Claudius)

손은영_Black Forest #04_한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143.5×75cm_2022

2000년, 최악의 산불로 불렸던 동해안 산불로 인해 검게 불에 탄 집을 촬영하러 강원도에 한동안 다녔을 때, 문득 바라다본 뒷산의 나무들은 비록 형체는 유지하고 있지만, 생명력을 잃어버린 숯덩이처럼 보였다. 수십 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살았던 거대한 나무가 생명력을 잃고 검게 변한 모습은 실로 표현하기 어려운 충격적이고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만큼 거대한 산불이 지나간 숲은 참혹했다. 마치 폭격 맞은 전쟁터에서나 겪을 수 있을 것 같은 공포감과 상실감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가슴 속에 각인되었다. 황폐해진 숲은 나에게 자연의 처참한 현장을 일깨워주고 있는 듯했다.

손은영_Black Forest #05_판화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80×122cm_2022
손은영_Black Forest #07_판화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122×80cm×3_2022

독일의 생태학자 한스외르크 퀴스터(Hansjoerg Kuester)는 「숲의 역사」에서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숲은 끊임없는 진화의 역사 속 찰나의 순간일 뿐이라고 했다. 숲을 변함없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숲은 역동적인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숲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지구의 역사 속에서 숲은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다. 숲은 성장하며 시들고 새로운 수종들이 나타났다 다시 사라지며 숲은 이러한 흐름에 스스로를 맡겼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지구 곳곳에서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산불이 빈번하고 점점 대형화되어 발생하고 있다.

손은영_Black Forest #08_한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143.5×75cm_2022

이러한 대형 산불은 기후변화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숲이 필요하다. 모든 숲은 단 한 번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한 숲은 기후 조건들이 변화하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숲에 대한 우리의 관심 없이는 더 이상 숲은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이 되는 산줄기, 백두대간의 숲 또한 완벽한 모습으로 평온하게 항상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푸르고 울창했던 숲이 검게 타버린 현장을 다시 찾아갔을 때, 새로운 생명력이 움트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푸른 새로운 풀들과 새 잎이 자라기 시작하고 있었고 강인한 자연의 회복력과 복원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은영_Black Forest #09_한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143.5×75cm_2022

고대 이집트에서 검정은 생명의 색이었다. 나일강 삼각주의 검은 흙은 비옥함의 상징이었다. 죽음의 신 오시리스(Osiris)의 상을 검게 칠했듯이 사후 세계를 부활과 재생의 장소로 믿었기에 검정은 생명의 색이었다. 검은색을 가리키는 단어 black에는 양가적 의미가 담겨 있다. 현대 영어에는 'black'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지만 고대 영어에는 blaec와 더불어 blac도 있었다.두 단어가 엄밀하게 구분되어 쓰이지는 않았지만 blaec은 오늘날의 black하고 비슷한 의미고 blac은 창백한, 빛나는, 때로는 심지어 하얀색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두 단어 모두 '태우다'라는 뜻이 있는 같은 인도유럽어 어근에서 나왔는데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한 단어는 타고난 뒤에 남은 탄화된 물질을 가리키고 다른 단어는 불 그 자체를 가리켰다.

손은영_Black Forest #17_한지에 반다이크 브라운 프린트_143.5×75cm_2022

일찍이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무분별한 살충제 남용에 따른 환경 오염을 「침묵의 봄」에서 지적하였다. 살충제의 남용은 살충제에 내성을 지닌 곤충으로 진화해가고, 더 강력한 살충제가 나오고, 다시 곤충은 진화한다. 끝없는 악순환은 지표수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토양은 갈수록 척박해진다. 자연의 죽음이 곧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찾아온 것이다. 침묵의 봄, 그것은 결국 자연의 죽음이다. 기후재난으로 불리는 대형 산불은 대부분 인재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숲의 파괴를 불러일으키고, 숲의 파괴는 인간의 삶을 황폐화한다. 숲이 없는 인간의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침묵하듯 변화 없는 자연 그대로인 듯한 숲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연의 역동성과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 손은영

Vol.20220826e | 손은영展 / SONEUNYOUNG / 孫銀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