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DER

안성규展 / AHNSUNGKYU / 安盛圭 / painting   2022_0831 ▶ 2022_0919 / 9월3일, 9~12일 휴관

안성규_경계(Border)21-13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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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규 인스타그램_@sunkyu_ah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보나르 기획초대 제23회 안성규 개인전

관람시간 / 11:00am~08:00pm / 9월3일, 9~12일 휴관

갤러리 보나르 Gallery Bonart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한강로158번길 91 (망월동 839-4번지) 1층 Tel. +82.(0)31.793.7347 blog.naver.com/gallerybonart

도시 vs 하늘: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인위와 '스스로 그러한' 무위 ● 도시와 하늘의 정의는 극명하다. 도시는 그야말로 인간이 모여 살면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공간이고 하늘은 태초부터 존재해 온 우주, 자연의 공간이다. 인간은 살면서 욕망없이 살 수는 없다. 욕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기 쉽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욕망은 그 자체로 삶의 추동력이 된다. 그러한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곳, 욕망이 만들어내고 욕망을 이루는 곳, 욕망이 좌절되기도 하는 곳이 도시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무위, 무욕이다. 맑고 투명한 하늘은 늘 우리의 머리 위에 있지만 그 변화 무쌍한 모습에 따라 우리는 아름다운 감상에 빠지기도 하고, 영웅적이고 숭고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때로는 그 끝없는 깊이에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하늘은 땅에 붙어사는 인간의 욕망에는 무심한 듯 '스스로 그렇게 있는' 존재인 것이다.

안성규_경계(Border)20-82 바라나시의 새벽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20
안성규_경계(Border)22-12 라치오의 아침_캔버스에 유채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22
안성규_경계(Border)22-41 성산의 아침_캔버스에 유채_85×100cm_2022

경계에서 만나다 ● 하늘과 도시를 그린 풍경화는 인간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래 무수히 표현되어 온 단골주제이다. 대부분 하늘은 자연의 목가적 풍경으로 묘사되고 도시의 풍경은 거리와 건축물의 구성적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 수 많은 풍경 작품들 사이에서 안성규 작가의 풍경이 독보적인 이유는, 영웅적인고 명상적인 하늘과 인간이 사는 도시의 경계를 주제로 삼은 데에 있다. 인간의 욕망이 우글거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둥바둥 분투하며 사는 '땅-도시'를 안성규 작가는 짧고 조밀한 붓터치로 물감의 마띠에르를 살려 촉각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반면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드넓게 펼쳐지는 하늘은 시원스러운 붓질로 매끄럽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표현한다. 화면의 구성 또한 의도적이다. 작가는 화면에서 하늘이 차지하는 면적을 넓게 안배하고 땅 위에 붙어 사는 인간의 도시를 납작하게 안배하였다. 이러한 기법과 화면구성으로 그가 표현한 하늘은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다가오며 명상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반면, 도시는 아무리 인간의 욕망이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더라도 대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세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러나 안성규 작가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듯 보이는 하늘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인간이 사는 세상에도 애정을 표현한다. 그가 표현한 인간의 도시가 음침하고 초라해 보이지 않고 빛을 받아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가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인간의 욕망으로 생동하는 도시를 끌어안 듯 경계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안성규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안성규_경계(Border)22-42 성산의 새벽_캔버스에 유채_90×90cm_2022
안성규_경계(Border)22-51 부다페스트_캔버스에 유채_90×90cm_2022

관조의 시선 ● 안성규 작가의 작품은 100호 이상의 대형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대형 작품 속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하늘과 화면의 하단에 깔리 듯 표현된 도시 풍경은 그 시점의 거리가 멀지 않으면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풍경이다. 도심 깊숙이 들어갈 수록, 건축물과 인간의 삶에 집중할 수록, 하늘이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누구나 한번 쯤은 인지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삶에서 떨어질 수록 더욱 더 드넓은 하늘과 자연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된다. 안성규 작가의 작품은 이렇듯 관조의 시선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풍경이다. 그의 그림을 감상할 때 왜 우리의 마음이 경외와 숭고로 가득 차 명상하는 기분이 드는지, 왜 아웅다웅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도시의 모습이 찬란하고 생의 역동성으로 가득 차 보이는지 이로써 설명할 수 있다.

안성규_경계(Border)22-81 프라하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22
안성규_경계(Border)22-82 독도의 새벽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22

도시의 빛과 하늘의 빛 ● 그 자연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하늘은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구성물과 맞닿아 있는 것이리라. 특히 도시와 뗄 수 없이 붙어 있는 자연이 하늘 아닌가. 안성규 작가의 근래 작업은 어스름한 해질녘과 동틀녘, 둥그런 달이 떠 있는 밤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대자연의 빛은 우리에게 가슴벅찬 감상을 안겨주지만 그 안에서 작게 빛나며 한 거리, 한 집안을 밝혀주는 도심의 불빛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안성규 작가는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세상이,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대자연 하늘과 만나 그로부터 위안을 받고 겸손해지기를, 그리고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의 '경계-Border' 연작의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 이승신

Vol.20220831e | 안성규展 / AHNSUNGKYU / 安盛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