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기억 : 새김 Dull Memory : Engraving

한희선展 / HANHEESUN / 韓姬善 / installation   2022_0913 ▶ 2022_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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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선 유튜브_www.youtube.com 인스타그램_@sweethan6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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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 인천문화재단_인천광역시 협력 / 해병대6여단_옹진군청_문화재청

관람시간 / 일출 30분전~일몰 30분전까지

백령도 하늬해변 Baeng-nyeong Island Hanui Beach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 산1-1번지

작가 한희선은 존재가 남긴 흔적을 빌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 한다. '무뎌진 기억, 새김'은 백령도 하늬해변이라는 특정한 장소와 강화 소창이라는 지역적 소재를 가지고 서로 연결 지으며 얻어지는 흔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 아름다운 하늬해변에는 군사방어 시설인 '용치' 수백여 개가 해안선을 따라 도열해 있다.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부서지고 녹슨 용치들은 늙은 군인을 연상케 하지만, 백령도를 지키는 젊은 군인의 밝고 상기된 표정이 서로 겹쳐지면서 이 둘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어 마치 철이 산화되어 녹이 슬었지만, 제련 과정을 거쳐 다시 철로 환원되는 듯하다. ● 성글게 짜여진 강화 소창은 낡고 차가운 용치로부터 흐르는 녹을 감싸 안고 그들의 희생과 노고를 위로하며 온 몸에 새긴다. 피고름 같은 녹은 산화의 흔적으로, 소멸이 아닌 환원을 동시하고, 텅 빈 백지이자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소창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에게 '사이흔적'을 남기게 된다. 무뎌지고 녹슨 용치는 산화된 시간만큼 현재를 지탱하고 평화와 안전으로 환원된 기억해야 할 존재들이며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흔적이다.

관계, 희생, 상처, 위로, 화해, 평화, 공존 - 관계맺음과 순환의 산화환원 관점의 의미 ● '사이흔적, 무뎌진 기억'은 존재가 남긴 흔적을 빌어 모든 존재가 서로 관계맺고 있음을 주제로 바스러진 녹과 그것들 사이에서 남겨진 흔적을 산화환원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기획되었다. 철의 산화환원 과정은 철과 녹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순환을 넘어, 산화환원 과정 중의 전자들의 이동과 결합 관계에 의한 순환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환원의 의미인 전체의 속성이 부분의 속성과의 '관계'로 분석되는 것과 이해를 같이 한다. ● 이 전시는 녹슬고 버려진 사물들과 새로운 사물들과의 관계 즉, 산화된 것들과 환원된 존재들의 관계를 동시성의 시선으로 돌이켜 보고자 한다. 지난 일들을 다시 떠올려 되새기는 것은 오래 기억하고자 하는 새김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희미해지거나 사라질 것들을 기억하거나 기록한다는 것은 다시 새겨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거나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다. 지난 초겨울에 찾은 백령도에서 흐릿해진 존재들로부터 환원되거나 다시 확연히 되새겨야 할 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희생과 상처를 평화와 공존으로 치환한 사이흔적 ●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뱃길로 228km 거리에 있고 섬으로 들어가는 동안 그저 망망대해만 펼쳐진 지루한 4시간을 버텨야 겨우 육지를 밟을 수 있는 섬이다. 백령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는 북한의 장산곶으로 불과 16km 떨어져 있어 섬 전체가 군사 요충지임을 말해준다. 약 만 여 명 되는 인구의 절반이 군인과 그들의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도 군사 시설을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나라 여느 섬들과 달리, 육지에서 바라보는 섬이 주는 신비로움을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관공서나 국경일에만 볼 수 있는 태극기가 이 섬에서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낡고 해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휘날리는 태극기가 섬 어디에서나 흔히 마주치는 솜털 보송한 앳된 군인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 백령도 서북쪽, 평화와 교류의 상징인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의 서식지로 잘 알려진 하늬해변에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시원한 수평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천연기념물과 생태적 서식지인 그 곳에는 1970~80년대 설치된 군사방어 시설인 '용치'(龍齒) 수백여 개가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어 보통의 해변과는 이질적이면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인 용치에는 굴, 조개 등 다양한 어패류도 서식하고 있는데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생태 서식지로 몸을 내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용치들은 어느 용맹스런 군인 못지 않게 이 곳을 지켜온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간조 때는 몸통이 파이고 훤히 드러난 용치 대대가 날카로운 창을 들고 적을 향해 일제히 도열하고 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무뎌지고 녹슬어 그렇게 모진 상처들이 시공간에 새겨져 있다. ● 밝은 표정의 앳된 군인들과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녹슨 용치들 사이에서 희생과 상처를 평화와 공존으로 치환한 '사이흔적'들이 널려 있다. 간두지세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용치 끝에서 버텨낸 산화된 시간만큼, 평화롭고 안정된 시간으로의 환원을 위해 위기와 장애 속에서도 굳건히 버텨준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관계맺음 속에서 뭉툭해진 자유와 평화로 환원된 기억 ● 우리의 삶에서, 예리하고 날카롭던 것들이 무뎌진다는 것은 그 기능을 상실하여 쓸모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뎌진 기억'은 오히려 날 선 것들이 서로 부딪히는 만남과 관계맺음 속에서 화학적 산화가 일어남과 동시에 뭉툭하지만 유연하고 자유로운 평화로 환원된 기억임을 이 전시를 통해 되새겨지기를 바란다. ■ 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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