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다

칡뫼 김구展 / KIMGOO / 金九 / painting   2022_0914 ▶ 2022_0927

칡뫼 김구_바라보다-1_장지에 수묵담채_162.2×32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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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뫼 김구 인스타그램_@chicmekimgoo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葛山理 칡뫼의 분단 "바라보기" ● 철조망이 세로로 겹쳐서 꽃처럼 열매 맺은 「철쭉」. 신문지 쪼가리들이 쓰레기로 나뒹구는 황폐한 땅에서 무럭무럭 붉은 철조망이 자라거나(황무지-1), 우박처럼 바닥에 꽂힌 돌맹이들 사이로 푸른 색과 붉은 색이 묻은 신문지가 버려져 있다(황무지-2). 임진강 건너편 북쪽 풍경을 배경으로 거대한 돌이 비처럼 내리고 있고(개풍군 풍덕별), 마그리뜨의 작품 '골콘다Golconda'에서의 반복 배치 기법을 차용한 그 부석浮石중엔 사람 얼굴을 한 돌도 있다(고성에서, 교하에서, 바라보다-1). 그런가 하면 서울 시내에도 돌비가 내리고(돌비 내리는 풍경),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거대한 돌이 변두리 산동네를 위협한다(주먹도끼). 그 어디엔가 쯤 '국가유공자의 집' 표지와, 태극기와 '화랑무공훈장'을 가슴에 단 화가의 아버지가 서 있고, 그 옆에선 강아지도 목에 두른 훈장을 핥고 있다(아버지).

칡뫼 김구_황무지-1_장지에 수묵담채, 신문지_94×130.3cm

거의 모두가 분단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다. 분단의 현장성이 묘한 긴장감으로 드리운 경기도 김포 북단 갈산리葛山理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66년을 살아온 김구 작가의 그림에 대한 간단한 묘사다. 그중에서 「황무지-1」과 「황무지-2」는 작가의 다음 노트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전쟁으로 인한 분단은 상대에 대한 증오를 남겼다. 증오는 불신과 한 몸이다. 그 결과 증오를 이용하여 적을 생산하고 활용까지 하는 세력이 생겼다." 분단팔이와 편 가르기 레드 컴플렉스에 기생해서 연명하는 한국언론 생태에 대한 비판적 은유이자 풍유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이 어떻게 70년 지난 현재까지 정치·사회·문화를 메카시즘으로 잠식하고 있는지, 그 통증과 비극을 이 작가 노트와 그림은 증언하고 있다.

칡뫼 김구_황무지-2_장지에 수묵담채, 신문지_94×130.3cm

작가에게 태생적 정서나 성장기 교육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감성과 인식에 절대적 원형으로 작동한다. 바로 그런 분단의 역사적 배경이 긴밀하게 잔존하는 공간(얼마 전까지도 북의 대남방송이 들리고, 삐라가 자주 발견되고, 또 군부대도 많은)에서 살아온 작가이고 보면, 그것은 더 강조가 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을 터다. 화가 김구. 휴전 3년 뒤 농부이자 국 가유공자 아버지에게서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인 그가 개인사와 엮인 분단이라는 거대서사를 발언하는 것은 그래서다. 다음의 작가 노트는 바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김구의 과거 집안 내력(과거 그의 조부와 부친에게 실존이었던)과 바로 지금 당사자의 실존적인 현실에 대한 토로다. "그림을 그려오면서 그림이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그릴 것인가? 늘 물었던 질문이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림은 사물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감싸고 있는 사실 중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식민지 시절을 겪은 나의 할아버지는 해방이 화두였고 결과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다시 전쟁이 나고 군대 간 아들, 나의 아버지에겐 통일이 화두가 되었다. 그 손주인 나는 분단 시대를 공기처럼 숨 쉬며 산다. 우리 모두를 통째로 덮고 있는 가장 아프고 슬픈 사실이다. 결국 분단을 모른체 하고 산 너머 경치를 그릴 수는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독학으로 작업해온 작가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미술을 전공한 작가들 상당수가 현대미술의 형식론이나 흐름 어떤 지점에선가 작업을 출발하는 경향과는 달리, 철저하게 자신의 체험적 현실에 기반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1950년대 중반에 출생한 그의 세대론적인 특징일 수도 있고, 그의 가족사와 요람기-청소년기-청년기를 거쳐 60대 중반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갈산리에서 분단 현상을 일상적으로 체험해서 그럴 수도 있고, 베이비 붐 세대의 지독한 반공 교육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럴 수도 있을 터다.

칡뫼 김구_대학의 죽음_닥피지에 수묵담채_62×93cm

한국전쟁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에겐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전쟁으로 인한 급속한 인구 감소에 대한 가역적 현상으로 폭발적인 출생 증가가 첫 번째이고,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부모 세대가 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교육열로 인해 부와 성공에의 집착과 부담이 그 두번째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반공을 평생 질기게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운명적 카테고리가 하나 더 있다. 인위적으로 남한 사회를 구속하는 분단 이데올로기는 이 세대에겐 지문처럼 몸과 정서에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나 상식에 기반한 이해와 관용보다는, 혐오와 증오와 배제라는 반공 메카니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수동적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체적으로 그렇게 파시즘적 흑백론에 포섭되었다. 자유보다는 위계에 의해 균형을 상실하고 무조건 반공이라는 강박에 구속되었고... 이런 현실을 김수영은 "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라는 시 구절을 통해서 그런 사회적 금기에 포박된 우리 사회와 시대 현실을 비판한 바 있다. 그만큼 휴전선 남쪽 한반도의 현대사는 반공이란 철선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특히 전후세대는 독재정권의 관제 교육을 통해 정서와 의식을 투철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안티 커뮤니즘Anti-communism과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로 전면 도색해야만 자신의 시대를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대는 상대적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같은 분단을 넘어서려는 역사 의식 또한 갖고 있다. 즉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싫어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상호 병립하기 어려운 양가적 입장이 내면과 행동의 바탕에 깊숙이 모순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보수/진보, 우/좌, 부자/가난 등의 개념으로는 그 정체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다면적이고도 복합적인 개인적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과 사회적 명분이 두루 얽힌 세대이기도 하다.

칡뫼 김구_돌비 내리는 동네_장지에 수묵담채_97×162.2cm

베이비붐 세대인 김구도 동세대들의 양면성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작품은 그의 내면에 집적한 의식과 지향하는 역사적 인식이 일정 정도 통일되어서 나온 선명한 방향성을 띈다. 인식의 단층을 극복한, 작가로서 고무적인 지향성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시공간에 나를 드러내는 짓이고 또한 나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편 분단을 그리는 작업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작가 노트의 구절은 이런 그의 작업 배경을 설명해 준다. 물론 이는 구체적으로 분단이나 통일에 대한 이론적·운동적 접근을 담보한 것이 아니므로, 작가의 관념성을 반영한 정도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현실을 반영하되 현실적 힘으로 작동하기엔 추상적인 미술의 딜레마가 있다. 특히 회화라는 전통적 장르는 더 그렇다. 내용 전달 방식이 구체적인 서술성이 아니라 다분히 정서적이고 간접적인 시각적 상징이라서다. 메시지를 담은 작품은 당연히 타자와의 소통이 제1의 목적인데 관객과의 소통 과정에 아포리아 Aporia가 발생하면서 이런 난독적 현상은 더 심해진다. 회화라는 장르의 단점이자 질료적 상징체계가 갖는 강력한 장점이기도 하다.

칡뫼 김구_강화 갯벌에서_장지에 먹_130.3×162.2cm

김구의 작업에서도 이 장단점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시공간에 나를 드러내는 짓이고 또한 나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작가적 태도를 긍정적으로 수렴하는 장점과 함께, 결코 그런 소극적 방식으로는 그가 바라는 바 "분단을 그리는 작업이 분단을 극복하는 일" 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지금 한국 현실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데, 또한 남북간 평화협정 조차 국제적 합의 도출 실패로 실패한 게 현실인데, 어떻게 통일을 구체적으로 꿈꿀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국의 화가는 이 불가능을 꿈 꿀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불행이다. 누구도 거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 지금 시지프스처럼 아래로 굴러 떨어진 종전선언의 바위, 평화협정의 바위, 통일의 바위를 산정으로 끌어올리는 걸 반복해서 시도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그 반복적 작업행위가 관객들과 만나면서 불러일으키는 소통효과는, 적어도 분단 극복의 의지를 생성시키는 단초는 될 것이다. 미술은 그런 거다. 작품을 만나는 타자로 인해 작가가 추구하는 지향성의 확장이 가능한 장르라는 거. 그 울림이 더 깊고 더 커지기 위해서 작가의 미적 형식과 기획전략의 치밀함이 필요한 그런 거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미술 행위의 종착점 아닌가.

칡뫼 김구_교하에서_장지에 수묵담채_97×162.2cm

김포 북단 갈산리 출신의 화가 칡뫼 김구.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온 미술 비전공자라 작업기간에 비해 활동량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 미술은 무엇이어야 하며, 또 자신이 지향할 작업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인식한 점은 여느 기성작가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다. 분단 역사와 현실에 천착해서 그 현상을 집요하게 "바라보기" 하고 발언하려는 그의 작업 태도와 주제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현실과 괴리된 채 관념적 도그마에 빠져있는 것보다 훨씬 긴장감이 있다. 다만 20 여 년 이상 매달려 온 양식에서 일탈해서 다양한 재료와 열린 형식실험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할 듯하다. 주제를 동시대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현실반영과 비판의 메시지가 선명한 작업의 선결 과제이니까 말이다. 과거와는 다른 분단과 통일에 대한 논리와 담론이 필요한 지금, 작업 형식도 그에 비례하는 새로움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니까. 물론 이는 칡뫼 김구만이 아니라 분단을 소재로 다루는 모든 작가 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이 개인의 고립된 감각의 향연을 넘어서서 사회적·정치적 의제로 확대되기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첫번째 덕목이 그것 아닌가. 여러모로 힘든 조건에서도 작업 주제를 놓치지 않고 고군분투 하는 칡뫼 작가에게 작업의 실험적 변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김진하

Vol.20220914f | 칡뫼 김구展 / KIMGOO / 金九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