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숲에서

정용일展 / CHUNGYONGIL / 鄭用一 / painting   2022_0916 ▶ 2022_0930 / 월요일 휴관

정용일_낯선 숲에서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E1 전시장 Tel. +82.(0)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생성과 소멸의 뜻밖의 조우, 정용일의 숲 - 흔들리며 맞닿은 삶과 죽음의 경계, 정용일의 낯선 숲 ● 연어가 강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가듯, 항해에 지친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듯 정용일은 새로운 전시에서 숲을 다시 찾는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展_인천아트플랫폼 E1 전시장_2022

전시의 주제는 '숲'. 여기서 숲은 동시에 두 가지의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그가 이번 전시에 들고나온 소재로서의 숲이며, 또 하나의 숲은 구체적 공간 혹은 현장으로서의 숲이 아닌 정신과 물질성을 잇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숲이다. 사실 그는 '숲'이라는 소재를 지금까지 적지 않게 제시한 바 있다.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숲은 보통명사로서 나무를 포함한 생태계의 집합이라는 개념을 넘어 인간의 불가역적인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나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생성과 소멸의 비밀을 때로는 전통적 무속에 기대어, 때로는 서양적 개념인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를 통해 풀어가는 여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정용일의 숲은 인간 개개인의 탄생과 죽음, 인류 문명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반복되는 장으로 읽을 수 있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 오일바_181×227cm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259×182cm_2022

낯선 숲속에서 길 찾기 ● 정용일에게 점묘(點描)는 초기작에서 보여 왔던 직접적·사실적 표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전과 달리 신화와 무속의 이미지를 형형색색의 점묘를 통해 몽환적으로 결합하였는데, 초기의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저채도를 기반으로 한 사실적 표현방식과 동떨어진 경쾌하고 산뜻한 색점의 대비를 들고나와, 묵직한 주제에서 오는 부담감을 상쇄하는 한편, 조형 의식 자체를 확장하는 시도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역시 즉자적 이미지가 주는 소재주의적 태도는 여전히 극복해야 하는 숙제였지 않았을까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 여정을 되짚어 볼 때 점묘의 도입은 분명 그에게 표현방식에서 운신의 폭을 확장한 큰 계기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겠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81×227cm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81×454cm_2022

2007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숲의 모습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가 그랬던 것처럼 회화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업으로 이해할 만하다. 뉴 밀레니엄 벽두에 떠난 프랑스 유학 이전부터 긴 시간 천착해 왔던 전통과 무속의 직접적 이미지를 벗어나려던 그에게(1980~90년대 많은 작가는 이른바 '한국성의 탐색'이라는 당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가온 숲의 이미지는, 나무라는 단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것이 군집을 이룬 숲에 대한 회화적 해석의 가능성을 포착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숲은 조형적 질서를 내재한 복합체라는 소재의 측면이 더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리히터의 '문지르는' 기법과 유사했던 점은 그를 또 다른 회화적 방법론의 탐색으로 이끈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82×518cm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 유채_259×182cm_2022

2013년의 그가 보여준 숲의 이미지는 프랑스 유학 전 이미 선보였던 색점(色點)으로 가득한 빛의 세계였다. 이때의 숲은 어쩌면 몽환과 환영으로 가득 찬 태초의 시간을 상징하는 듯했다. 단순한 조형적 질서의 실험에서 벗어난 숲에 대한 다의적 해석은 향후 이어질 생성과 소멸의 현장이라는 숲의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게 한 돌파구였다. 그러나 시간이 다양한 색의 향연으로 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어려운 질문에 답을 궁구하는 듯한 그의 화면은 형이상학적 언설로 가득한 숲이라는 바벨탑 속에서 다시 길을 잃은 듯했다. 시간, 색채, 현학적 개념을 둘러싼 수많은 질문의 늪에 빠진 화면은 마치 숲의 정령에게 발목을 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모습처럼 보였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 오일바_181×227cm_2022

2016년과 그 이듬해의 개인전에서 드러난 숲의 이미지는 강박적으로 밀도를 이루었던 색점에서 해방되어 그가 전시 자료에서 언급한 이른바 '평온함'의 세계로 진입한 첫 사례이지 않을까 한다. 밝고 경쾌해진 화면은 한결 시원해졌고, 특유의 모호한 메시지는 시원한 화면 안에서 평온하게 공존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회화에 대한 형식실험은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259×182cm_2022

2018년에 그가 거닐었던 숲은 내용 면으로는 그간 그가 추구해 왔던 무속 세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형식적으로는 80·90년대의 사실적 표현, 리히터 기법과 무한한 색점이 동시에 드러나는 절충적 방식이었다. 그는 여전히 볕이 들지 않는 숲에서 암중모색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89×130cm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81×227cm_2022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2021년에 열린 초대 기획전은 어쩌면 정용일 회화 세계의 확장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전환점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경계-생」과 「자연의 신전」 연작을 통해 그는 한결같이 천착했던 한국적 무(巫)의 개념을 그리스 신화 속 삶과 죽음의 상징에 연결함으로써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듯 보였다. 이미지와 색채는 더욱 큰 자율성을 얻었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해져 회화의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선 모습이었다. 그는 이 전시에 내놓은 작품들을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어두운 숲속에 스며든 한 줄기 빛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당시의 팬데믹(pandemic) 상황은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전시의 명제와 밀착하여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소기의 효과를 거두었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81×454cm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82×518cm_2022

이렇듯 2000년대 이후 정용일의 회화 세계는 내용 면으로는 인류가 가진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운명, 그 운명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 에너지의 비밀스러운 상징으로서의 숲이 두드러진다. 한편으로 회화 공간 내부의 논리에 한정해 보자면 거대한 회화적 기호를 상징하는 '숲'에 대한 탐색과 해석으로 점철된 구도(求道)의 과정이었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 오일바_162×130cm_2022

낯선 숲에서 회화 본연의 길을 찾다 ● 작가에게 고정된 스타일이 없다는 말은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그런데 스타일이 아니라 주제의식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즉, 평생 유사한 형식의 작업을 계속해 온 작가와 평생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져온 작가는 비슷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실은 전혀 다른 태도를 지닌 작가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미 완성되어 고정된 스타일의 작업을 지속하는 일은 기능적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할 여지가 다분하다. 대중의 인지도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관된 주제의식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형식실험을 감행하는 작가에게 고정된 형식이란 있을 수 없다. 마치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인 이데아처럼 정용일의 회화에서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의 재현은 행위의 이유 자체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는 구도자의 태도와 비견할 수 있는데, 당연하게도 그의 회화에 대한 열의에 따른 성실한 노력의 결과로 읽을 만하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 유채_259×182cm_2022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예의 숲을 낯설게 바라본다. 말할 것도 없이 형식실험은 그치지 않는다. '그린다' 혹은 '긋는다'는 회화의 본연으로 회귀하는 듯한 「낯선 숲에서」 연작은 그의 화력(畵歷) 이후 간단없었던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그 경계를 부유하며 잇는 의미소의 총합일 뿐만 아니라 회화 형식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식을 보여준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259×182cm_2022

숲을 넘어 자연 개념으로까지 확장한 그의 시선과 그를 외면화하는 재료로 목탄을 적극 활용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나무라는 자연으로부터 취한 목탄은 드로잉 재료로서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바, 그는 그것을 반복하여 긋고 문지르고 지우는 과정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그대로 박제한다. 이때 두 가지 현상이 목격되는데, 색채의 최소화와 움직임(행위)의 기록성이 그것이다. 거의 단색화에 가깝게 변화한 화면은 미완성된 듯한 느낌마저 주어 생성과 소멸의 극한 대비를 보여줌과 동시에 나와 타자, 표현과 비워둠의 미묘한 경계를 시각화한다. 그리고 행위의 흔적인 불규칙한 선들은 지워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함으로써 자연의 본질을 기록하는 자의 사유의 변화와 그것에 필요한 시간의 두께를 기록한다. 화면 속의 자연은 그의 손끝에서 영원한 시간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데, 거대한 화면 크기로 인하여 자못 날것의 야생성이 극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무한한 시간은 사물을 덮기도 하고, 어스름하게 드러내기도 하며, 광포하게 성큼 다가오기도 한다.

정용일_낯선 숲에서_2022
정용일_낯선 숲에서_캔버스에 목탄_130×89cm_2022

지난한 사유의 끝에서 찾은 회화 본연의 길은 과연 그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평온함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낯선 눈으로 보는 이, 정용일의 회화가 또 어떤 변신을 준비할지 기다려지는 이는 필자뿐 아닐 것이다. ■ 박석태

Vol.20220916f | 정용일展 / CHUNGYONGIL / 鄭用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