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s 화가의 초상 Ⅱ

윤기원展 / YOONGIWON / 尹己源 / painting   2022_0917 ▶ 2022_0925

윤기원_Artist(권오상)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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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원 블로그_blog.naver.com/hjodan23

초대일시 / 2022_0917_토요일_04:00pm

후원,협찬 / 강원문화재단 주최,기획 / 윤기원

관람시간 / 11:00am~06:00pm

후 미술관 Hoo Museum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비야동길 10-12 www.facebook.com/artfactoryhoo

다시 묻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마침내 답하다. 『화가의 초상』으로 - 브로커 : 아티스톡의 기원 ● 이미 숯은 하얗게 타버린 지 오래다. 석쇠 위엔 까맣게 그을린 돼지껍데기 두 점만이 나뒹굴 뿐이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소주병과 맥주병의 황금비율. '남식이' 김원근은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아있었다. '난 사랑 받고 싶어' ● 카메라는 꺼졌고 인터뷰는 종료됐지만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고 관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윤기원 『화가의 초상』은 그렇게 한층 깊어졌다.

윤기원_Artist(김시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22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 공셸TV 「윤기원의 아티스톡」 마지막 질문, 예술가에게 예술의 정의를 묻는 것에서 윤기원의 작업은 시작된다. '예술은 사기'라는 정해윤의 도발적인 표현부터 '답이 없다'는 박성민의 게으른 발로, '같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김홍식의 나눔의 미학까지. 동시대 예술가들이 말하는 예술에 대한 정의는, 그것으로 귀결된 그들의 지난 '삶 이야기'와 함께 다채로운 심상으로 떠올라 윤기원에게 맺힌다. 그저 '사람이 좋아' 그린다는 윤기원이기에 그와 같이 예술가로 태어난 이들은, 그 어떤 대상보다 고귀하고 캔버스에 담아 오래도록 함께하고픈 존재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예술 작품의 가치만큼이나 예술가의 삶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기에 『화가의 초상』을 기록하고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윤기원_Artist(김원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22

윤기원의 인물화는 이미 대학교 3학년 때 그 틀이 만들어졌다. 벌써 20년이 흘렀으니 그의 붓을 통해 세상에 재매개된 이들만도 수백 명이 넘는다. '내가 수백 명, 수천 명의 얼굴을 그렸을 때는 초상화가 아닌 사회를 그린 것이다'라는 강형구의 말처럼, 윤기원 또한 스스로가 메신저가 되어 사회 한 축으로써의 '화가의 삶'을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인물을 넘어선 인물화, 개인으로부터 사회, 관계로의 확장.

윤기원_Artist(김홍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22

윤기원이 대학 졸업 후 결성했던 젊은 작가 집단 「스튜디오 유닛」은 그의 가치관과 작품 세계를 가늠케 하는 시초라 할 수 있다. 당시 작품 발표 기회를 갖지 못하던 젊은 작가들과 뜻을 모아 '작업실 투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무명의 화가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셈인데, 현재 그가 진행하고 있는 「윤기원의 아티스톡」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각자도생, 자기PR의 시대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작가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행위. 그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하는 것. 이는 『화가의 초상』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작은 물음이기도 하다. '브로커는 우리가 아닐까요?'

윤기원_Artist(두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22

2020년 『화가의 초상1』과 2022년 『화가의 초상2』의 가장 큰 차이는 대상과의 관계에 있다. 『화가의 초상1』이 윤기원과 관계되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반해, 『화가의 초상2』에서는 생면부지 화가들과 새롭게 형성된 관계가 주를 이룬다. 그 바탕에는 또 다른 브로커가 존재했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아트놈이 하태임을, 안창홍이 정해윤을 이어줬다. 특히 안창홍의 경우 '동시대 작가의 기록'이라는 진정성에 공감하고 몸소 브로커가 되길 자처했다. 김을, 홍순명, 김나리, 송필, 최선길 등으로 관계는 무한히 확대 재생산되었고, 지금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의 사슬은 『화가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촘촘하게 매듭지어지고 있다.

윤기원_Artist(박성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22

이상한 화가 윤기원 (feat. 김밥장인) ● 사실 윤기원의 인물화를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인 측면, 관계 지향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강렬한 원색에 파격적인 구도와 대비. 켜켜이 쌓아올린 색면의 고밀도성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검고 진한 라인으로 친절하게 윤곽까지 잡아주니 보는 이의 사고는 그 안에 갇혀 도망갈 곳이 없다. 흔히 말하는 예술의 모호성, 여백의 미, 열린 결말,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얼버무림이나 미사여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가 그 모습으로 거기에 있을 뿐이다.

윤기원_Artist(이재삼)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cm_2022

그렇다면 무엇이 사회, 관계 지향적이란 말인가. '예술은 취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윤기원은 자타공인 '김밥장인'이라 불릴 만큼 김밥을 좋아한다. 그의 작업 또한 그 특성에 있어 김밥과 매우 닮아있다. 각각의 재료는 섞여서는 안 되고 한 눈에 다 보여야 한다. 명확하게 구분된 영역에서 고유의 맛과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비빔밥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깔끔하게 김으로 말아줘야 비로소 완성이다. ● '이제 당신은 김밥을 먹을 때마다 윤기원의 작품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윤기원_Artist(정해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12cm_2022

너와 나의 명확한 구분, 일반화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대상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물감 제조사에서 나오는 원색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조색하지 않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 색 자체가 갖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조색을 통한 변형이나 통제를 거부하고 주어진 환경, 제한된 여건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끊임없는 조합과 실험을 통해 파격적인 결과물을 낳는다. 기존의 보색, 대비 개념이 만들어낸 색조합 법칙은 파괴되고 새로운 비주얼 스캔들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각각의 고유한 색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가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명확한 구분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관계 지향적 태도는 윤기원의 2017년작 '21세기 민주주의'에서 군중으로써 구체화된 바 있다. 10여 개국 아티스트의 초상을 5m60cm 한 화면에 담은 것인데,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개념조차 각 나라, 민족,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피력한 것이다. 큰 틀에서 윤기원의 작업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해 관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윤기원_Artist(최울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22

헤어질 결심 : 자기애와 자기모순 사이 ● 고백하자면 『화가의 초상1』 전시를 마치고 「아티스톡」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잠시 있었다. 전시를 통해 프로젝트가 완결의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윤기원은 「아티스톡」을 진행하면서 계획보다 빨리 『화가의 초상』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작업을 요구받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언제까지 같은 그림을 그릴 것이냐' 힐난하기도 했다. 다름을 누구보다 존중하는 작가이기에 더 뼈아픈 말들이었다. ●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최울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가 했던 것처럼 지난 작업들을 불태워야하나 고뇌하기도 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자기 내면세계에 틀어박혀 사는 건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예술가로 살아온 지난 삶이 자기애에 빠진 자기모순의 결과는 아니었는지 혼란스러웠다. ● 과거로부터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닐까.

윤기원_Artist(하태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3cm_2022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 그렇다. 윤기원은 붕괴되지 않았다. 그의 내면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작가는 웅덩이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라는 이재삼의 말처럼, 이미 충분히 깊은 자기 내면, 자기 질서를 파놓았다. 그 질서가 주변에 아무 것도 남지 않게 할지라도 그것은 윤기원 스스로가 택한 그만의 '예술가의 길'인 것이다. ● 「아티스톡」을 처음 시작하면서 윤기원은 말했다. '적어도 100회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년 간 한 가지 작업 방식을 끌고 온 윤기원에게 100회 정도는 디폴트, 기본값인 것이다. '힘으로 안 되면 힘을 더 줘라'라는 그의 우직함처럼 2년도 채 되지 않아 100회를 채웠다. 그리고 어느새 1년이 더 흘렀고, 두 번째 『화가의 초상』이 시작되었다.

윤기원_Artist(홍경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22

어벤져스 : 끝나지 않을 게임 ● 마블 『어벤져스』는 윤기원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중 하나다. 선과 악의 명확한 대립, 압도적인 스펙터클이 주는 쾌감은 언뜻 그의 작업과도 닮아있다. 특히 악을 무찌르는 히어로물은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장르로, 그의 첫 전시가 '영웅 이야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웅은 그에게 친구였고, 항상 주변을 지켜주던 친구들은 'Friends' 시리즈를 통해 그에게 영웅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캔버스에 담아왔던 것이다. ● 그런 점에서 3년 전부터 시작된 『화가의 초상』은 윤기원에게 어벤져스를 모으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으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예술가들은 그에게 친구이자 영웅이기 때문이다. Avant-garde!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려는 예술가들이 그의 곁에 계속 존재한다면, 이 이야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 김민겸

Vol.20220917a | 윤기원展 / YOONGIWON / 尹己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