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悲歌) Elegy

김희선展 / KIMHEESEON / 金希宣 / multimedia installation   2022_0919 ▶ 2022_1008 / 일,공휴일 휴관

김희선_연접 Junctional_시멘트 몰탈, 호두나무, 금박_오브제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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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홈페이지_www.khm.de/~sun 김희선 vimeo_www.vimeo.com/heeseon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동덕로 36-15(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3층 Tel. +82.(0)53.426.5615 www.bundoart.com

우리, 나무들 ● 김희선은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예술로 승화한다. 시공간을 복합적으로 다루는 그의 멀티미디어-인터액티브 설치작업에는 일상의 문제를 비트는 유머 감각과 삶을 성찰하는 철학적 태도가 공존한다. 때로는 위트가 반짝이기도 하고, 때로는 애잔함으로 관람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그의 작업에는 늘 인간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작가는 각양각색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해내고,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내는 동시에 개인사와 연루된 국가와 정치, 사회, 환경문제까지도 작품에 녹여낸다.

김희선_비가 (悲歌) Elegy_호두나무가지, 작은북, 아두이노, 거리센서, 서보모터_인터액티브 멀티미디어 설치
김희선_비가 (悲歌) Elegy展_갤러리 분도_2022

이번 갤러리 분도에서 『비가』(悲歌)란 제목으로 선보일 신작은 김희선의 예술세계에서 지속적인 관심사인 인간-자연-기술의 상호연관성이 유연하게 교집합되어 있다. 이번 작업의 모티브는 한 사건, 요컨대 작가 집 마당의 나무 가지치기에서 출발한다. 김희선의 주택은 앙증맞을 만큼 작지만 모든 게 갖춰진 작가의 작은 우주라 할 수 있다. 이곳엔 작업실뿐만 아니라 의외로 널찍한 2층 테라스에는 그녀가 정성껏 키우는 갖가지 화초와 허브 화분이 있고, 성냥갑처럼 작은 마당엔 감나무, 호두나무, 무화과나무 같은 유실수 몇 그루가 아름드리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작가는 나무를 수많은 벌레와 미생물들이 서식하는 땅을 지키는 위대한 존재로 여긴다. 작년, 나뭇가지들이 방해된다는 이웃집의 불평 때문에 전지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희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전지가 이루어진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웃이 전지작업을 일일이 간섭하는 바람에 전지 전문가와 약속된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나뭇가지들이 베어져 버린 것이다. 흉측한 몰골의 정원수들을 보는 순간, 김희선의 마음 또한 무너져 버렸고,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 잔인하리만큼 훼손되어 버린 나무들은 가을과 겨우 내내 앙상한 채로 남아서 행여 고사하지 않을지 작가는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봄이 되자 나무들에서 새순이 조금씩 돋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나무들은 맹렬히 가지의 복원을 위해서만 전력투구하는지 올해는 열매를 전혀 맺지 않고 있다. 자연, 그리고 생명체가 급격히 변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고, 예술가는 예술적 감성으로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이번 갤러리 분도에서 선보이는 작업 역시 이 점을 깊이 인식한 작가의 고뇌가 반영되었다.

김희선_비가 (悲歌) Elegy展_갤러리 분도_2022

갤러리 문을 열자마자 마주 보는 벽면에는 한 손에 잡힌 채 수직으로 뻗은 호두나무 가지 하나가 특별한 조각상처럼 걸려있다. 작가의 오른손을 캐스팅한 시멘트 재질의 손에 생생히 드러난 혈관에서, 또 잘린 손목과 잘린 나뭇가지의 대비에서 나무를 수호하지 못한 데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관람자의 동선은 이제 스네어 드럼들로 옮겨가게 된다. 금속 지지대에 놓인 이 작은 북들 각각에는 작가가 마당에서 주운 가느다란 호두나무 가지들이 달려 있다. 관람자의 발걸음을 감지한 센서에 의해 나뭇가지들은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들, 예컨대 생성, 무한, 변이, 연접 등 15개의 단어를 모스부호로 치환한 리듬이 타다닥 탁탁 울린다. '만약 나무가 소리를 낼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이 작품에서 스네어 드럼이 울리는 소리는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음일 수도 있다. 황금색으로 칠한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은 작가가 나무에, 또 소중한 생명에 보내는 경의이자 엘레지(elegy)의 표상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관람자의 동선은 호두나무를 3D 모델링해서 3D로 작업한 영상에 닿게 된다. 나무 둥지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에서 나뭇가지들이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확장되는 과정을 담아 마치 인간 신경조직과 흡사해 보이는 이 작품은 생명력의 위대함을 전한다.

김희선_변위 displace_스크린샷, 3D 디지털 영상_00:05:00
김희선_변위 displace_스크린샷, 3D 디지털 영상_00:05:00

이번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훼손된 자연 생태계와 생명이 스스로 균형 상태로 원상 복구하려는 자정능력(自淨能力)마저 우리가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미 김희선은 이런 문제의식을 여러 작품, 예컨대 2009년 대구아트페어 특별전을 위해 제작되었던 멀티미디어-인터액티브 설치작품 「HOME」(기획; 박소영)을 통해 역설해왔다. 이 작품은 이듬해 뉴미디어아트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Ars Electronica'(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명예상을 수상하고 그곳에서 전시가 되었다. 그해 이 행사의 테마는 'Repair', 즉 훼손되어가는 자연환경, 인간 사이의 관계, 소통의 문제를 회복시켜보자는 의미를 지녔는데, 이 점이 김희선의 작품을 선정한 이유일 것이다. ● 김희선은 2005년 독일에서 귀국 후 몇 년간 우리 화단에서 선구적으로 뉴미디어아트 작품, 즉 최첨단 ICT를 접목한 인터액티브 작업을 선보였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작가는 기계적인 인터액티브를 추구하기보다는 감성의 영역에서 관람자와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관람자를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끌어들인다. 일례로 2015년 대구미술관에서 3개의 독립된 개인전을 하나로 묶은 전시 『The Daegu Trilogy』(기획; 박소영)에서 김희선이 선보였던 「Project Zero」는 오랜 세월 누적돼 고질화된 안전의식 불감증에서 야기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영점으로 돌아가 우리의 의식부터 새롭게 무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갤러리 분도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역시 최첨단 ICT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메카닉 요소, 즉 센서만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감성적인 방식으로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소통을 추구한다. ■ 박소영

나의 정원으로 돌아와 잘려진 호두나무 가지들을 움켜지고 애도하며 슬픈 노래를 만들어 본다. 영화 '양철북'의 오스카가 치는 교란의 북소리처럼... { 생성; 무한; 변화; 광명; 변이; 뿌리줄기; 연접; 변위; 내재성; 공속; 카오스; 존재; 균형; 무심; 소멸; }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화두처럼 맴돌던 단어들을 모스부호의 리듬으로 변환시켜 본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장치와 같은 모터의 단순한 움직임은 잘려진 호두나무 가지들이 혼돈의 리듬을 그리고 경고의 신호를 만들도록 돕는 장치이다. 자연스럽게 자라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 기울게 된 호두나무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다. 사회, 정치적 관계, 문화적 속박, 인간 중심적 욕망으로 인류의 삶과 환경은 비틀어진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하지 못하고 변위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태양을 향해 살아나고자 하는 자연의 힘은 위대하며 무심히 결코 멈추지 않는다. (2022년 여름 작업노트 중 발췌) ■ 김희선

Vol.20220918a | 김희선展 / KIMHEESEON / 金希宣 / multimedia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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