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id Drawing

신영호展 / SHINYOUNGHO / 申暎浩 / painting   2022_0920 ▶ 2022_1009 / 월요일 휴관

신영호_freehand010_종이에 잉크_190×96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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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호 홈페이지_syh.knu.ac.kr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PAL 갤러리 PAL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로164길 21 blog.naver.com/gallery_pal @gallery_PAL

신성한 수묵에 대(對)하여 ● 작가 신영호의 동양화는 이 장르의 관객들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알 수 없거나, 불편하거나, 실망스럽거나, 놀랍다는 감정의 면모가 섞인 반응이다. 동양화 혹은 한국화의 이해 공동체에 속한 관객은 극단적으로 볼 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한쪽은 그것을 전통적인 그림의 다른 이름쯤으로 생각하는 관객층이다. 다른 한쪽은 한국화단에서 진행되어 온 전통의 변형과 실험을 봐 온 관객이다. 두 쪽 모두에게 이 화가의 작품은 그들이 흔히 접하던 관습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좌표에서 낯설게 자리하고 있다.

신영호_freehand011_종이에 잉크_190×96cm_2022

논리상 신영호의 작업은 전통보다 혁신을 향하는 콘템포러리 아트이다. 그렇긴 한데, 이 작가의 미술 원류는 정통의 동양화론 속 설정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예술 이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서예를 익힌 것이다.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그가 매달린 주제는 서예와 회화를 비교하는 연구였다. 애당초 그가 동양화를 전공했으므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회화와 서예는 상당히 다른 영역의 예술 체계다. 어쩌면 그는 서예를 통해 예술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에 당시 한 무리의 작가들이 비구상적인 수묵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경향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때 품었던 의문을 스스로 답을 내리기 위한 선택이 중국행이었을 것이다.

신영호_Liquid Drawing_Dojagi12_종이에 잉크_193.9×130.3cm_2021
신영호_Liquid Drawing_Hangari05_종이에 잉크_130.3×162.2cm_2021

그 물음은 이를테면 "동양화는 서양화라는 현대의 문화 우세종에 대항하는 진영인가? 아니면 서양화 속에 합병되어 서브 장르로 기능하는 부분인가?", "이른바 추상이 구상으로 이룬 이미지를 최소한도로 제시한 방식이 서구의 개념이라면 동아시아에서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은 현대 속에서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개인이 가지는 영역이 아니었고, 역사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문예적 운동이었다. 신영호 작가가 해답을 찾아 떠난 길이 실천이었다면, 그것은 예술과 인문학의 움직임이 작품과 수고(self-description)를 통해 실체화된 현재에 이르렀다.

신영호_magenta 02_종이에 잉크_76×48cm_2022
신영호_liquid drawing 22007_종이에 잉크_72×75cm_2022

신영호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장치를 본인 작품에 연출된 장면으로 깔고 현대적 회화를 완성한다. 그게 뭔가 하면, 동양회화의 오래된 소재를 다른 것들로 갈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여기에 그가 불러들이는 소재는 이미지 주변을 맴도는 관념체이다. 그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한 가지가 개미다. 개미는 그의 그림에서 하나의 문자 형상과 대등한 존재다. 그것은 과거 문인화가나 산수화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통한다. 동양의 선인들에게 대나무, 꽃, 산, 바위는 서구 개념에서 보자면 하나의 기호이자 조형의 단위였다. 전통적인 초충도의 계승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시도는 한편으로는 장난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모필을 써서 완성하는 개미 형상은 작가의 감성과 이론을 작품에 용해해 채우는 논리적 재투입(re-entry)의 방식인 셈이다. 이는 저마다 방식이 다를지언정, 동양의 회화와 서예가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신영호_purple 04_종이에 잉크_76×48cm_2022

이러하듯 정교하게 설정한 개미는 동시에, 그의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꽤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너무나 명확한 대상 그 자체인 소재가 가진 지시성 때문이다. 이 즉물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작품의 매력이 깎일 우려가 있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온갖 알레고리와 시각적 충격 요법을 강박적으로 고안하는 다른 많은 동시대 미술가에 비하면 오히려 곧고 점잖은 면일 수도 있다.

신영호_liquid drawing 2204_종이에 잉크_76×53cm_2022
신영호_magenta 002_종이에 잉크_76×48cm_2022

그는 본인의 수묵화를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으로 부르길 제안해 왔다. 이 용어는 서구적 개념으로써 드로잉을 액체상태인 먹물로 완성하는 과정을 강조한 말이다. 리퀴드 드로잉이란 말은 작업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돕지만, 모순적이며, 한편으로는 도발적인 표현이다. 여기에는 드로잉은 펜이나 연필로 그리는데, 그게 아니라면 드로잉이 아니라는 반 명제 논리가 따라붙는다. 또 다르게는 리퀴드 드로잉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형성된 수묵화의 장르적 권위를 훼손하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논쟁이 될 수도 있는 이 제안은 내 생각으론 두 가지 목적이 숨어 있다. 하나는 예술 형식은 박제화된 상태로의 답습이 아니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수묵의 영역을 재정의하려는 야심이다. 다른 하나는 쉼 없이, 그렇지만 본인의 작업관이 바깥 세계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려는 작가 태도의 선언이다.

신영호_powderdrawing02_종이에 잉크_52×38cm_2022
신영호_powderdrawing03_종이에 잉크_52×38cm_2022
신영호_powderdrawing08_종이에 잉크_52×38cm_2022

최근에 신영호 작가는 인장(印章)을 통하여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동양화에서는 대략 천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낙관이 전해져왔다. 도장 찍기는 동양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서명의 표식이었고, 미술 연구에서 그것은 고서화를 감식하는 유력한 근거이다. 그런데 인장이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맞다. 인장 또는 도장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는 예컨대 문화인류학과 농업경제학 같은 분과 학문에서 간간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그 논의나 분석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실정이다. 이는 학문 연구를 담보로 창작을 수행하는 신영호라는 개인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시도이다. 고전 회화작품의 형식인 탓에 그 상투성을 현대미술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한 인장은 예컨대 가벼운 복고 취향의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호와 조형성을 연구하는 또 다른 시도로써, 서예 연구와 리퀴드 드로잉과 연결되어 형성된 미술 실천의 결의이다. ■ 윤규홍

Vol.20220920h | 신영호展 / SHINYOUNGHO / 申暎浩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