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조각

김석展 / KIMSUK / 金錫 / sculpture   2022_0921 ▶ 2022_0929 / 월요일 휴관

김석_Episteme_나무에 채색, 레진_227×145×54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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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홈페이지_www.kimsuk.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평군립미술관 YANGPYEONG ART MUSEUM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Tel. +82.(0)31.775.8515 www.ymuseum.org www.youtube.com/channel/ UCeLkYCb5-TCGMGvyaq6OGYA

김석의 조각은 '사유하는 조각'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는 조각을 통해서 세상을 의심하며 이해하고, 부정하며 긍정하고, 감각하며 상상하면서, 동시대성에 대한 사유를 시각화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인간을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가로서 동시대 인간의 '존재', '감각', '감정'을 다뤄왔으며 최근에는 '사유'를 중심으로 동시대성을 포착한다. ● 이번 전시회는 근대적 사유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시대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근대와 근대를 넘어서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질문에 우리 시대의 답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답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말이다.

김석_의심하는 사람_나무에 채색, 레진_210×68×68cm_2022

김석의 조각에서 인간은 늘 파편으로 존재했다. 절단된 신체로서 두상, 또는 불완전한 지지대로서 신체와 결합된 두상 등 완전한 형상의 인간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6년부터 그는 등신대 크기의 연필로 인간 형상을 구현하는데 마치 기계적 신체처럼 인간 두상과 결합하여 작동한다. ● 작가는 "연필이 상징하는 지각적 의미와 나의 감각적 표현 욕구가 결합된 인간 형상"이라며 "인간 이성에 함몰된 고착된 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과 "현실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리의 세계를 탐구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진리, 참의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대에 따라 바뀐다. 작가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성적 사고와 진리"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며 2018년 작품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말해오고 있다. ● 이번 전시는 2019년 나무화랑 개인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에서 다뤘던 주제를 더욱 심화하여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진리에 대한 반문의 필요성"과 더불어 "동시대성에 대한 사유"를 조각한다. 푸코는 팔이면서 동시에 쓰는 도구인 연필 신체로 벽면에 'Episteme'를 쓴다(「에피스테메, 2022」). 푸코가 명명한 '에피스테메'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를 칭하는 것으로, 특정 시대의 담론적 실천을 묶어줄 수 있는 관계의 집합이며, 작동하는 방식, 즉 담론 체계를 의미한다. 「에피스테메」는 시대의 인성과 단절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인식의 지층을 형성해 가겠다고 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따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래서 우리는 참과 거짓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해야 한다. ● 의심은 인간을 주체를 세웠으며 이로서 근대 철학을 시작하게 했다. 「의심하는 사람, 2022」은 세 개의 연필 신체, 다시 말해서 한 개의 지우개와 두 개의 연필심으로 꼿꼿하게 지탱하는 신체는 발이며 손이다. 마치 연필 신체는 로봇의 신체처럼 쓰는 기계로서 작동한다. 데카르트는 근대적 인간을 구성하게 했던 'Cogito ergo sum'을 "나는 생각한다(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며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며 완전하게 신뢰할 수 있는 참, 지식을 탐구했다. 하지만 완전한 근대적 주체는 허상일 뿐이다. 세 개의 연필 신체는 바로 그 불완전한 인간을 형상화이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은 우리가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사유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 김석의 조각 작품에서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사유를 쓴다. "쓴다는 것이 필요할 때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푸코가 말했듯이, 그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김석은 인간의 사유들, '그것이 과연 진리이고 옳은 정의인가?' 끊임없이 묻는다. 사유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야말로 진리에 다가갈 수 있을 방법이고, 이로써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의심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김석_지식의 꿈 Ⅰ_나무에 채색, 삽, 곡괭이, 해머_150×197×50cm_2020
김석_지식의 꿈 Ⅱ_나무에 채색, 스테인리스 스틸_128×118×114cm_2022

작가는 집요하게 묻는다.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진리, 지식의 꿈은 무엇일까? 지식에 대해, 진리에 대해, 나아가 본질에 대해 그는 그 답을 작품으로 구현하며 조각에서 찾고자 한다. 이렇듯 김석의 작품은 철학적 사유를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들이지만 어렵지 않게 공감하게 한다. 이 같은 미덕은 그가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각적 해석을 하고, 또한 작품 형상의 즉물성에 있다. ● 나아가 그에게서 지식은 책에만 있지 않다. 「지식의 꿈 I, 2020」은 연필과 삽, 곡괭이, 해머를 신체화한 연필로 지식을 체화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미셀 푸코의 에피스테메 해석이 가능한 복합적 상징을 함유한다."며 "사물들에 내재된 인식체계와 관습을 부정하고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해체"한다고 밝히듯이, 지식은 해체의 도구가 될 필요가 있다. 「지식의 꿈 II, 2022」에서는 녹색 계열의 연필들이 화분의 꽃처럼 피었다. 짧은 연필, 긴 연필, 각기 다른 크기의 연필이지만 지식을 향한 청운의 꿈을 품은 청춘들처럼, 지식의 꿈이 활짝 폈다. 이처럼 작가는 의심하고 부정하면서도 이해하고 긍정하며 진리를 찾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김석_지식의 변증 Ⅰ_나무에 채색, 나무액자, 해골모형 채색_75×225×245cm_2020
김석_지식의 변증 Ⅱ_나무, 폴리에스터에 채색_110×165×330cm_2016~7
김석_시인의 별_나무에 채색, 스테인리스 스틸_195×195×5cm_2019
김석_시인과 촛불_나무에 채색, 마이크 스텐드, 철_170×90×100cm_2019

반면 「지식의 변증」 시리즈는 대타자의 진실을 마주할 때를 이야기한다. 「지식의 변증 I, 2020)」은 바니타스를 상징하는 붉은 해골에 지탱해서 "Right Now, Wrong Then / Right Then, Wrong Now"이 쓰여진 /쓰고 있는 금테 액자이다. 액자와 연필은 시제가 혼재 상황에 마주하는데, 이는 실재와 마주친 투셰(touché)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시인은 지식이 아닌 진실을 노래한다. 「시인의 별」과 「시인과 촛불」은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한다. 연필 신체는 욕망에 따라 변신한다. 쓰는 신체에서 꿈꾸는 신체로, 말하는 신체로 대타자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인정받고자 욕망하는 기표로서 신체의 화용을 바꾼다. 그렇게 작동하는 시인의 욕망을 통해 때론 우리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김석_지식 숙취 Ⅰ_나무에 채색, 맥주병 파편_145×115×145cm_2020
김석_지식 숙취 Ⅱ_나무에 채색, 와인병 파편_118×22×17cm_2022

진리를 욕망하는 인간은 끊임없이 지식을 갈구한다. 「지식 숙취」 시리즈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깨진 술병 조각으로 형상한 해골과 연필 신체로 표현하고 있다. 세 개의 연필은 뽀족한 연필심과 지우개로 나름 안정적인 무게 중심을 잡고 있지만 휑하게 구멍 뚫린 두 눈과 코, 반쯤 벌린 입을 하고 있는 맥주병 파편으로 만든 해골 머리는 연필 신체에 지탱한 채 그의 피곤함이 전해진다. 또한 와인병 파편의 만든 해골 머리를 관통하는 야구방망이 같은 연필 신체는 내 것이지만 나의 적이다. 이들 작품들은 머리가 깨질듯 한 지식의 숙취 그 자체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식 과잉의 시대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식의 과잉은 진리에 도달하기에 너무 멀리 가버렸다. 우리는 우리 시대 인식의 토대에서 사유해야 한다.

김석_늦은 숙취_맥주병 파편_210×40×60cm_2019
김석_늦은 숙취_맥주병 파편_210×40×60cm_2019_부분
김석_녹색과 갈색 숙취_소주병, 맥주병 파편_60×58×37cm_2022
김석_갈색 숙취_맥주병 파편_48×40×33cm_2020

김석의 조각은 또 다른 미덕은 낭만과 긍정에 있다. 대중적인 술병의 파편으로 인간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에는 현대인이 체감하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숙취」 시리즈에는 그의 전작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위트 있게 형상화했던 「Happy」 시리즈 작품들과는 다른 낭만이 있다. 소주병과 맥주병 파편으로 만든 인간 흉상 「녹색과 갈색 숙취」는 삐쭉삐쭉 깨진 병들의 잔해들이 박힌 신체를 통해 "고독과 비애의 현대성"을 포착할 수 있다. 동시에 그 술병이 비워지는 시간에 나눴던 즐거움과 고통의 이야기가 신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술병이 비워지던 시간이 지나고 남겨진 숙취에는 우리 삶의 정서와 낭만이 고스란히 신체에 흔적처럼 남는다.

김석_청춘 숙취 Ⅱ_와인병 파편_44×30×44cm_2020
김석_불투명 숙취_불투명 병 파편_35×24×22cm_2020

머리가 깨질듯 한 숙취는 청춘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의 숙취는 미래에 이야기할 과거 낭만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미래에 깨질지도 모를 꿈의 잔영일 수도 있다. 초록빛 와인병 파편으로 만든 청년 흉상 「청춘 숙취」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낭만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이렇듯 김석에게 조각의 시간은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 조각 본질에 대한 사유, 동시대 사유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그 여정에서 그는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론 모자라고 때론 넘치지만, 그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며 의심하며 이해하고, 부정하며 긍정하며, 동시대 조각적 사유를 구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순례자처럼 조각가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 박수진

Vol.20220921b | 김석展 / KIMSUK / 金錫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