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axas-두 세계의 투쟁

민정수展 / MINJUNGSOO / 閔貞守 / sculpture   2022_0921 ▶ 2022_0929 / 월요일 휴관

민정수_작품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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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수 홈페이지_www.minjungsoo.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평군립미술관 YANGPYEONG ART MUSEUM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Tel. +82.(0)31.775.8515 www.ymuseum.org www.youtube.com/channel/ UCeLkYCb5-TCGMGvyaq6OGYA

아브락사스와 사변적 우화 - 1. 아브락사스, 물질의 창조적인 능력 ● 아브락사스는 영지주의(Gnosticism)의 다양한 영적 실체들 중 하나다. 영지주의는 2세기 이집트의 바셀리데스에 의해 마련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의 사변에 의해서라기보다. 헬레니즘 철학, 이집트의 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종교사상이다. 영지주의에는 다양한 종파들이 혼재하는데 이들 종파들이 공유하는 믿음은 물질세계는 악이라는 것. 그 악에서 해방되는 길은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수련을 통한 영적지식(gnosis)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때문에 영지주의 종파들은 기독교로부터 이단으로 배척받았다. 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영지주의의 신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신과 물질세계를 만드는 데미우르고스로 양분된다. 아브락사스는 물질세계를 만드는 창조주, 데미우르고스라는 설도 있고 데미우르고스의 시종, '아르콘(archon)'이라는 설도 있다.

민정수_아브라삭스 Abraxas_액자, 인형, 동물모형,구술, 조화_47×72×19cm_2022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물질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대등하다고 본 영지주의에서 새로운 유물론을 발견한다. 1) 신령한 영적지식을 내세우는 영지주의를 유물론과 연결 짓는 바타유의 사유는 놀랍다. 전통적인 이분법은 대립적인 성질의 두 항의 구도를 설정하지만 첫째항과 두 번째 항의 위계를 상정한다. 바타유는 유물론조차 이 이분법에 기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조로아스트교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물질세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타유는 영지주의를 "기저유물론(base materialism)"이라고 명명한다. 영지주의에 대한 바타유의 글에 포함된 "영지주의의 돌"이라는 사진에는 영지주의의 다양한 영적 실체들이 그려져 있다. 그 중 하나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이다. 아브락사스. 그것은 어떤 원리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물질의 창조적 능력이다.

민정수_세 개의 시간_쾌종시계, 인형, 동물·과일 모형, 전선, 회로판, 조화_109×82×47cm_2020

2. 사변적 우화 ● 사변(speculation)은 '보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어원 specere를 공유하는 여러 파생어들 하나에서 유래했다. 그 때문에 서양철학에서 사변(speculation)은 신적 직관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가 근대 과학의 시대에 이르면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사변은 경험할 수 없으나 사유할 수 있는 사유의 추상형식을 일컫는 말로 갱신되는데, 헤겔은 절대이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철학을 사변철학이라 명명한 바 있다. 이때 헤겔의 사변은 이성원리에 충실한 형이상학적인 작업이다.

민정수_마음의 사슬_의자 등받이, 인형, 플라스틱 및 철물_78×141×18cm_2020

그런데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는 사변을 이성원리로부터 떼어내었다. 이성원리란 '모든 것은 그렇게 존재해야 할 필연적 이유를 가진다'라는 것이고 이는 오랫동안 서양철학을 지배해 왔다. 메이야수는 엄정한 논리추론을 통해 비이성의 원리의 절대적 진리성을 드러내 보인다. 메이야수의 사변 또한 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신은 절대적 우발성의 다른 이름이다.

민정수_기억의 문_고가구 문, 거울프레임, 인형, 가구다리, 전선_89×95×35cm_2020

바타유가 포착한 아브락사스는 이성원리에 복종하지 않는다. 바타유가 보여준 도판의 아브락사스들은 두 개의 동물머리에 염소다리이거나 닭의 머리, 뱀의 몸, 사람의 다리 등의 기묘한 조합이다. 기독교의 신적 창조물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상. 이는 메이야수가 도출해낸 절대적 우발성의 신을 떠오르게 한다.

민정수_미로_액자, 인형, 회로판, 전자부품, 스타킹_54×88×20cm_2022

들뢰즈·가타리는 "예술작품은 감응의 응결" 2) 이라고 했다. 민정수는 아브락사스에 대한 강렬한 감응에 이끌리고 그것을 증폭시킨다. 예술가를 작업으로 이끄는 힘은 자신이 받은 감응을 알아볼 누군가를 불러들이고 그 감응을 계속 반복될 수 있게 하려는 욕망이다. 예술 작품이 "도래할 감응의 기념비"가 되는 것은 이러한 증폭 때문이다.

민정수_고착된 시선_액자, 인형, 팔·손 모형, 가구다리, 철물_87×76×68cm_2020

문학비평에서 우화(fabulation)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스콜스(Robert Scoles)는 전통적인 리얼리즘의 카테고리와는 다른 방식의 형식, 소재, 스타일, 시간적 순서 등을 드러내는 20세기의 성장 중인 문학들을 주목하고 이를 우화라고 명명했다. 메이야수는 절대적 비이성의 원리로서 신을 도출하지만 아브락사스에 관한 것은 거대한 체계를 의미하는 원리와는 맞지 않고 우화여야 할 것이다.

민정수_우로보로스 Ouroboros_옷걸이, 인형, 전선, 조화, 동물모형, 나뭇가지_155×53×57cm_2022
민정수_최초의 외출_조명 다리, 액자, 마네킹, 알루미늄 철사, 비즈_140×80×80cm_2021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래도 과학적 원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의 원리는 일어났던 일을 일어나야만 했던 일로 바꾼 것이다. 과학적 사실, 과학 이론도 처음에는 아직은 진실이 아니지만 언제가 진실이 될지도 모르는 사변적 우화였다는 것을 안다면, 아브락사스의 창조적 본능은 우발성에 활짝 열려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정수_발걸음_가방, 의자, 액자, 인형, 플라스틱 및 철물_94×40×65cm_2021
민정수_사소한 생각_의자, 동물·주방용품 모형, 전선, 강철봉_96×80×78cm_2020
민정수_파리스의 사과_의자, 인형, 사과모형, 전선, 강철봉, 회로판_75×43×53cm_2020

민정수의 작품들은 사변적 우화들이다. 「Abraxas」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창조주다움도 없다. 바타유가 보여준 도판의 아브락사스들은 기묘한 조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동물들의 조합이었고 뭔가 창조주다운 아우라를 풍긴다. 그러나 민정수의 「Abraxas」는 그것마저도 깨어버린다. 민정수의 「아브락사스」는 고무아기인형, 커다란 구슬머리, 구멍 뚫린 날개 물고기 머리등 기묘한 것들의 우발적인 조합이다. 동시대적 아브락사스의 작업도 그러하리라.

민정수_심연 Abyss_옷걸이, 인형, 액자, 인조 잔디, 전선_137×60×41cm_2020
민정수_꽃밭 위의 팅커벨_거울 프레임, 인형, 조화_78×51×30cm_2022

3. 테라폴리스 ● 우로보르스는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으로 자율생산(autopoiesis)의 대표적 이미지다. 그러나 민정수의 「우로보로스」에는 그런 전일적인 모습이 없다. 대신에 지구를 형상하는 것 같은 유기체들의 덩어리로 보이는 회색 구위에 커다란 변신 로봇 같은 것이 우뚝 서 있다. 테크노사이언스의 크리터(critter). 크리터는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용어인데 신적인 창조물에 대항하는 메타플라즘이다. 스스로 태어난 자들 아브락시스의 창조물에 크리터는 더 없이 어울리는 말이다. 「우로보로스」의 테크노사이언스적인 크리터는 아마도 아브락사스가 만든 가장 어린 창조물들이리라. 그것은 마치 철없는 어린 것처럼 무례하게 유기체들의 덩어리를 밟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크리터들에게 몹시 심기가 불편한 일이다.

민정수_변형_액자, 인형, 지퍼, 악세사리_67×65×16cm_2022
민정수_투쟁하는 아레스Ⅰ_의자 등받이, 인형, 플라스틱 및 철물_59×49×20cm_2020

아브락시스는 어떤 것도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락사스의 모든 필멸의 크리터들 사이에는 불문율이 있다. 그것은 예의(polite)이다. 예의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다. 3) 모든 필멸의 존재들이 그럭저럭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의 율법도 아니고 이성원리도 아니고 올바른 관계를 위한 정치, 예의다. 올림포스의 위계적인 신들을 숭상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신만큼이나 위계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폴리스와 오이코스. 로고스를 가진 자들의 영역 폴리스에서는 예의가 넘쳤지만, 오이코스에는 폭력만이 있었다.

민정수_투쟁하는 아레스Ⅱ_의자 등받이, 인형, 전등 프레임, 강철봉, 가구다리_57×41×25cm_2020
민정수_투쟁하는 아레스Ⅲ_의자 등받이, 인형, 전선, 스프링, 플라스틱 및 철물_60×43×13cm_2020

그러나 아브락사스의 크리터들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 어린 것에게 예의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일까? 「우로보로스」의 크리터들이 무례한 어린 것에게 촉수를 뻗친다. 다리를 휘감기고 팔도 칭칭 감긴 어린 것은 조금 놀란 듯이도 보인다. 그 어린 것 앞에는 쥐의 머리를 한 작은 크리터가 초록색 채찍을 들고 있다. 테크노사이언스 크리터를 가르치려면 아마도 채찍도 필요할 것이다. 여기는 그리스인들의 폴리스가 아니라 땅의 것들이 함께 만든 테라폴리스(terrapolis)다.

민정수_투쟁하는 아레스Ⅴ_시계 프레임, 인형, 인조 잔디, 모래_40×40×19cm_2022
민정수_반복의 틀_액자, 인형, 구슬 체인_112×112×5cm_2021

기묘한 모양의 「투쟁하는 아레스」들은 여태까지 우리가 들어온 영웅 이야기를 비틀어 버리리는 것 같다. 그러나 테라폴리스에서 영웅이야기는 여러 이야기들 중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행보따리에 가득 든 자질구레한 것들이 없으면 영웅도 전쟁터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민정수의 전시 『Abrasax-두 세계의 투쟁』에는 영웅만이 아닌, 아브락사스의 동시대적 크리터들이 이야기를 한다. ■ 최유미

* 각주 1) Georges Bataille, "Base Materialism and Gnosticism", Visions of Excess selected writings 1927-1939,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Minneapolis, MN, 1985, pp 45-8 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철학이란 무엇인가』, 현대 미학사, 1995, 234쪽 3) Michel Serres, The Natural Contract, Translated by Elizabeth MacArthur and William Paulson,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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