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

이은미展 / LEEEUNMI / 李銀美 / painting   2022_1004 ▶ 2022_1030 / 월,화요일 휴관

이은미_담장아래_캔버스에 유채_31.8×41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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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5:00pm / 월,화요일 휴관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충남 당진시 면천면 동문1길 21 Tel. +82.(0)41.357.0084

고요한 시간, 그리고 기록의 잔상 ● 푸름에 잠긴 고요한 시간... 외롭고 쓸쓸한 자신과 마주한다. 이 고독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눈을 감아 본다. 숨겨 둘 수 있을 것인가.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곳으로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인가. 남아 버린 것들을 생각하자. 갑작스럽고 빠르게 지나간 것들보다는 무겁고 느리게 지나가서 자국을 남겨 버리고 만 '그것'들.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다시 채우지 못해 –고독조차 지나가- 텅 빈 마음의 자리를 헤아린다.

이은미_풀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22

이은미 작가의 작업은 그의 기억 속 편린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에는 보다 많은 –작품 너머에 있거나 자신에게 침잠해 있는-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은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은 채 점점 더 견고해진다. 우리가 그의 흐릿한 시선을 따라 작품 한가운데에 섰을 때 도리어 선명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 그가 주목하는 대상은 그의 순간이다. 사물이기도, 공간이기도, 하늘과 땅과 바다, 무한한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대상들은 가까이에 있기도 하고 멀리에 있기도 하며, 안에 있기도 하고 바깥에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작업이 순차적이거나 점진적인 과정은 아니다. 닫힌 곳에서 열린 곳으로 –혹은 그 반대로- 나아가다가 되돌아오는 반복의 과정에 가깝다. 그러한 여정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남은 순간을 다시 한 번 남겨 놓는다.

이은미_푸른 날_캔버스에 유채_45×53cm_2022
이은미_작은 빛_캔버스에 유채_45.5×38cm_2022

어두운 공간의 역설 ● 미지의 장소를 무심히 지나치며 정처 없는 걸음을 이어간다. 그러다 닿는 공간에는 공(空, vacant)이 있고 공허(空虛, empty)가 없다.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프레임, 그 안에는 대상이 아닌 작가 자신이 - 무엇의 조각 혹은 변두리로 - 존재한다. 대상의 보편적 시니피에(signifié)는 사라지고 그의 파편적 순간과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마침내 남겨져 작업으로 기록된 모든 대상이 우주가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어둡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어둠은 심연의 어떤 것이라서, 그의 작업은 깊은 물 아래에서 이루어지듯 은연해 보인다. 수면 위에서는 맑아 보이는 호수도 그 아래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어둠이 겹겹이 내려앉게 된다. 그의 작업은 그 아래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진공의 침묵 속에서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순간, 그제서야 찾을 수 있는 어둠이 프레임 안에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안에서도 빛을 보려 한다. 이미 죽은 것들이 다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어둠 속. 거기에 다다르면 예기치 못한 빛과 조우하게 된다. 그 빛은 생의 단서와 같이 너무나 아득하여 흐린 듯 보인다. 그렇지만 실존하므로 분명한 빛이다. 정제된 구도 안에서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태로 공존하고 있다.

이은미_잔물결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22

더 멀리 나아가는 바람과 색 ● 풍경을 스쳐 지나가며 걷는다. 두 발은 그 풍경의 바람 속에 몸을 파고들게 만든다. 흔드는 것. 흔들리는 것. 작가는 그 모든 것들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비워내는 일을 반복한다. 겹쳐지는 물감의 층들은 작가의 걸음걸이와 같이 꾸준하다. 종내 바람 끝에 안착하는 들꽃의 홀씨처럼 어딘가에 멈추어 싹이 움트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기다림은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의 기약은 - 일상의 색에서 벗어난 - 그만의 독특한 빛깔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어두움에 빛이 담겨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작업의 층이 깊어짐과 함께 자연의 색들 역시 깊어지게 된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 과정에서 작가만의 새로운 색들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최소한의 조형성을 갖춤으로써 온전한 응시를 공유한다. 나아가 대상이 가진 그 내면의 색들을 추출한다. 무정물의 숨이 느껴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였을 때, 그만의 색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색처럼 느껴진다.

이은미_강변_캔버스에 유채_45.5×38cm_2022

자그마한 마음의 우주 ● 작가는 그의 시선이 멈추는 지점을 탐구하면서 그곳의 어둠과 빛을 동시에 기록한다. 면에서 면으로, 선에서 선으로, 점에서 점으로 흐르는 어둠과 빛을 따라 그의 시선도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그 모든 순간의 잔상을 자신만의 색으로 과감하고도 치밀하게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이루어지고 있는 역동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 우리의 숨소리에 가려진 바람의 색이 새로운 색이 되어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 그의 작업에서 우주는 내면의 세계가 된다. 그 세계는 작품 안에 담겼다가 - 작가 자신을 포함한 - 작품과 만나는 모든 이들을 향해 영역을 넓혀 나아간다. 모든 순간과 감각이 응축된 자그마한 우주. 그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우주라 말할 수 있다. 우주의 어둠은 빛이 있어야 설명될 수 있으며, 그 어둠과 빛은 생성과 소멸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우주는 태고의 거대함보다는 누군가의 발자국 하나가 남기고 간 작은 흔적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사사로운 나머지 초라한 것은 결코 아니다. 각자의 마음에 같은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중이라면, 언젠가는 하나의 자그마한 우주에서 동시에 숨 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기록들이 모이는 날을 이은미 작가의 작업과 함께 기다린다. ■ 김지홍

Vol.20221004a | 이은미展 / LEEEUNMI / 李銀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