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fonia of SOUL

윤문영展 / YOONMOONYOUNG / 尹文英 / painting   2022_1007 ▶ 2022_1130 / 월~금요일 휴관

윤문영_S0UL-symphony_장지에 채색, 실로 바느질_46×3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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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금요일 휴관

미스테이크 뮤지엄 Mythtake Museum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호반로 2-71 (청평리 729-3번지) Tel. +82.(0)31.585.7295 www.mythtakemuseum.com

디세뇨(disegno)의 즐거움 ● 그림은 오랫동안 자연의 '모방'이었고, 작가의 '표현'이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그림은 고유의 '형식'만 남기를 원하기도 했고, 그림을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미술계의 '제도'라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충격적인 작품들도 연이어 등장했다. 그림이 무엇으로 정의되든 간에 그림의 근간이 되어주는 것은 '선'(ligne)이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도, 캔버스 위에 바로 붓질로 시작할 때도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혹 어떤 파격적인 재료와 형식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관객은 거기에서 '선'으로 된 형상(figure)을 읽어내려 한다. 오늘날의 데생(dessin), 디자인(design)의 어원이라 할 수 있는 라틴어 '디세뇨'(disegno)는 의도, 계획, 구상의 뜻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건축 등 미술을 대표하는 명칭이기도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윤문영_S0UL-symphony_장지에 채색, 실로 바느질_46×33cm_2022

윤문영 작가가 처음 시도했던 것은 꽃의 '디세뇨'였다. 자연과 인간, 세계의 혼(soul)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가에게 꽃과 같은 자연물이 뿜어내는 생명력은 무엇보다 명확한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자연을 모티브로 시작했을지라도 윤문영 작가의 선과 색은 자연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윤문영의 화폭에서 선과 색은 무한한 변이를 거치며 다른 형상으로 '되기'(le devenir)를 반복하거나 아예 생성과 소멸이 자유로운 추상으로 전이해간다. 이때 화폭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용어를 빌려오자면, '홈 패인 공간'(Espace striée)이 아니라 '매끈한 공간'(Espace lisse)으로 기능한다. 무한한 바다와 같은 매끈한 공간 위이기 때문에 선과 색은 정해진 규칙을 따라 코드화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끊임없는 차이를 생성해낼 수 있는 것이다. 분열과 접합이 이루어지면서 연속적 변이가 계속되는 하나하나의 화폭에서 윤문영은 자연 속에 내재된 혼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분명 작가의 손을 통해 선과 색이라는 물질성을 부여받았음에도, 한지 위에서 혼의 에너지가 스스로 용솟음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 매끈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성'의 흐름에 작가가 모든 것을 온전히 내맡겼기 때문이다.

윤문영_S0UL-symphony_장지에 채색, 실로 바느질_46×33cm_2022

윤문영이 이 생성의 공간을 평면에 국한시키지 않고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확장했던 시기에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대자연에 흐르고 있는 근원적인 것이었다. 전시장의 암흑 속에서 빛을 품고 있던 반구들은 아직 기관이 분화되지 않은 알(egg) 속의 잠재적 생명을 상징하는 듯했다. 콜라주/데콜라주 작품들은 오래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등장한 '코라'(chora) -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장소, 우주의 자궁 –의 시각화처럼 보였다. 이곳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물질들의 흐름은 심장박동 소리와 같은 리듬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 최근 윤문영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자연 - 여기서 자연은 대자연(Nature)을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 인간의 본성(nature)을 의미하기도 한다 – 에 내재된 '조화'(harmony)의 탐구로 보인다. 기존의 생(生)의 박동소리는 이제 하나의 교향곡이 된 듯하다. 교향곡 연주를 위해 다양한 음색의 관현악기들이 조금씩 다른 선율과 리듬을 쌓아가듯, 윤문영의 화폭도 몇 개의 층(layer)으로 구성된다. 먼저 한지나 캔버스 위에 여러 짙은 색으로 넓은 폭의 직선을 덧칠해나가 심연과 같은 '바탕'(fond)을 창출해낸다. 직선이 주는 느낌 그대로 질서 있는 바탕 위에 작가는 어지러운 선들을 무질서하게 한없이 그어 '비(非)형상'(non-figure)의 층을 구축하는 것이 그 다음 단계이다. 보통은 바탕 위의 '형상'이 시각적으로 우선권을 가지며 앞으로 전진하려는 특징을 가지지만, 여기의 비형상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바탕의 층, 비형상의 층은 출렁이며 일렁대다 서로에게 앞뒤 순서를 내어주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윤문영이 각 층에 '색'의 미묘한 변조(modulation)를 유용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윤문영_S0UL-symphony_장지에 채색, 실로 바느질_46×33cm_2022

무질서한 비형상의 층은 색한지를 잘라내 붙인 색면들의 콜라주와, 작가의 이전 작품들의 파편들의 콜라주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작품이 되지 못한 재료와 더 이상 작품이 아닌 재료들의 층이 시간상의 역전을 일으키기도 하고, 방향의 전위도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요동치는 층들을 잠잠히 다스려주는 것은 화폭의 가장 윗부분, 색실의 스트라이프 라인(stripe line)들이다. 작가가 프레임의 위아래 혹은 양옆을 한 땀 한 땀 색실로 꿰매는 작업으로 만들어낸 이 맨 마지막 층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지퍼'(Zip)처럼 아래층들이 부상하지 못하도록 눌러주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아래층들과는 다른, 초월적인 차원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을 정면에서 보지 않고 거의 90도에 가까운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층들의 치열한 다툼은 온전히 사라지고, 일일이 팽팽하게 고정시킨 색실의 '선'들도 고요한 '색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이 고요함은 생명형상들이 탄생하기 전, 캄캄한 암흑의 공간에서 느껴지던 적막함과는 다르다. 이것은 기존의 질서와 무질서를 모두 경험한 후에 찾아오는, 그것도 기존의 보기(seeing)로는 발견할 수 없는,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 찾아오는 고요함이다. 이 고요함은 하나하나의 선들이 살아 있는 시각적 장(champ optique)에서는 경험할 수 없고, 오히려 우리의 눈이 가까운 곳을 더듬어 파악하는 촉지적 장(champ haptique)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윤문영_S0UL-symphony_장지에 채색, 실로 바느질_55×38cm_2022

윤문영의 최근작에서 보이는 이러한 '혼돈 속 질서'(order in chaos), '재구축'(Reorganization)이란 주제는 작가가 목표로 삼는 자연 안의 혼(soul)의 표현에 있어 좀 더 본질(nature)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작가가 그림이라는 하나의 소우주(microcosm)에 표현하는 색과 선의 배치와 조합이 대우주(macrocosm)의 조화와 질서를 오롯이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조화와 질서가 균질적인 구획 나눔이나 인위적인 힘의 배분으로 얻어진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연의 것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립적인 것들,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공존하는 가운데 시간을 두고 형성되는 것이 자연의 조화와 질서이다. 윤문영도 그러한 자연의 조화와 질서가 자율적으로 형성되도록 하는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다. 작가가 동서양의 재료와 테크닉들, 시각적인 것과 촉각적인 것, 빛과 어두움, 직선과 곡선, 구상과 추상, 구축과 해체 등 대립항들 사이를 끊임없이 유영하며 발생시키는 심미적인 것들은 자연을 닮았기에, 작은 자연인 우리 모두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 한의정

윤문영_Harmony of SOUL_순지에 먹 드로잉_45.5×53cm_2022

인간은 누구나 생각을 하고, 그 내면에 무한하게 생성 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표출 욕구는 다양한 방법의 예술행위로 귀결되어지는데, 특히, 예술이라는 광의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다양한 장르적 형식과 기법 양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예술적 표현 방법으로는 미술, 음악, 문학, 무용, 건축 등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삶과 유기적으로 향유되어 공존하고 있다. ● 21세기 예술가들은 각 장르의 예술로 재해석하여 승화시키는 표현 매체만 다를 뿐, 공통적인 예술요소들을 융합하여 표현하는 일명 '경계 허물기, 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미술과 음악의 연관성은 과거부터 동향적인 자태로 변함없이 연구되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본질적 시도는 예술인으로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되어진다. ● 이번 나의 전시는 이러한 맥락으로 접근하여 미술과 음악의 Sympony에 관한 연구이다. 우선, Sympony에 대한 사전적 어휘는 '소리의 조화,' '함께 소리를 내다' 라는 의미로 그리스어 (synfonia)에서 파생된 용어인 "다양한 음들이 함께 울린다.", 한자어 교향(交響)으로 '서로 교차해서 울린다' 정도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Sympony:Synfonia 1) 는 harmony, balance등과 같은 조화로움을 말하고자 할때 대체용어로도 사용되어지기도 하며, 조화로움은 또한, 우리 예술 용어에서 가장 이상적인 요소로 적용되고 있다. ● 이번 전시명은 「 Synfonia of SOUL」이다. 나의 일관된 주제인 '자연의 강렬한 생명력'이라는 나만의 추상적 조형언어: SOUL은 이번 전시 역시 지향되는 Keyword이며, 지난 22회 개인전까지 함께 연구해왔던 'entropy 2) '에서 벗어나 다음 조형적 연구 단계 과정인 'Sympony'라는 예술 개념과 함께 이번 전시를 구성하고자 한다. ● 'Sympony'는 음악적 언어이자 청각적인 요소이지만, 조형언어인 시각적 개념으로도 표현 되어질 수 있다. 특히 나만의 조형언어인 SOUL과 함께 내면의 감정들이 수 많은 먹선들의 조화로운 리듬으로 연주되어 시각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윤문영_Harmony of SOUL_순지에 먹 드로잉_45.5×53cm_2022

이런 의미에서 이번 작업을 음악의 구성요소와 미학적으로 결합하여 분석하자면, 첫번째 수많은 먹 선들은 음을 조직하는 가장 본질적인 리듬적인 요소로 연속적으로 진행된 시간을 의미하는 함축적인 다양한 선들의 시각적 질서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음악적 요소인 선율은 감정을 잘 나타내는 요소로 나의 작업에서 먹선의 두께와 다양한 방향, 농담의 변화 등이 리드미컬한 곡선의 움직임으로 시각적 선율로 구성되어 내면에 감추어진 다양한 감정과 정서들이 SOUL이라는 조형언어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세 번째 음악의 요소인 음색은 음의 특유한 개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의 작업에서는 색상과 연결 지어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번 작품들은 그동안의 화려한 채색에서 벗어나 자연의 강렬한 비가시적인 생명력들을 모노톤의 먹색으로 표현하여 보다 더 함축적이고 본질에 가깝게 접근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음악의 요소는 화성적인 요소인데,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Sympony 또는 harmony와 관련이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두 단어를 지칭하는 조화는 일반적으로 성질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요소 또는 부분이 서로 차이점을 갖고 대립하면서도 어우러져 전체적인 통일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형요소로 나의 작품에서 다양한 굵기의 조형적인 선과 다양한 농담의 먹 선들이 화면에서 통일된 모노톤의 색채로 서로 어울려 나만의 조형언어인 SOUL:자연의 생명력들이 시각적으로 드러나 열정적인 Sympony를 화면에서 강렬하게 연주하고 있다. ● 이번 전시인 『Synfonia of SOUL』는 나의 내적 정신세계의 본질을 조화롭고 다양하게 초 접근하기 위해 음악적 개념인 Sympony요소와 회화적 조형요소인 리드미컬한 먹선, 그리고 동양미학의 추상성을 지향하고자 수묵기법을 사용하여 기존의 형식 경계를 벗어나 보다 관념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에서 내적필연성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시도해보았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삶이라는 장르의 화음(Chorus)들이 나만의 음색인 SOUL이라는 독특한 멜로디로 조화롭게 연주되어 울려 퍼질 자연 교향곡 (Sympony) : 『Synfonia of SOUL』:이라는 전시를 관람하는 모든 분들께 다양하고 신선한 깊은 내적 울림으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2022. 10월) ■ 윤문영

* 각주 1) 나의 조형세계에서는 Sympony와 Synfonia는 동일어로 간주한다. 2) 'ENTROPY'라는 말은 원래 과학적 용어이다. 물리학 제 2법칙에서 사용되는 ENTROPY는 비가역성을 지닌 형이상학적인 법칙으로,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또 질서 있는 형태에서 무질서한 형태로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ENTROPY법칙을 나의 작업에 적용한다면, 새로운 질서, 즉 보다 강렬한 자연의 생명에너지를 표현하는 조형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 역동적이고 강렬한 무질서를 창출해야만 한다는 개념이다. 신비하고 특별한 힘을 지닌 ENTROPY는 가시적인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가식의 관념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패러다임이며, 시간과 공간의 2차원적 물질세계를 초월하고 정신적 본질에 집중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작품 속에 내재된 SOUL은 ENTROPY법칙을 역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시도는 아니다. 주제인 SOUL은 원래 새로운 정신이 고양되는 것으로 無에서 有를 창출하는 강렬한 에너지가 고요함 속에서의 극렬하게 요동치는 질서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Vol.20221007g | 윤문영展 / YOONMOONYOUNG / 尹文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