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小小)하지 않은 일상(日常) Daily life not so simple La vie quotidienne pas si simple

2022 한불교류展 France-Korea Exchange Exhibition 2022   2022_1021 ▶ 2022_112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22_1021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참새_노순천_문채원_박시월_서제만_이은영 임춘희_정성윤_한상아_로만 베르니니 Romain Bernini 에디 뒤비엔 Edi Dubien_앨리스 고티에 Alice Gauthier 수잔 허스키 Suzanne Husky_롭 마일즈 Rob Miles

주최 / 서울대학교미술관 기획 / 서울대학교미술관_프랑수아즈 독끼에르 Françoise Docquiert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Tel. +82.(0)2.880.9504 www.snumoa.org @snu.moa

서울대학교미술관(관장 심상용)은 2022년 10월 21일(금)부터 11월 27일(일)까지 코로나19 시국 이후 첫 국제 교류전인 『小小하지 않은 日常』을 개최한다. ● 프랑스의 저명한 미술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프랑수아즈 독끼에르(Françoise Docquiert)*와 서울대학교미술관의 공동 기획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9인과,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5인의 약 15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참여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동시대 일상과 유리된 회화에 반하여, 보편적인 일상과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 임춘희는 산책하며 보는 자연의 섬세한 변화를 그리고, 로만 베르니니(Romain Bernini)는 문명과 자연의 융합을 신비롭고 독창적인 색감으로 포착한다. 이은영은 기억 속 풍경을 시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프랑스 출신으로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잔 허스키(Suzanne Husky)는 인간과 식물, 지구(땅)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며, 에디 뒤비엔(Edi Dubien)은 불안전한 인간이 자연의 품에서 위로와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한다. 정성윤은 주변 풍경과 평범한 삶의 장면을 담담하게 화폭에 담아낸다. 노순천은 철사를 구부려 드로잉을 하듯 인물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영국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롭 마일즈(Rob Miles)는 일상의 공간을 다시점의 독창적 공간으로 풀어낸다. 한상아는 '작가'와 '엄마'의 정체성 속 혼란의 마음을 먹과 물로 담아내고, 앨리스 고티에(Alice Gauthier)는 내면의 연약함과 불안함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김참새는 기쁨과 슬픔, 불안과 같은 감정의 변화를 톡톡 튀는 색감과 형상으로 그려내고, 박시월은 유리와 흑연이라는 이질적인 매체를 필두로 타인의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한다. 문채원은 사용설명서나 안내서 형식을 차용해 일상 속 오류와 실수를 드러내며, 서제만은 어지러운 선과 번지고 흐르는 물감, 희미한 형상을 통해 일상을 그린다. ● 서울대학교미술관은 이번 국제교류 전시를 통해 한국과 프랑스 작가들에게 교류의 기회를 마련함과 동시에, 공동 큐레이터의 특별강연과 아티스트 토크 등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 서울대학교미술관

일상, 필연성의 공장 ● 일상은 필연의 연속이야. 필연성이 만들어지는 공장이라 해야 더 정확해. 그것에서 달아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에서야. 당신이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파리나 뉴욕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일상은 그곳에서도 변함없이 촘촘해. ● 종종 우스꽝스럽고 코웃음을 치게 만들어. 하지만 끔찍하기도 해. 하루에도 몇 번씩 화가 치밀어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지. 어떻든 외면하거나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중요해. ● 일상이 필연성의 공장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해. 당신이 마주하는, 인식 가능하거나 가능하지 않은,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인들이 필연성의 재료가 돼. 전쟁, 수전노와 노숙자들의 사회,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 그리움, 심지어 기후도 그렇다. 당신이 실제 겪은 사건이 특별히 중요해.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일상이 필연성을 만들고, 그 필연성과의 밀고 당김, 엎치락뒤치락에서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이야.

팝아트(Pop Art)의 일상 ● 팝아트(Pop Art)도 일상에 대해 말했지. 하지만 팝의 일상은 '불행'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다. 물론 불행은 추악하다. 하지만 추악함이 없는 일상은 진짜 일상이 아니야. 그건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안으로 축소되고 교묘하게 편집된 일상일 뿐이야. 팝의 일상은 감미롭고 확신에 차 있어. 하지만 바로 그로 인해 '가짜고 피상적인' 모든 것의 이름인 '지옥'의 사촌 격이 되고 말지. "지옥은 존재하려고 하고, 또 존재한다는 환상을 주는 무(無)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들에겐 삶이-죽음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삶이-가장 감미롭게 느껴진다."(시몬느 베이유 Simone Weil) ● 이를테면 팝의 일상은 살아남는 것에만 집착하는 일상인 셈이야. 그리고 살아남으려는 집착만 남은 바로 그때가 바로 '극단적인 불행'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 극단의 불행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인 자아를 파괴하기도 해. 이 파괴는 자아에 일어나는 가장 나쁜 일이야. 왜냐하면, (세상에 대한) 집착과 강박과 욕망의 원천인 '나'를 스스로 파괴하는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되면, '나'를 스스로 파괴할 때 주어지는, '거리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힘마저 소멸되고 만다.

결코, 小小하지 않은 日常 ● 필연성에서 벗어나려는 애씀에서 철학이 발생한다. 하지만 철학은 필연성을 문제 삼을 수 있을 뿐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힘은 없다. 그렇다면 그 자체 고백의 형식인 예술은? 베이유는 회화가 도달해야 하는 상한선을 절망적으로 높여 놓았다. "무기 징역에 처해진 죄수의 감방에 걸려도 끔찍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을 만한 그림", 대체 어떤 형식, 어떤 깊이여야 가능한 단계인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음이 분명하다. 이에 대조하면 이 시대의 많은 것들은 이류, 삼류에도 미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 『小小하지 않은 日常』전에서 일상은 확신의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흔드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소비활동으로 위축되고, 코카콜라나 메릴린 먼로로 대변되는 팝의 범주화된 일상과는 거리가 꽤나 멀다. 『小小하지 않은 日常』전은 메이시스(Macys)나 쁘렝땅(Printemps) 백화점의 가판대에서 추방된 것들, 애플(Apple)의 미니멀리즘과 구글(Google)의 문화 전체주의 노선에 포섭되지 않은 일상을 재소환한다. 꿈, 야생이 부르는 소리, 큰 눈망울에 고인 눈물, 무성한 열대림을 배회하는 사람, 연약하고, 관계적이고, 불안정한 것들... 또는 사람의 청력이 이미 충분히 쇠퇴했기에, 나비, 사슴, 토끼, 말, 새, 그리고 이름 모를 식물들이 대신 상실과 회복의 메신저가 된다.

* ● 이 기획전이 지친 몸을 쉬어가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면 참 좋겠다. 코로나 감염병 사태가 여전하기에. 함께 한 분들이 아니었다면, 『小小하지 않은 日常』전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대구예술발전소의 강효연 예술감독님, 프랑스 쪽의 큐레이팅을 이끈 프랑수아즈 독끼에르 교수님, 다섯 분의 프랑스 작가와 아홉 분의 한국 작가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심상용

일상을 그린 회화: 앨리스 고티에, 수잔 허스키, 로만 베르니니, 에디 뒤비엔, 롭 마일즈 ● 일상 속 오브제는 새로운 회화 접근법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 ● 앨리스 고티에, 수잔 허스키, 로만 베르니니, 에디 뒤비엔, 롭 마일즈의 작품이 제안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1820년부터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자연과 일상 속 사물을 그린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 그러나 이 작가들의 드로잉과 회화를 과도하게 단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의 작품에는 숟가락, 접시, 동물, 앵무새, 오소리와 같은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 흩어져 있는 이러한 파편들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면 그것들의 기능을 상실하고 설명 가능한 다양한 형태나 대상처럼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가 어떻게 보지 못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작가들은 선, 궤적, 투명도 같은 예기치 않은 개입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에 결여되어 있던 신비한 힘을 드러내고 있다. ● 수잔 허스키는 드로잉, 태피스트리, 조각, 사진, 그리고 비디오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 관행과 그에 따른 결과를 성찰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자연과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린 에디 뒤비엔의 작품 세계에서는 우아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 동물들이 희미한 빛으로 장식된다. 앨리스 고티에는 드로잉을 통해 유기적 형태를 탐구하고, 삶의 매 순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영감을 얻는다. 로만 베르니니는 야자수 숲처럼 무성한 초목과 넓게 칠해진 물감, 단일한 색조와 흘림이 있는 그의 회화 안으로 뛰어들어, 가면을 쓰고 떠돌아다니는 불가사의한 인물과 교감한다. 롭 마일즈는 그가 변형하여 작업하는 주방과 카페-바, 또는 극장 세트 속 요소에서 오브제를 가져온다. 그는 오브제를 다양한 재료로 조합하고, 퍼즐과 같이 재구성해 이러한 모양 게임을 더 잘 감상하도록 볼륨 없이 보여주고 있다. ● 이렇듯 작가들이 선보이는 삶의 매 순간은 캔버스 속 풍경에서 실제로 연출된다. 만약 이러한 서사가 우리의 일상의 모습에 의해 잘 뒷받침된다면, 그것들의 해체된 형태는 단순한 도상학적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가시적이고 뚜렷한 일상에 대한 다소 판타지적인 내러티브에 자리를 양보한다. 이 작품들은 기억의 게임을 해석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취하면서, 상상의 세계에 자리를 내어주려, 단순한 통과의 장소로 잠시 곁에 둔 세계에 대한 우연한 목격자들이다. ■ 프랑수아즈 독끼에르

임춘희_고백(계수나무)_캔버스에 과슈_162×130cm_2015

임춘희 Im Chunhee(1970) ● 산책길에서의 설렘과 행복감 등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 임춘희 작가의 작품은 몽환적이면서 아련함을 불러일으켜 보는 이를 사색의 장소로 데려다준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마음속이 일렁대며, 광활한 자연 앞에 서서 느낄 수 있는 숭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소소한 산책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지만, 때로는 빠르게 그어지고, 때로는 세심히 묘사된 붓 터치에서 바람 소리와 새소리, 코끝을 스치는 찬 바람, 얼얼해진 양 볼의 따가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걷기', 이 단순한 행위는 주변을 다시 보게 하고,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하여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임춘희 작가는 이 걷는 행위를 작품 안에서 다양하게 표현했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숲속의 나무 향을 맡으며 걷고, 한겨울 찬 바람을 마주하며 걸으며, 누군가와 함께 서로를 보듬으며 걷기도 한다. 자연의 모습에 작가의 심상을 더해 독창적인 색감과 형식을 보여준 작품들은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의 작품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으면, 작가가 들려주는 인생에 대한 낮은 읊조림을 듣는 것만 같아, 서정적이면서도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로만 베르니니_Chipko Ⅳ_캔버스에 유채_220×180cm_2020

로만 베르니니 Romain Bernini(1979) ●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감성의 로만 베르니니의 작품은 끝이 없는 깊은 숲 한가운데로 우리를 이끈다. 높은 채도의 강렬한 색상이 서로 번지며 융화된 몽환적인 이미지들은 불안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울창한 숲속 나무를 등진 채 두 손으로 나무를 껴안고 서 있는 사람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일견 장엄해 보이기도 하는 이 행동의 이유를 우리는 작품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다. 「Chipko」는 1970년대 초에 인도에서 벌어졌던 벌목 반대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나무를 껴안는 행위로 벌목에 대한 저지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작가는 원주민 문화를 작품 안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데, 아메리카 원주민인 호피족으로 분장한 인물의 모습은 자연을 경외하고 공존을 강조하는 호피족의 정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합리성과 이성을 무기로 내세운 근대의 패러다임으로 인한 여러 병폐 앞에서, 작가는 세상의 질서와 무질서, 과거와 현재, 문명과 자연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오만을 버리고, 신비롭고 무한한 자연과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며 파괴된 자연을 애도하고자 한다.

이은영_그리고 알게된_생화, 혼합재료_가변설치_2021

이은영 Lee Eun Yeoung(1982) ● '애도'와 '기억' 이것은 이은영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이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작품의 형태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그 사건은 명확하게 드러나기보다, 해체되고 다른 의미들과 병합되어,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시'를 작품의 요소로 등장시키곤 하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면, 19세기 프랑스 시인들의 시를 짓는 방법이 자신이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연상되는 단어를 조합하고 분절하여,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시구와 단어들이 서로 충돌하는 시와 같이, 모호하고 은유적인 작가의 작품 설치방식은 다양한 오브제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이에 따라 작가의 작품은 마치 시를 읽듯 문맥 사이가 열려있고, 이는 개개인의 역사와 경험에 따라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읽게 한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 공동묘지를 거닐며 느낀 감정들, 프랑스 유학 중 학교에 가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 등에서 시작된 작품들은 다양한 감정의 조각들로 재탄생된다.

수잔 허스키_Les Oiseaux Sement La Vie_태피스트리_178×290cm_2022

수잔 허스키 Suzanne Husky(1975) ● 수잔 허스키는 인간과 식물, 지구(땅)의 관계에 주목하여,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한 재료로 펼쳐놓는다. 작가는 특히 도자기나 태피스트리, 카펫과 같은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공예품의 제작방식을 적극 차용하여 우리 주변 작은 생물들의 이야기들을 드러낸다.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연은 광활하고 숭고하여 다가갈 수 없는 추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소소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이러한 따스함은, 작가가 작품에 주로 사용한 색감뿐만 아니라, 실로 한 땀씩 자수를 놓아 그려낸 수고스러움과 정성, 노동의 시간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가 그려낸 작품들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나의 주변과 환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에디 뒤비엔_Renaitre_드로잉_가변설치_2022

에디 뒤비엔 Edi Dubien(1963) ● 우울과 슬픔에 잠겼으나 한편 결연한 느낌이 드는 눈을 가진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 동물, 식물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물감은 번지고 흘러내려 소년의 슬픔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 작품들을 그린 에디 뒤비엔은 불안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듯한 소년의 이미지를 엷은 수채물감으로 감성적으로 담아냈다. 작가가 깊이 파고든 소재는 신체와 동물, 자연의 모습이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연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생명력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한 동물과 식물의 이미지는 치유와 상생의 의미로 다가온다. 작가의 작품이 개인의 역사에서 출발했음에도 자전적 이미지로 한정할 수 없는 것은,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여러 문제를 드러내는 장으로 이미지를 제시하며, 우리 개개인이 가진 상처와 치유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품은 오랜 시간 유럽을 지배해 온 이분법의 시선(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주류와 비주류, 주인와 이방인, 지배와 피지배 등)을 벗어나, 공존과 화합을 추구한다.

노순천_사유상_철_222×160×130cm_2019

노순천 No Sooncheon(1981) ● 노순천 작가가 철을 구부려 만든 조각은 마치 스케치북 위에 순간적으로 그려진 것 같은 인물의 모습이다. 중량감이 제거되고 선적 요소가 부각된 이 형상은, 실제 엄청난 힘을 가해 구부려 만든 과정이 무색하게도 가벼운 드로잉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가는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순간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데, 표정이 없는 인물들은 무명의 얼굴이면서도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스케치북에 무심히 낙서해 놓은 것 같은 얼굴 형상들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특이할 것 없는 우리 주변의 사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기에, 가만히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가져온다. 조각의 비어있는 공간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은 작품과 주변이 어우러져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겁고 진중한 철의 속성을 비틀어 드로잉의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에너지와 운동성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즉흥적이고 가벼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성윤_Blueish Memory_장지에 혼합재료_130.3×97cm_2020

정성윤 Jung Sungyoon(1981) ●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행복에 젖어 들 듯, 정성윤 작가의 작품 앞에선 자연이 주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작가가 주제로 택한 풍경은 숭고함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광활함이 아닌, 일상적인 장면들, 즉, 건물 모서리의 잡초들, 카페 내부, 공원과 같은 평범한 삶의 공간일 때가 있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관심 두지 않을듯한 이러한 풍경은 작가의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터치로 새롭게 드러난다. 색들이 번지고 섞이며 화면 전면에 흘러내리는 물감은 평범한 장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작가의 말처럼 '감각의 깊은 곳까지 열리게 하는 것을 그려내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가져다준다. 평범한 일상이 그의 작품 속에서 비상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일상의 공간 속에서 느끼는 복잡함과 소란스러움, 고단함을 지우고, 자연만이 남은 적막함과 고요함을 표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풍경 자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풍경을 통해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

롭 마일즈_Primrose Cottage_캔버스에 유채_80×80cm_2021

롭 마일즈 Rob Miles(1987) ● 다양한 시점에서 본 형태가 한 화면 안에 함께 그려져 있는 롭 마일즈의 작품에는 이집트 미술부터 근대의 큐비즘, 디지털 인터페이스상의 아이콘 이미지와 항공 샷 등 다양한 요소들의 흔적이 보인다. 따스한 파스텔 색조로 그려낸 이미지는 우리가 실제 생활하는 공간의 모습으로, 작가는 이를 장식적이고 도식적으로 그려낸다. 관찰하고, 기억하고, 상상한 장면들을 드로잉으로 남겨놓는 작가는, 이 드로잉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가 주로 다루는 콜라주나 석판화는 전체를 분해하고, 여러 층을 만들어 재구성하여 만들어진다. 이러한 기법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선과 면의 활용과 기하학적 요소들의 구성을 통해 시각적 묘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작가는 그동안 회화에서 공간을 묘사하고 환영을 만들어냈던 원근법적 방식에서 벗어나, 기계적 시각을 차용하고, 컴퓨터 언어를 빌려, 기존의 공간을 분해하고 재조합하여 전혀 새로운 구성을 만들어낸다.

한상아_낯선 파동 7_광목천에 먹_170×270cm_2019

한상아 Han Sang A(1987) ● 먹과 물이 만나 거대한 농담의 향연을 보여주는 한상아 작가의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결혼과 출산은 작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큰 사건이었기에,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을 작품의 주제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엄마로 사는 삶과 작가로 사는 삶은 때론 충돌하고 때론 타협해야 한다. 작가는 이를 조율해가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작품으로 표현한다. 먹과 물이라는 매체는, 이 주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오로지 먹과 물의 양만을 조절하지만, 먹물이 향해가는 방향과 농담은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삶에 비유한다.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작품 크기는 작가의 고된 작업과정을 생각하게 하며, 이는 감당하기 벅찬 삶의 무게로도 다가와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앨리스 고티에_Manipules_캔버스에 유채_100×140cm_2022

앨리스 고티에 Alice Gauthier(1989) ● 다양한 색감이 혼합되어 어우러지고, 형태는 무른 듯 흐트러져 보이는 앨리스 고티에의 작품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기에, 감성적이고 유연하다. 작가는 인물을 화면에 주요 요소로 자주 등장시키는데, 이 인물들은 하나같이 연약하면서도 불안하고, 우울하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듯한 이 그림들은 작가의 속 깊은 이야기와 상처를 은밀히 꺼내놓은 일기장 같다.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에선 인물들이 서로 경계를 지우고 혼합되어 있어, 타자와의 허물없는 관계와 위로, 공감을 보여준다. 드로잉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작가 앨리스 고티에는 드로잉을 통해 삶의 순간이나 짧은 이야기들을 드러낸다. 구체적인 형상이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번지고 뭉쳐진 물감으로 인해 경계가 흐릿해진 이미지들은 구상과 추상, 내면과 외면, 신체와 정신을 오간다.

김참새_B-1_나무에 유채_162×112cm_2022

김참새 Kim Cham Sae(1984) ● 김참새 작가의 작품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담은 존재들이 그려져 있다. 작품 속 형상들은 화면 한가운데에 배치되어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는데, 사람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한 존재들은 하나같이 관람객의 시선을 피해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 가하는 차별적 시선에 대항하듯 서로 다른 모습의 이 존재들은 관계맺기를 거부한다.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매일 변하는 감정을 포착하여 박제하듯 그려낸 작품들에는 작가의 기쁨과 슬픔, 불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각난 캔버스가 실타래로 엮어져 있는 「B-17」과 여러 색상의 천들이 늘어지고 뭉쳐져 흘러내리는 「Variable」 역시 흘러가는 감정들을 붙잡아둔, 변화하는 마음상태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색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작품들은, 색 조합이 서로 물 흐르듯 잘 어울리면서도 색 하나하나가 더욱 돋보이게 배치되어 있다.

박시월_주전_유리에 연필, 아크릴판에 색연필_90×116cm_2021

박시월 Park Siwol(1993) ● 박시월 작가는 다른 사람의 기억 속 아름다운 순간을 유리 위에 연필로 그려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여러 사람에게 인생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에 관해 묻는다. 이 대화에서 나온 순간들은, 작가의 경험과 감정, 기억들과 혼합되어 새로운 이미지로 유리에 안착된다. 타인의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은 작가의 머릿속을 거쳐 새로운 이야기로 펼쳐진다. 개인의 과거에서 발굴한 형체 없는 기억을 박제하기 위해 작가는 종이 대신 유리를 사용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기억의 이미지는 마치 유리의 성질처럼 투명하면서도 뿌연 느낌이며, 차갑게 굳어가면서 순간의 형체를 담아내는 유리의 성질과 유사하고 한다. 작가는 유리를 사포로 문질러 뿌연 스크래치를 내고, 그 위에 흑연을 입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유리와 흑연, 서로 이질적이면서 밀어내는 이 두 매체의 조합은, 붙잡으려고 하나 도망가는 우리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대변한다.

문채원_무제 (추후 통보 전까지 얼굴을 가릴 것)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cm_2021

문채원 Moon ChaeWon(1992) ● 문채원은 견고한 세계에 틈을 내어, 우리가 외면하던 불완전하고 연약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우리가 익숙히 보아오던 사용설명서나 안내서, 지침의 형식을 차용한다. 이러한 안내서가 온전함과 완벽함, 모두가 따라야 하는 믿음과 체계를 추구하고 있는 것에 반해, 작가가 제시한 '의사 사용설명서(Pseudo-manual)'는 불확실하고 모순되며, 비논리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작가는 다양한 경로로 얻은 이미지를 조합하고 병치하여 새롭고 비논리적인 매뉴얼을 만들어낸다. 쉽게 읽힐 수 없는 구조의 낯선 이미지들은, 완벽함에 도달할 수 없는 불완전성, 획일적 논리에서 벗어난 이탈, 사회질서에서 벗어난 개인의 혼란과 좌절 등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한 땀씩 꿰어 그린 십자수 작품들은, 기존의 대량복제된 설명서와 대비되며, 획일화된 '전체'에 묻혀 잊고 있던 '개인', '미시', '개성' 같은 가치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견고히 돌아가는 듯 보이는 사회 안에서 개인의 일탈과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유연하고 변화 가능한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서제만_세계_종이에 유채, 오일파스텔, 흑연_31×42cm_2021

서제만 Seo Jeman(1988) ● 고민하듯 수없이 그어진 선들, 번지고 흐르는 옅은 물감, 희미한 형상은 서제만 작가의 작품에서 받을 수 있는 첫인상이다. 이는 마치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아 매듯 모호하면서 파편적이다. 기억과 경험에서 시작한 그의 작품은 그어진 선을 물감으로 덮고, 다시 그 위에 어지러이 선을 그려 넣는 반복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수없이 쌓인 선은 작가의 행위를 화면에 남겨놓는데, 이는 마치 작가와 이미지 사이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거리의 소음과 새의 지저귐, 바람 소리와 경적 등이 마구 뒤섞여 들릴 것만 같은 그의 작품은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을 환기시키며 공감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작가는 마치 자신이 그려낸 이미지와 이야기를 주고받듯, 그리고 지우고, 해체하고 변형하고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이미지가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아크릴과 흑연, 색연필과 같은 다양한 매체의 향연은 이미지의 소란스러움과 리듬감을 더한다. ■  

* 프랑수아즈 독끼에르 Françoise Docquiert: 프랑수아즈 독끼에르는 팡테옹-소르본 파리 1대학교에서 부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주로 근현대미술의 미학, 사진, 전시 큐레이팅, 미술관 교육, 작품 해석에 관한 연구와 저술을 해왔습니다. 2018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초대전 『바슐로 컬렉션』과 20세기 이후 현대미술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툴롱 예술관(Hôtel des Arts, Toulon) 등에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연계 프로그램 (무료) 프랑수아즈 독끼에르 공동 큐레이터의 특별 강연 - 프랑스 동시대 미술 경향과 신진 작가들 - 일시: 2022. 10. 21.(금) 15:00-17:00

프랑수아즈 독끼에르 공동 큐레이터와 함께 하는 아티스트 토크 - 롭 마일즈, 앨리스 고티에 - 일시: 2022.10.22.(토) 14:00-16:00

큐레이터와의 전시관람 - 일시: 2022. 10. 26.(수) 14:00-15:00

Vol.20221021a | 소소(小小)하지 않은 일상(日常)-2022 한불교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