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길을 따라 STAIRWAY TO HIM

이향희展 / LEEHYANGHUI / 李香熙 / painting.installation   2022_1021 ▶ 2022_1112 / 일,공휴일 휴관

이향희_1990~2010_장지에 수성흑연, 먹_가변설치, 210×1500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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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향희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_경상북도_포항시_포항문화재단 후원 / 2022 포항문화예술지원사업 시각예술 분야 집중지원 협력 / 스페이스 298(이병희 디렉터)

관람시간 / 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스페이스 298 space 298 경북 포항시 북구 중앙로 298번길 13 Tel. +82.(0)54.289.7913 @p.space298 phcf.or.kr

이 전시는 2022 포항문화예술지원사업 시각예술 분야 집중지원에 선정된 포항 출신 청년 작가 이향희의 프로젝트 결과물 발표 전시다. ● 해당 프로젝트는 포항 출신 청년작가가 아버지 이기영(1960-2010)에 대한 기억을 추적하면서 시작된 것으로서, 서울에서 살던 아버지 이기영이 1985년 포항제철 설비팀에 취직되어 포항으로 이주 한 후 가족을 꾸려 성실하게 생활하다가 2010년 질병으로 돌아가시기 까지의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담는다. ● 작가이자 딸로서 이향희는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을 포항의 풍경(영일대, 송도, 포스코) 속으로 중첩시킨다. 작품에서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삶의 기억과 흔적 그리고 현재를 잔잔한 추억의 풍경, 요동치는 감정의 풍경,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공존하는 마음의 풍경을 표현한다. 표현성의 주축이 되는 요소들은 포항의 실제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모래의 촉감, 파도 소리, 빛과 같은 감각 요소이다. ● 전시 『그의 길을 따라』는 이향희의 길과 아버지의 길이 서로 감싸 안는 형태로 구성된다. 이향희는 기존 작업에서 해오던 볼펜 드로잉으로써 자신의 일상(대구에서의 생활, 포항 방문,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길)을 그리고 그것을 에피소드별, 장면별로 배치한다. 그 중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가족 사진, 현재 자신의 일상 장면들이 배치된다. ● 전시에서 큰 축을 이루는 것은 아버지의 길이다. 여기에는 아버지 이기영이 직장을 다니며 오가던 영일대에서 송도로 이르는 길과 주변 바다 풍경, 그리고 포스코 풍경이 주축이다. 이향희가 그려보는 아버지의 심상이 그림에서는 밤 하늘과 파도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의 삶은 포스코의 빛으로 대체된다. 아버지의 심상으로서의 파도는 일렁임과 출렁임, 철석거림과 밀려들어옴,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표현된다. 또한 마치 아버지의 삶을 빛이라고 말하듯 포스코의 반짝이는 불빛과 밤 하늘의 별 빛은 그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난다. 이 작업을 위해 이향희는 흑연이라는 재료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 이향희가 그린 밤하늘은 유독 푸근하다. 돌아가신, 이제는 그 육신을 만져볼 수 없지만 언제나 이향희의 곁에 있는 그 영원함을 그리기 때문일 것이다. 광활하면서도 끝이 없고 영원한 느낌을 통해 육신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향희의 마음에는 영원히 살아 있는 그러한 존재성이 밤하늘에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향희는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모으고,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그러면서 이향희는 계속해서 영일대-송도-형산강에 이르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작업실에 와서는 밤 바다, 파도, 포스코를 그리고 또 그렸다. 마치 아버지의 길을 걷고 또 걷듯이, 자신의 매일의 일상을 살았듯이, 이향희는 과거가 현재에 재탄생하며 만나게 되는 감정들과 걸으면서 느끼게 되는 새로운 감각들과 중첩시킨 것이다. 이향희는 아버지의 심상을 상상해서 그리면서 자신과 아버지가 함께 했던 20년의 세월 동안의 공통의 심상을 표현해 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걸어 나갈 새로운 일상의 힘을 북돋아 낸 것이다. 그 전체 과정이 20폭의 한지 그림에 담긴다. 전시에서 이향희와 아버지 이기영의 공통의 심상 이미지가 20폭의 그림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다. ■ 포항문화재단

이향희_아버지 이기영의 길(1960~2010)_나무로 테이블 제작_가변설치_2022

감각의 비(非)기억 활동 - 이끌림 ● '되돌아가고 싶은 느낌'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어디론가 떠난다. 고향으로 가기도 하고, 과거 기억으로 쑤욱 침잠하기도 한다. 익숙함으로 같은 장소를 찾기도 하고, 무의식중에 홀연히 어딘가에서 멈추게 되기도 한다. 우리를 사로잡는, 그 되돌아가고 싶은 느낌에 어떤 특정성 혹은 실체성이 있을까? 회귀는 일차적으로는 삶의 내러티브를 재구축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내러티브화 되지 않는, 특정하기 힘든 이끌림이 항상 또 수반된다. 때로 이끌림이 너무도 강해서 내러티브화되는 궤도로부터 탈선한다. 그 내러티브로는 도저히 모두 설명되지 않는 잔여들이 있기에, 이끌림은 지속된다. 때로 이끌림이라는 과정 자체가 오히려 더 강렬해진다. 강렬한 이끌림은 어떤 새로운 지대를 형성한다. 그 지대에서는 어떤, 해소의 차원이 생겨난다. 그러한 지대에서는 이야기가 재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생겨난다. 정동 작용이 선명해지고 보다 활성하기 때문이다. ● 이향희가 『그의 길을 따라』 걷는 길은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 생겨나는 이 이끌림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길을 따라』는 포항에서 자란 이향희가 포항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전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이끌림의 복합성과 더불어 새로이 중첩되고 겹쳐지는 생성적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보고, 몸소 체험해 보는 것에 대한 전시다. 이향희에게 고향인 포항은 일상적으로 오가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이향희는 이곳에 온다. 무심결에 오기도 하고, 쉬러 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자연스러움을 넘어선, 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리움과 동시에 설렘이 한 데 겹쳐 서린다. 이향희의 마음에 밀려 들어와 파도치는 곳, 이끌리듯 되돌아가는 곳으로서의 포항은 장소의 차원을 벗어난다. 그러한 밀려들어옴, 이끌림의 일차적 실체는 '아버지'다. 전시의 애초 시작은 아버지가 된다. 하나의 스텝. 이후 다음의 스텝. 이향희는 포항으로의 반복 회귀(되돌아옴)를 한다. 이향희는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그와 관련된 기억, 관련된 장소, 에피소드를 찾는다. 그러면서 이향희는 자신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호흡처럼 익숙했던 장소들을 재발견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그 장소들을 또한 재발견한다. 재발견이지만 그것은 사실상 항상 최초인 발견이다. 익숙함이 낯설어지는 과정에서 아버지 또한 타자가 된다. 이향희를 낳아 키운 육신적 존재로부터 지금 이향희 손을 다시 잡고 이끌어주는 상상적 존재가 된다.

이향희_이향희의 시간_가변설치_2022

그리기라는 반복적 다가가기 ● 이향희는 기존 작업에서 주로 볼펜으로 이미지를 그렸다. 그가 그린 이미지는 일상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한 장면들, 기억의 장면들, 기억으로 남기고픈 장면들이었다. 장면들을 반복해서 그리는 동안 이향희는 그 장면과 관련된 감정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러한 시간이 바로 이향희가 작업을 하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 볼펜그림에서 이향희가 장면들, 단편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파편적인 내러티브를 배열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느낌들 전체를 표현한다. 전체라는 느낌, 복합적인 느낌 전체는 밤하늘의 광활함과 파도의 무한한 변화무쌍함으로 나타난다. 이향희는 무한한 광활함과 변화와 지속의 느낌을 먹과 흑연을 사용해 표현한다. 밤 하늘의 광대함과 적막함, 파도의 일렁임과 출렁임은 묘사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시간 이미지로서 추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밤 하늘과 파도가 만나 형성하는 또 다른 무한과 지속 느낌은 일종의 영원성에 가깝다. 그리고 그 영원성은 고착된 영원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동하고 활성하고 있는 변화 자체를 말한다. 그 이미지를 이향희는 아버지라는 육신적 실체와 기억 속 실체, 그리고 부재함으로써 존재하는 시간성에 투영한다. 이향희의 그리기는 대상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삶으로 다가가는 과정이며, 살아있는 이기영의 느낌들을 상상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이며, 동시에 자기 스스로에게 생겨나는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또한 그것을 그려 내는 과정이 된다. 이향희에게 있어 이번 작업에서의 '그리기'는 특별히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인 과정이 된다. ● 기억이란 것은 명확한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사실과 상상과 이야기들이 혼합된 혼합물이다. 이 혼합물의 주요 구성 요소는 아버지 이기영의 삶, 이향희의 추억, 자료들로부터 추정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 혼합물이 현재적 소통과 공감의 지대를 형성하는 이유는 주체의 바깥에서 뭔가를 주체로부터 끄집어내는 외재적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아버지와 딸을 이어주는 장소는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다녔던 길, 다녔던 회사라는 현장이다. 물론 아버지라는 육신은 없고, 아버지라는 존재성만 비가시적으로 남아있다. 그 실재했던 부재성이 이향희의 혼합 기억에 정념적 감정인 이끌림을 형성한다. 실재하는 부재성이라 함은 애초에 없었기에 부재함이거나, 삭제되어 찾아야하는 부재함, 보고 싶은 부재함, 그리움으로서의 부재함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언제나 있지만 보이지 않을 뿐인 부재함이고, 오히려 그 부재함 때문에 실재성이 커지는 그러한 부재함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향희를 사로잡는 감정, 즉 정념이라 일컬어지는 떨쳐 낼 수 없는 감정은 슬픔, 그리움, 이해할 수 없음, 애도와 같은 감정이 전부가 아니다. 혼합물로서의 기억을 활성케 하는 요소이나 계속해서 그 혼합물에 겹쳐 서리는 정념은 일종의 반가움과 설렘과 같은 새로운 마주침의 느낌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마주침의 반가움은 장소들에서 생동하는 감각의 요소들이다. 그러한 생성 작용 덕택에 이향희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한 반가움, 때로 위안이 되는 감정 작용이 활성화되기에 특정 장소인 포항 바깥 그 어디에서도 생동하는 감각-이미지를 그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때 감각-이미지는 새로운 발생의 터전이자 그 흔적이 된다. 감각-이미지 그리기는 그리하여 몸의 추상적 운동이 된다.

이향희_1990~2010_장지에 수성흑연, 먹_가변설치, 210×1500cm_2022_부분

감각-이미지의 전환과 생성작용 ● 밤과 바다 이미지로부터 아버지 이기영도 지금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가 걸었던 길, 들려오는 파도 소리, 발바닥에 닿았던 촉감, 눈에 들어왔던 빛은 지금 이향희 작업을 이끌어주는 실체이기도 하고, 우리가 실재함으로 가득한 부재성과 만나는 지대이자 활성적 감각의 실체 자체이기도 하다. 반짝임, 서걱거림, 푹신함, 철썩거림 그러한 모든 느낌들은 물론 현재 이향희의 육신에서 공명하는 것이다. 감각들은 부재함을 가득 채운다. 그 가득 찬 부재함으로 인해 애초의 이끌림은 더 강한 이끌림이 되고 부재함은 더욱 커지지만 동시에 가득해진다. ● 이향희가 그리는 감각-이미지의 장소는 특정한 것이지만 특정성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차원의 정서들을 받아들인다. 그 정서는 이향희의 것도 아니고, 상상된 이기영의 것도 아니다. 전환되는 정서의 장, 다시 새로운 정서들이 섞여 혼합되는 과정은 기억들이라는 흔적의 섞임이며 그 흔적과 새로운 자극이 겹쳐지는 과정이고, 다시 새로운 자극이 흔적이 되는 과정 자체이다. 그러한 기억, 흔적, 감각(자극)의 발생과 겹쳐짐이라는 운동이 감각-이미지에 활력을 부여한다. 밤과 바다라는 풍경은 그러한 잠재한 것과 발생하는 것이 동시에 축적되는 감각-이미지가 된다. 그러한 감각-이미지 실체는 시간을 머금은 장소의 정동이 된다. 그러한 정동의 장에서의 '이어짐'이라는 것은 단지 사실의 나열이거나, 기억의 재구성이거나, 내러티브의 재구축이라기보다는 겹침들의 지속 발생이자 그러한 발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장소 자체는 '그 어디에나'라는 편재 자체다. 장소에서 개별의 기억이 감각적으로 발현되는 이유는 장소가 자극체이기 때문이다. 자극들 즉 냄새, 소리, 닿음, 반짝임과 같은 자극들이 기억을 생동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생성되는 감정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지금 발현된 새로운 감정들이다. 그래서 그 감정은 고마움과 반가움으로 형언될 수 있다. ● 통상적으로 기억은 기억되어야하고, 재현되어야하며, 특정 내러티브로 맞춰져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역사'라는 실체가 내러티브화 되면 개인의 기억은 공식 기억, 집단 기억, 정치 이데올로기, 금융 장치적 내러티브에서의 누락, 폭력, 삭제, 희생에 처하기 일쑤다. 그래서 개인의 기억이 그러한 공식 내러티브화의 기제를 보충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증언'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보충 기억 장치로서의 개인의 증언을 소중하게 여긴다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중심주의 관점에서의 서술은 부족하다. 잔여와 넘침이 있다. 모든 기억의 바깥은 어디일까? 무엇일까? 즉 인간을 중심으로 한 기억의 바깥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소의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장소 감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 장소 감각은 기억이라는 작용을 생성적이고 촉발적인 것으로 새롭게 작용케 하고, 전체 공동의 지속시키고, 변환시키는 실체 자체일 것이다. 장소는 자극들의 용광로다. 자극-감각이 편재하는 장소는 감각 실체들의 장소이자 우리 기억을 생성적으로 촉발시키는 장소인 것이다. 자극체이자 감각의 용광로인 '장소'는 인간 기억, 인간 내러티브, 역사적 트라우마를 단지 인간중심주의적 애도와 성찰, 윤리의 집적으로만 놔두지 않는다. 장소는 몸을 부른다. 그 육신으로 장소 자극을 소리로, 냄새로, 촉감으로, 빛으로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트라우마적 조우의 양가성, 즉 성찰과 윤리에 덧붙여 반가움과 설레임을 슬쩍 각인시킨다. ■ 이병희

이향희_껴안기_장지에 볼펜_12×13cm_2022

그의 길을 따라 - 이미지가 떠오르는 시간 ● 해가 진다. 하루 종일 붕붕 떴던 모든 일정이 가라앉고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외부로 향하던 감각들을 닫고, 시야가 적당히 차단된 어둠 속에서 안정을 느낀다. 움직이고 싶어 산책한다. 땅을 딛는 발의 감각들이 선명해지고 호흡이 느껴진다.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감각과 생각들이 순간 선명해지다가 이내 아득해지고, 적막하다 고요해진다. 마침내 무심해지기도 하는 순간, 시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떤 이미지들이 툭툭 떠오른다. 최근의 즐거웠던 기억, 지난날의 후회스러웠던 기억, 그리고 항상 그리워하는 것에 대한 기억이 툭툭 떠오른다. 장면들은 순간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다시 아득해지기를 반복한다. ●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핀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지나치는 순간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지나가는 순간들 사이 멈춰 늘 휴대하고 다니는 휴대폰 카메라로 주변을 찍는다. 일상의 순간을 사진으로 찍을 때면 의도한 것과 우연히 찍힌 장면이 적절하게 섞인다. 포착된 장면들에서는 지루하지 않은 생동감이 돌고, 그 속에서의 조형성에 대한 즐거움과 자연스레 떠오르는 몽상의 즐거움이 두루 있다.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다시는 돌아오질 못한 한순간을 소유한 것 같은 기분. 시간을 붙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향희_가족사진_장지에 볼펜_18×12.5cm_2022

기억을 만지는 시간 ● 특히 최근 몇 년간 사진찍기에서 시작한 나의 일상 장면을 그렸다. 볼펜으로 한 선 한 선 그려내면서 나는 '순간'을 그렸다. 찰나로 기록된 장면들을 오랜 시간을 들여 바라보고 한 선 한 선 그려내며 느껴보는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사진으로는 다소 거리감 들었던 장면들이 만져지는 것 같다. 둔하던 감각들이 섬세해지고 내 속에 있던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이 환기된다. 때로는 그때의 혼란이 정리되기도 하고,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오기도 한다. ● 볼펜은 언제 어디서나 구하기도 편하고 휴대가 간편하고 용이하다. 가성비도 좋다. 하지만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려 하면 볼펜이 꽤나 예민한 재료라는 걸 알 수 있다. 볼펜은 압력과 속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명도와 느낌을 만들어낸다. 또 볼펜은 수정이 쉽지 않다. 그림 그릴 때의 나의 몸짓과 흔적들이 수정 없이 그대로 기록된다. 예민한 볼펜을 다루기 위해선 차분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균등하게 선을 그려나가야 한다. 이는 마치 스스로를 수련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 잠시나마 그림으로 그려 순간의 장면과 그때의 마음을 오래도록 내 속에 담아두고 싶다. 하지만 볼펜은 늘 보존성에 있어 한계점이 있어 고민하게 만든다. 볼펜으로 그린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 변색이 되곤 하는데 브랜드마다 변색되는 채도가 다르다. 주로 푸른색과 보라색을 띤 검정 잉크로 보이지만 어떤 볼펜은 보다 브라운에 가깝고 또 어떤 볼펜은 녹색으로 변색 된다. 그런데 볼펜의 이러한 특성은 기억과 닮아있다. 기억이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고 변하고 사라지듯이, 볼펜으로 그린 이미지도 서서히 변색되고 사라진다.

이향희_설비기술부 이기영_장지에 볼펜_11.5×19.5cm_2022

이기영과 걷는 길 ● 고향 포항에 올 때마다 걷는 길. 포스코 풍경이 함께 보이는 바닷길. 영일대해수욕장-송도해수욕장-형산강까지의 길을 걷는다. 이곳은 나의 산책길이기도 하지만 과거 아버지 이기영의 출퇴근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항상 아버지에 대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밀려온다. ● 중간 중간 멈춰 설 때마다 바라보게 되는 파도의 무늬와 에너지를 바라본다. 움직이고 있지만, 매번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는 것 같고, 규칙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형상들을 바라보지만, 바다의 물결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진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 말없이 그곳에 가서 그것들이 있음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고, 그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과 장면들을 바라봤다. 완전하지 않은 기억들뿐이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도 몇 되지 않았다. 나의 기억이 시작되기 전부터 함께한 포항의 바다 풍경과 포스코 풍경, 그리고 20년 동안의 포항에서의 가족과의 추억의 장면들.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장면과 풍경들이 언제부터 이어지지 않는다. 당연하게만 있을 줄 알았던 것들이 마음의 준비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인지했을 때 내 속 깊은 곳에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 쉽게 해결되지 못하는 그리움과 상실감을 매번 마주하게 된다.

이향희_아빠와 바다_장지에 볼펜_16×18cm_2022

마주하고 껴안기: 수성 흑연 ● 명확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 하나의 풍경 이미지로 엮어 송도 바다에서 본 풍경을 긴 호흡으로 그려 내야겠다 생각했다. 아버지와 관련한 응축된 기억과 감정의 덩어리들을 그리기를 통해 풀어내고 마주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나 자신 속으로 파고드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나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는 프로젝트다. 아버지에 대해서 추억하고 아버지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다소 낯설어지기도 한다. 이번 작업은 그가 걸었던 길, 그의 삶을 그리는 시간이 된다. 나로부터 멀어져 그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이미 노련해진 그간의 그리기 방식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써오던 볼펜 외의 다른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일상의 필기구를 선호하는 나는 재료 조사를 하다 수성 흑연 가루(연필 가루)를 알게 되었다. 흑연이란 재료는 운동성 있고 유연한 모습의 물결을 그리기에 적합했다. 바닷가를 걸으며 아버지를 생각했기에 물결을 통해 아버지를 그리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20폭의 그림은 20년의 포항에서의 시간들을 의미한다. ● 대체로 내 품 안으로 들어오는 작은 종이에 볼펜으로 그려나가는 몸짓에 익숙했는데 내 몸을 벗어나는 큰 종이를 마주하고 오랜만에 붓과 물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처음엔 내 몸을 벗어나는 몸짓이 익숙하지 않았다. 갈피를 못 잡았고 제어가 되지 않아 불안했다. 불안하지만 불안을 끌어안은 채로 드로잉하듯 물결의 무늬들을 그려나갔다. 마음 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볼펜으로 그릴 때와는 또 다른 몰입을 경험했다. 볼펜으로 그릴 때 형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직되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큰 폭의 그림을 그리며 그 부분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가 있었다. 불안과 자유가 공존하는 그림그리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 흑연 가루에 물을 묻혀 장지 위에 흡수시켜가며 그림을 그린다. 먹색의 흑연 가루가 종이에 침투하는 듯 보이지만, 모든 것이 흡수되지 않고 일부를 뱉어내며 종이에 안착한다. 안착된 흑연의 먹빛은 묘하다. 담담하고 쓸쓸한 느낌도 가지고 있지만, 미묘하게 반짝거리며 빛난다. 장지에 온전하게 흡수되지 않은 모습이 모든 기억과 감정을 흡수시킬 수 없는 나의 모습 같고 나와 아빠와의 기억 같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나간다. 나는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것들을 껴안는 기분이 든다.

그림을 그린다. ●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려보고 싶다는 말의 의미는 참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 같다. ■ 이향희

작가와의 대화 「포항의 청년작가」 - 일시: 2022.11.04 (금) 14시 Space298

문화도시 포항의 현대미술 공론장 「생성적 기억」 - 일시: 2022.11.04(금) 15시 Space298

Vol.20221021h | 이향희展 / LEEHYANGHUI / 李香熙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