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우울의 시대, 연대를 모색하다

더원미술세계 2022년 11월호   November Vol.7

더원미술세계 THEONE ART WORLD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24 4층 Tel. 070.4289.3397 theoneartworld.kr

고립과 우울의 시대, 연대를 모색하다 ● 새하얀 공간 안에 부서져가는 난민보트가 비스듬 히 세워져 있다. 사막처럼 황량한 공간에 놓인 이 보트는 관객이 푸른 물감으로 적어나갈 희망의 메 시지를 기다리고 있다. 백지 같은 공간에 묻혀 그 존재조차 희미해진 보트는 혼자이길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모습처럼 보인다. 고립무원의 사막처럼 외로움은 사람을 죽음에 이 르게 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사회적 불황은 현대 인의 고립과 우울을 심화시켰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 웬 외로움이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경제적 성장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서 감정의 문제는 거론하기 껄끄러운 것으로 치부 된다. 고립과 상실, 우울 등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 당연한 것, 숨기고 싶은 것, 사소한 것, 불편한 것들 로 치부하고 외면할수록 사회적 문제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뉴스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지금 내 주 변에서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여름, 경기 수원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9장짜리 유서에는 그들의 고통 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60대 어머니는 암을, 40 대 두 딸은 희소병과 정신질환을 앓았다. 아버지는 빚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생계를 책임진 아들도 2년 전 희소병으로 사망했다. ● 가족은 사실상 해체 상태였다. 지난달 19일에도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에서 홀로 생활하던 탈북민이 숨진 지 1년 만에 백 골 시신으로 발견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던 마감 기간에는 라디오에서 청년 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본 사회에 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히키코모리(은둔 형 외톨이) 문제는 이제 한국에서도 캠페인을 벌일 만큼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청년뿐만 아니라 노 인 자살률도 증가한 지 오래이며 부모와 자식을 부 양하고 있는 40~50대의 빈곤과 우울의 문제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와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갈등 과 혐오, 분열은 증폭되고 있다. 10여년 전보다 더 혹독한 경제 위기가 목을 조르듯 다가오는 지금 이 시대 사회문제들은 머리 위에 놓인 시한폭탄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고립과 우울의 시대상은 최근의 미술 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직 후에는 고립과 우울의 양상이 개인의 차원에서 다 뤄졌다면, 지금은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 책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 예술이 지금 당장 사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소외된 기억과 우울, 외로움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 현대인들은 혼자이기를 원하면서도 끊임없이 누 군가와 연결을 원하는 모순적 존재이다. 히키코모리, 고독사, 우울 등 고립과 상실의 문제를 해결하 는 길은 우리가 외면해온 문제들을 들여다보는 것 에서 출발한다. 예술은 사회에서 해결책으로 제시 하고 있는 '공동체의 회복'을 강요하지 않는다. '공 동체'라는 말은 '우리'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연민'이 아닌 '공감'으로 온기를 불어넣고 서 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연대'를 모색하지만 '연대'의 개념부터 다시 정의한다. 쉬운 말로 하자면 '따로 또 같이'가 예술이 표방하는 연 대이다. 시대의 우울과 아픔을, 내면의 상처와 상실 을, 사회적 고립과 분열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공 감으로 치유해나가는 것. 빠른 회복을 강요하지 않 고 보듬어나가는 일. 거기에서 피어난 사랑을 전하 는 것이 예술이 말하는 연대이다. ● 작업의 방식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조수가 작업을 보조하는 방식의 협업이 아닌, 전문가나 관람객이 함께 하나의 작품 을 완성해가는 소통과 협업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11월 호에서는 최근 전시와 예술가들의 작품 을 통해 사회 속 고립과 분열, 외로움과 우울의 양 상을 살펴보고 연대를 모색해본다. ● 첫 번째로는 미술비평가 콘노 유키의 글을 통해 재난 등 지금의 사회상이 담긴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살펴본다. 두 번째는 임상심리학자 윤현희의 글을 통해 개인과 역사의 상처를 치유해온 예술의 힘과 미술 활동의 심리치료적 효용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세 번째는 《QnA: 질문하는 그림들》, 《층 층층》, 《쓰고도 달콤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등 고립과 우울 그리고 연대를 주제로 한 최근의 전시들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 밖에도 상실, 고립, 우울을 주제로 한 전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박혜수, 우시온 작가를 만 나보았다. 지금 이 지면에 펼쳐진 요코 오노의 『채색의 바다 (난민 보트)』는 전시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람객이 풀어놓은 희망의 바다에 몸을 띄웠다. 지 금도 고통의 샘에서 생을 길어 올리는 예술가들은 고립과 우울을 창작의 동력으로 하여 공감을 이끌 어내는 새로운 작품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다. 그들 의 온기가 어두운 터널과 길고 긴 밤을 밝히는 별 빛이 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기대해본다. ■ 김수은

017 EDITORIAL 018 NEWS & FOCUS

ARTISTS
ARTISTS

ARTISTS 026   ARTIST OF THE MONTH         백광익_우주와 자연, 물질과 비물질의 공존 l 이경모 034   권용래_이성과 감성, 그 틈 사이로 젖어든 빛방울 l 이도준 038   문혜성_글씨의 무의식을 깨우는 작업 l 이경모 042   이수진_현실을 보게 하는 꿈 l 김남시 046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_뒤집힌 세계에서 건져낸 노랫말 l 이도준

SPECIAL FEATURE

SPECIAL FEATURE 050   고립과 우울의 시대, 연대를 모색하다 l 김수은 052   お願いだから(부탁할게/소망이니) 시간을 멈춰주세요 l 콘노 유키 058   전환 시대의 예술, 치유하는 예술 공간 l 윤현희 064   갈등과 혐오, 분열의 세상을 치유하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 l 김수은 070   박혜수_상실과 고립의 기억을 감싸는 천 개의 공감 l 김수은 076   우시온_우울 속의 달콤함, 고립과 혼돈 속에 피어난 행복 l 김수은

ISSUE

ISSUE 080   사랑의 아노미: 낭만과의 작별 l 전세운

TOPIC 086   2022창원조각비엔날레 l 김수은, 이도준 090   한내를 예술로 채우다 l 김진희 092   BOZEOL ART, FESTA-HOUSE ART MUSEUM l 김진희 094   아트테이너가 그려낸 마법 같은 사랑 l 전세운

SPACE &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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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100   공간이 된 백색의 도화지_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l 전세운

PEOPLE 106   정현 시간과 정신의 초상 l 김주영

ART WORLD 111   LA_OPENING OCMA l 이경수 114   HONG KONG_이것은 패션 매거진이 아니다 l 앤드류 램 116   BEIJING_상하이 푸둥미술관의 중국 건국 73주년 기념 대형 기획전 l 김용우, 정형민 118   JAPAN_가와구치 세이의 110번째 개인전 l 미야타 테츠야

SERIAL 121   정해광의 아프리카 미술과 문화1         A JOURNEY TO AFRICAN ART 126   이은화의 유럽미술관 산책7         숲속에 들어선 첨단 미술관_키스테포스 뮤지엄

EXHIBITION 132   REVIEW 144   PREVIEW

CURATOR & CURATION 146   제3회 제주비엔날레 박남희 예술감독         "자연적 공명을 실험하는 예술의 장 만들 것" l 김수은

ATELIER

ATELIER 150   최우람 전설 발명소: 차가운 금속으로 벼려낸 온기 l 이도준

154   CULTURE & BOOK 157   POSTSCRIPT 158   SUBSCRIPTION

Vol.20221101d | 고립과 우울의 시대, 연대를 모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