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큐즈미 Excuse me

레이지비디오展 / LAZYVIDEO / mixed media   2022_1101 ▶ 2022_1126 / 일,월,공휴일 휴관

레이지비디오_이거 올라가나요?_단채널 영상, 모니터_반복재생, 113×65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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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비디오 홈페이지_lazy-video.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레이지비디오 LAZYVIDEO 김지향 金芝香_박수민 朴秀敏_이해진 李海珍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스펙트럼 갤러리 SPECTRUM GALLERY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2길 2-3 (이태원동 211-22번지) Tel. +82.(0)2.6397.2212 www.spectrumgallery.co.kr @spectrumgallery_official

LAZYVIDEO는 영상을 주축으로 하는 아티스트 그룹으로, 영화 연출, 댄스, 회화, 연기 등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지향, 박수민, 이해진 3인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실험적인 단편 영화로 근간을 이룬 LAZYVIDEO는 실험영화, 미디어 설치, 회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실험을 통해 비디오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레이지비디오_하나, 둘 셋_단채널 영상, 모니터_반복재생, 40×71cm_2022
레이지비디오_따따불_단채널 영상_프로젝터_반복재생, 가변크기_2022
레이지비디오_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대_모니터_반복재생, 가변크기_2022
레이지비디오_마음_미디어 설치, 혼합재료_반복재생, 140×200cm_2022

전시 『Excuse me』는 모두 신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일곱 점의 입체와 영상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전시의 작업은 작가가 일상에서 겪은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전시된 작품 중 미디어 설치 작품인 「자는 거 아니야」를 비롯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대」, 「마음」 등에서 드러난다. '존재감', '도시', '내면의 고군분투'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도시에서 개인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고립감을 도심 풍경과 홀로선 개인의 이미지를 중첩하여 보여준다. LAZYVIDEO는 거대한 도시와 집단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부정당하는 개인이라는 존재를 위로함과 동시에 고립되어 있는 개인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내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스펙트럼 갤러리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꽤 고급스러운 빌딩의 수많은 창문 중 한 칸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온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말쑥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 나 대신 버튼을 눌러두었다. 얼마 안 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우리는 둘 다 서로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로 올라탈 수 있었다. 그저 각자의 목적지에 해당하는 버튼을 꾹 누르고는 정사각형의 좁은 바닥 면 양쪽 모서리에다 발바닥 두 개씩을 눌러 붙인 채로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는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그런데 이 말쑥한 차림의 깡마른 남자가 난데없이 방귀를 부우웅 하고 뀌는 것이었다. 그 맥없는 소리에 남자보다 약간 더 뒤쪽에 서 있던 나는 그저 멀뚱히 그 말없는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한참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지만, 그는 끝끝내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도 내 쪽으로 어떠한 응답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분노에 찼다가, 힘이 없었다가, 흐려졌다가, 불확실해졌다. 그는 방귀 한 방으로 내 존재를 완전히 삭제해 버렸다. ● 개인은 완전히 투명해질 수 있는가? 나는 그 남자의 방귀 소리를,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 뒤통수를, 단정한 푸른색 셔츠를 번갈아 곱씹으며 질문해 보았다. 집단 안에서 몇몇 개인은 완전히 투명해져 그 존재를 상실하기도 하는가?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레이지비디오_익스큐즈미展_스펙트럼 갤러리_2022

커다란 빌딩, 창문마다 꽉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 위치한 정사각형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나'는 그 남자에게 있어 얼마나 투명했을지를 짐작해본다. 집단 안에서의 개인이란 때때로, 아무 색도 반사하지 못하는 까만 머리칼, 까만 눈동자 두 쌍만으로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겨 꽤 투명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데서 오는 이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은, 집단의 최소 단위이기에 필연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이 어떤 고립감은, 정말로 순수하게 개인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나 쉽게 부정당하는 개인으로써의 존재감이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개인을 정말로 지치게 만드는 것은 일이나 돈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배반당하는 존재감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도시, 집단, CITY는 보이지 않는 개인을 접붙인 것에 불과한가? 도시, 집단, CITY의 자아에는 개인이 영역에만 존재하는 슬픔과 지침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 나는 슬픈데, 이 도시는 슬프지 않은가?

이제 이 도시가 울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 잠겨 든 개인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들끓는 고립감과 분노, 힘없음, 흐려짐, 불확실함, 슬픔은 투명해질 수 없는 모양이다. 어둠에 묻혀서도 두 눈깔만큼은 형형하게 빛내며 뭐라도 외쳐보아야겠다. 왜 내가 여기 있는데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방귀를 부웅 뀌느냐고 따져 물어야겠다. 분노든 슬픔이든 꺼내 놓을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터질 것처럼 길을 잃어버린 이 갑갑한 무엇인가를 작살에 묶어 도시 한 가운데로 힘껏 던져보고 싶다. 그 끝에 달린 것이 날카롭게 버려진 권태로움이라고 해도, 무언가를 죽도록 아프게 꿰뚫어서 찔끔 눈물이 날 만큼 단단하게 연결되고 싶다. ■ 레이지비디오

Vol.20221103g | 레이지비디오展 / LAZYVIDEO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