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Babel

박부곤展 / PARKBOOKON / 朴富坤 / photography.installation   2022_1102 ▶ 2022_1130 / 월요일 휴관

박부곤_동탄2 신도시-1_C 프린트_152×190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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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곤 홈페이지_www.bookonpark.com

초대일시 / 2022_110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55 SPACE 55 서울 은평구 증산로19길 9-3 Tel. +82.(0)10.6304.4565 www.space55.co.kr blog.naver.com/newacts29

자본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드러난다 ● 개발 현장에 작가 박부곤은 누구이며 그의 사진은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 개발 현장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로 인해 쫓겨 나는 자들의 비명과 분노, 투여된 자본량에 비해 점처럼 놓인 노동자들, 땅과 강, 바다가 요동쳐 회색 구조물로 변해가는 현장을 보았다. 이들과 빗대어 생각해 보면, 박부곤의 사진은 정감이 치솟고 난 후, 혹은 정감을 물린 채 취하는 선택을 문제로 삼는다. 그의 오늘(여기서 오늘이라는 말은 참 협소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은 적어도 10년에 걸친 한국의 ‘오늘'을 소개한다)은 많은 선택과 판단을 거쳐 이제 그의 카메라가 멈춰선 그 지점을 드러낸다.

박부곤_경남 합천군_C 프린트_152×190cm_2022
박부곤_안양시-1_C 프린트_120×150cm_2016
박부곤_서울시-1_C 프린트_152×190cm_2022

그는 땅 위를 걷는 행위에 대한 인식과 반성을 기반으로 2012년부터 트래킹 연작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기서 트래킹이란 참 문제적인 단어다. 자연을 느끼며 걷거나 여행하는 낭만이 한편을 차지한다면 추적, 관측, 제어와 같은 과학기술적 엄정함이 다른 한 축을 차지한다. 그 사이,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카메라 워크를 뜻하는 매개적 상황이 자리한다. 여기서 낭만 혹은 정조는 잠시 뒤로 물리겠다. 이를 묻는 건 시급하지도 않고 그의 작업에 편향을 만들 뿐이다. 오히려 뒤의 두 의미 사이에 박부곤의 트래킹이 지닌 가치를 조망해보게 된다. ● 기술공학적 의미에서 트래킹은 추적, 관측, 제어라는 목적지향이 있다. 이 목적에는 미래를 낙관하면서 근미래를 통제하는 시간 축의 염원과 서사가 있다. 과학자나 기술공학자의 트래킹은 현재의 행위가 미래의 산출에 영향을 미칠 때 오차를 줄이려는 목적을 지닌다. 기술의 쓸모는 개발업자가 이윤 증식을 타진하듯 효용을 물을 때 계산된다. 그렇다면 추적, 관측, 제어, 통제, 산출과 같은 트래킹의 '논리'가 박부곤의 작품 안에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오직 카메라 워크로 '논리'와 현장 사이를 매개한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표현"한다는 그의 말은 보다 더 잘게 쪼개어 의미를 캐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간 수고로웠을 그의 발보다, 그의 카메라를 믿어 본다. 카메라 워크를 통해 남은 트래킹의 의미를 다른 무엇보다 앞세울 때 박부곤이 누구인가 선명해진다.

박부곤_동탄2 신도시-2_C 프린트_152×190cm_2021
박부곤_Tunnel-15.1_C 프린트_152×190cm_2013
박부곤_Tracking-20.1_C 프린트_152×190cm_2013

그의 사진 프레임은 수직성 그 직전까지의 현장을 주로 담는다. 고층 아파트의 허리가 짤린 「서울시-1」(2012)는 오르는 아파트와 머문 지역을 드라마틱하지 않은 방식으로 고증한다. 「위례 신도시」나 「동탄 신도시」에서 취하는 프레임도 쉽사리 밖으로 빠져 조망하지 않는다. 관망하는 태도는 때론 스스로를 평가자, 즉 관찰자적 태도에 묶곤 하는데 박부곤의 위치는 다가가서 개입하기와 물러서서 관망하기 그 사이의 많은 물음을 거쳐 자리한다. 하여 오히려 「동탄2 신도시-1」(2013)와 같은 사진은 벌판에 흩날리는 애드벌룬만으로 더 많은 사건과 현장을 증언하고 예고한다. 전시작 중 「Tunnel」 연작 같은 경우에는 수직성의 기표에 현혹될 때 미처 보지 못하는, 낮은 욕망의 이음새를 잇는다는 점에서 눈여겨 보게 된다. 어떤 입장에서 선언이나 선동과는 멀어지려고 의욕하는 이 태도는 그가 제기한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표현"한다는 작가노트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따라서 나는 이 문장을 다시 매만져 본다.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대신 "자본의 욕망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표현한다" 대신 "드러난다"고 치환해 본다. ● 문장의 치환은 박부곤의 역량과 의지를 흐리는 게 아니다. 능동태를 수동태로 치환한다고 해서 협소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부곤의 「기계도시」는 서울, 위례, 동탄, 성남, 안양, 세종에 이르기까지 흔히 중심부라 일컬을 바벨의 정점을 향해 방사 형태로 솟구치는 신도시들을 축조한다. 인간은 의욕했으나 신이 허용치 않았던 것이 바벨(Babel)이다. 횡(橫)으로 도시가, 종(縱)으로 탑이 바벨을 염원하나 바벨 이후 바벨은 한낱 방언처럼 쪼개어져 흩어진 채 남는다. 의욕과 좌절은 인간사의 이치일텐데, 의욕도 좌절도 유예시키는, 이 사진들은 불가해한 세계에서 사진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가장 협소한 선택지들에서 최소한의, 그러나 해야만하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박부곤_기계도시_모터, 구동장치, 램프, 알루미늄, 합판, 사진_가변크기_2022

사진들의 조합이 세계의 조합일 수 없듯, 사진들의 축조 또한 세계를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과 발전에 사진이 수동과 피동의 역할을 받아안는다 하여 패색이 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패색은 인간의 언어다. 그의 발보다 카메라를 믿듯 카메라 워크로 트래킹한 이 사진만이 그 자체로 오늘의 산물이다. 이 만큼의 의미 이상을 찾을 때 사진에 더께가 앉는다. 박부곤의 사진에 굳이 미사의 더께는 불필요하다. ■ 김현주

Vol.20221106b | 박부곤展 / PARKBOOKON / 朴富坤 / photography.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