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 WHALE 귀신고래

주기범展 / JOOKIBEOM / 朱起範 / painting   2022_1107 ▶ 2022_1112 / 일,월,공휴일 휴관

주기범_GRAY WHALE 귀신고래展_소금나루 작은미술관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울산광역시 북구 주최,주관 / 북구예술창작소 소금나루2014

관람시간 / 09:00am~06:00pm 토요일_09:00pm~03: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소금나루 작은미술관 울산 북구 중리11길 2 북구예술창작소 Tel. +82.(0)52.289.8169 www.bukguart.com cafe.naver.com/bukguart

주기범 작가의 작업에 부쳐 ● "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비교적 주목하지 않는 사건과 사물을 찾아 나선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현재에서 공간과 사물을 발굴하고 디지털 라이징하여 아카이브 해나가며, 이를 다시 고전 기법의 회화로 전환해서 재-사유화되는 지점을 연구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회화로 그려진 작업을 전시 현장의 벽을 벗어난 유기적인 설치 방식으로 재조합하여, 이미지의 표면적 의미를 벗겨낸 주관적인 내러티브를 드러내려 하고 있다." - 작가노트 중 ● 어릴 적 브리태니커 어린이 백과사전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의 인류가 사라진 후, 현 문명에 대한 문서화된 기록조차 사라진 시대, 즉 먼 미래의 인류가 바다 혹은 땅 속에서 발굴한 사물들을 두고 그 용도를 추측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내용이었다. 책의 삽화에는 미래인이 지금의 화장실 변기의 시트 부분을 고대인의 목걸이로 추측하고 목에 둘러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나에게 이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었어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데, 이는 당연하게 사용했던 것들이 아무런 기록도 없이 미래에 남겨진다면 형태나 재질만으로 그 용도를 추측하는 과정에서 있을법한 결론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도 수많은 고대의 유물들을 대상으로 꽤 많은 오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기범_GRAY WHALE 귀신고래展_소금나루 작은미술관_2022

주기범은 그의 작업 노트를 빌어 '고고학적 관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실제 고고학자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남겨진 흔적을 제시하고 우리의 상상력에 살을 붙여나갈 수 있는 역사적 고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작가는 기록 전의 역사의 흔적을 찾아다닌다던가 미스테리한 과거의 장면을 복원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면서 왜 자신을 고고학자의 활동과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일까. 주기범이 최근 작업한 회화는 지금의 풍경을 캔버스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화적 환경을 드러낼만한 기호들이 삭제되었을 때 남겨지는 생경함이 그 소재가 되고 있다. 즉, 고고학자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기 위한 두 가지 시점을 동시에 작동하는것처럼 주기범의 작업에도 두 개의 시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눈앞에 놓인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현재의 시점과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지금'을 유추하고 오독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시점이다. 2021년 「돌로세움」 시리즈(각 162.2×97cm)는 돌 조형물을 대상으로 한 회화이다. 특정 지역에서 상징성을 가진 이미지를 제시하여 지역성을 과시하고자 하였던 이들 조형물들은 그 위상에 걸맞는 좌대 위에 이름이 새겨진 팻말로 지칭되어 공개되었었다. 즉 각 지역에서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공공기관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국내 여기 저기서 수집한 일련의 석조 조각 이미지들을 회화로 재현하여 이들을 다시 하나의 공간에 나란히 재배치하였다. 이때 주기범의 회화 속에서는 이들이 원래의 용도를 드러내던 표면 글귀들이 삭제되었고 초상화처럼 화면을 차지하며 조형과 표면 이미지만 남은 돌덩어리들 간의 묘하게 닮아있는 독특한 존재감은 이들을 하나의 '종'으로 묶을 수 있는 오해의 인식을 생성해내며 또 다른 종류의 내러티브를 제시하였다.

주기범_GRAY WHALE 귀신고래展_소금나루 작은미술관_2022

2022년 제작한 '슬도'의 풍경 시리즈 역시 대상의 표면만 남겨진 채 전혀 다른 모습으로서의 인식 가능성에 집중하였다. 섬의 바위들을 찍어온 사진들은 크롭 되고 확대되었다. 바위틈에서 발견한 오브제나 여러 가지의 흔적이 화면을 가득 메움으로서 그 실체에 대한 인식을 휘발시키고 표면이 남긴 자국이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뒤를 먼저 보는 그림, 드래프팅 필름 위에 아크릴, 360×180cm, 2022」은 하드 프레임 없이 회화의 지지체인 천을 공간 가운데에 늘어뜨린 설치 형식을 제시하였다. 전시 공간의 벽면을 벗어난 설치 방식을 회화를 평면성에 한정하지 않고자 했던 주기범의 상징적 태도를 볼 수 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표면의 묘사는 순수히 표면을 보여주기도, 주변 공기를 드러내는 묘한 색감 등을 함께 표현하기도 하면서 그가 의도하는 이미지의 전략에 교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떻게 보이느냐의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그의 화면은 사실성을 의식하기도, 추상성으로 향하기도 하면서 회화의 가능성이 실험대 위해 놓여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눈앞에 그려진 바위는 현실의 바위가 아닌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간 속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의 현장성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전시 공간이라는 중성적 장소를 연극적 공간처럼 활용하였다.

주기범_뒤를 먼저 보는 그림_드래프팅 필름에 아크릴채색_360×180cm_2022
주기범_뒤를 먼저 보는 그림_드래프팅 필름에 아크릴채색_360×180cm_2022

주기범은 지금의 공간과 사물을 '발굴'한다는 표현을 한다. 즉 기존의 용도가 일반화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용도, 인식을 찾아내고자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주기범 작가에게 회화는 2차원 평면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의 회화는 발언하고 표현하고 진행되고 움직이는 복합적인 유기체와도 같은 존재이고, 자신의 의식을 현상학적으로 실천케 하는 적극적인 매개체이기도 하였다. 그 일환으로 주기범은 회화가 가지고 있는 시각성을 환경과 함께 배치하고 끼어들게 하는,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설치 개념을 강하게 투영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시간성과 현장성, 그리고 발언하는 성향을 회화를 매개로 삼아 구현코자 하였다. 이 작가의 작업은 매체의 내부로만 머물지 않으며 매체의 바깥, 즉 또 다른 환경으로 스며들게 하고자 하는 성향도 보여주었다. 회화가 줄 수 있는 경험에 집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다루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최대한 실존적 태도로 포착해야만 이를 재구성하여 또 다른 인식으로 향하게 하는 결과물로의 구현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초기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추적할 수 있다.

주기범_돌아가야 할 때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2022
주기범_살아 남은 땅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93.9cm_2022
주기범_부화되기 기다리는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22
주기범_불이 있던 자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cm_2022

주기범의 회화는 설치 작업의 일환으로 다뤄져왔다. 특히 대상에 대한 관점은 재현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환경, 시간, 존재의 맥락 등을 모두 담고자 하는 경향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전시장에서의 설치는 벽면 뿐 아니라 바닥, 공간 등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성향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특정 기간동안의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는 중첩된 활동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산산」은 정해진 건물의 화장실로부터 내다 볼 수 있는 창문을 통하여 바라본 시선을 기록한 회화 시리즈다.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시각적 경험으로 기억하는 풍경을 일정 기간 동안 화면으로 옮기는 일반적인 회화 과정을 부정한다. 즉 작가 본인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대상을 포착하는 순간에 충실히 위치해야 했고, 현장에서의 퍼포먼스로 완결되어야 하는 제한되고 필수적인 조건을 부여하였다. ('드로잉 룰' 발췌 : 2. 스케치 등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린다. 3.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일정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4. 쉬는 시간을 두거나 하지 않고 시작과 함께 완결까지 진행한다.(후략)) 이후 공공예술의 일환으로 진행하였던 2021년 「심어진 그림」 프로젝트는 특정 지역에서 채집한 식물 이미지들을 그린 캔버스 자체를 오브제화하였는데 각목을 덧대고 흙이 담긴 화분에 심는 행위를 하여 캔버스들에게 화분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성을 획득케했다. 이 또한 「산산」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재현 이미지로서 한정하지 않고 현장의 요소로서 기능케 하고자 하는 태도와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들 프로젝트가 회화를 실천적 행위를 구현하는 매개체로서 사용됨으로써, 작가가 포착하고자 한 이미지를 경험적 시선과 집요한 인식과정을 끌어내기 위하여 작동시키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 김인선

주기범_마중 연기(앞)_드래프팅 필름에 아크릴채색, 우드_230×85cm×2_2022
주기범_마중 연기(뒤)_드래프팅 필름에 아크릴채색, 우드_230×85cm×2_2022
주기범_300일간의 동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390.9cm_2022

「GRAY WHALE」은 한국에서는 귀신고래라고 불리는데, 생물학계에 처음 보고 되었을 때 한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964년 5마리를 포획한 기록을 끝으로 과도한 남획의 결과 한국 바다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 멸종한 것으로 여겨지다, 우리나라에서 1978년에 마지막으로 관찰된 후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으나 1993년 러시아 사할린 연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꾸준히 개체수가 조금씩 증가하였으나 현재 130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귀신고래는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로 알려져 있다. ● 올해 머물게 된 지역은 아직도 죽어서 떠밀려온 고래고기를 팔고, 박물관을 짓고, 도시 곳곳에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을 조형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존재했었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게 된 귀신고래는 귀신이라는 이름처럼 지역 곳곳에서 이야기와 이미지로 떠돌아다닌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모습은 무언가 기원적이면서도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한 풍경이다. ● 이번 전시에서 작업으로 진행되는 작업은 이러한 지역의 미묘한 감정이 일어나는 신기루와 같은 풍경을 찾아 탐험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존재를 수집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연을 상상하고 주관적인 서사를 개입시켜 회화로 전환해 표피적 의미를 벗겨낸 순수한 상태의 풍경과 조우하려 한다. ■ 주기범

Vol.20221107h | 주기범展 / JOOKIBEOM / 朱起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