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형태-합성된 실재

김시흔展 / KIMSIHEUN / 金施昕 / mixed media   2022_1108 ▶ 2022_1120 / 월요일 휴관

김시흔_Situated Form No.5-Oasis_단채널 4K 영상_가변크기, 00:06:16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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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흔 홈페이지_siheunkim.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본 작품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본 작품에 사용된 자료 일부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의 연구과제(NRF-2018R1A5A7025409)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예술과기술융합지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구예술발전소 DAEGU ART FACTORY 대구시 중구 달성로22길 31-12 (수창동 58-2번지) 4층 스튜디오 1 Tel. +82.(0)53.430.1287 www.daeguartfactory.kr

이게 다 헛것이라 할지라도 - 한 미디어 아티스트의 탐색적 연구 ● 작가 김시흔의 『불확정성 형태-합성된 실재』는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다. 그가 시각예술가이니만큼 개인전의 테두리 안에서 공개한 작업은 컴퓨터로 구현한 미디어아트와 환조 작품이 주를 이룬다. 단수 높은 관객이라면 작가가 펼쳐 보이고자 하는 내용이 어떤 건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게 관람객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작품은 우리들의 기대치를 조금씩 비껴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야금야금 드러낸다. 김시흔은 동시대 공학기술이 제공하는 요소를 활용하면서, 이런 식의 작업이 갖는 장르적 관습을 무난하게 따른다. 이런 말은 야박한 지적이나 비꼼이 아니다. 원래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그 학제와 관련한 대기업을 다닌 이력이 무색하게, 작가는 미디어아트의 원리를 매우 두텁게 체득했다.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합성된 실재展_대구예술발전소_2022

이번 전시는 "불확정성 형태"라는 주제 하에 환조, 프로젝트 빔과 모니터를 이용한 영상작업, VR 상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전통적인 미술에 가까운 쪽은 입체 조형물일 것이며,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쓰고 체험하는 버추얼 리얼리티는 본 전시의 시공간을 벗어날 여지를 갖춘 작업이다. 가장 중심을 이루는 작업은 실내 벽을 파사드로 삼은 영상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작품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전망을 여러 상태로 제시하는 일로부터 창작의 쾌락을 느꼈을 것이다.

김시흔_Poetic Relation No.1_VR 스크린 샷, HTC 헤드셋_00:08:00 내외_2022

이번에 공개한 작품 가운데 전시실 외부에 놓인 조소 작업은 실체를 가늠할 수 있음에도 형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흰색의 굵은 관을 꼬아놓은 것 같은 형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기체나 살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작업과 3D프린팅으로 완성한 이 조소 작품은 벽면을 가득 채운 영상에도 등장한다. 이 5분짜리 싱글 채널 비디오 시리즈는 몇 편으로 나누어 진 채 상상의 생태를 보여준다. 이 생태계에도 자연의 환경과 인공적 환경이 공존한다. 화면은 작가에게 익숙한 공간을 암시하는 실내와 바깥으로 구분되어 시점을 끊임없이 바꾼다. 이 작품에 제시되는 이미지는 그것이 합성을 통하여 완성된 서사라는 점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합성된 실재展_대구예술발전소_2022

김시흔의 영상에는 이처럼 살덩어리 같은 비정형체 이외에 백로도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새는 실제로 있는 사실로부터 끌어들인 존재이다. 한반도에 여름이면 찾아오는 철새임에도 멧새처럼 정착하는 백로 군집이 포착되었고, 이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태도가 시각예술가의 탐색적 시도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 상식 명제에 반하는 현실은 작가의 또 다른 경험을 통해 비정형체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 백로들이 객체로서 감정 이입체라면, 살덩어리 같은 피조물이야말로 작가의 주체적 대리체이다. 그것들은 덩어리임에도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형상을 지님으로써 어느 한 가지의 고정된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 이건 피부와 살로 이루어진 유사 인격체이며, 다른 모든 것들이 실물의 재현인 데 반해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도대체 이것들의 정체는 뭔가? 작가는 이렇게 애써 둘러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합성된 실재展_대구예술발전소_2022

개인적 경험의 이미지와 집단적 경험의 이미지 ● 이 이야기는 모두가 겪은 지난 몇 년 사이의 일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바로 작가가 미국 유학 시절에 겪었던 팬데믹이다. 사람들은 언택트라고 부르는 비접촉의 관계를 보상받기 위해 다른 수단을 펼치며 고립감을 떨치려했다. 가상현실은 그 자체가 생생한 사회적 사실이 되었으며, 이 와중에 인지 체계를 뺀 나머지 신체는 뒷순위로 밀리게 됨을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특히 더 이례적인 상황에 있던 작가는 이런 현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방에 가둬진 자신의 몸을 새삼스러운 대상으로 느끼곤 했다. 하이데거식으로 이 세계에 기투된 채 버려진 현존으로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상황은 인식이 육체를 타자(the others)로 또 한 번 밀어내면서 이처럼 개인사의 흔적을 남겼다. 이런 경험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이지만 문화와 예술의 흐름 안에서 그것은 예컨대 프란츠 카프카의 벌레(변신)나 월트 디즈니의 생쥐(미키 마우스)처럼 인과 관계로 묶인 동기이다.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합성된 실재展_대구예술발전소_2022

김시흔이 합성한 공간은 비록 세계와 피조물 대부분이 친숙한 것들일지라도 관객에게 결코 자연스러운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생명체들과 환경은 지금 이곳이 아닌 장소, 혹은 점점 망각되는 장소로 느껴진다. 작품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심리적 벽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 벽은 동물원의 철책과도 비슷하다. 모든 피조물의 자태는 우리가 이끌려 다가가도록 하기보다 그것들에 대한 이질감이나 낯섦을 만든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구도가 김시흔의 영상작업에는 하나의 암묵적인 규칙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합성된 실재는 디오라마처럼 제시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에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런 조건은 당혹스러운 면으로 비친다. 그 감정은 영상예술 형식에서 언캐니 밸리 같은 효과와는 또 다른 거리감이다.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 Fall, falling, and melt, melting_3D 프린트_가변크기_2022

이런 나의 감상은 그렇다고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과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의 전체적인 작업 동기는 현재 활용되는 중범위 수준의 기술을 통한 미적 영역의 확장이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생각하는 삼라만상은 몇 개의 체계로 나누어져 있다. 그것은 첫째 개인이나 동식물 개체를 이루는 유기체로서의 체계와 둘째로 인간 공동체나 생물 군집처럼 각 유기체의 집합 개념으로서 사회체계가 있다. 그리고 유기체와 사회체계가 각각 활성화한 기술 체계도 여기에 속한다. 이 세 가지 시스템은 외적으로 지구의 자연과 우주라는 거시 체계 안에 속하며, 내적으론 우리 신경과 세포로 이루어진 미시적인 인지 체계를 바탕으로 둔다. 이 다섯 가지 체계는 서로 얽혀서 상호보완적으로 관계한다. 이런 원리를 김시흔은 예술 형식으로 완성하고 있다. 예술을 향한 우리의 감각과 의식은 기술 체계의 도움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단지 콘템포러리 아트의 특징이 아니라 애니미즘적 제의와 동굴에 남은 자취로 보아 예술의 태고부터 이어져 온 사실이다.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 Converted_3D 프린트_가변크기_2022

작가는 디지털의 구현 과정에 많은 부분을 몰두해왔다. 사회체계는 본래 존재하는 거시적 환경 체계를 선택하고 모방하는 미메시스의 구성체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시스템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거나 인식 속에서만 파악되기도 한다. 따라서 김시흔의 미술은 본질에서 영겁의 덧없음(eternal ephemerality)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공허하게 떠다니는 기표 안에서 작가는 자아 개체가 가지는 여러 사회관계의 얽힘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려고 한다. 비정형체는 그 복잡계의 모호한 경계와 불안정의 문턱에 처한 상태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현실계에도 가상계에도 속하지 않은 임계지점은 창조성의 원천이다.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 Converted_3D 프린트_20×14×19cm_2022

그가 빈번히 시도해 온 결과가 하나의 서사 형식을 가진다고 본다면, 사람들이 내막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사전 정보가 공개될 법도 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작품에는 특정한 역사나 지리적 배경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친절함은 거꾸로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 여지도 있다. 지금 작품에 쓰이는 음악과 음향효과에 자막이나 해설로 된 설명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관객이 지금보다 더 분명하게 지시되는 허구를 따라 영상을 본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맥락을 만들 것이다. 이건 좋고도 나쁜 것이다. 비슷하지만 또 다른 제안도 있다. 나는 이 영상을 실사로 만들면 어떨지 상상한다. 아마도 그 산출물에 가장 근접하는 콘텐츠는 내셔널 지오그래피 부류의 다큐멘터리일 것 같다. ● 김시흔의 예술을 두고 실재를 기대하는 사람도, 환상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둘 다 아니다. 그의 작업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공간의 설계다. 이 글을 쓴 나는 작가도 언급한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집단적 경험의 이미지와 개인적 경험의 이미지 구분으로 바꾸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 합성된 공간을 통해 작가의 실재를 보려 하지만, 결국 여기서 확인하는 것은 우리와 현실계 사이에 가로 놓인 거리나 오차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을 포함한 모든 삶이 가상과 착각, 그리고 관점의 오류에 필연적으로 닿아있다고 봤다. 뚜렷한 것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환상을 갈구하는 것도 삶과 세계의 한 부분이다. 이런 점을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와 그들 관계의 얽힘부터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불확정성 형태와 합성된 실재는 매우 특별한 본보기다. ■ 윤규홍

김시흔_불확정성 형태 #010_혼합재료_100×50×60cm_2022

나는 2021년부터 『불확정성 형태』 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실재하는 현재성에 대한 탐구 주제를 가지고 창작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디지털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개인 스스로가 타자화시킨 몸의 신체성에 대한 연구와 이를 작동시키는 물리-가상 환경과의 혼종적 경계에 대한 탐구를 포함한다. 나는 타자화된 몸에 대한 사적 경험과 현상 연구를 토대로 조형물 형태의 시각 언어로 환원하고 이를 일상성과 기이함이 혼재하는 디지털 합성 공간 속에 배치한다. ● 2022년부터는 타자화된 몸(디지털 사회 시스템에 부합하기 위해 개인 스스로가 육체성과 체적성의 욕망을 절단하고 디지털 사회에서 용인된 규격들로 자신의 정체성을 끼워 넣으며 소외된 신체성, 혹은 그러함을 받아들이는 개인에 대한 무력한 감정들로 뭉뜽그려진 몸 덩어리)에 대한 사회 시스템적인, 그리고 생태학적인 관점의 심층 연구를 위해 물리적 공간의 장소성을 기반으로 디지털 합성 공간을 제작하고 있다. 2022년 5월에 대전 지역 '도심속의 백로' 라는 생태학적 이슈가 있는 장소를 접하게 되었고 해당 지역 답사 및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카이스트 연구원(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대전)으로부터 자문을 토대로 합성 공간과 VR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 본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상기 리서치 결과물들을 토대로 제작된 디지털 합성 공간속 타자화된 몸과 비인간 백로와의 관계성, 그리고 타자화된 몸 조형물의 물리-디지털 및 형태-비형태성에 대한 실험 결과물들을 포함한다. ■ 김시흔

Vol.20221108h | 김시흔展 / KIMSIHEUN / 金施昕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