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10826a | 박형근展으로 갑니다.
박형근 홈페이지_www.hyunggeunpark.com 인스타그램_@hyunggeun_park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제12회 일우사진상 출판부문 수상작가展 12th Ilwoo Photo Award
후원 / 한진그룹 일우재단
관람시간 / 10:00am~06:30pm / 토요일_01:00pm~06:30pm 일요일_01:30pm~06:30pm / 월,공휴일 휴관 전시 종료 30분 전 입장 마감
일우스페이스 ILWOO SPACE 서울 중구 서소문로 117 대한항공빌딩 1층 Tel. +82.(0)2.753.6502 www.ilwoo.org @ilwoospace_
박형근은 1990년대 후반부터 지각성, 영성, 근대성 등의 주제를 탐색하며 「두번째 천국, 1999-2022」, 「텐슬리스, 2004-2022」, 「금단의 숲, 2009-2018」, 「보이지 않는 강, 2009-2013」, 「테트라포드, 2009-2016」, 「두만강프로젝트, 2014-2017」, 「차가운 꿈2005-2021」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근대 이후 형성된 공간과 물질의 배치 그리고 이는 지각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으며, 지질, 환경, 지역서사에 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사진작업을 진행중이다. 최근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사건을 은폐하고 있는 장소와 구조물을 촬영하고 있다. 이 사진들의 표면에 나타나는 강렬한 컬러, 암울한 톤, 빛의 잔상은 랜드스케이프의 형식으로 서술하는 비극적 역사에 대한 은유들이다. 또한 사진의 기록성에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시켜 정치, 사회, 역사적 상황을 재맥락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00 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한 「텐슬리스」연작에서 주관적 지각방식과 내러티브의 구축을 통해 재현매체로써의 사진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보여왔다. 현실과 비현실, 존재와 부재, 타자와 사건성에 대한 관심을 연극적 구성으로 구현하려는 그의 작업방식은 사건의 주체, 인과관계, 의미작동이 약화되는 가상의 무대를 조성함으로써 감상자들을 상상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박형근 개인전『surface, surface, surface』는 2005년부터 최근까지 17여년 동안 제주도에서 진행한 관찰과 기록의 결과물을 선보인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제주도가 가진 천혜의 자연경관과 원시성의 이면, 역사의 그늘로 진입한다. 그는 유년기에 친구들과 뛰어놀던 오름, 바다, 계곡, 동굴을 다시 찾아 카메라로 기록하며 깨닫게 된 진실앞에, 낭만적인 제주풍경은 허구라고 단언한다. 사진적 사실성이 강화된 이미지들에는 오래된 사건의 흔적과 상처 그리고 기이한 형태의 구조물들이 비현실적 긴장감을 유지한 채 혼재한다. 그의 시선앞에 놓여진 제주의 자연과 사물들은 특정 계획과 실행을 위한 필요 조건이며, 위장과 은폐에 익숙하게 진화 발전한 것들이다. 또한 근거없이 배치되었거나 급조되어진 대상들이다. 즉, 과거의 제주는 이데올로기적 이상이 실현되기 위한 무대이자 배경이었다면, 지금의 제주는 환상을 부추기는 조작과 불확실성의 융합 공간인 것이다.
「제주도, 2005~2022」연작에 등장하는 제주는 시간의 연대기적 질서에 따라 정렬된 연속적인 시대들의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층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복합적인 시간성을 띤다. 제주의 표면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두터운 층위를 가진다. 박형근의 제주풍경은 표면의 변화를 촉발시킨 시대적, 역사적 인과율을 무화시켜나가는 비균질적이고 모순적인 층위들의 결합체이다. 그에게 제주는 표면과 이면, 이미지와 잠재성과 같은 이항대립구조에 기대어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중간들, 그 중간의 중간을 가진다. 특히 표면의 위 아래에 층층이 달라 붙어 있는 것들은 이데올로기, 자본, 욕망에 의해 가속화된 지점이며, 더불어서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들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암시한다. 이를 통해 단일하고 종합적인 역사의 풍경에서 비껴나간, 거론되지 못했던 역사의 또 다른 주체들을 소환하여 되살린다. 즉, 제주의 표면과 그 이면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사이에 존재했을 무수한 다른 시간을 바라보게 한다. 동굴, 벙커, 숲은 다른 시간성의 고찰을 매개하는 대상들이며 마치 낯선 꿈을 일깨우는 몽타주처럼 이질적인 이행을 가능케 한다.
영국유학시기를 제외한 창작기의 대부분을 제주와 더불어서 그리고 제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의 사진들에는 그 간 제주도와 주고 받았던 유무형의 대화, 갈등, 이해의 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제주도의 관광산업, 일제강점기와 4.3사건, 개발과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은 작가 특유의 비언어적이고 감성적인 어법으로 작품에 스며들어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두번째 천국, 1999-2022」, 「텐슬리스, 2004-2022」, 「금단의 숲, 2009-2018」의 주 로케이션도 제주도이다. 즉, 고향 제주도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 할 수 있는 요체이자 주제였던 셈이다. 이번 제 12회 일우사진상 출판부문 수상전으로 마련되는 박형근 개인전『surface, surface, surface』는 근대화 이후에 작동하기 시작한 이데올로기, 자본, 욕망의 기제들을 가시적인 형태로 노출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허상의 실재화를 기획, 실현시켜 나가는 유토피아적 이상의 실행 공간인 제주전역에 대한 사진 기록이며 탐사작업이다. 또한 랜드스케이프의 구축과 변형 그리고 오작동이 남긴 상처와 흔적을 목도하는 동시에 현실 속 가상성의 적용이 가속화하는 지대를 탐색해 나가는 프로젝트이다. 박형근 개인전『surface, surface, surface』는 사진을 매개로 역사의 전진과 퇴행, 그 유보된 판단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제주도, 2005-2022」 박형근 ● "과학은 사물들을 조작하며, 사물들에 거하기를 포기한다. 과학에는 과학에 내재하는 모델이 주어지며, 모델을 이루는 지수와 함수에는 그것이 허용하는 만큼의 변형이 가해진다. 과학과 현실세계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눈과 마음, 모리스 메를로 퐁티, p25, 1964)
어릴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동네 앞 오름에는 동굴이 곳 곳에 뜷려 있었다. 그 당시 TV에서 절찬리 방영되었던 미래소년이야기에 크게 고무된 아이들의 모험심을 펼쳐내기에, 정체불명의 동굴은 안성마춤이었다. 날마다 아이들은 주변의 시선을 피해 오름 중턱의 동굴 앞에 모여들었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각진 모양의 굴은 제법 넓은 규모로, 중간쯤에는 하늘방향으로 작은 구멍도 여럿 뚫려 있었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은 이 구멍을 이용해 위 아래로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다른 공간이나 차원으로 연결되는 포털같았는데, 아이들은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갑자기 솟아났다. 어두운 동굴은 끝 모를 공포와 야릇한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하였다. 아이들은 점 점 더 대담하게 굴 내부로 향했다. 심지어 몇 몇은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더 깊은 곳으로 진격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동굴 안쪽 바닥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던 녹슨 물건이며 동물 뼈 같은 것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마을 어른들이 직접 나서서 동굴탐험을 중단시키기 전까지 아이들의 모험은 계속되었다.
제주도는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요충지이며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6만명이 주둔하여 미군과의 결전을 대비하던 전략적 기지였다. 일본군은 제주의 전 지역을 요새화하였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동굴진지, 해안요새, 군사기지, 비행장 등이 당시에 건설된 것들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어릴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오름과 해안가의 동굴들도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뚫어 놓은 동굴진지 중 하나였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오름, 바닷가, 계곡은 세월의 무게에 무너지고 개발의 여파로 하나 둘 파괴되었다. 사람들도 더 이상 위험하고 비밀스런 곳을 찾아 떠나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다. 간혹 과거의 역사와 사건에 호기심을 품은 이들에 의해 동굴안팎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 지곤 했는데, 근현대의 유물이었다. 동쪽 오름의 왕으로 불리는 다랑쉬오름 근처 작은 굴에서도, 애월 빌레못 굴과 동광리 큰넓궤에서 그리고 정방폭포, 섯알오름, 정뜨르비행장을 비롯한 제주의 하늘, 바다, 땅에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유물과 유해들이 발굴되었다. 이 엄청난 발견에도 사람들은 침묵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오래전 할머니께서 손자의 입에서 4.3이라는 말 만나와도 크게 놀라시며 내 입을 틀어 막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시던 것처럼,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거대한 공포는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도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1945년 해방 직후 혼란한 정치상황은 제주도에 통한의 아픔과 고통을 남겼는데 바로 4.3사건이다. 미군정기이던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한 민간 대량학살이 자행됐다. 제주 4.3사건 기간동안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3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정부가 주도한 강경진압작전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의 95%가 소각되어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고향 제주도를 사진으로 촬영하는 일은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제주도를 소재로 촬영한 첫 결과물도 사진을 시작한지 한 참후에서야 나왔는데, 「두번 째 천국(The Second Paradise, 1999-2002)」 이다. 제주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관광산업과 여가문화를 컬러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런데 이 작업의 리서치 과정중에 제주도의 유명관광지들이 4.3사건 당시 집단학살의 현장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들이 개발과 관광산업을 위한 무대로 각색되어가는 현실을 마주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이러한 상황은 제주의 내부로 들어갈 수록 더욱 심해졌는데, 2011년 발표작 「금단의 숲(Forbidden forest)」의 주 배경인 곶자왈도 4.3사건의 아픔이 깊이 각인된 곳이었다. 십수년 동안 제주를 떠돌며 사진촬영을 진행 할 수록 나의 시선은 이 땅에 서려있는 어두운 역사의 굴레로 부터 한치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제주의 밤과 낮, 하늘과 바다, 사람과 자연이 사진으로 남겨졌다. 그동안 정치, 사회적 목적으로 그리고 자본과 욕망의 작동에 의해 당연히 있어야 할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생겨났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곳에 집과 건축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건설되었다. 역사적, 사회적 기억과 정보를 축적한 물질적 토대로써 제주의 표면은 이제 허구적 계획과 실행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표면의 변화는 가시적인 동시에 비가시적이다. 명확한 보여짐은 오히려 작은 오차에도 불확실성과 허구성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람들이 제주에 자행한 상처와 흔적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 점 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비현실의 공간으로 그리고 새로운 시지각모델과의 혼합에 이르기 까지 현실과 허구, 표면과 이면, 자연와 인공은 서로 얽히고 교차하며 추상화됐다. 풍경은, 이제 불확실하다. 4.3사건 때 전소되어버린 다랑쉬 마을 터에 지어진 정체불명의 구조물과 용눈이 오름 뒤에 들어선 거대한 풍력발전소 그리고 제 2공항건립예정지까지, 현실은 근원과 역사를 지우고 가상성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멀어진 어린 동굴탐험대도 지하로, 그늘로, 어둠으로 숨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야자수와 선인장은, 환상의 섬 제주의 이국적 정취를 한껏 고취시킨다. 「제주도, 2005-2022」연작은 제주도라는 불확실한 이미지 너머에 존재할 지 모를 어떤 진실에 다가가고 싶다는 갈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설명할 수 조차 없는 숙명적, 불가역적 이끌림에 의해서 혹은 잠재된 세계와의 낯선 조우, 원초적 감각, 무의식적인 세계와의 연결점을 찾아 가려는 여정이었다. 실재와 환상이 중첩된 시공간 제주에서 공상은 점차 현실이 되며, 사진은 뿌옇게 흐려진다. (2022) ■ 박형근
Vol.20221109d | 박형근展 / PARKHYUNGGEUN / 朴炯根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