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자 회고전-축제

전준자展 / JUNJOONJA / 全俊子 / painting   2022_1111 ▶ 2022_1130

전준자_꽃_종이에 유채_39.3×27.2cm_1963

초대일시 / 2022_1111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점심시간_12:00pm~01:00pm 일요일은 전화예약관람만 가능

부산 미광화랑 MIKWANG GALLERY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2(민락동 701-3번지) Tel. +82.(0)51.758.2247 www.mkart.net

화합과 의지: 전준자 회고전에 부쳐. ● 화가 전준자(全俊子, 1944-). 지금까지 26회의 개인전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창작미술협회전, 구상전 등 다양한 단체전을 통해 작품 발표를 이어왔고, 부산대학교의 교수로도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쓴 작가는 이제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원로 미술인으로 우뚝 섰다. 마침 화단 데뷔 60주년을 앞둔 올해 미광화랑의 초대로 마련한 개인전을 통하여 작가는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에 걸친 자신의 화업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을 오랜만에 골라 펼쳐 보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전준자의 작품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이제 작가가 추구한 예술 세계를 간략하게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전준자_좌상b_캔버스에 유채_159.7×128.6cm_1964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31.1×16.1cm_1982
전준자_얼굴_종이에 혼합재료_41×31.8cm_1984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24.2×33.3cm_1986

전준자가 화가를 지망한 건 부평동에 자리했던 송혜수(宋惠秀, 1913-2005)의 미술연구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홍익대학교 졸업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보고 마침 그 장소가 미술연구소라는 것을 알고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준자와의 1차 인터뷰. 2021년 10월 9일.) 이후 196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해 지도교수 이봉상(李鳳商, 1916-1970) 등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사 과정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보존처리를 거쳐 58년 만에 일반 공개되는 「좌상 B」는 1964년 제13회 국전에 처녀 출품해 입선한 실질적인 데뷔작이다. 실내를 배경으로 앉은 모델은 당시 국전에서 흔히 다루어진 소재였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부터 사실적인 묘사를 완강히 거부한 채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들인 과격한 붓질로 저돌적인 자의식을 드러냈다.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27.3×22cm_1988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112×145.5cm_1990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91×72.7cm_1993

하지만 전쟁 직후의 빈곤했던 사회상을 투영한 듯 어두운 색채로 연출된 암울한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준자의 작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1960년대 후반부터는 자연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고향인 부산의 아름다운 풍토에서 영감을 얻은 회화 작업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점차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대담한 행위는 다채로운 색채와 결합하면서 풍부한 서정성을 보여주는 특유의 화풍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1970년 제15회 창작미술협회전에 출품한 「내일」(이후 「작품 18」로 개칭)과 제16회 창작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시의 조형」(이후 「작품 1」로 개칭) 등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자연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래의 모티브를 암시하는 기호 정도로만 활용될 뿐 주된 표현은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생명력을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65×130.3cm_2003
전준자_음악축제_캔버스에 유채_130.3×194cm_2008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73×53cm_2022

이후 1978년 미국 방문을 계기로 전준자의 작품 세계는 다시 전환기를 맞이한다. 당시 작가는 인디언들이 추는 춤과 더불어 뉴욕 맨하탄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물결치듯 흘러가는 움직임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고, 이를 「축제」 연작으로 구체화하였다. 하지만 작가는 축제를 단순히 기쁨으로 가득 찬 현장으로 생각하지만은 않았는데, "저는 그게 즐거워서 그린 건 아니에요. 그 많은 군상 속에서 인디언의 그 모습이 아련하고 가련하면서도 굉장히 우뚝 솟더라고요. (전준자와의 2차 인터뷰. 2022년 5월 27일.)"라는 발언은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초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의 「축제」 연작은 대체로 푸른색 위주의 제한된 색채를 사용하여 인간의 비애를 암시하였으나, 수많은 인간의 실루엣을 마치 합쳐진 존재처럼 이어나가듯 재구성해 축제가 인간의 유대를 되살리는 현장임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전준자의 작품 세계에서 축제는 곧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공존하는 현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전준자_축제_캔버스에 유채_89.4×130.3cm_2022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 접어들면 화면 위에 풍부한 색채가 돌아옴과 더불어 자유분방하게 그어나간 선묘의 난무(亂舞)가 더해지며 축제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이즈음부터 전준자는 축제를 단순한 공동체의 행사가 아닌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힘을 모으는 한 마당, 즉 화합의 현장으로서 구현하였다. 거기에서는 휴머니즘적 시선으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과정과 목표에 영성을 투사한 믿음이 발산된다. ■ 안태연

Vol.20221111b | 전준자展 / JUNJOONJA / 全俊子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