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평화 A Kind of Peace

이수진展 / LEESUJIN / 李粹珍 / painting   2022_1111 ▶ 2022_1223 / 일,월요일 휴관

이수진_제목이 없는 책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1009c | 이수진展으로 갑니다.

이수진 홈페이지_2sujin.myportfolio.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오에이오에이갤러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오에이오에이 갤러리 OAOA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로63길 32-11 1층 Tel. +82.(0)2.6207.3211 oaoagallery.com

오에이오에이 oaoa ● 오에이오에이(oaoa)는 ordinary art original art의 첫 글자를 딴 이름으로, 감상자의 평범하고 보통인ordinary 일상과, 작품 안에 내재된 작가 개인의 경험과 예술적 정신original이 자연스러운 공감의 지점을 만드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작가의 내적세계가 직관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보는 이가 자신의 내면을 대입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에 주목하여, 일상에 스며드는 예술적 영향력의 가치를 전하고, 작품과 개인사이의 친밀하고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감상의 여정을 안내하고자 한다. 

이수진_예민한 사람_캔버스에 유채_19×24.2cm_2022
이수진_흰 케이크_캔버스에 유채_24.2×33.4cm_2022

다분히 평범하고 익숙한 이미지들이 보인다. 내 삶과 주변에 있을 법한 일들과 사물을 비롯해 어디선가 보았음직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있을 법한 것들과 보았음직한 장면들이라고 하여 무심하게 넘어갈 만하지가 않다. 제목도 내용도 없는 두꺼운 책에 심취한 사람이나, 무심하게 놓여진 가위가 나를 뾰족하게 보는 듯한 느낌은 쉬이 지나칠 수 없지 않은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도 있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건들로도 가득한 것이 우리 삶이고 일상이다.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은 가끔 기대나 두근거리는 기분을 갖게도 하지만 대개는 불안감, 걱정, 막연함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예고없이 찾아오는 어떤 순간들 때문에 종종 좌절이나 혼란, 공포, 회피의 감정에 휩쓸리곤 한다.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근거한 부정적 심리상태(통칭 불안)를 다루거나 해제하는 방법은 제각각 이겠지만, 이수진은 회화작품을 통해 자신이 가진 불안의 이미지를 묘사하고 이름 붙이며, 이러한 감정을 '알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수진_기억을 지우는 불_캔버스에 유채_24.2×33.4cm_2022
이수진_멈춰 선 차_캔버스에 유채_37.9×45.5cm_2022

이수진은 앞선 두 개인전 『불안에 맞서는 기술』(2020, 더 그레잇 컬렉션)과 『고스트 이미지』(2021, 드로잉룸)에서 영화에서 발견한 이미지들을 소재로 '불안'이라는 주제를 꾸준히 표현해왔다. 작가는 개인적 이유에서 시작되고 팬데믹의 시간으로 강화된,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현실에서의 불안과 두려움을, 영화(특히 공포영화) 속에서 유사한 감정을 일으키는 이미지들을 수집하며 다루어 왔다. 그리고 이를 특유의 작업방식 (작은 화면, 절제되고 평면적인 표현, 건조한 톤, 단순화 혹은 강박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기 등)을 통해 객관화하고, 부정적 심리상태에서 한 걸음 물러나와 그것을 대면함으로써 불안을 마주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어느 누구나 갖고 살아가는 다양한 불안의 감정이 익숙한 듯 낯설거나, 평범한 듯 어딘가 달라 보이는 이미지들을 통해 소환되지만, 이수진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감정이 증폭되기보다 떠오른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수진_갑작스러운 비_캔버스에 유채_37.9×45.5cm_2022
이수진_전해지지 않는 불_캔버스에 유채_25.8×17.9cm_2022
이수진_가족_캔버스에 유채_22×27.3cm_2022
이수진_베어먹은 토스트_캔버스에 유채_22×27.3cm_2022

이번 전시 『일종의 평화』는 불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난 작업들과 흐름을 함께하지만, 영화나 미디어에서 발견한 이미지들을 조금씩 벗어나 작가의 내면을 거쳐 걸러진 이미지들에 집중하면서 좀 더 평범한 일상의 모습과 가까워져 있다. 적극적으로 불안을 잠재우는 '방식' 혹은 '과정'에 중심을 두었던 것에서 나아가, 부정적 감정의 완화를 통해 공존하는 법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안을 전면에 내세웠던 지난 전시들의 제목으로부터, 일상의 평화와 그 아래 도사린 사소한 불안의 경계를 드러내는 이번 전시 제목 "일종의 평화"로의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영화적 모티브를 강하게 연상시키던 지난 작업에서의 날카로움은 한결 부드러워졌으나 평안함 속 긴장감과 같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일게하는 힘은 더욱 커지고, 모호한 기시감은 옅어진 반면 일상과 더욱 밀착한 소재들은 보는 이들이 오히려 그림에서 불안의 심상을 유머러스하게 읽어낼 수 있게 한다.  

이수진_흰 셔츠_캔버스에 유채_31.8×40.9cm_2022
이수진_The End(눈)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한가로이 소파에 누워 제목을 모르는 어떤 책을 읽는 인물, 언뜻 위험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일종의 의식처럼 부정적 경험이나 트라우마를 태워 없애는 듯한 불의 이미지, 무언가를 목격했을 것만 같은 흰 셔츠 위 선글라스, 화면에 가득 한 기다란 날의 가위. 보편적인 일상의 이미지 아래 강박적인 듯 무심하게 깔려 있는 불안에 대한 작가의 담담한 시선은 각 개인의 삶에서 서로 다르게 연상되는 사소한 불안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자연스러운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불안이 없어질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지만 불안 속에서 나에게 잠시나마 안정, 평화를 주는 것들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이 나에게 '일종의 평화'라고 느낀다."는 작가의 말은 불안과 안정, 확신과 불확신, 평온과 긴장, 혼란과 질서 사이를 하루하루 시소 타듯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

Vol.20221111e | 이수진展 / LEESUJIN / 李粹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