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 그 나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습니다 HERB – The country enjoyed a long period of peace

오윤석展 / OHYOUNSEOK / 吳玧錫 / painting   2022_1111 ▶ 2022_1127 / 월,화,공휴일 휴관

오윤석_허브-평화를 부탁해 21_리넨에 아크릴채색, 과슈_80×80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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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석 홈페이지_oys0405art.modoo.at                       인스타그램_@ohyounseok1971, @ohdo1971

초대일시 / 2022_111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 (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dorossysalon

허브 herb시리즈는 오윤석이 2014년 먹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2016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치유된 자들의 공간 Space of the Healed 설치 작업을 통해 확장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오고 있는 작업이다. 오윤석의 허브herb는 "인간의 원(怨)과 한(恨)의 실체인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바이오-디지털 코드' 로 꽃과 약초, 그리고 텍스트를 통해 현대인에게 기원하며 바치는 헌화(獻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허브 시리즈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공간인 현충원 묘역에 꽃혀 있는 조화들을 보며 시작되었는데, 화면(캔버스)에 약초와 꽃을 그리고, 경전이나 현인들의 문장, 혹은 작가 자신의 글 등 마음을 울리는 글들을 빼곡하게 적어 넣은 작업이다. 때로는 약초(이미지)와 글(텍스트)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고 (허브 – 붉은 마음 herb – red heart), 약초와 글들이 빼곡하게 겹치고 쌓여 그 형태와 내용을 알아보거나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마무리 되기도 하며(감춰진 기억 – 허브 Hidden Memories - herb). 때로는 완성된 화면(캔버스)에 물리적 충격을 가하여 훼손된(찢어진) 상태로 보여지기도 한다.

오윤석_허브-평화를 부탁해 25_리넨에 아크릴채색, 과슈_80×80cm_2022

이 모든 과정은 현대인의 상처와 고통의 '치유'를 염원하며 이루어지며, 이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이 치유된다. 화면이 가득 차도록 빼곡하게 글을 옮겨 쓰는 과정은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인내를 요하는 수행의 과정이다. 더욱이 그가 옮겨 적는 것은 주로 경전(經典)이다. 경전의 필사, 필경(筆耕)은 글을 읽으면서 쓰는 것이므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글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는 독해가 수반되며, 독해에는 또한 자연스럽게 사유가 따른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필경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 독해 없이 그저 옮겨 적는 행위에 집중하게 된다. 의식적인 필경과 무의식적인 필경, 이에 동반되는 의식적인 사유와 무의식적인 사유가 반복되고 교차하고 때로는 합쳐지면서 작가가 가지고 있던 상처와 고통, 생각하고 기억하던 것들은 겹쳐 적히면서 사라지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형태와 함께 화면 뒤 편으로 감춰진다. 허브 herb작업이 작가가 오래 전부터 집중하며 다양한 형식의 시리즈로 새로 재조합하여 발표하고 있는 감춰진 기억 Hidden Memories 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오윤석_감춰진 기억-허브 53_리넨에 과슈_45.5×38cm_2022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오윤석의 신작 「허브 – 평화를 부탁해 herb – peace pleas」시리즈는 작가가 최근 10여년 간 집중해 온 두 가지 주요 테마인 감춰진 기억 Hidden Memories과 허브herb에 십자 (十字 cross)라는 모티프를 새롭게 적용하여 보다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평화에의 염원을 담아 표현하고 있다. 다양한 메세지와 감정을 끊임없이 분해하고 재조립하여 감추고 숨기고 꼬아 놓아 찾기 어려운 숨겨진 코드로 가득했던, 장엄한 엄숙미와 숭고미가 크게 다가오고 때로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기존의 작업들과는 달리 이번 작업은 상대적으로 쉽게 다가온다. 말레비치 Malevich의 검은 십자가 Black Cross와 비슷한 화면 구성의 이번 시리즈는 언뜻 보기에 말레비치의 절대 추상 못지 않게 간결하다. 화면 중앙에 진중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십자 cross 모양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십자가나 적십자를 생각나게 한다. 특별히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경험과 학습에 의해 자연스럽게 염원이나 평화를 상징하는 모티프로 이해하면서 경건하고 평온해진다. 게다가 듣자하니, 제목도 그렇다. Peace please 라고, 대놓고 평화를 구한다. 그런데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화면 중앙의 십자가는 그냥 그려서 칠해 넣은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혹은 쓰여져 있는 캔버스를 길고 가늘게 잘라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 십자가 형태를 만들어 바탕이 되는 캔버스에 붙인 것(콜라주)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잘라서 엮어진 형태로 콜라주한 캔버스는 텍스트로 가득한 감춰진 기억 – 허브 Hidden Memories - herb이다. 4호, 6호, 혹은 8호의 캔버스에 완성한 작품을 세로로 길게 잘라 오려내어 해체하고 이를 직조하듯 엮어 다시 재조합하여 십자 모티프를 만들고, 바탕과 테두리를 두 가지 색으로 조합하여 만들어 둔 정방형 40호 캔버스의 중앙에 붙여 넣은 이 독특한 형태의 회화는, 반복적 필경의 과정은 물론 그에 못지 않게 반복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캔버스 오리기와 직조라는 또 하나의 자기 수행적 과정을 거치며 작가를 치유했다.

오윤석_감춰진 기억-허브 60_리넨에 과슈_45.5×38cm_2022

허브 – 평화를 부탁해 herb – peace pleas 는 작업 과정이 이끌어내는 작가가 경험하는 일차적인 치유와 더불어 나아가 작가가 담아 놓은 화합과 평화에의 코드를 통한 치유가 이루어지게 한다. 먼저 십자 cross 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상징하고, 나아가 이 동서남북이 서로 단정하게 엮이며 동양과 서양의 화합, 남한과 북한의 평화를 상징하며 평화를 기원한다. 바탕이 되는 화면의 두 가지 색은 우리나라 전통 베갯잇에서 나타나는 색조합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색조합, 즉 동양의 색 조합과 서양의 기독교 문화의 상징인 십자가가 한 화면에서 어우러지며 또 다른 형태의 동서양의 화합이 완성된다. 현대 사회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다소 '촌스러운' 전통적인 색의 조합이 의외로 감각적이고 트렌디하게 느껴지며 묘한 매력을 풍기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감성을 탁월하게 조합해 낸 오윤석 작가의 감각과 재능이 만들어 낸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십자를 형성하는 캔버스 감춰진 기억 – 허브 Hidden Memories - herb에 쓰여있는 텍스트는 성경과 불경, 코란 등 여러 종교의 경전과 현인들 남긴 경구, 작가의 글을 혼합한 것으로, 텍스트 작업 내에서도 일종의 화합이 이루어진다. 멀리서 보면 단순하고 간결했던 작품 허브 – 평화를 부탁해 herb – peace pleas는 작가가 자신의 치유와 세상 모든 이들의 치유와 평화를 염원하며 드러내놓고 혹은 감추어 심어 놓은 다양한 화합의 코드가 담겨있어 그 어떤 작업보다 깊이 있고, 장엄하며, 숭고하다. 그렇게 작가가 심어 놓은 평안과 평화에의 염원은, 작품의 내용을 알고 있지 않아도, 그저 시각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져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고 치유에 이르게 한다. 음악에 빠져들면서 스트레스를 잊었던 예술적 치유의 경험은, 그림을 보면서도 역시 가능한 것이었다.

오윤석-감춰진 기억-2201_패널에 캔버스, 아크릴채색, 종이, 먹, 연필, 오일 파스텔_120×120cm_2022

이번 오윤석 개인전 『허브 – 그 나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습니다 HERB – The country enjoyed a long period of peace』에서는 허브 – 평화를 부탁해 herb – peace please와 감춰진 기억 – 허브 Hidden Memories - herb외에도 작가가 꾸준히 실험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감춰진 기억 Hidden Memories 시리즈의 신작도 한 점 소개된다. 많은 감정과 감수성을 절제하고 정제하여 그러나 분명한 메세지가 드러나게 아이콘화하여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허브 – 평화를 부탁해 herb – peace please 와는 달리 여러 층이 쌓이고 겹쳐서 그 어디에도 없는 깊은 검은색 위에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드로잉과 오리고 꼬기 기법으로 작업하여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신작 감춰진 기억 Hidden Memories 2201은 그 어떤 감춰진 기억 시리즈보다 더 감각적이고 현대적이며 차분하면서 강렬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작가가 분출할 수 있었던 다양한 감정과 사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그 배출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며, 무엇보다도 먹이 쌓여 만들어 낸 매력적인 먹색 위에 연필의 흑연 색과 몇 가지 오일 파스텔로 무심히 그어 낸 선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이미지가 우리의 눈길을 한없이 오랫동안 사로 잡으며 빠져들게 만들어 또 하나의 예술적 치유에 이르게 한다. ■ 임은신

Vol.20221112h | 오윤석展 / OHYOUNSEOK / 吳玧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