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

김설아展 / KIMSEOLA / 金雪雅 / painting   2022_1116 ▶ 2023_0312 / 월요일,1월 22일 휴관

김설아_아홉 개의 검은 구멍, 무너진 음성 Nine Dark Openings, Broken Sound_종이에 먹_150×150cm_20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Commissioned by Asia Cultur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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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2_1118_금요일_04:00pm

주최 / 광주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1월 22일 휴관 ▶ 온라인 사전예약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 Ha Jung-woong Museum of Art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1165 Tel. +82.(0)62.613.5390 artmuse.gwangju.go.kr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는 기록되지 못한 기억과 존재들의 흔적을 복원하는 작가 김설아의 작품 세계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작가의 성장 발판으로 삼고자 마련되었다. 김설아는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들을 자신의 기억에서 씨실과 날실로 직조하듯 복원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거대한 힘에 밀려 부유하는 작은 존재들이 사라진 공간에서의 기억을 소환하는 김설아의 경험적 기반을 추적해 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 '예술가의 시선은 어느 곳에 머물러야 하며 그 무엇을 보게 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작가 김설아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김설아에게 회화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한 결과이다. 그 과정은 개인과 연관된 특정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불러와 그 기억을 어떠한 대상에 사상(寫像, mapping)하여 은유하고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를 화폭에 소환하여 복원하는 것이다. ● 레이코프와 존슨의 체험주의에서 '경험'은 우리를 인간(우리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상호작용 안에서 결합되는 신체적·사회적·언어적 존재)으로 만들어 주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작가의 작품 활동은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작가의 신체적/물리적 층위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물리적 층위에 의해 강력하게 제약된다. 우리는 흔히 예술 활동을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몸의 활동에서 비롯된 확장적 구조물이며, 신체적 경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속선상에 있다. 우리의 사고와 언어의 뿌리가 몸이며 경험의 발생적 측면에서 몸이 발생적 우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 일상적 활동에서 우리의 의식은 외부 세계에 지향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그 배경이 되는 몸은 우리의 의식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잊혀진 몸은 비일상적인 상황이 되어 장애를 겪게 될 때 비로소 의식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김설아가 주목하는 몸에 대한 기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성되어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을 제약하게 된다. 작가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대상을 바라보더라도 작가의 고향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밀려난 경험과 기억은 작가의 시선을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작은 존재들에 주목하게 한다. ●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는 코란의 「엄폐의 장」과 「두드리는 소리」의 장에 있는 구절에서 차용해 왔다. "숱한 산들이 흩어져 버릴 때, 숱한 영혼이 서로 껴맞춰질 때, 사람들이 흩어진 불나방처럼 되고, 산들이 쥐어뜯긴 양털처럼 되는 날의 일" ● 이번 전시에서는 '김설아의 시선이 어느 곳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가 두 발을 딛고 서서 바라보는 방향과 대상이 어디인가를 생각했다. 작가가 발 딛은 숱한 산은 오랜 시간 지층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다. 김설아에게 산은 역사와 기억이 쌓여 형성된 단단하고 온전한 과거의 시간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쌓인 곳에서 작가가 바라본 것은 무언가 무너지고 흩어지는 자리였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과 대상을 선택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의 과정은 우리의 과거 경험과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 쌓여 있다가 흩어지는 게 단지 절망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쌓여있던 것 역시 본래의 자리에서 온 것이고, 흩어진다는 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는 흩어질 때가 되어 스스로 몸을 바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존재들을 오랫동안 응시한 작가가 왜 그 자리에서 머물며 허물어지는 자리를 응시하게 된 이유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전시는 작가가 머물렀던 장소와 시기에 따라 '아홉 개의 검은 구멍', '사자의 은유', '진동하는 고요', '눈물, 그 건조한 풍경', '기억의 팔림프세스트' 등 5부로 구성된다. 작가의 최근 작품부터 시작해 인도 유학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 작품의 신체적/물리적 경험의 기반이 되는 고향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작가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확장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아홉 개의 검은 구멍'에서는 기능을 상실한 신체와 작은 존재가 연결되고, '사자의 은유'에서는 물의 도시에 퍼져있는 곰팡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한다. '진동하는 고요'에서는 작가의 예민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눈물, 그 건조한 풍경'에서는 사막 도시에 해마다 찾아오는 모래를 통해 밀려난 존재들이 다시 돌아와 목격되기를 바라고, '기억의 팔림프세스트'에서는 작가의 시선이 왜 미시적인 존재들에 가닿게 됐는지 그 시작점에 도착하게 된다. ● 이번 청년작가초대전 『김설아-숱한 산들이 흩어질 때』를 통해 잊혀진 몸의 기억을 켜켜이 복원하는 작가 김설아의 작품 세계가 널리 알려져 광주를 대표하는 작가의 하나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작품에 나타나는 벌레의 몸 같은 형상이나, 촉수와 털이 돋아난 형상 등 기괴하고 강렬한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물리적/신체적 경험의 기반을 마주하게 되면, 그 이미지 너머에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왜 머물렀는지 그 안에 내포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작가의 개인적인 과거이자 사적인 역사의 통로를 거치며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예견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설아_아홉 개의 검은 구멍, 소문 Nine Dark Openings, Rumor_ 종이에 먹_150×150cm_20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Commissioned by Asia Culture Center
김설아_아홉 개의 검은 구멍, 징후 Nine Dark Openings, Symptom_종이에 먹_150×150cm_202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Commissioned by Asia Culture Center
김설아_아홉 개의 검은 구멍, 숨소리 Nine Dark Openings, The Sound of Breathing_종이에 먹_230×600cm_202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Commissioned by Asia Culture Center

1. 아홉 개의 검은 구멍 ● '아홉 개의 검은 구멍'에서는 「무너진 음성」, 「소문」, 「징후」, 「숨소리」, 「흉흉」 등의 연작을 선보인다. 불교와 힌두교의 경전에서는 인간의 몸을 '아홉 개의 문이 있는 도시'와 '아홉 개의 구멍이 난 거대한 상처'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인간의 몸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주는 아홉 개의 구멍(두 눈, 두 귀, 콧구멍, 입, 항문, 요도)을 지녔으며, 이를 통해 불완전한 것들이 내밀하게 오가는 통로로 여겼다. ● 작가의 고향에서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람들이 고통 받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아픈 몸과 상처를 내보여야 했다. 작가의 이러한 신체적/물리적 경험과 기억은 다른 지역에서 만난 존재들의 구멍과 상처에서 다시 떠올랐다. 어딘가 바스러지고 비틀린 채로 떠밀려난 존재들에 인간의 상처와 구멍을 연결하여,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와 고통의 흔적을 은유적 사상(mapping)을 통해 정신적/추상적 층위의 경험으로 확장됐다. ● 상처입고 병든 인간의 몸과 바스러진 작은 존재들의 형상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물리적 기반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연약하고 상처가 난 구멍을 통해 다른 몸과 넘나들 수 있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는 몸의 '구멍'이 다른 존재의 고통을 인식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김설아_물의 희롱 The Tease of Water_비단에 먹_300×75cm_2017
김설아_사자의 은유 Metaphor, The Messenger of Death_ 비단에 먹_200×440cm_2019
김설아_우리는 먼지 속을 기어갔다 We crwaled through the dust_비단에 먹_130×115cm_2022

2. 사자의 은유 ● '사자의 은유'에서는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했던 존재들에게 드리워진 묵시록적인 풍경을 상상한다. 김설아는 2017년 일본의 요코하마 레지던시에 참여하여 도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물의 흔적들을 바라보았다. 요코하마와 작가의 고향인 여수, 두 도시 모두 바다에 인접해 있다. 거대 공업단지가 들어서며 밀려난 마을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거대한 물의 범람이 있었던 이곳에서도 소환되었다. ● 바다에서부터 시작한 물의 여정은 구름, 안개, 비, 물방울이 되어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물의 여정이 멈춘 곳에서는 작고 음습한 곰팡이가 피어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만들어냈다. 도시에 숨겨진 작은 상처나 도시 속 연약한 존재들 위에 피어난 곰팡이의 균사는 무력한 존재들의 마지막 소리를 조율하는 악기의 현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점에서 곰팡이는 마치 한 생명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공포를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

김설아_기억의 막 Membrane of Memory_종이에 아크릴채색_85×63cm_2017
김설아_기억의 막 Membrane of Memory_종이에 아크릴채색_85×63cm_2017
김설아_진동하는 고요 Vibratile Silence_종이에 아크릴채색_141×233cm_2016

3. 진동하는 고요 ● '진동하는 고요'는 조금 더 내밀한 공간으로 땅 아래에 있는 무늬들을 관찰한 기록들을 담고있다. 그리고 작가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시간 안에서 무엇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는지를 시와 같은 언어를 통해 바느질로 엮어냈다. 어릴 적 김설아는 약한 자극도 부풀려진 채로 다가올 만큼, 다양한 감각들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그림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내보내게 되었다. ● 예민한 감성을 지닌 김설아에게는 다른 존재들이 지닌 몸의 기억이 진동과 잔상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지닌 다성(多聲, polyphony)의 목소리가 자신을 통해 드러나길 원했다. 거대한 힘이 밀려들어오고, 약한 것이 쓸려나가는 공간의 모습이 마치 서로 침범하는 듯 느껴졌다. 서로 침범하고 중첩된 형상은 마치 자투리 천을 기워 만든 조각보 같았고, 상처를 봉합하는 바느질과도 같았다. 통증의 시간을 거친 공간의 가장 낮은 곳에서 땅의 진동과 변화를 먼저 느끼는 작은 존재들에 눈이 갔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몸짓, 찢어진 천을 깁는 바느질, 상처를 치유하다 남은 흉터. 이 모든 중첩된 형상들이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형태로 표현되었다.

김설아_잊혀진 집들_Erased Homes_종이에 아크릴채색_63×85cm_2015
김설아_숨에서 숨으로 Breath to Breath_종이에 아크릴채색_155×75cm_2015
김설아_침묵의 목소리 Silent Voice_종이에 아크릴채색_210×77cm_2015
김설아_들었다 Heard_종이에 아크릴채색_215×75cm_2015
김설아_눈물, 그 건조한 풍경 Tear Drops, the Arid Landscape_종이에 아크릴채색_280×260cm_2017

4. 눈물, 그 건조한 풍경 ● '눈물, 그 건조한 풍경'에서는 작가가 인도의 사막 도시 바로다에서 지내던 시절에 사라지는 것들을 관찰하고 이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새로웠던 그 낯선 땅에서 마주한 것은 아침에 살았던 것이 저녁에 죽음을 맞는 '생'과 '사'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건조한 풍경이었다. 지속적으로 작가의 시선에 개입하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이 흘러내리는 오물, 타다만 재가 굴러다니는 모습, 다양한 종류의 벗겨진 껍질, 벌레들 그리고 가벼운 것들이 날아다니다 구석지고 후미진 곳에 두서없이 쌓여있는 모습들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기시감처럼 기억 한편에 남겨진 작가의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한 마을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생명들이 떠나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가루가 되어 엉키는 모습들이 잔상처럼 남겨져 있었다. ● 사막에서는 특정 시기마다 모래가 바람을 타고 들어와 집안 곳곳에 쌓였다. 모래는 마치 삶의 터전을 잃고 몸을 바꿔 다시 돌아오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건조한 사막에서 흐르는 눈물도 그랬다. 담겨지는 곳에 맞춰 모습을 바꿔서 흐르는 물이 누군가의 눈물샘에도 다녀간 모습을 상상했다. 건조한 내면에 깔린 사라진 고향에 대한 기억을 눈물샘으로 끌어올려 연약하고 작은 존재들이 무겁게 목격되기를 바란 것이다.

김설아_부유하는 몸 Flaoting Fragment_종이에 수채_32×32cm_2021
김설아_무제 Untitled_종이에 수채_187×147cm_2010

5. 기억의 팔림프세스트 ● 팔림프세스트(palimpsest)는 중세 서양의 필사본으로 글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쓸 수 있도록 만든 재록양피지이다. 팔림프세스트의 지워진 흔적들과도 같은 그 때의 경험들은 과거와 현재, 기억된 것과 잊혀진 것을 잇는 담론의 끈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작가에게 기억은 하나의 고정된 상을 불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기점으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해석되는 과정이다. ● 김설아는 2008년 인도로 떠나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김설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먼저 무엇을 할지 상상해 본다. 자신의 모든 감각세포까지 끌어 모아 자신이 과거에 본 것, 만졌던 것, 냄새 맡았던 것 등 익숙한 경험과 기억을 찾을 것이라 했다. 어떠한 대상의 형상에 대한 기억은 자신의 경험과 맞닿게 되어 특별한 의식으로 이끌게 된다. 작가의 고향에 대한 기억은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존재들의 형상으로 이끌었고, 그 대상에서 자신의 기억에 남은 흔적들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관찰은 약한 존재의 취약성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기억과 맞닿은 지점에서 작가의 시선을 찾는 과정이 되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언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밀려난 것, 떠도는 것, 망각되고 사라져가는 것을 위한 내밀한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다. ■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

Vol.20221116f | 김설아展 / KIMSEOLA / 金雪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