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22_1117_목요일_02:00pm
참여작가 김경림_김현진_박지수_사기꾼들 이상민_조은정_허연화_전예총
주최,주관 / (재)부천문화재단 기획 / 오정은(독립기획, 미술비평)
관람시간 / 10:00am~05:00pm / 25일_10:00am~03:00pm / 월요일 휴관 전시 종료 30분 전 입장 마감
부천아트벙커B39 Bucheon Art Bunker B39 경기도 부천시 삼작로 53 Tel. +82.(0)32.321.3901 artbunkerb39.org blog.naver.com/b39-space
부천문화재단의 차세대전문예술지원 『청년예술가S』는 지역 기초예술분야 신진작가 발굴 및 지원을 위한 지속 가능한 지역문화예술 생태계 조성과 예술인 간 지속적인 교류 협력 기반 마련을 위한 사업으로 2017년부터 "누구나(Somebody) 청년예술가로서 부천에서 활동할 수 있다."라는 뜻을 담아 시작했다. ● 2021년부터는 만19세이상 만39세이하 부천 전문(예비) 예술인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공연분야 총 70여명이 공모에 지원했으며 음악분야 5인, 시각분야 7인, 총 12인을 선정했다. 이번 『청년예술가S』는 문화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사회적 배려계층 예술활동 쿼터제를 도입하여 무장애 예술 콘텐츠, 베리어프리 콘텐츠 등 예술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부천 예술생태계의 문화다양성을 확장시키고자 했다.
S 이야기: 다람쥐, 낱말, 컵 ● 쓰레기가 모이고 소각되며 한때는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며 주민에게 기피되던 곳, 부천 삼정동 폐기물 소각장이 아트벙커B39로 리노베이션된지 근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도심의 생활과 역사적 자취를 간직한 복합문화공간이자 이전 건축의 골자를 보존하며 독특한 외관이 특징인 이곳에 이제는 점차 동시대 예술가의 관심과 활동이 축적되는 중이다. 『S 이야기』는 부천문화재단이 2017년부터 이어온 '청년예술가S사업'의 일환으로 부천의 시각 및 공연 분야 청년예술가를 대상으로 공모를 시행하고 진행한 2022년 프로그램의 결과이자, 이를 통해 선정된 예술가 12인(팀)의 전시와 공연 무대를 선보이는 행사의 이름이다. 그중 전시 분야로서 11월 10일부터 22일까지 아트벙커B39에서 전개되는 『S 이야기: 다람쥐, 낱말, 컵』에는 7인(팀)의 시각 작가와 1인의 작곡가가 참여한다. ● 『S 이야기: 다람쥐, 낱말, 컵』에서 'S'는 거대 서사에 가려져 배제됐거나 아직 바깥으로 발현되지 못한 어느 개인, 스스로를 외부에 드러내고 도약하기 이전의 잠재된 자아를 총칭한다. 이는 하루 200톤의 쓰레기가 쌓이고 소각되던 공간에 이어 새로운 역할을 일임 받아 변화중인 장소, B39를 일정 기간 사용하며 창작 실험과 실현을 통해 지역에 새로운 서사를 더하는 이들의 별칭이기도 하다. 이들이 청년예술가 'S'이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름의 'S'로서 예술의 매체를 경유해 충돌하고 경합하며 미끄러지듯 도착하는 것의 이야기를 지금 들어보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 이야기는 세대를 초월한 가족 간의 연대(김경림), 서사와 이미지 간 경계를 타고 넘는 기호학적 실험(김현진),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질성을 재료로 하는 무빙이미지와 발견된 사물 및 신체성(박지수), VR체험을 통해 재해석한 가상 및 실재계의 우화(사기꾼들), 개인의 내밀한 꿈과 대중적으로 친밀한 도상이 조화를 이루는 동화적 세계(이상민), 일상 사물에 대한 오랜 관찰과 응시로 드러나는 감각적 이미지(조은정), 지역의 풍경과 물의 유동성을 주제로 모색한 회화의 확장성(허연화)으로 표출되고 있다. '다람쥐, 낱말, 컵'은 실제 전시 작품 일부에 등장하는 기호이자 'S'에 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조합될 수 있는 작은 의미소를 말한다. ● 'S', 이들은 흩어져 있는 낱낱의 삶과 방언을 대표하는 각 개인이자, 벌어진 격차를 매개하고 그 중심에서 느끼는 혼잡성을 새롭게 타개해가는 세대이면서, 독자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인 예술의 길목을 찾아가는 방랑객이기도 하다. B39 곳곳에 마치 작은 낱말 조각처럼 숨겨져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독해하는 여정에 또 다른 'S', 당신을 초대한다.
김경림 Kim Kyung Lim(b.1994) ● 김경림은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가족 간의 잠재된 서사를 추적하고 관계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영상은 할머니 앞에서 독백처럼 툭 내뱉은 손녀의 고민이 서로의 삶을 환기하고 지혜를 나누는 계기로 작용하는 장면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작가는 상담의 형식을 사용해서 세대 간의 멀어진 거리를 좁히고 타자의 삶에 깃든 서사와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려는 한편, 그것을 디지털 페인팅 등 포스트 미디엄의 매체로 풀어내려고 시도한다. ●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할머니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게 언제더라?"
김현진 Kim Hyun Jin(b.1992) ● 김현진은 언어와 사고 관계 실험을 지속해왔다. 『13권의 책』은 피터그리너웨이 감독의 영화 '필로우 북'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나끼꼬가 쓰는 책으로 '방황, 순수, 백치, 무기력, 자기선전가, 연인, 유혹, 젊음, 비밀, 침묵, 배신, 잘못된 시작, 죽음의 장'으로 구성된다. 나끼꼬는 하나의 육체를 하나의 챕터로 사용하며 살갗을 종이 삼아 몸에 글을 써내려 간다. 김현진은 이를 모티브 삼아 각 장의 키워드를 몸의 문자로 풀어낸 작업 「13권의 책」을 선보인다. 작가는 몸이 새로운 기호로서 인식에 기능할 수 있는지, 문자를 대신해 단락을 구분지을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이미지와 기호에 틈입한 신체, 그리고 그들 간의 관계가 미시적 감각으로 엮어지며 서사를 향한 모종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 "무감각한 이미지 덩어리에 추상의 언어를 집어넣으면, 그것은 어떤 정보로 기능할 수 있을까?"
박지수 Ffack Ji Soo(b.1999) ● 박지수는 사용이 임시 중단되거나 철거가 예정되어 비어있는 사이트를 일시적으로 점유하여 스쾃(Squat)을 시도한다. 작가는 공간의 타임라인에 개입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시키고, 그간의 역사를 모르는 상태이기에 가능한 말하기 방법을 연구한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타임라인에서 출발한 3개의 사안-철거 중단된 수영장, 철거 예정된 외국인 숙소 기숙사, 과거 소각장이었던 B39-에서의 작업들이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연결될 수 있는가, 어떤 자세(Posture)로 B39의 바닥 위에 존재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다. 쓰레기 소각조였던 아트벙커 에어갤러리 테라스와 재벙커의 재를 퍼올려 매립장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했던 크레인 조종실에 각각 설치된 작가의 작업은 과거 이 공간에 머물었던 익명의 사용자, 그리고 지금의 우리를 서로 조우시키고 시공간이 복합적으로 덧대진 순간을 지각하도록 한다. ● "익명의 몸들이 살았던 사적인 공간의 유구한 역사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그것의 몸이 삭제되고 분수로 도착하는 미래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기꾼들 471ggoonz-김해도담 Kim Haedodam(b.1997) 박상아 Park Sang Ah(b.1998) 신수민 Shin Sumin(b.1997) 유찬종 Yoo Chanjong(b.1997) 이도아 Lee DoA(b.1996)+이도하 Lee Doha(b.1987), 정대희 Jeong Daehee(b.1997) ● 가상현실(VR)의 시공간은 인간의 더 큰 욕망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팽창하고 있다. 사기꾼들은 언뜻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머물게 되는 가상현실이 지닌 맹점을 드러내며 자유의 본질을 질문한다. 「파에톤 프로젝트」 속에 등장하는 '파에톤'은 세상을 구원하는 우월한 존재이자 과도한 욕망을 좇다 파멸하는 '파에톤 프로젝트'의 상징이다. VR영상을 체험한 관객은 가상세계가 주는 달콤한 매력과 재미에 이어 강한 상실감, 그리고 허무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계속 새로움을 생성하고 우상을 찾는 포스트 인터넷 세대의 감각과 그들을 압박하는 시대의 책무감과도 연결된다. ● "현실에 예술이라는 속임수를 더해 이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것. 사기꾼들은 그 지향점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이상민 Lee Sang Min(b.1999) ● 이상민은 꿈과 기억, 실재와 희망이 뒤섞인 회화를 그린다. 동화적 풍경인 이것은 현실에 중첩된 우리의 이상과 심상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있어 스치듯 지나쳤던 기억과 꿈이 혼재된 화면은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익숙한 도상의 어울림이기도 하다. 알록달록한 색채로 표현된 숲에서 살아가는 다람쥐, 사슴과 같은 동물과 하늘을 나는 열기구, 풍선은 겉으로 연약하면서도 내면이 강한 존재와 그들이 수호하는 믿음의 형상을 부각하고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는 자신만의 회화적 세계를 통해 주체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우리 마음 속 동심을 자극하여 잔잔한 감동과 평화를 주며, 순수한 이상향에 대한 열망에 공감대를 일으킨다. ● "그림은 내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꿈을 꾸고 자유로움을 느낀다."
전예총 Jeon Ye Chong(b.1999) ● 작곡가 전예총은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이때 발생하는 이해와 불통 등 다양한 상호작용을 관찰하며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노래하는 손짓」은 정가와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배를 매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청인과 농인 모두를 위한 뮤직비디오이다. 작곡가는 음악과 같은 청각 자극이 영상이라는 시각 매체를 통해 상영되는 과정에서 음악의 주요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영상 속 연주자의 다양한 움직임과 가사를 표현하는 수화를 통해 '노래하는 손짓'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기를 소망한다. ● "창작의 자유는 예술가에게, 해석의 자유는 감상자에게 맡긴 채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조은정 Jo Eun Jeong(b.1991) ● 조은정의 드로잉은 일상의 평범하고 유약해 보이는 사물에 대한 시선의 기록이다. 그것은 컵과 컵 안에 담겨있지 않은 물처럼 서로 밀접한 상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통상적이고 의례적인 관계를 벗어나 있는 상태에 대한 작가의 관심 어린 발견이기도 하다. 작가는 개인의 열망과 자유, 그것을 경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간의 미묘한 관계를 회화적 표현으로 담아낸다. 자유롭고 가벼우면서도 섬세한 드로잉 필치로 그려진 「컵 밖의 물」연작은 폐쇄적 긴장감이 있는 구 크레인조종실의 낡고 오래된 캐비닛에 전시되어 독특한 미감을 더하고 있다. 사물을 향한 조용하고 끈기 있는 응시, 물방울의 집합과 컵의 실루엣이 함께 맞춰가는 균형감각, 작가의 예술적 고민이 함께 한다. ● "물은 컵 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내가 담은 것이다. 나는 억제된 일상에 살고 있다. 내가 행한 것이다. / 컵 안, 모양대로 채워진 물. 너무나 자연스러워 의심할 생각 들지 않는 그 모습에서 어느 순간만은 벗어나보자."
허연화 Hur Yeon Hwa(b.1988) ● 허연화는 공간의 물리적 한계에 대비되는 물질의 유동성 및 액체의 움직임에 주목한 작업을 주로 하며 바다와 하천 등의 풍경을 담은 조각, 회화, 설치 작업을 진행해왔다. 「심곡천」은 성주산 여우고개 기슭에서 발원해 부천의 중동을 관통하는 '심곡천'을 회화 매체로 재현한 것이다.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던 역사와 더불어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는 심곡천의 풍경과 그로부터 전이되는 신체 감각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또 하나의 '흐름'으로 생동감 있는 줄기를 내린다. 무작위로 이루어진 것 같아 보이지만 계속해서 접합을 만들어내며 흐르는 이것의 구조적 성질은 작가가 오랫동안 수행해온 작업 간의 고리와 그것이 지금 여기의 전시공간에서 연출해내고 있는 광경과의 연결을 통해서도 비슷하게 착안되는 것이다. ● "단서 없는 끝말잇기와 같은 '연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언뜻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의 꼭지점으로 나열해본다. 그들이 결국 유동적으로 연결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흥미롭다." ■ 부천문화재단
리뷰 ● 옛날엔 폐기물 소각장이었지만 4년여의 시간이 흐른 현재는 동시대 예술의 저장 공간이자 도시인의 삶에 활기를 심어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부천아트벙커 B39'. 이곳에서 부천문화재단의 2022년 차세대전문활동지원 공모 프로그램 『청년예술가S』 1) 선정작가 전시 및 공연 실연회가 11월 17일 오후 2시 개최됐다.(전시는 2022년 11월 16일부터 25일까지) ● 창작과 실연을 통한 부천 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목표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S이야기-다람쥐, 낱말, 컵' 2) 으로, 시각 선정 예술가 7인(팀)과 음악 장르 선정 예술인 1인이 참여했다. 시각 작가로는 김경림, 김현진, 박지수, 이상민, 조은정, 허연화, 사기꾼들(팀)이, 음악에는 작곡가 전예총이 뮤직비디오 작품으로 함께 했다. 3) 기획은 소장 미술비평가이자 독립기획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오정은이 맡았다. ● 전시는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구현된 매체, 공간, 신체, 시간이 혼종된 장면들을 접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부천아트벙커 B39 1층과 2층 각각의 공간마다 개성 있는 작업들이 들어섰고, 어쩌면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창작 동기를 발판으로 하면서도 공동체의 삶과 커뮤니티의 정체성,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들로 채워져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 먼저 김경림 작가는 "말할 곳 없는 청년들의 고민을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전한다면 과연 어떤 지혜로운 대답을 들려주실까?"라는 자문을 토대로 한 인터뷰 영상작업과 평면(타로카드 형 디지털 페인팅) 작품 「오늘의 지혜 씨」(2022)를 선보였다. "청년 고민해결과 노인 효능감을 올려주고자 탄생한" 4) 리서치 기반 프로젝트다. 젊은 세대와 이전 세대 간 접점을 도모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경험 많은 어르신들의 명쾌한 답을 통해 청년세대들의 고민을 나누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작업이다. ● 작가 김현진은 사진 설치작업 「13권의 책」(2022)을 통해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다뤘다. 그는 기획서에 "텍스트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거부감을 바탕으로, 관념의 단계를 숨긴 채 침묵 그 자체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썼다. 그리고 이를 추상 이미지와 몸의 문자를 통해 드러냈다. 작품 「13권이 책」은 영화 '필로우 북' 5) 의 주인공 나끼꼬가 육체를 통해 써내려 간 글 각 장의 키워드를 무자로 풀어낸 작업이다. 그는 이 작업에 대해 "몸이 기호로서 문자로서 새롭게 기능할 수 있는지, 문자언어를 대신해 단락을 구분 지을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몸으로 만들어내는 낯선 문자 형태는 비록 글자로 읽히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무언가의 호소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 작업은 비구상적 상징체계로서의 문자가 재현의 영역에서 이미지화될 때 발생하는 행위, 심리, 학제 간 경계 없음이 어떻게 실체화될 수 있는지 또한 엿볼 수 있다. ● 작가 박지수는 전시가 열린 부천아트벙커라는 공간의 역사에 집중했다. 장소 특정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죽은 것을 위한 자위예절」(2021)은 과거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장소를 작품의 맥락 안으로 끌어들여 수집된 오브를 설치하고 신체성이 반영된 퍼포먼스 6) 를 통해 공간이 지닌 역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구부리고 펼쳐낸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트 스쿼트(art squat)를 활용한 공간 공유 방식과 테라스와 크레인 조종실에 놓인 작업들은 정주로부터의 파장, 억압된 상상에 균열을 가하는데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넓게 보면 제도권 내 엄격한 규칙과 계층 구조의 허약성을 지적한 그의 작업은 어느 정도의 정신적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기도 했다. 영상을 포함한 그의 설치 작품들은 때로 느슨했고, 간혹 작품 자체의 패셔너블한 불편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자체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도 배제하기 어렵다. ● 작가 팀 「사기꾼들」은 「파에톤 프로젝트」(2022)라는 1분 30초짜리 VR영상 작품으로 영역의 확장을 도모해온 가상현실(VR)이 실은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머물게 되는 맹점을 갖고 있다며 '자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자유의 본질은 진리의 본질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우리는 자유의 개념 안에서 진리를 사유하지 않고, 진리의 본질 역시 사유되지 않는다. 자유의 본질과 진리의 본질은 그래서 늘 낯설다. 작가들은 이 낯섦을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그들은 "새로움을 계속 생성하고 우상을 찾는 포스트 인터넷 세대의 감각과 그들을 압박하는 시대의 책무감과도 연결된다."고 정의했다. ● 참고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파에톤'은 태양신 헬리오스와 클리메네의 아들로, 헬리오스의 마차를 함부로 몰다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추락하여 죽는다. 「파에톤 프로젝트」 속 '파에톤' 역시 세상을 구원하는 우월한 존재이지만 과도한 욕망을 좇다 파멸한다. 해당 작업은 퍼포먼스, 미디어, 관객 참여형으로 구현됐다. VR 속 가상의 공간에서의 허우적거림이 마냥 신기하고 즐겁지 않은 이유, 체험이다. ● 작가 이상민의 작품은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숲속 풍경을 비롯하여 상상으로 건져 올린 이미지(동물, 인물 등)를 표상화한 작업이 주를 이뤘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밝고 화사한 여운을 심어주는 회화였으며, 행복감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재단이 제공엔 자료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현실에 중첩된 우리의 이상과 심상을 기록하는 것.", "우리 마음 속 동심을 자극하여 잔잔한 감동과 평화를 주며, 순수한 이상향에 대한 열망에 공감대를 일으킨다." 아이들 그림 같은 그의 작품들이 딱 그렇다. 그 이상 근사한 설명이 어렵다. ● 조은정 작가는 가변설치 작업 「컵 밖의 물」(2022) 시리즈를 출품했다. 작은 사이즈의 흐릿한 손 그림들을 기계장치로 혼잡스러운 공간에 다수 내걸었는데, 거칠고 투박한 공간에서 그의 작업은 존재감이 낮았다.(어떤 면에선 그냥 무심코 스쳐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러웠다고도 볼 수도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환경을 고의적으로 수용한다. 그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평온' 또한 그렇다고 보기 때문이다. ● 작가는 "우리는 곳곳에 있는 평온의 기회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일로, 내일로 바삐 살아가곤 한다."며 "평온이란 삶과 동반되는 수많은 사건들과 긴장 속에서 나의 어떤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여기서 '컵'은 하나의 사물이라기 보단 평온하지 못한 혹은 평온할 수 없는 세계 내 존재들을 상징한다. 거센 욕망이 휘몰아치는 치열한 삶에서 그의 「컵 밖의 물」 연작은 현재의 우리를 잠깐이나마 되돌아보게 만든다. ● 허연화 작가 7) 는 부천의 중동을 관통하는 하천인 '심곡천'을 주제로 한 회화작업을 선보였다. 작업실 인근에 위치하여 작가에겐 친근한 심곡천은 "공간의 물리적인 제약에서 벗어나는 유동적인 물성과 물에 관한 작업들을 해오고 있는" 8) 그에게 하나의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사실 실제 작품은 일상 속 발견한 하천의 느낌보다는 우아한 정서적 추상에 근접했다.) 필자의 시각엔 부동의 상태를 전복함으로서 시간을 새롭게 점유하고 궁극적으론 존재 본질을 어떻게 바라보고 번역할 것인가에 관한 작가의 고민과 시도의 결과에 다름 아니었으며, 일상의 낯섦이나 미적 가치와 의미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는 측면에서도 눈여겨볼 작업으로 꼽혔다. ● 작곡가 전예총의 단채널 영상, 사운드 작업인 「노래하는 손짓」(2022)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6분여짜리 뮤직비디오이다. 장석남의 시(詩)와 전예총의 작곡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 성악인 '정가'(최여완)로 노래하는 이 영상에는 노래와 함께 수화(장호중)로 된 가사가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의 중요성은 정가의 색깔을 경험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극이라는 사실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 속 배려가 요구되는 오늘날 전예총의 시도는 충분히 가치 있다. ● 출품작들은 시각 중심의 인식체계를 드러내는 시각문화의 흐름에 놓인다. 저마다의 톡톡 튀는 언어들이 각자의 조형방식으로 펼쳐졌다. 내용들은 건강하다. 『청년예술가S』라는 동일한 주제 아래 서로 다른 무언가가 이질성 없이 연속적 관계 맺음을 통해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형성하고 화려함을 목도하게 한다. ●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게 어려웠을 터임에도 나름의 정돈된 기획성을 발휘하고 핵심만 잘 간추린 기획자 오정은의 정리(글)를 옮겨오면, 세대를 초월한 가족 간의 연대(김경림), 서사와 이미지 간 경계를 타고 넘는 기호학적 실험(김현진),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이질성을 재료로 하는 무빙이미지와 발견된 사물 및 신체성(박지수), VR체험을 통해 재해석한 가상 및 실재계의 우화(사기꾼들), 개인의 내밀한 꿈과 대중적으로 친밀한 도상이 조화를 이루는 동화적 세계(이상민), 일상 사물에 대한 오랜 관찰과 응시로 드러나는 감각적 이미지(조은정), 지역의 풍경과 물의 유동성을 주제로 모색한 회화의 확장성(허연화)이 드러난다. ● 하지만 시대를 번역하는 예술로의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사적 발화를 기반으로 한 일부 작업들은 마냥 느릿하다. 각각의 작품들은 저마다 합당한 이유를 지니지만, 그것이 예술작품일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거나 미술 자체의 존재 이유와 방식에 관해 문제와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본다. 또한 소실점이 불분명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일련의 지식체계와 해석기술에 교란을 야기 한다. ● 특히 이 글을 쓰기 위해 부천문화재단으로부터 받은 어떤 자료에도 과거의 예술과 어떤 점에서 스스로 차별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은 발견하기 어렵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된 화자의 '발언'이 보다 도드라져 있다. 이는 자신의 예술/예술적 행위가 동시대 미술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해야만 하며, 어떠한 방법론을 통해 '나'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자리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참여 작가들이 향후 풀어갈 과제다. ■ 홍경한
* 각주 1) 해당 사업은 2017년 시작되어 현재에 이른다. 신진작가 발굴을 포함한 부천 예술 인프라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만 19세 이상 만 39세 이하 전문(예비) 예술인이 대상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디딤돌삼아 활동영역을 확장한 작가들도 적지 않다. 2) 재단 자료에 의하면 'S이야기-다람쥐, 낱말, 컵'은 『청년예술가 S』의 개인적 서사를 담은 예술 활동을 통해 부천지역의 서사를 소리로서 들려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S'는 거대 서사에 가려져 배제됐거나 아직 바깥으로 발현되지 못한 어느 개인, 스스로를 외부에 드러내고 도약하기 이전의 잠재된 자아를 총칭한다. 기획자에 따르면 '다람쥐, 낱말, 컵'은 실제 전시 작품 일부에 등장하는 기호이자 'S'에 관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조합될 수 있는 작은 의미소라고 한다. 필자는 모든 미적 상상력과 예술의 근원인 인간 삶과 맞닿는 기호와 상징, 개념으로 해석한다. 3) 전시를 소개하는 자리이자 대중과 작가, 그리고 전문가들 간의 토크시간이기도 했던 실연회에는 대안공간 아트포럼 리의 이훈희 대표와 필자도 함께 했다. 오정은 기획자가 모더레이터를 맡았으며, 『청년예술가 S』를 거쳐 간 신재은 작가 등도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해 행사의 활기를 더했다. 4) 김경림, 작업계획서 중. 5) 작업의 모티브가 된 것은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의 영화 '필로우 북'(THE PILLOW BOOK, 2000)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끼꼬가 쓰는 책이다. 방황, 순수, 자기선전가, 죽음의 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6) 실연회 당일엔 퍼포먼스가 진행되지 않았다. 7) 이번 전시에는 선보이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론 허연화의 설치 작업에 눈길이 간다. 관습에 얽매인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한 실험적인 작업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8) 작가 본인이 한 말이다.
□ 오프닝 리셉션 / S이야기: 아티스트 토크 및 네트워크 파티 - 일시: 2022. 11. 17.(목) 14:00 - 장소: 부천아트벙커B39 전시실 내 - 내용: 전시 라운딩, 작가·비평가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토크 및 청년 예술인 네트워크 파티 - 참여: 참여 예술가 및 청년 예술가 모더레이터 오정은(독립기획), 홍경한(미술평론가), 이훈희(대안공간 아트포럼리 대표)
Vol.20221116i | S 이야기: 다람쥐, 낱말, 컵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