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종근당 예술지상

김선영_유승호_최수련展   2022_1117 ▶ 2022_112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2 종근당예술지상 콜로키움: 회화의 안과 밖 일시 / 2022_1117_목요일_04:00pm 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1관 오픈갤러리 발제 / 고충환(미술평론)_김남수(미술평론)

주최 / (재)세종문화회관_(사)한국메세나협회 주관 / 아트스페이스 휴 후원 / 종근당

관람시간 / 11:00am~07:00pm / 17일_01:00pm~07:00pm / 입장마감_06:3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SEJONG CENTER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로 81-3번지) 1관 Tel. +82.(0)2.399.1000 www.sejongpac.or.kr

회화는 가장 고전적인 표현 형식과 미디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전 존재를 화면에 투사해 사유하고 상상한다. 아주 익숙한 문화와 기술의 반복 속에 미세하지만 혁신적인 변화를 낳는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요란스러운 사건이나 소동이 아니라 조용한 정신의 운동이라는 니체의 말처럼, 회화는 현대예술의 가장 혁신적인 예술 형식으로 그 지위를 잃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화가들은 애초부터 불확실성을 안고 출발하고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에서 어떤 사건과 의미를 모색하고 종국에는 바로 그 불확실성 속에서 붓을 놓았다. 다양한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화는 여전히 실험적이며 도전적인 예술 분야로 수많은 예술가들의 관심과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 시대마다 회화의 이름 아래에 자신만의 고유한 '부제'를 달았다. 그것은 인명이나 지명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을 기념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사상의 요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유사한 공간적 · 시간적 조건 속에서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고유의 취향과 성격과 함께 얼마나 창의적으로 선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작가의 회화 이미지가 고유한 아우라를 가지게 된다. 문제적 작가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감정과 관점, 상상과 통찰을 담으려 한다. 작품을 통해 그 작가의 안목과 능력이 사회화된다. 가장 개별적인 개성과 동시에 공통적인 보편적 가치가 신비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사건을 만들어낸다. 세상의 그물망에 속하지만 그물코가 교차하는 지점마다 매 순간 창의적인 선택과 실천으로 자신만의 길을 그물망 위에 새겨나간다. ● 회화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작가들의 질문과 열정은 더 높은 차원의 질문을 낳고 더 뜨거운 열정을 견인한다. 회화는 시각과 함께 청각과 후각, 촉각과 미각마저 자연스럽게 융합하며 작가 고유의 독자적 감각의 세계상을 형상화한다. 회화의 직관적 인식이란 소박한 감상을 넘어서 명상과 관조를 가로지르며 보다 깊은 차원의 인식, 나아가 가장 깊은 차원의 심층 의식과 접촉한다. 감상을 통한 직관적 인식과 이후 뒤이어 일어나는 마음의 운동을 통해 수많은 이미지들의 파노라마를 펼쳐 놓는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회화를 창작하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 초대된 김선영, 유승호, 최수련은 관습화된 관념과 이미지를 반복하는 가운데 조금씩 혹은 과감하게 탈주하며 이전에는 부재하던 세계의 이미지를 그려 나간다. 상상해 보라. 어떤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지.

김선영_쏟아지고 솟구치는_장지에 아크릴채색, 과슈, 분채_163×260cm_2022

김선영 ● 「원을 위하여」, 「너의 형태」, 「쏟아지고 솟구치는」 시리즈 등 작가의 이미지는 불분명한 대상과 형태가 상승하는 힘과 하강하는 힘, 세계를 감싸는 액체와 기체, 공기와 물의 현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작품 제목에서 우리는 작가의 회화와 창작의 본질을 향한 끈끈한 몰입을 느낄 수 있다. 강렬한 비전을 지향하지만 아직은 거기에 접촉하지 못한 또는 도달하지 않은 상태를 떠올린다.

김선영_sync; 엇박의 캐스트_장지에 아크릴채색, 과슈, 분채_130×194cm_2022

붓의 속도는 너무나 느리고 모호한 분위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이미지는 분명한 형태와 경계를 찾기 어렵다. 풍경 이미지는 사실은 미술사적 의미의 풍경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제기되는 마음의 풍경이다. 조형적 사유의 대상이 풍경이 아닌 자기반성과 성찰로서의 풍경이다. 무의미해 보이고 사소해 보이는 풍경은 관리되거나 관찰되지 않는다. 본래 있던 자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결코 사회화되지 않는 것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노출할 수 있다. 작가는 불분명한 나와 사회의 경계선을 사유한다. 가장 몽롱한 이미지가 일상의 경제적·사회적인 관계 속에 역동하는 작가의 현실을 예민하게 담고 있다. 관리되고 있는 현실의 반대편에 비친 이상적 분위기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선영_차원의 숲_장지에 아크릴채색, 과슈, 분채_194×390cm_2022

회화에서 형태는 작가의 내면과 작가를 둘러싼 세계가 만나는 경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흔적이기도 하다. 캔버스 표면에 출몰하는 다양한 음영과 형태, 색을 통해 작가는 세계에 던져진 자신의 정체성은 홀연히 사라지고 어떤 비현실적 풍경 속에 들어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근본적인 질문과 일시적인 판단과 임시방편의 답변이 순환한다. 이를 통해 작가의 안과 밖의 관계 또는 정황이 점차 분명해진다. 작품의 겉모습을 결정하는 중심적인 형태들, 이미지들은 작가의 의도를 담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하등 상관없이 창작 과정에 개입하는 다양한 힘들의 작용을 반영하고 있다.

유승호_시늉말_디지털 페인팅_22-R-46-47_2022

유승호 ● 단어와 문장이 춤을 춘다.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떨어지고 솟는 꽃잎이나 나뭇잎처럼 문자와 이미지가 날아다닌다. 작가는 가장 쉽고도 동시에 난해한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 그의 이미지들은 넋두리와 흥얼거림과 중언부언하는 기묘한 텍스트가 화면 가득 채워지며 마치 바벨탑이 무너진 직후 주위를 떠돌며 대화할 수 없는 무수한 언어들의 분열을 은유하는 풍경이다. 문을 닫아야하는 주점에 버티며 기어이 소리를 지르는 아우성처럼 보인다. 내면의 울림이든 아니든 작가의 이미지는 얇거나 두껍게 그리고 나른하거나 또는 격렬하게 소리치는 이미지들을 제시한다. 작가는 이리저리 끼적이며 흘러내리는 어떤 설움 같은 감정을 사생한다.

유승호_저 넘어의 그림 22-A-0005_자작나무 패널에 아크릴채색_60×60cm_2022

외계인의 시각에서 보면 지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사고들, 인간의 행위들은 모두 이해 불가능한 점과 선과 면과 이미지들의 운동과 변화로 이해될 것이다. 아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언어가 생성된 사회와 시대로부터 이탈해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언어로서의 일반적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언어의 형태를 띤 이미지 또는 얼룩으로 다뤄질 뿐이다. 유승호 작가는 오랫동안 문자를 탈맥락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문자는 일반적인 언어가 아니라 시각 이미지를 구성하는 조형 요소로 인지된다.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사용된 언어들, 문자들, 단어들을 보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환원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곧 실패하고 다만 작가가 지속적으로 화면에 채우고 비우고 구성해 나간 분위기, 모호한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유승호_워터이즈음 22-B-0001_종이에 잉크_150×210cm_2022_부분

작가는 화가이지만 동시에 시인처럼 보인다. 그에게 회화는 그림과 시가 만나는 교차로다. 회화는 의미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뒤엉킨 공간이다. 전형적인 회화 이미지와 언어 실험을 통해 사유의 실험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적 정신이 있다면 유승호 작가에게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집요하게 몰입하는 수작업으로 채워진 화면 위의 단어들은 의미와 무의미, 의미의 질서와 혼돈이라는 의식의 운동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최수련_한글세대를 위한 필사(귀신의 이치)_ 광목에 수채, 아크릴채색_145×112cm_2022

최수련 ● 작가의 작업은 회화를 이해해온 전통적인 해석의 프레임 밖에 놓여 있다. 그것은 회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마치 회화를 연기하는 어떤 정체불명의 주술 행위로 보일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진정한 실재(reality)를 마주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번도 실재를 경험하지도 또 경험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하는 지 배운 바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도 회화의 본질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현대미술가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현재와 미래를 알고 나아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과감하게 전진하는 것이다.

최수련_구천에서도 참회할 수 있는가_리넨에 유채_166×200cm_2022

작품 「구천에서도 참회할 수 있는가」, 「무슨 원통함이라도 있느냐」, 「그런 귀신이라면 좋군요. 부디 그들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귀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겠나」, 「홍씨의 저주」 등은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 지역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다양한 괴담과 민담을 모티브로 우리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정체성과 전통의 문제를 제기한다. 동시에 원한을 푸는 전통과 관습을 주제화한다. 작가는 전통적 동양의 판타지를 재맥락화하고 있다. 사람과 신이 엮이고, 원혼과 만나는 판타지란 일상을 지배하는 규범성과 정형성 밖에 자리한다. 이미지가 본래 죽음과 제의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최수련_그런 귀신이라면 좋군요 부디 그들을 저버리지 마십시오_ 리넨에 유채_170×210cm_2022

관습은 당대의 세계관과 생사관을 담고 있다. 한편 전통은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다. 작가에게 전통의 문제는 관습과 함께 다뤄지며 무엇보다 샤머니즘, 무속과 제의가 우리의 대중문화와 일상 속에서 여전히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미학적 정치성이기보다는 보다 유연하고 완만한 형태의 오랫동안 전승된 서사성에 기대고 있다. 마치 상형문자처럼 의미의 상징체계가 얼마나 우리의 내면,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회고적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도 마치 유물처럼 존재하지만 사실은 현재에도 우리의 일상과 현실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무의식적 차원으로 내면화된 전근대적 의식과 신화적 또는 제의적 서사로 드러낸다. 그것은 작가에게 결코 일상의 밖에서 숨 쉬는 판타지가 아닌 생활 속으로 들어온 현실의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현재에는 사멸한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언어와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과 지평에서 본다. ■ 김노암

Vol.20221117b | 제9회 종근당 예술지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