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밖, 밖의 안

김진展 / KIMJIN / 金璡 / painting   2022_1117 ▶ 2022_1225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0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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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인스타그램_@j.kim944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쿤스트원 주관 / 뮤지엄 원

관람료 / 성인 18,000원 / 청소년 15,000원 / 어린이 13,000원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공휴일_10:00am~08:00pm

뮤지엄 원 MUSEUM 1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서로 20 (우동 1469-1번지) 2층 기획전시실 Tel. +82.(0)51.731.3302 kunst1.co.kr/museumone @museum1_official

이분법적 구조의 해체 ●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추상과 구상은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다원주의적 경향은 이러한 두 가지 대립 개념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추상과 구상의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방식일 수 있다. 구상성과 추상성은 서로 상충되는 의미를 지니지만, 구상성의 변형으로 인해 추상성을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상이라는 것이 보이는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추상은 보편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관념적인 대상이다. 구상은 추상을 좀 더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추상은 구상을 좀 더 관념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 화면에 구상과 추상이 서로 공존할 경우 서로에 대해 상호 협력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구상과 추상을 상호 동시에 긍정적으로 보완한다.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1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2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3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이분법적인 대립 해체 양상은 김진의 작품세계에서 잘 나타난다. 그의 회화는 숲을 표방하고 있지만, 보는 이들은 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추상인지 구상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작가에 의하면 추상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며,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김진의 이전 작업에서는 구상적인 요소가 뚜렷해 보였다. 가령 작업실의 풍경이라든지, 교회의 풍경이라든지, 소위 어떤 것을 그렸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무엇을 표현하였는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이번 김진의 작품은 숲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관람자에게 일말의 힌트도 주지 않는다. 작가는 숲을 그렸지만, 보는 이들은 이 작품을 감상하며 추상인지 구상인지 모를 모호한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형체를 해체시키는 듯한 자유로운 터치들을 통해 이는 더 강조된다.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4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5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김진의 이전 회화들의 대부분은 밖에서 안을 바라본 실내 풍경을 그렸다. 영국 유학 시절 작업을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영국 중산층 가정을 창문을 통해 엿보게 된다. 추운 겨울 그 창문 안으로 보이는 실내 풍경은 너무나 따뜻해 보였다. 밖과 안은 같은 시간대와 공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느낌을 받았고, 그 사이에서 오는 자신의 정체성에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공간 안은 김진이 지향하는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라면, 밖은 현실 그 자체였다. 세월이 흐르며 기성세대가 되다 보니 젊음 시절의 불안감들이 해소되며, 간혹 공간 안에 들어가기도 하는데(안정적인 시스템) 그 공간은 작가가 들어가서 살 수 없는 공간, 어떻게 보면 김진의 욕망 중 하나이기에 막상 안에 들어가더라도 삶과 그림이 연동되지 않는다. 이는 김진의 삶이 스스로가 느끼기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아서인 듯하다. 그렇기에 김진의 근작들은 안을 바라본 풍경인지 안에서 밖을 바라본 것인지 모호하게 표현된다.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6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7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8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캔버스 자체가 창이라는 매개가 되어 안과 밖을 구분한다. 이는 보이지는 않지만 가상의 창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간 사이에는 무수한 붓질의 터치들이 존재하는데 이것 또한 공간 안에 장소를 구분하는 가상의 창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이전 회화에서 캔버스(가상의 창)를 통해 바라본 실내 풍경 안에는 또 다른 '보이는 창'이 등장하는데, 특히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소품은 이전 회화에서 등장하던 작품 안의 '보이는 창'을 클로즈업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이로 인해 김진은 창(이상과 현실의 접점)을 강조시키고 싶어 함이 분명해졌다. 김진은 '보이는 창'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작품이 전시된 공간 자체가 김진 회화에서 등장하던 실내 공간으로 해석될 여지를 가진다. 관람자가 직접 김진 작품의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며, 창을 통해 밖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마저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호한 순간이며, 안과 밖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시키는 순간이다.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29_리넨에 아크릴채색_116.8×80.3cm_2022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분법적 구조가 지배적이다. 현대인들은 이분법적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선택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의 방법으로 구분되고 서로 배척되는 두 개의 구분지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사회 구조 안에서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나의 선택지가 모호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온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겪기도 한다. 김진 또한 안과 밖이라는 공간의 이중성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 이상과 현실의 접점에 위치해 있다고 믿고 있다. 김진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숲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34_리넨에 유채_27.3×22cm_2022
김진_안의 밖, 밖의 안 2239_리넨에 유채_27.3×22cm_2022

"내가 본 숲은 구체적이지만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안인지 밖인지 모를 숲과 만나면 숲은 대상이 아닌 개념의 세계로 변용된다. 숲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새로운 인식으로 그 이상이 된다. 안과 밖을 구별할 수 없는 숲은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를 얼마나 난감하게 하는가." ● 작가노트에서도 알 수 있듯 '숲'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사회에 만연한 이분법들을 전복시키며, 우리에게 더 이상 본인의 위치가 어디인지 이데올로기적인 질문을 하지 않길 요구한다. 더불어 개념을 이분화하고 이원론적 관점으로 보는 사회에 재차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 최영심

Vol.20221117c | 김진展 / KIMJIN / 金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