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미 거기에 Always-already-there

이가영展 / LEEGAYOUNG / 李嘉英 / painting   2022_1203 ▶ 2022_1230 / 월,화요일 휴관

이가영_언제나 이미 거기에展_갤러리 소소_더 소소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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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인스타그램_www.instagram.com/leegayoung_works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주최,주관 / 이가영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월,화요일 휴관

갤러리 소소 GALLERY SOSO 서울 중구 청계천로 172-1 더 소소 The SoSo 5층 Tel. +82.(0)31.949.8154 www.gallerysoso.com www.instagram.com/gallerysoso_

밤은 길어진다 ● 「여름 공기」(2022)는 공원 산책로를 따라 펼쳐진 숲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눈 앞에서 그림 전면에 펼쳐진 풍경은 그 가지런함과 정적인 분위기를 가로지르는 어떤 형상의 느린 움직임에 대한 독백을 가지고 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가로로 긴 이 그림은 한 자리에 멈춰 서서 숲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숲을 옆에 두고 한쪽 끝에서부터 땅에 평행선을 그리며 나란히 걷는 몸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그림의 시점은 어느 한 점에 머무르지 않고, 다만 사려 깊은 시선을 한발씩 내딛는 몸에 위탁하여 허공에 또 다른 평행선(의 흔적)을 남긴다. 그런 까닭에, 색채로 가득한 「여름 공기」는 어떤 형상의 움직임을 위해 마련된 땅과 하늘, 빛과 어둠, 낮과 밤, 바람과 허공처럼 (하나의 풍경이 아닌) 공간의 원형을 사유하게 한다. 이 세계의 기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떤 몸의 형상과 그것의 해방된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임의의 충만함에 다가가도록 돕는다. ● 여름의 무성한 나뭇잎이 허공을 공백없이 채우고 있지만, 사실 나는 그와 마주하면서도 이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앉을 흰 눈을 상상했다. 저 풍경 너머에서 지표 깊숙이 들어온 빛의 투명함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도, 나는 이 풍경을 잠식해 버릴 어둠의 밀도를 생각해냈다. ● 「여름 공기」에서 수평으로 전개되는 움직임은 곧바로 연속되는 그림 「가을의 문턱」(2022)으로 옮겨져, 같은 장소에 드리워진 "어둠"의 명도로 변환된다. 어둠의 수행이라 해야 하나, 곧 그것의 형상과 움직임을 대면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와 같다. 긴 여름, 지루한 낮의 길이를 풍경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서늘한 윤곽으로 식혀 보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곧 밤은 저절로 길어질 것이기에 긴 밤을 위해 느슨해진 눈의 근육을 힘껏 당겨 보았다. ● 「여름 공기」와 「가을의 문턱」은, 공간의 원형으로서 이미 지나간 시간과 곧 다가올 시간 사이에서 (현재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시간의 현존을 다룬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차분한 풍경이 뜻밖에도 내게 (침묵을 통해) 강요하는 것은, 심지어 나태해 보이는 한 낮의 풍경 속에서 회색 유령과도 같은 어떤 형상들을, 그들의 움직임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 초록의 무성한 나무들 마저 비현실적인 유령의 상태처럼 어떤 사유의 몸짓으로 발견되는 순간에 마주하도록 한다.

이가영_언제나 이미 거기에展_갤러리 소소_더 소소_2022
이가영_언제나 이미 거기에展_갤러리 소소_더 소소_2022
이가영_언제나 이미 거기에展_갤러리 소소_더 소소_2022

「유리창을 열어둔 채」(2022)와 「산책, 7월」(2022)은 하나의 풍경이면서 둘로 나뉘 공간의 불연속적인 서사를 나란히 보여준다. 유리창을 열어둔 채 산책을 나선 "어떤 몸"의 이동과 그 몸이 좇고 있는 7월이라는 시간의 현존을, 과연 저 그림 속 어딘가에서 무엇으로 대면할 수 있을까? 마치 어떤 하나의 공백을 드러내기 위해 저 "지루한" 붓질을 계속한 것은 아닌가 싶게, 자꾸만 그림 속에 부재한 어떤 형상을 상상하려는 마음이 깊어진다. ● 분명 내가 그의 작업실에서 여러 날 전에 보았던 이 그림(들)은 지금보다 더 흐릿했다. 나는 그것이 "미완의" 상태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림이 흐리다는 것에 마음이 가 있었다. 그때보다 채도가 더해진 현재의 상황에서, 나는 비로소 이 그림이 어떤 "미완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않으려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미완에 이르는 것을 꿈꾸는 그림처럼, 다가가기 힘든 형상에 가기 위한 길을 매만지고 있는 누군가의 "나태"가 느껴졌다. 찬란한 현재의 시공간과 마주한 채로, 비현실적인 것을 꿈꾸는 사람의 나태한 쾌락에 대해서 말이다. ● 「유리창을 열어둔 채」는 무성한 나뭇잎과 그것이 땅에 펼쳐놓은 제 이미지[그림자] 사이에서 텅 빈 간극에 숨어 있는 마술적인 공간 혹은 미지의 형상에 대해 상상할 여지를 남긴다. "유리창을 열어둔 채"라는 시간과 공간의 동시적인 설정이, 이 많은 색채와 형태를 앞에 두고 그것의 공백에 대한 나태한 상상을 부추긴다. 「산책, 7월」의 평이함 속에도 저 화면 깊숙이 되풀이 되는 상상의 시공간을 보면, 이미지[그림자/어둠]를 향해 느리게 걷고 있는 한 여름의 나태한 형상에 대해 가정해 볼 수 있다.

이가영_밝은 오렌지 햇볕_장지에 분채_200×160cm_2022
이가영_유리창을 열어둔 채, 산책, 7월_장지에 분채_180×180cm×2_2022
이가영_여름의 절반_장지에 분채_70×194cm_2022
이가영_여름 공기_장지에 분채_97×260cm×2_2022

「여름의 절반」(2022)은 풍경을 바라보는 이가영의 태도를 가늠하게 하는 그림으로, 이전부터 그가 풍경과 대면하여 그 속에서 (익명의) 형상에 대해 사색하려 했던 속내를 보여준다. 그는 동네의 공원이나 산책로 등을 그리는데, 이때 그 공간의 형태 안에 시간이 작동하면서 구축하는 임시적인 혹은 가변적인 이미지의 형상에 주목한다. 대개는 그것이 그림자로 드러나곤 하지만, 조금 더 섬세한 방식으로 논의해 보자면 풍경과 풍경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다수의 형상/이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여름의 절반」은 시간 상 한 계절의 절반 쯤에 당도한 풍경을 지시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그림 앞에서 조금 더 나태한 망상을 더해 보자면, 여름 풍경의 시간적 서사를 다루려는 의도 보다는 여름이라는 시공간을 결정하는 또 다른 현존에 대해 좇고 있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마주하게 된다. 이가영은 현실 세계에서 하나의 공간적인 축처럼 지면에 붙박여 있는 나무를 관찰하면서, 그러한 물질적 좌표를 둘러싸고 낮과 밤의 정령들처럼 풍경 이면의 현존을 구축하는 존재들에 대해 그리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빛이 만들어내는 나무의 추상적인 그림자를 좇고,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비가시적인 공기를 좇는다. 그것이 어떻게 그림이 될 수 있을까를 헤아리며, 지루하고 흐릿한 붓질을 반복한다. ● 「밝은 오렌지 햇볕」(2022)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선명한 채도를 가진 그림일 테다. 제목 그대로 "밝은 오렌지 햇볕"이 숲의 밀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여름부터 가을, 낮부터 밤처럼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그는 풍경의 변화를 관찰하고는, 공간의 물리적 변화 상태를 붙잡아 그것을 재현하려는 의지 보다는 그 순간의 절정을 전후한 "부재"와 "소멸"에 관한 비현실적인 순간과의 대면 또한 동시에 불러온다. 때문에, 「밝은 오렌지 햇볕」은 이 태양 빛의 절정이 지나가고 도래할 깊은 어둠을 떠올리게 하며, 그것은 또다시 서늘한 푸른색을 뚫고 되돌아 올 햇볕을 예고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시간의 현존은 그의 그림에서 빛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실 세계의 모든 이미지들, 어쩌면 실체이기도 하고 실체가 아니기도 한 그 유령 같은 형상의 현존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 「하루의 하루」(2022) 연작들이나, 「5월부터 6월」(2022)과 「7월부터 9월」(2022) 연작의 그림들을 보면, 그가 매일매일 바라보는 풍경 속에서 관찰한 형태들을 가꾸듯 차분하게 그려낸 솜씨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그 형태의 변하지 않는 모습을 담고자 하는 화가의 노력 보다는 하루하루 사라져가는 형상들이 다음 날, 다음 계절에 다시 살아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는 불가능을 드러내는 태도에 가깝다.

이가영_하루의 하루_장지에 분채_27.5×22cm×6_2022
이가영_밤의 선율_장지에 분채_25×25cm_2022
이가영_5월부터 6월_장지에 분채_15×22cm×12_2022 이가영_7월부터 9월_장지에 분채_15×22cm×17_2022

그가 자신의 그림에서 너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 섞인 말을 내게 했을 때, 나는 그것을 내심 알면서도 커다란 종이 앞에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에게 아낌 없는 수고의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다.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 너머의 것을 손끝으로 가 닿아 보려는 나태한 망상과 매일매일 씨름을 한다. 그 유령의 마음으로 시간의 현존을 경험하는 이에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의 충만함이 그가 우리 앞에 펼쳐 놓은 이 그림들과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 안소연

Vol.20221204g | 이가영展 / LEEGAYOUNG / 李嘉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