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식 / 2022_1220_화요일_04:00pm
참여작가 강운_김유섭_박은수_서정민_이승하_정광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본관 제5,6전시실 Tel. +82.(0)62.613.7100 artmuse.gwangju.go.kr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은 각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을 화면에 구현하는 중진작가 6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주로 '추상抽象'하는 과정을 통하여 표현한다. '추상'의 사전적인 의미는 '개별적인 사물이나 개념들로부터 공통점을 파악하고 추출하는 것'이다. 즉 대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여러 속성 가운데 핵심만 간추려 붙잡는 것을 말한다. 추상하는 행위는 중요하거나 복잡한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가 일상에서 늘 하는 것이기도 하다. ● 19세기 말 등장한 추상미술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압축적으로 실험되었다. 이 시기는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때로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달까지 더해져 추상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았다. 그간의 모방과 재현하는 미술은 예술가들의 의욕을 자극하지 못했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함축해 나가거나 그 외형 너머의 본질을 추출하는 큰 두 방향의 추상미술로 전개되었다. 이후 추상미술가에게 '창조' 는 그들이 실험하는 모든 행위의 원동력이 되었다. ● 한편 1950년대 이르러 호남지역에서는 다른 곳보다 한발 앞서 추상미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전위적인 회화를 배우고 온 강용운, 양수아 등은 당시 인상주의 구상화가 주도하던 호남화단에 추상미술의 중요성을 알렸다. 1960년대 우리 지역에서 이루어진 「구상 대 추상 논쟁」은 추상미술의 출현에 대한 역사적 요구와 필연성, 그리고 예술적 사유에 따른 미의식을 개진한 담론이다. 이로 보아 당시 호남화단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수준 높은 미학적 논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등장한 광주미술단체 에뽀끄Epoque는 추상미술을 선도하던 선학들의 정신을 모태로 하여 지역 전위예술의 계보를 현재까지 이어오면서 지역작가들의 새로운 활동의 통로가 되고 있다. ● 이번 전시는 1950년대 한국추상미술의 시작점에 있던 호남미술은 현재 어떠한 모습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였다. 현재의 미술은 20세기 초에는 소외되다시피 하던 구상미술이 다시 집중 받거나, 다양한 매체와 실험예술이 지속되는 등 예술의 다원화가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평면 화면 위 비재현적인 작품들도 여전히 유의미하며 관객의 마음을 크게 울린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김유섭, 박은수, 이승하, 강 운, 정광희, 서정민은 국내외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꾸준히 펼쳐온 지역 출신의 중진 작가들이다. 선보이는 작품들은 비재현적인 형식뿐만 아니라 각자의 창조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유섭은 작품을 통하여 회화의 본질과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그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 끝에 진정한 회화란 형形과 색色의 무無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회화의 본질을 쫓는 작가의 집요한 사유는 기존 회화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한 결과 '색채'에서 회화의 본질을 찾았다. 작가는 회화의 원점에서 색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황을 검은색으로, 원점에서 회화의 가능성을 찾은 상태를 강렬한 원색들로 표현하여 본인의 화두를 제시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빛의 존재」 시리즈는 여러 원색이 긴장감을 주면서도 조화로운 화면을 이룬다. 「검은 그림」 시리즈가 검은색만을 제시하여 회화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라면 「빛의 존재」는 검은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화려한 원색들을 드러내어 회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인류세」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점과 미래세계에 대한 작품으로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구분을 의미하는 것,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이해, 포스트휴먼이 될지도 모르는 미래 인간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박은수 작품은 기하학 형상에 자신만의 색을 입힌 종이 부조 조각들로 이루어진 도시 풍경화 이다. 현대인의 초상, 군상, 도시의 풍경을 작품 소재로 해온 작가는 초기 형상을 단순화하다가 근래에는 기하학 형상과 색을 강조한다. 작가는 작품의 재료로 주로 폐신문지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하여 신문은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이 종이 부조 작품은 작가의 집요한 재료 연구 결과로, 캔버스 위 분해한 종이를 얇게 쌓고 요철을 만들어 원하는 조형이 될 때까지 깎아내는 작업을 반복한 것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물이 들 때까지 여러번 색을 입히면 일 획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작가의 노동과 수신으로 형形과 색色의 아우라가 깃들여진 도시 풍경화가 완성된다. 「삶의 표정, 아우라」는 군상과 도시이미지로부터 비롯된 기하학 형태의 종이 부조 조각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개인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인 아우라를 나타내었다. 화면을 채운 기하학적인 입체 면들은 우주의 공간이자 인간의 일상이기도 하고 자연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승하는 실재하는 비정형 이미지를 사진과 영상에 담아 의식과 무의식,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이야기한다. 초기 재현적인 사진 작업을 하던 작가는 근래 본인의 내면을 은유하는 실재 이미지를 포착하여 사진과 영상의 회화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전시장에 선보이는 「무제의 공간」 시리즈는 먹, 물, 그리고 먹에 물을 떨어뜨리는 작가의 행위에 의하여 먹물이 섞이는 과정을 포착한 두 편의 영상이다. 먹과 물이 결합하며 나타난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느껴 화면에 담은 이 영상들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제작한 결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두 영상 속에서 먹물의 움직임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하여 작가는 시간, 공간,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작가는 먹물의 변화를 관찰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상을 통하여 낯설음을,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과정을 보면서 무의식에 도달한 것 같은 신비함을 느껴 이것을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강 운은 구름, 마음 등의 변화를 관찰하여 화면에 담는다. 구름 연작과 같은 초기작은 무한히 펼쳐져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여 그린 것이고, 근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상을 관찰하여 색상과 묘법의 실험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모티브와 표현법의 변화에도 일관한 작가의 화두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며, 변화를 목도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각자 실제 삶 속에서 수행의 과정을 실천하며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음산책」 시리즈는 개인의 상처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COVID 19 등 시대의 큰 사건에서 세대가 겪어야 했던 상처에 대한 치유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언뜻 보면 아름다운 색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의 표면에 작가의 마음을 써 내려간 내러티브가 겹겹이 쌓여있어 아름다움 이상을 느낄 수 있다. 반복된 글씨로 만든 거친 표면은 마음의 상처를, 여러색 물감이 섞여 완성된 색깔은 치유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눈으로만 보아도 화면의 거친 표면이 피부에 실제로 닿는 듯한 작품 「마음산책」은 작가가 오랜 시간을 두고 실천했던, 사랑하는 부인을 잃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전하고 있어 작품과 관객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한다.
정광희는 독특한 시선으로 수묵 추상 작업을 한다. 서예를 전공한 작가는 문자를 사용하는 서예는 의미론적 사고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 벗어나고자 서예가 아닌 회화, 회화가 아닌 서예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볼법한 추상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형상에 생각을 가두는 관념의 집착에서 나아가기 위함이다. 「자성의 길」은 작가가 인식으로 부터 해방된, 새로운 시그널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한지 조각, 먹, 젓가락을 사용한 이 작품은 백토물에 그릇을 통째로 담가 분장하는 분청사기의 담금 분장 기법과 한 획을 단숨에 긋는 서예의 일 획과의 일치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각각 다르게 먹물이 든 한지의 모습은 살아 있는 붓의 움직임 즉 용필用筆과 같다. 전통 서예의 미학적 사유와 작가의 추상적 사고를 가로지르는 작업 과정은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를 긋는다」는 한지 위에 '一' 자를 그으며 각자의 내면을 살펴보는 시민참여형 프로젝트이다. 한 일자를 긋는 행위는 곧 '나를 긋는 행위'로, 있는 그대로 참 나를 대면하게 한다.
서정민은 한지로 만든 선線을 캔버스 위에 조형화하여 노자의 무위無爲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초기 고향 풍경을 그리다 '선'에서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찾은 작가는 '우리 각자는 무無의 공간을 채워야 본연의 선을 살릴 수 있으며, 또 채워진 공간을 다시 비워야만 본연의 선을 살릴 수 있다'는 도덕경의 글귀에서 선의 의미를 재발견하였다. 모아 놓은 한지를 동그랗게 말고, 자르고, 일정한 크기로 토막 내어 선 모양의 한지 조각을 만드는 일련의 작업 과정은 이치理致를 찾기 위한 자기 수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에 전시하는 「함성」은 서예 습작 한지로 만든 수 천개의 선들을 화면 위에 조형화 한 것으로, 한지에 쓰인 고전 명문의 의미가 더해져 전통을 근간으로 한 우리의 정서를 표현한다. 「함성」, 「선들의 여행」이 선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었다면 최근작 「선」은 조금씩 선을 덜어내고 비우는 작업이다. 본인의 선의 의미에 보다 접근 하고자 한 이 작품은 '유有와 무無가 공존하는 무위의 철학의 현대적 해석'을 전한다.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추상한다'는 것은 본질을 더 어렵고 희미하게 하는 행위가 아닌, 사전적 의미 그대로 대상에서 공통점을 파악하여 중요한 것을 추출하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상미술을 해석한다면 우리가 접하는 일상, 풍경 등에서 작가들의 시선으로 추출된 보이지 않는 풍경은 그들이 요약하고 파악한 서술적인 풍경들인 셈이다. 작업에 몰두하며 실천적 차원에서의 수행과정을 거친 여섯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의 울림을 얻으시길 바란다. ■ 최수연
작가의 작품근원을 이루는 즉 회화의 근원에 대해 성찰해 보는 "Black painting"과 더불어 특정 주제를 가지고 제작되어 지는 작품시리즈 가 몇 있는데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바라보는 이 시대를 담아보는 것(Anthropocene)과 회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빛을 화면에 담아보는 실험적 작품(floating view)들이다. 작품들은 어떤 형체들을 갖추지 않았으니 이것은 아직 보여지지 않은 영역에 대한 시각화 시도와 극도록 세분화되어 그 전체를 오히려 파악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대한 예감들을 보여준다. 인류세는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세를 의미하는 'cene'를 합쳐서 만든 용어이다. 지질학적 시대는 -대, -기, -세로 구분되는데,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지각변화와 생물종의 변화이다. 이것은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것이라 의미하며 작품을 통해 미래를 예감하는 의미이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금까지는 배경으로 치부했던 비인간 존재들이 무대 위에 한꺼번에 행위자로 등장하는 새로운 드라마의 시작을 알린다. 비인간 존재들은 인간이 완전히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자체의 행위성을 갖는다." 출처: 포스트휴머니즘과 인류세 ■ 김유섭
작품을 구성하는 분절된 형태 혹은 입방은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형태와 색, 입체감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캔버스를 채워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인간의 군상과 도시이미지로부터 비롯된 세상의 이미지를 사람들로 이어가 이를 작품에 반영하였다. 인간 누구나 갖고있는 아우라Aura를 각각의 모양과 형태로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하였다. 나의 작품 안에 우리들의 모습이 다양한 색채와 공간적 어울림을 통해 함께 있을 때 더 큰 아우라를 발산하고 인간 또한 결코 혼자서는 빛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오늘도 작품을 통해 삶을 위로받고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결국 우리 개개인의 소중한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 이 순간도 작업 중이다. ■ 박은수
사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구상이라고 말한다. 추상 사진은 구상 속에서 새로운 형상을 도출하고,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며 사진의 정체성과 본질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인 '낯섦'과 '신비로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무제의 공간, The Untitle Space」 작품은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소멸의 세계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물과 먹이 결합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찰나를 포착하여 형태의 추상미와 조형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순환적인 흐름과 빛의 변화를 통한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지점을 담고 싶었다. 이 경계선이 바로 아름다움과 매혹, 몽환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다. 이러한 감정의 추이는 물과 먹의 만남으로 인한 순간의 변화하는 이미지를 통해 초월적인 영역에 접근하게 된다. 이것은 정형화된 형식 없이 내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 매체(사진, 미디어아트, 설치 등)를 택하여 내면의 세계의 표현이다. ■ 이승하
추수가 끝난 가을들녘 논 가운데 서면 코를 간지럽히는 볏짚 내음과 함께 쓸쓸하고 담백함이 묻어있다. 살갗의 솜털을 건드리는 공기는 알싸하게 가을을 느끼게 하며, 저녁나절이면 반음의 빛은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내재적 흐름으로 인해 더 쓸쓸하고 담백하다. 이렇듯 쓸쓸하고 담백한 것은 자연계에도 있고 인간의 마음속에도 있다. 내가 하늘의 구름을 그리게 된 건 모양이 있으면서도 없는 구상과 추상의 현상에서 시작됐다. 물은 기체, 액체, 고체 상태로 시작도, 끝도 없이 변하며 물질에서 에너지로, 에너지에서 물질로 변환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실체를 드러내면서 말이다.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전에 출품한 「마음산책」연작들 또한 행·불행이 한 덩어리인 마음으로부터 시작됐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머리? 가슴? 분명 존재하는데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모른다. 이렇듯 존재하지만 실체를 알기 힘든 '마음'을 나의 감각과 화법으로 드러내려했다. 「마음산책」 연작을 하게 된 계기는 아내와 사별 후 딸아이와 '우울증'을 이야기하며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대화를 녹음해서 듣고 타이핑 하면서 부터이다. 작품 내용에는 나의 삶, 반려기억, 감정이 타임캡슐처럼 들어있다. 기법의 특징은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한 간접 촉감인 '시각적 촉감'을 구현하는 것이다. 즉 감상자의 눈이 손이 되어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캔버스 표면을 만지는듯한 공감각적 상상력이 돋보이게 하는 조형 어법이다. 나에게 혼색은 단순히 색을 섞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섞는 것이다. 스크래치 된 글자 내용은 아프지만 희망의 색으로 덧입히면 제3의 치유의 행간이 된다. 그리고 감상자들에게 어떻게 당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희망을 발견할 거냐고 질문 한다. "예술은 질문하는 사람에게만 예술로 속삭일 뿐이다." 말 못할 삶의 흔적이나 질문들을 쓰고 지우며 치유되는 과정에서 생긴 여백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예술이다. ■ 강운
중학교 시절 능가사라는 절로 소풍을 갔었다. 절 입구에 작은 또랑이 있었고 그 맑은 물속 안에는 수많은 파편이 있었다. 건져서 가지고 놀았고 책상 앞에 두고 관찰을 했던 기억이 있다. 훗날 분청사기 덤벙 기법으로 만든 파편임을 알게 되었다. 옛 도공이 도자기에 유약을 바를 때 유약 통에 덤벙 넣었다 빼는 "덤벙 기법"은 서예의 일획론과 많은 부분이 일치되어 자연스럽게 연결하게 되었다. 한숨에 긋는 일획처럼 젓가락으로 작은 한지 입체를 집어서 먹물통에 넣었다 빼는 방법으로 응용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서예는 글이 없어도 되고 붓이 없어도 충분하다. 이유는 뜻과 형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먹을 벼루에 천천히 가는 것, 먹과 물의 긴밀한 만남을 주도하는 행위 속에 깊은 뜻을 풀어가는 이것만으로 이미 좁게 해석해도 서예가 아니겠는가? 또한 서예의 이론 중에 하나인 向背향배가 있다. 같음을 피하는 방법으로 서로 등을 지게 하는 조형 원리를 말한다. 나의 작업에서 공간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원리로서 적용하고 있다. 특히 서예에서 점을 찍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살아 있는 점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정지된 단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산 비탈길에서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것처럼 표현하려는 중요한 관점을 살렸다. 한 점 한 점을 먹물에 담그는 과정은 몰입의 순도를 어렵지 않게 끌어 올려 준다. 한 글자를 쓰고 다음 글자로 넘어 가는 운필의 과정도 마찬가지로 살아 움직임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할 나위 없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고 탄력 있는 내면의 근육을 만드는 일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이런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성실함은 나의 마음 한가운데서 나의 힘으로 나의 마음의 빛을 환하게 밝히려는 의지가 된다. 또한 늘 깨어 있기 위한 자연스러운 수행의 과정이다. 나는 먹을 통해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언어 이전에 그 무엇과 언어를 넘어선 언어, 또한 언어의 없음으로부터 시작한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언어로서 다 드러내지 못한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마음의 풍경 속에 밝은 빛이 되도록... 이것은 "자성의 길"이다. ■ 정광희
이건 미친 짓이다 ! 왠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찢고 자르고, 토막 내고 쪼개고, 붙이고 깎아내고, 압축하고, 대패질에 끊임없이 시간과 노동을 쏟아붓는다. 공구와 기구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작업실은 마치 공장을 연상시킨다. 내 작업은 지인 서실에 습작으로 쌓인 서지를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공이 쌓인 서예가들의 습작을 수집하는 것은 단순한 종이를 모으는 것이 아닌 글을 모으는 과정이다. 서예가들이 유가와 도가 등 동양의 고전 명문과 서체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미완의 습작 글들을 모아서 말고, 자르고, 풀을 먹여 건조 시킨 후 다시 일정한 크기로 토막 내고 쪼개어 한지 조각들을 만든 후 스케치 된 캔버스 위에 풀로 붙여 이미지를 구축한다. 노동으로 쌓아 올린 말(글)들의 숲! 나의 이 광기에 찬 열정과 땀과 소비된 시간으로 무엇을 증명할 것인가? 나는 이점을 늘 고민하면서 창작에 질문한다. 선 긋기로 시작한 내 작업은 한지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단초가 되었다. 팔레트의 물감과 붓을 버리고 매일 작업실에 박혀 선을 긋는 일과는 마치 도를 닦는 것처럼 자기 수련의 과정이었다. 선을 통해 선을 벗어나기 위한 수년 동안의 선 긋기 행위는 동양 고전의 흔적을 수집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서체가 이입된 한지 토막들을 화면에 집적하면서 우리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지점을 찾고자 했다. 한지를 늘 곁에두고 붓글씨를 즐겨 쓰던 선조들의 서체 문화와 유교 사회가 기반이된 가족 문화는 우리의 정서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서체 수련을 목적으로 사용된 서지를 뭉쳐 절단된 토막의 단면은 글이 자연스럽게 선으로 바뀌는 지점으로 노자의 무위 이념을 차용해 보고자 했다. 선으로 집적된 "무심", "순환", "함성", "선들의 여행" 작품은 수천, 수 만개의 한지 조각들을 집적시켜 쌓아 올린 노동의 흔적들로 표현했다. 작가가 평생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노동으로 빚어낸 땀의 결과물은 생존의 경계를 의미하는 선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동시대 안에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나의 행위는 노동이 습관이 되어버린 이 미친 열정만이 가장 적절한 조형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땀을 절여 소금산을 쌓는 나는 현재 진행형이다. ■ 서정민
A Landscape of Invisible Words ● A Landscape of Invisible Words presents the works of six local artists who embody the invisible landscape on the canvas through their unique perspectives. ● The invisible is expressed mainly through the process of abstraction. The dictionary definition of being 'abstract' is 'to identify and extract commonalities from individual objects or concepts.' In other words, it means that one encapsulates specific aspects among many attributes of an object in order to understand it. The 'act of abstraction' is what we always do in our daily lives when we encounter important or complicated situations. ● In the history of art, abstract art emerged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and was experimented within a short period of time during the twentieth century. It was the most chaotic period in history, and abstract art attracted more attention than ever with the rapid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Since the twentieth century, the art of mimicry and representation no longer motivated artists. This developed into abstract art in two key directions that either implied the visible world or extracted the essence beyond its appearance. For abstract artists, 'creation' became the driving force behind all the actions they experimented with. ● In the meantime, by the 1950s, discussions on abstract art took place in the Honam region, ahead of the art scene in Seoul. Kang Yong-un and Yang Sooa, who had studied avant-garde painting in Japan, informed the Honam art scene about the importance of abstract art. Epoque, an association of Gwangju artists that launched in the 1960s, is still maintaining the avantgarde of art in the region with the spirit of the artists who pioneered abstract art. ● This exhibition began with a question about the current state of the art in the Honam region, which was standing at the beginning of Korean abstract art in the 1950s. In contemporary art, there is a trend of artistic diversification. Figurative art, which was almost neglected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is gaining traction once again and creations through various media and experimental art are continuing. However, non-representational works on a flat canvas are still meaningful, and they resonate with the audience. Participating artists Kim Yusob, Park Eunsoo, Lee Seungha, Kang Un, Jeong Gwanghee, and Suh Jeongmin are mid-career artists who started their career in the 1980s and 90s, when Korean contemporary art became more diverse. The works on display contain not only non-representational forms, but also specific narratives that reveal the artists' inner worlds through their creativity.
Kim Yusob investigates the essence and possibility of painting. Contemplating 'what it means to paint,' he realizes that true painting is about returning to the concept of nothingness in shape and color. Then, as an artist who finds the essence of painting in the color itself, he presents his own topic through works that empty the canvas in black and reveal dynamic primary colors. In Floating View, a new series of works to be introduced in the current exhibition, various primary colors form a harmonious composition while giving a sense of tension at the same time. While the previous Black Painting series expressed the essence of painting by exclusively presenting the color of black, Floating View explores the possibility of painting by exposing splendid primary colors hidden beneath the color of black. Antropocene is a series about the problems the artist senses in our time and the world of the future. It invites us to think about what the Anthropocene means as a term to distinguish a new era and what will be the role of future humans who may become post-humans.
Park Eunsoo presents an urban landscape composed of geometric shapes and paper reliefs with the artist's unique characteristics. Park has employed portraits of contemporaries, crowds, and urban landscapes as creative subjects. In recent years, he is emphasizing geometric shapes and colors. He particularly uses newspapers, which contain the stories of contemporaries. He then stacks thin layers of shredded newspapers on the canvas to uneven surfaces and repeatedly carves them out until the desired shape is realized. The repeated application of colors until the intended meaning is materialized, an urban landscape is completed with an aura of shape and color through the artist's labor and discipline. Faces of Life, Aura is applied with layers of paint on the geometric paper reliefs that are derived from the images of crowds and cities. By doing so, it represents aura, a unique mood of an individual. The works in the series are filled with geometric three-dimensional surfaces. These surfaces are the space of the universe, the daily life of humans, and nature.
Lee Seungha deals with the boundary between the conscious and the unconscious and creation and extinction by capturing the irregular forms that exist in reality. Lee created repre sentational photography works in the early years of his artistic career, but his recent focus is to capture real images that metaphor his inner mind. Through the images of irregular forms, he intends to experiment with the painterly possibilities of photography and video. On display in the exhibition, The Untitled Space series is composed of two video works that capture the process of mixing ink and water through the artist's act of dropping water on ink. Lee created the works to capture the beauty he felt from the form he saw in the combination of ink and water. As they are produced at different times and places, they generate different images. The observation of moving ink that changes by time, space, and environment will provide a sense of unfamiliarity by seeing shapes that no one has ever seen before and a mystic experience of reaching the unconscious.
Kang Un observes the changes in clouds and his mind, expressing them on his canvases. His early works, such as the series on clouds, were created through his observation of everchanging nature. His recent works are the result of his observation of invisible mental images, expressed through experiments with color and brushstroke. Kang disciplines himself through his work in the midst of ever-continuing changes to find his own artistic world. A Walk through the Mind series shows the wounds that individuals suffered and wounds that different generations had to suffer from the major course of history such as the May 18 Democratic Movement and the COVID-19 pandemic, along with their healing process. At first glance, these works look as if they merely emphasize beautiful colors. But with a closer look, there is a sense beyond beauty with the layers of narratives about the artist's mind. With a mere look at the surface, A Walk through the Mind gives a tactile sense of roughness. As it conveys the artist's process of losing a beloved person and recovering from the wound, it takes a further step to narrow the distance from the viewers.
Jeong Gwanghee produces abstract ink wash paintings with a unique artistic perspective. Having studied calligraphy, the artist is continuing to create paintings that are not calligraphy and vice versa in order not to restrain himself from the notion of calligraphy as an art of letters. The Way of Reflection is one of his many creations that signal his breakaway from his own perception. Created with hanji pieces, ink, and chopsticks, the series is conceived from a coincidence between the soaking technique used to produce Korean Buncheong ceramics and the single stroke technique in calligraphy. The look of hanji with different colors of ink resembles the movement of an animate brush. The creative process that transcends the aesthetic thoughts of traditional calligraphy and the artist's abstract thinking also provides a chance to have a glimpse at his inner mind. Draw a stroke as oneself is a participatory project that invites the viewers to draw a stroke of line that signifies the number one on hanji paper and look into their inner world. The act of drawing a single line is the 'act of drawing oneself,' and it allows one to face one's true self.
Suh Jeongmin creates lines made of hanji on the canvas, attempting to present a new interpretation of Lao Tzu's philosophy of non-action. The artist found his own painterly language in 'lines' while drawing the landscape of his hometown in his early works. He then rediscovered the meaning of lines in Tao Te Ching, 'the natural line can be brought to life when the space of nothingness is filled, and the filled space shall be emptied in order to bring the natural line.' For the artist, the process of rolling hanji into a circle, cutting it, and dividing it into pieces is also a process of self-discipline to find the way the world works. SHOUT is a series based on the accumulation of lines made of hanji he used to study calligraphy. Added with the meaning of classic inscriptions written on hanji, the work conveys Korean emotions that are rooted in tradition. While the works in the SHOUT and Lines of Travel series accumulate lines, LINE series presents a gradual process of removing and emptying lines. Through the work, the artist approaches his conception of lines, conveying a 'modern interpretation of the philosophy of nonaction where existence and nothingness coexist.' ● The act of 'abstraction' is not about making it more difficult to access the essence. Instead, as it is defined in the dictionary, it is an act of 'identifying and extracting commonalities from individual objects and concepts.' If we are to interpret abstract art in that sense, the invisible landscapes extracted through the eyes of the artists from daily life and mundane scenes can be thought of as descriptive landscapes that they have summarized and com- prehended. It is hoped that the exhibition provides an occasion to experience the resonance of the invisible landscape with the works of six artists who have gone through the process of discipline by devoting themselves to their art. ■ Choi Sooyeon
Vol.20221218a | 보이지 않는 말들의 풍경 A Landscape of Invisible Word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