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

백지훈展 / BAEKGHUN / 白知勳 / mixed media   2022_1227 ▶ 2023_0204 / 일요일 휴관

백지훈_Nontype_03_07_포맥스에 아크릴채색_91×183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아트스페이스 링크 기획 / 이지인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링크 Artspace LINK 부산 수영구 수영로 371 (남천동 345번지) Tel. +82.(0)51.626.1026 www.artspacelink.com @artspacelink

'집 안에 있으면서도 천하의 일을 모두 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노자의 '不出戶知天下'에는 화가 백지훈 이 자신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있다. 오랫동안 회화의 본질과 형식의 탐구에 천착해온 그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오로지 그의 이미지 안에서다. 덧붙여 그를 그림 그리게 하는 동인(動因)은 우연히 화면을 뚫고 돌출되는 어떠한 것을 만나는 찰나의 순간이다. 그에게 있어 이질적인 다른 에너지가 들어오는 것 그리고 그 이질적인 다른 에너지가 들어옴으로써 해서 생겨나는 '순간'은 하늘 아래 오직 그의 일상적 공간에서만 비롯된다. ■ 이지인

백지훈_Nontype_03_09_포맥스에 아크릴채색_91×183cm_2022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모든 것은 파편이다 : 파편의 미학 ● "산행을 하며 자연을 접하다 보면 문득 다가오는 대상들이 있다."(2022 전시 글) 물질적인 세계와 비물질적인 세계, 그리기와 지우기, 주체와 객체, 프레임과 파편을 이야기하던 백지훈이 갑자기 자연을 이야기한다. 그는 회화적 평면의 물질적 구조와 디지털 이미지의 비물질적 구조의 유비 관계를 탐구하여 그리기와 지우기를 통해 디지털과 전통 회화의 교란 및 혼합되는 지점을 실험하고, 디지털의 레이어와 프레임 방식을 물리적 회화에서 구현하는 방식을 고민하던 작가였다. 그가 돌연 자연에 관한 사유를 풀어놓는다. 백지훈은 자연을 보며 어떤 사유의 임계점을 넘어선 듯 보인다. 작가는 산행 중에 발견한 출처 모르는 자연의 파편들, 바닥에 깔린 흙, 깨진 돌덩어리, 부서진 낙엽, 밟힌 잡초, 꺾인 나뭇가지 등등, 이것들이 자신의 작업과 닮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자그마한 것들이 모여서 자연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백지훈_Type M_08_5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72.7cm_2022
백지훈_Type M_07_5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72.7cm_2022

실로 모든 것이 파편이다. 그림은 하나의 붓질로부터 시작하여 붓질들이 연장되고 덮이고 닦이면서 완성된다. 결국 그림은 붓질들의 모음이다. 층층이 쌓인 붓질들의 레이어가 그림을 만든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룬다. 물론 부분과 파편은 그 의미가 다르다. 부분이 전체의 한 범위를 나타낸다면, 파편은 전체에 속하지 못한, 떨어져 나온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부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떨어져 나오기 전까지 그것은 전체와 한 덩어리였고, 그 이전에는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였다. 따라서 전체와 부분, 파편은 다른 부분과의 밀접도에 따라 달리 부르는 명칭일 뿐 그 속성은 같다. 그래서 부분들이 모여 이룬 전체를 주체로, 그 주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을 객체로 나누는 방식은 무척 이상한 이원론이다.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백지훈_Type S_05_5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22

백지훈은 "이원론적 인식 너머에 있는 또는 그 근원에 있는 세계"를 고민해왔다. "디지털에서 잉태된 어떤 특정 붓질의 형태를 물리적 형태로 바꿔보는 실험"을 통해 비가시적인 세계를 탐색했고, "사소하고 소소한 파편 덩어리의 붓질"을 통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언젠가는 어떤 무언가가 될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완성과 과정, 쓸모와 필요,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의 근원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2016년 「Type 01」 연작과 2017년 「Type 02」 연작은 표현의 면모를 봤을 때, 디지털과 물리적 회화의 혼합과 교란을 보여준 일종의 포스트-인터넷 아트(Post-internet Art)라 할 수 있다. 이후에 보여준 「Type 05」 연작(2019), 「Type S」·「Type M」·「Type P」·「Type F」 연작(2019) 등도 디지털적인 표현이 부각되는 작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2016년 이후로 화면에서 디지털 이미지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스트-인터넷 아트의 면모가 약해졌다는 의미다. 반면에 더욱 회화적 행위성을 강조하면서 개체 개별이 잘 드러나도록 병렬 혹은 레이어 중첩 구조를 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Archetype 01」 연작(2019)이나 「Type 05」 연작(2019)에서 그 징후가 보였으며, 2020년부터 선보인 「Nontype」 연작과 「Type」 연작에서는 그 면모가 확연해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백지훈이 단순히 디지털적인 표현을 전통 회화로 구현하는 것,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교란하는 것이 그의 작업 중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적인 표현은 단지 그의 작업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다.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백지훈_不出戶知天下 불출호지천하展_아트스페이스 링크_2022

앞서 말했듯이 그는 '이원론적 인식 너머, 근원적인 세계'에 관심이 있다. 그림이 되기 전의 붓질 덩어리들의 세계, 디지털을 구성하는 각각의 레이어의 세계, 그리고 캔버스의 그리는 행위와 디지털에서 그리는 행위의 근원적 의미, 더 나아가 해체가 지닌 구축으로서 가능성, 전체와 부분의 관계, 각각의 부분과 파편이 지닌 힘 ……. 이것이 백지훈이 보여주는 근원적 세계이며 형상이다. 작가는 총체화된 주체가 감추고 있던 주체의 구성 요소인 객체들을 끌어내 보여줌으로써 이원론적인 인식을 무너트린다. 그는 디지털과 전통 회화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전체와 부분을, 부분과 파편을, 완성과 과정을, 주체와 대상을, 가시와 비가시를, 해체와 구축을, 그리고 총체로서 자연과 출처 모르는 자연의 파편들을, 그 경계들을 무너트린다. 그래서 백지훈에게 해체는 구축이며, 지우기는 그리기며, 과정은 완성이며, 파편은 또 다른 작은 세계다. ■ 안진국

Vol.20221227d | 백지훈展 / BAEKGHUN / 白知勳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