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多島海

한생곤展 / HANSAENGGON / 韓生坤 / painting   2022_1230 ▶ 2023_0226 / 월~목요일 휴관

한생곤_다도해_캔버스에 소뼈, 홍합, 호분, 안료, 아크릴채색_91×65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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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 월~목요일 휴관

삼자갤러리 SAMZA GALLERY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1876번길 4 (지족리 281-7번지) 2층 Tel. +82.(0)10.4798.6671 blog.naver.com/samzagallery

산수미학의 재해석과 '제망찰해(帝網刹海)'의 조형인식 ● 한생곤 작가의 19회 회화전은 동아시아 전통의 산수 관념에 내재한 회화성의 자각을 주로 남해의 바다와 섬에 이입한 작품과 더불어 '제망찰해'라고 하는 불교 화엄 사상의 용어에서 비롯한 조형론을 선보이는 자리다. ●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보면 산수화는 누가 그리든 그 형식과 내용이 대동소이하므로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예술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함축된 미학적 관념은 특히 회화성의 차원에서 고유하고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가령 서양의 회화사를 사실성을 추구하는 여정으로 본다면, 산수화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전통 회화는 그렇듯 천편일률적인 천착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사물성을 밝히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성의 추구는 대상을 전제하고, 사물성의 추구는 사물 그 자체를 앞세운다. 대상의 사실성이 회화적 재현과 짝짓는다면, 사물의 사물성은 회화적 재생과 맞먹는다. 특히 산수 관념에서 확장된 각종 식물표현에서 흔히 말하는 일필휘지나 기운생동이라는 전통의 회화이론은 현상적 사물의 표면 모사를 넘어 사물의 사물성, 즉 사물 자체의 성질을 그대로 되살리는 방법이다. 한생곤의 근작은 바로 이와 같은 '산수'를 둘러싼 관점과 관념과 표현법과 화론 등을 모태로 한 인문학적 해석이다.

한생곤_겨울산_캔버스에 홍합, 호분, 안료, 아크릴채색_65×90cm_2022

작가의 산수 그림에서 구도는 고정된 시점에 의존하지 않는다. 간혹 부감법과 산점투시로써 배치된 사물의 균형과 리듬을 고려할 뿐이다. 색감과 바탕 질감은 다소 퇴화한 양상이다. 형상은 선과 면을 통해 본질적인 형태로 묘사되고, 산속에 빽빽한 나무는 통기성 있는 배열을 통해 바람의 흐름을 암시하면서 전체적으로 시적 운율을 형성한다. 나무를 감춘 산도 있고 나무를 품은 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무와 산의, 그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전통의 산수 관념이 천인합일이라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지향하듯, 한생곤의 산수 그림에서 그 모든 사물의 표현은 자연의 무늬를 통해 끝내 사람의 무늬로서 마음과 정서의 결을 구성한다.

한생곤_겨울산_캔버스에 소뼈, 홍합, 호분, 안료, 아크릴채색_91×65cm_2022

전통의 사유에서 산수는 '산하', '강산', '산천', '산해' 등의 인문 지리학적 의미 조합과 유사하면서도 직접적인 공간적 지리학적 의미가 아닌 '물'이라는 질료가 가미됨으로써 현상을 초월한 무한 시공의 표상으로 각인된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산수에 내재한 무한성과 영원성을 노래하는 계기로서 형이상학적 시간과 공간의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전통 산수화에서의 '준법'에 대한 환기로부터 구체화한다. 준법에서 준은 주름을 뜻한다. 주름으로 은유한 사물의 질감은 그 사물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물리적 차원 너머 관념의 차원으로 환원한 것이다. 작가는 사물의 질감을 선묘로써 표현하는 가운데 그것을 주름으로 인식하는 사유에 주목하고 그것을 자기 작업에서 체험하고자 한다. ● 근원적으로 볼 때 산수의 형이상학적 표상의 뿌리는 바로 『주역』의 괘상이다. 괘에서의 상, 즉 부호는 하늘과 땅 사이의 사물과 그 모든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추상적인 이미지로서 사물의 보편성을 그리는 동시에 실제 형상성 또한 수반하고 있다. 64괘의 특수한 도상과 거기에 얽힌 계사로 구성된 『주역』에서 각각의 부호는 사물의 사물성을 수반한 표상이다. 『주역』에서 산수 각각을 표상하는 괘는 간괘와 태괘다. 직접적으로 물을 나타내는 감괘가 있지만 그것은 불을 나타내는 이괘와 상관된다. 『주역』에서 산수는 산에서 비롯한 간괘와 못에서 비롯한 태괘를 통해 본래의 형상성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표상으로서 정립된다.

한생곤_산수몽_캔버스에 소뼈, 호분, 안료_117×80cm_2016

『주역』의 도상적 사유가 형이상학적 표상으로서 산수 관념의 근원이므로 작가에게서 산수에의 관심과 더불어 『주역』의 도상적 사유에 대한 주목이 병행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본래 점복의 책인 『주역』이 철학적 사유로 해석되는 가운데 특히 고대 동아시아의 회화와 서예 미학의 이론적 근거가 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통 회화의 미학적 해석에서 『주역』의 논리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심지어 현대의 특정 회화 장르의 비평에서도 『주역』의 논리는 종종 소환된다. 하지만 『주역』의 사유와 도상의 논리를 직접적인 회화 조형의 원리로서 재해석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작가에게는 서양의 존재론적 지평(서양화)과 동양의 마음론적 지평(동양화)의 교차 접점이 바로 『주역』이다.

한생곤_섬_캔버스에 소뼈, 호분, 안료_41×27cm_2016 한생곤_산수몽_캔버스에 소뼈, 호분, 안료_41×27cm_2016

산수의 재해석과 연관된 것으로 『주역』의 도상적 사유를 조형의 원리로 재해석해 창작에 직접 활용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은 아직 미완이다. 최근의 그림에서도 『주역』의 괘상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최근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작가의 성찰은 바로 '제망찰해'에서 볼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제망찰해'는 작가가 산수 그림에서 물의 공간 표현을 고민하면서 맞이한 불교의 화엄 사상의 용어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서로 기대고 서로를 비춤으로써 연쇄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포함해 부분과 전체가 서로를 무한히 포섭하는 양상을 의미하며 인드라망과 그 뜻이 통한다. 또한 그것은 전일적 우주관과 도상적이고 은유적인 사유체계를 비롯해서 특히 의미의 차원에서 『주역』의 사유와 일맥상통한다. ● '제망찰해'는 무엇보다 작가가 그림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겪은 사유와 체험의 산전수전이 오롯이 집적된 조형적 원리의 발견이기도 하다. 작가가 석사학위 단계에서부터 쌓아 온 사유의 기록과 수많은 드로잉들을 보면 비록 '제망찰해'라는 이름은 없었어도 같은 맥락의 조형 실험을 지속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조형 실험이 결과적으로 지금의 회화적 '제망찰해'의 인식으로 귀결된 것이다. ● '제망찰해'의 작품에서 공간은 평면적이면서 무한히 확장되는 형태로 전개되며, 제석천의 그물 이미지에서 비롯했을 법한 수많은 갈래의 선들이 서로 교차한다. 원시 암각화를 연상케 하는 도상적 사물들은 그물같이 조합된 선이 마주치면서 형성된다. 복잡한 선인 듯 보여도 본연의 질서로 직조되고, 부분과 전체는 거의 기계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감보다는 사물과 사태의 상호 얽힘과 기댐, 존재 사건의 연쇄작용, 그 우연성과 필연성 등, 그야말로 '제망찰해'의 의미를 시각적 조형으로 되살린 광경을 목도한다.

한생곤_제망찰해_캔버스에 홍합, 호분, 안료, 아크릴채색_97×194cm_2022
한생곤_제망찰해_캔버스에 홍합, 호분, 안료, 아크릴채색_97×194cm_2022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번 전시 그림에 표현된 것들은 초연결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모습과도 연동된다. 산수 그림에서 산이기도 한 섬은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한다. '제망찰해'의 그림에서 바다는 주름, 그 물결무늬의 도상이면서, 동시에 산수 관념과 『주역』의 도상적 사유와 '제망찰해'의 무한 연쇄의 조형 논리가 현실적으로 융합된 사천과 남해의 다도해 풍경이기도 하다.

한생곤_다도해_캔버스에 홍합, 호분, 안료, 아크릴채색_90×145cm_2022
한생곤_산수도_캔버스에 홍합, 호분, 콘테, 소주병 가루_40×140cm_2017

한생곤 작가는 상기한 근작을 통해 자기 그림의 숲길을 찾은 듯하다. 거기에 더해서, 혹은 거기에 걸맞게, 작가의 작업이 수행자의 수행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즈음의 회화 작업이 비록 자본주의적 고급 상품 생산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해도, 그림이 자기의 온 존재를 걸고 세계와 사물의 진면목을 밝히고자 하는 실존적 몸부림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런 작가의 작업은 수행자의 구도 행위와 다름없을 것이다. ■ 정석도

Vol.20221230c | 한생곤展 / HANSAENGGON / 韓生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