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보고 걷는 사람 A Ground Watcher

이경하展 / LEEKYOUNGHA / 李京夏 / painting   2023_0111 ▶ 2023_0212

이경하_초록 다음의 색들2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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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111_수요일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처음에는 자연을 아주 멀리서 바라보았다. 네팔의 얼음 덮인 높은 산은 내 마음 속에서 가장 먼 곳이었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온갖 잡다한 일상들, 아스팔트 바닥과 콘크리트, 플라스틱들 뿐 이었다. 마음의 고민들이 실현되기 어려울 때 마다 얼음 덮인 먼 곳의 산이 마치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처럼 떠올랐고, 이러한 먼 산을 나와 가까이 있는 것들과 함께 놓고 그리면서 내 삶의 심정적 위치를 그림 속에서 찾아보려고 하였다. ● 자연은 영원히 회귀되는 순환 속에서 변치 않는 모습으로 존재하며 그 거대한 자연 위에 사람들은 티끌처럼 스쳐지나가는 미약한 존재라는 마음으로 거대한 자연을 색을 다 뺀 상태로 (목탄으로) 표현하고 사람은 작게 그려 넣었던 것이 그러한 이유였다.

이경하_땅, 잎_캔버스에 유채_97×97cm_2022
이경하_초록 다음의 색들1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22

시간이 한참 흐르고, 매일 현실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해치워 나가야 하는 잡다한 일상으로 가득 찬 시간들을 보내면서, 에베레스트산처럼 먼 곳을 보던 시선은 바로 내 발밑의 잡풀들, 돌멩이들, 낙엽들, 새싹들로 옮겨졌다. '순환'이라는 단어로 압축하였던 자연의 변화는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가깝고도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나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요인이 되었다.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던 먼 시선이 내 발밑으로 좁아졌다. 나는 매일 매일 숲과 호숫가를 걸으면서, 도시의 아스팔트길, 보도블럭을 걸으면서 발밑의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땅바닥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점점 더 해져, 보도블럭 사이로 삐죽이 솟아난 잡풀들과 깊은 숲 속 자갈과 풀틈 사이의 작은 모래알 한 톨까지 살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봄에는 묵은 낙엽들 사이로 새로 돋아나는 온갖 새싹과 이파리들,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꽃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가을에는 온 산이 한꺼번에 떨어내는 잎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려고 숲 속을 누비고 다녔다.

이경하_공터드로잉9_종이에 목탄_40×40cm_2021
이경하_공터드로잉3_종이에 목탄_40×40cm_2021
이경하_공터드로잉4_종이에 목탄_76×76cm_2021

갖가지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는 다양한 색채와 다양한 형태의 잎, 열매, 가지들은 땅 바닥 위에서 제멋대로 어우러지면서 미학적으로 완전한 아름다운 구성을 이룬다. 둥글거나, 뾰족뾰족하거나, 길거나, 납작하거나 한 잎들이 제각각 색을 가지고 자기 형태의 존재를 뽐내고, 긴 가지들, 짧은 가지들, 구부러진 가지들과 작은 열매들은 어느 한 뼘의 땅 위에서도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위해 심혈을 다하여 떨어져 내려온다. 어느 구석을 바라보아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구성은 다 새롭고 아름답다. 테이블 위에 유한한 대상들을 올려 그렸던,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었던 네덜란드 정물화가 생각났다. 화가의 감각이나 관습에 의한 배치가 아니라 중력과 바람으로 우연히 놓여진 낙엽과 열매들, 돌맹이와 가지들의 색과 배치의 완벽성과 그 짧은 생명력은 네덜란드 정물화가 주는 의미보다 몇 배는 더 삶과 죽음, 그리고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잘 다룰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

이경하_땅, 잎3_캔버스에 유채_19×24cm_2022

큰 산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사람들을 그리다가 어느새 내가 그 산 속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했다. 산은 멀고 시커멓고 거대한 대상이 아니라, 내가 숨 쉬는 공기와 내 몸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땅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채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2023년 1월) ■ 이경하

Vol.20230111b | 이경하展 / LEEKYOUNGHA / 李京夏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