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木 The tree

이은숙展 / LEEEUNSOOK / 李恩淑 / photography   2023_0201 ▶ 2023_0213 / 화요일 휴관

이은숙_#30. 낭木_Gujwa, Jeju, 1/5_젤라틴 실버 프린트_28.5×57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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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브런치_brunch.co.kr/@eslee2662

작가와의 만남 / 2023_0201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화요일 휴관

스페이스 중학 SPACE JUNGHAK 서울 종로구 종로1길 55-1 2,3층 Tel. +82.(0)10.3842.9742 cafe.naver.com/spacejunghak www.instagram.com/space_junghak

나무 - 오래된 이야기 ● 이전에 나무가 있었다. 인류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 자연은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서로의 자양분을 나누고 관계했다. 때로는 같이 모여 있기도 하고, 때로는 다양한 식생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지구는 풍요로워졌다. ●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작가 이은숙은 유럽과 남미 등을 다니며 가슴에만 담던 풍경을 옮기고 싶어 사진을 시작하였다. ● 디지털 사진으로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사진을 난발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한장 한장 공들여 촬영해야만 하는, 필름과 인화지로 만드는 흑백 사진 작업을 배워 북해도와 제주도 작업을 하였다. 사진 작업을 하러 오던 그를 그 섬, 제주도가 붙잡게 되었고, 3년전부터는 제주도에서 살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아마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에서 태어난 작가이기에 바다, 섬에 대한 열망이 그를 북해도와 제주도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은숙_#29. 낭木_Pyoseon, Seogwipo, 1/5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8.5×57cm_2020

그는 척박한 자연에서 난 나무들도 돌과 바람에 시달리는 등 시련과 고난이 많았을 것이란 생각에 주목하였다. 그간 스쳐가면서 보지 못했던 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알아가며 사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고, 나무에서 더 나아가 그 곳의 하늘과 땅, 그리고 섬 생활의 시련과 고난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노력하였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나무에게서 작가는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하고, 이를 오롯이 나무와 사진에 담아 그 시간을 잡았다. ● 작가에게 오름과 들에 외롭게 있는 나무들은 외로움을 벗어나는 탈출구였고 피난처이며 그에게 친절한 친구였다.

이은숙_#3. 낭木_Andeok, Seogwipo, 1/10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4×24cm_2020

작가는 마이클 케냐Michael Kenna에게서 간결함과 임팩트를, 김영갑에게서 그의 처절한 삶과 열정을 배웠음을 숨기지 않는다. 사진이라는 예술은 대상 종속적이라 피사체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특히 풍경은 더욱 그러하다. 그 곳과 그 때를 정하면 작가로서 선택지는 몇 가지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에는 두 작가의 영향이 뚜렷이 비치지만 한편으로는 두 가지 색채가 합쳐져 작가 자신만의 시각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작가는 달걀껍데기 같은 질감과 색상의 인화지를 선택하며, 전통적인 흑백의 농담의 인화지를 벗어나 비바람 몰아치는 자연속의 나무를 High-Key (전체적으로 밝은 상태) Low-Contrast (낮은 대비)로 새롭게 재현하였다. 또한 필름을 사용하는 핫셀블라드503cw (Hasselblad 503cw)와 린호프612 (Linhof 612) 카메라를 사용하여 작업하며, 클래식 사진 프로세스인 젤라틴 실버 프린트(흑백은염사진, Gelatin Silver Print)로 인화하여 작업을 수공예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은숙_#4. 낭木_Andeok, Seogwipo, 1/10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4×24cm_2020

'나는 누구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에게서 자신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가지고 가는 나무같이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우아함을 가진 오름은 그 보아온 아픔을 한으로 삼아 사진의 배경이 되었고, 나무는 삶이 되었다. ● 언젠가 유럽의 소도시에서의 작은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작가에게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지 기대해 본다. ■ 이원균

이은숙_#7. 낭木_Andeok, Seogwipo, 1/10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4×24cm_2020
이은숙_#8. 낭木_Andeok, Seogwipo, 1/10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4×24cm_2020

낭1)木 ● 제주의 바람은, 특별하다. 어느 곳이나 바람은 있지만 제주의 바람은 방향성이 없이 사방에서 휘몰아친다. ● 제주의 하늘은, 특별하다. 어느 곳이나 하늘은 있지만 제주의 하늘은 자주 고갤 들어 그를 보게 만든다. ● 제주의 구름은, 아주 특별하다. 어느 곳이나 구름은 있겠지만 그 빈도는 너무 다를게다. 제주의 구름은 열 일한다. 살랑살랑 해와 숨바꼭질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커멓게 화난 얼굴이다가 비까지 뿌리고는 금새 옆동네로 가버릴 때도 있지만 드물게는 심통난 듯 몇날 몇일을 비로 퍼붓는다. ● 여름과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세번씩 겪도록 제주에 머무르게 하는 건 제주의 바람과 하늘, 그리고 구름이다. 그들을 - 하나되어 지독한 비바람을 동반하기도 하는 - 감내하는 제주의 대지, 대지에 뿌리내린 모든 것들은 그래서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

이은숙_#11. 낭木_ Pyoseon, Seogwipo, 1/7_ 젤라틴 실버 프린트_33×33cm_2021
이은숙_#14. 낭木_Pyoseon, Seogwipo, 1/7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2×44.5cm_2021
이은숙_#16. 낭木_Jocheon, Jeju, 1/5_젤라틴 실버 프린트_28.5×57cm_2022

3년 가까이 관광객, 제주도민들이 말하는 육지 것이 아니라 제주 원주민인 듯 제주의 내밀한 속살을 드려다보고 싶었다. 두려움을 떨치며 차 한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비포장 샛길로 빠져서는 종종 철조망을 넘거나 기어들어가 그 곳에서 만나는 '뿌리깊은' 나무는 늘 경외심을 갖게 만들었다. ● 세찬 바람과 비를 맞으며, 혹독한 더위와 칼날같은 추위를 견디며, 가장 선두에서 온갖 태풍을 맞으며 버텨온 그 생명력, 그들을 만나면서 작가도 단단해지고 싶었다. 아니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과 온 몸으로 소통하면서 내면의 깊은, 슬픔과 그리움도 단단해져 갔다. ● 아주 슬플지라도 아주 고달플지라도 아주 아플지라도 삶은 그들처럼 무심하게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는 위안을 받으면서.

이은숙_#20. 낭木_Daejeong, Seogwipo, 1/7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2×44.5cm_2021
이은숙_#21. 낭木_Hangyeong, Jeju, 1/7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2×44.5cm_2021

제주에서의 삶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바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덕분에 바다에 접한 섬마을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제주에서 1년살이를 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삶에 지쳐서 한달씩 두달씩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야만 할 때 외에는 길게 직장을 쉬어 본 적이 없었는데 실직도 했겠다, 시간은 많은데 코로나19로 하늘길은 막혔으니 매해 겨울마다 찾던 북해도의 눈밭도 누빌 수 없게 된 데다 늘 찾던 수영장도, 요가원도 문이 닫혔으니 뭘 하고 지내라는 건가 싶었다. ● 1년쯤 살아볼 요량으로 제주에 내려와서는 발길 닿는대로 제주 곳곳을 누볐다. 함덕에서 성산에서 애월에서 차귀도에서 멍때리게 하는 건 바다였지만 카메라를 꺼내고 삼각대를 세우고 필름을 셋팅하게 하는 건 한라산 아래 중산간 쪽이 더 자주였다. 유년 시절 산골 마을에서 나무와 소통했듯이 제주 곳곳의 나무들은 나를 친구로 맞아주었다.

이은숙_#26. 낭木_Hallim, Jeju, 1/10_젤라틴 실버 프린트_24×24cm_2020
이은숙_#34. 낭木_Hallim, Jeju, 1/7_젤라틴 실버 프린트_33×33cm_2020

길이 서툰 탓에 어딜 가든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야만 했는데 그녀는 결코 내 편이 아니었다. 큰 길, 빠른 길로만 안내하는 탓에 중간중간에 이정표를 찍어두고 에둘러 작은 길로 다니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마주하게 되는 보석같은 나무들…… ● 어느 집의 울타리에서, 밭의 둔덕에서, 목장 곁에서, 대지의 경계에서, 오름 중턱에서, 누군가의 무덤가에서 그들을 대면할 때 경박하지 않도록 애썼다. 수다스럽지 않도록 조심했다. ● 막막해 하거나, 떨고 있거나, 웃고 있거나, 때로는 혼자 있고 싶어하는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허락이 필요했다. 준비가 필요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아보지 못한, 존재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무거운 침묵으로 단련된 그들을 있는 그대로, 그러나 빛나도록 하늘을 구름을 빛을 안개를 꽃을 돌담을, 뒤로 오름을 알맞게 데려와야 했다. 때로는 바람을 잠재워야 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말을 걸어왔다. 슬프면 슬픈대로 사무치면 사무친대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삶은 살아지는 거라고…… ● 그들의 삶을 한 컷으로 농축해서 소장하듯이 필름에 담아 현상을 하고, 인화를 하는 과정은 그대로 삶의 치유였다. 작가가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작가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작업이었다.

이은숙_#38. 낭木_Seongsan, Seogwipo, 1/7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2×44.5cm_2022
이은숙_#39. 낭木_Andeok, Seogwipo, 1/7_ 젤라틴 실버 프린트_22×44.5cm_2022

제주에서의 삶이 팍팍해도, 불친절한 도민들이 '뭐하멘', '보잘데기없는 낭을 찍어 어따 쓰멘', 하고 끊임없이 구박해도 그들이 있기에 3년 가까이 버텨왔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 이은숙

* 각주 1) 나무의 제주 방언

Vol.20230202a | 이은숙展 / LEEEUNSOOK / 李恩淑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