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캡슐'로서의 전통

Tradition As a Capsule of Loss展   2023_0211 ▶ 2023_0507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나오미_서유라_유혜경_홍경택 김문호_박일정_윤신의_정인혜

2023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기획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2~6 www.muan.go.kr/museum @muan_museum_of_art

'전통'이라는 말 속에는 '과거부터 우리가 몸담고 있던 오래된 것, 익숙한 것, 편한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도래하는 불안하고 낯설고 위험한 것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하는 존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낯선 것들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전통이 되고 그것이 익숙한 관습이 될 때쯤 다시 그런 방식으로 또 다른 도전을 받는 전통의 역사는 그러므로 늘 새롭게 세워진다고 볼 수 있다. ●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형성되는 전통은 사람들이 모두들 이를 자신의 몸에 두르고 다른 대상들을 판단하는 척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오래된 형식들에 알맞게 들러붙어 있던 우리의 일상은 새로운 전통이 세워지면 낡은 전통과 함께 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전통 형식은 과거 사람들의 삶과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하나의 캡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기록으로 남지 않은 고대 인류의 흔적까지 추적하여 기어코 실체를 밝히고 마는 사냥꾼 -발자국의 흔적을 쫓아 짐승을 추적하는-의 본성을 몸에 지니고 있으므로 닫혔던 과거의 캡슐들은 항상 현재에 다시 열리고 새로운 해석이 덧붙여진다. ● 현대미술에서 향수적인 패티시의 한 형식으로 오래된 전통의 소환은 단순히 그리움의 대상을 불러오려는 욕망을 넘어 우리가 잊어버렸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류학적인 기억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이 '전통의 캡슐'은 과거의 역사와 현대를 잇는 다리에서 인간이 보존해온 풍경과 이야기와 상실한 것들을 소환하면서 화려한 현대문화의 외양을 걸쳐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부활하기도 한다. 이번 기획전처럼 동시대 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분청기법과 책가도(冊架圖) 혹은 책거리 형식의 작품들이 과거의 캡슐을 열어 현대의 새로운 해석을 부가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이 캡슐이 현대라는 다리를 넘으면 책가도의 책가(冊架)는 그 캐논이 변주되어 건축적인 프레임이 되기도 하고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와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분청은 도자의 표면을 장식하는 역할을 넘어 원시적 샤머니즘의 세계나 지난 기억들과 그리움의 내러티브를 표현하기도 한다. ● 이번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기획전은 전통의 캡슐을 열고 그 중에서 책가도와 분청이라는 세계를 '상실의 캡슐로서의 전통'이라는 주제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 전시는 '1부: 기억을 담는 책가도, 2부: 이야기하는 분청'으로 구성되었다.

1부: 기억을 담는 책가도

나오미_눈물 하나가 바다를 일으킨다_5폭 병풍, 순지에 분채, 금분_180×205cm_2015
나오미_봄은 버드나무와 사귄다_순지에 분채_97×135cm_2014
나오미_시대의 초상_순지에 분채_180×180cm(180×90cm×2)_2017 나오미_별건곤_장구가죽에 분채, 금박_43×43cm_2017

영화 미술과 무대 미술 감독, 문화재 복원 일을 했던 나오미의 작품세계는 시나리오의 배경을 실제에 가깝도록 연출하기 위해 역사, 사회, 설화 등을 고증하고 무대를 구현했던 스펙터클한 시공이 촬영을 마치면 모두 사라져버리는 상실을 복원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사실 영화의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과 로케이션(location)은 사라진 과거(혹은 미래)를 '여기'(무대)에 불러오는 작업이다. 그녀는 현실과 허구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면서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재현 공간으로서 회화의 평면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책가도의 책가 구조와 병풍 형식에 주목하였다. 격자 형식의 책가와 접목 형태의 거대한 병풍 구조*는 스테레오 카메라 혹은 디오라마적인 다시점의 입체 이미지 구현이 가능하며 또한 설치미술로서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책가도는 근현대 역사와 설화, 그리고 원초적이고 초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 등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이 동시적으로 굽이치며 역동하는 대서사로 확장된다.

서유라_History of Music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서유라_Musical Story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0
서유라_Classic Myths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9 서유라_Flower-Myth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19
서유라_Vintage books_캔버스에 유채_50×50cm×2_2014 서유라_Spin_캔버스에 유채_지름 80cm_2012

서유라는 책가도의 오브제 중에서 책 그 자체에 주목한다. 전통적인 책가도에서 책들은 잘 알려진 '이형록의 「책가도」'에서처럼 장식적인 문양이 새겨진 서갑더미 속에 갇혀있지만 작가의 책더미는 책의 표지 텍스트와 장식, 이미지들이 공존하면서 미술사, 음악,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등으로 범주화된 세계의 오래된 지층을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책더미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비밀은 책의 극사실적인 재현의 기법에 있다. 우리가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디테일한 책의 제목이나 이미지는 하나의 매체로서 책 속의 보이지 않은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지시하는 일종의 기호이며 이는 서사의 바다로부터 이슈와 정치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유혜경_眞境_책가도_장지에 채색_170×720cm_2023
유혜경_탈각된 공간_장지에 채색_120×324.4cm_2022
유혜경_眞境_Homo Ludens_장지에 채색_130×162cm_2020

유혜경의 작품에서 책가의 형태는 건축적인 프레임으로 확장되어 있다. 서재의 가구에 놓인 책과 진귀한 정물의 시각적 재현을 통해 주체의 실재를 대신 했던 책가도의 형식은 이제 사람들이 직접 등장하여 산을 오르고 암벽을 등반하며 놀이를 즐기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건축적인 수평과 수직의 구도는 자연과 문명의 경계라기보다 상반된 두 세계를 공존 가능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유혜경의 격자는 규율이 아니라 자유로운 유희의 공간이다. 무한한 공간을 지니게 된 그녀의 책가(건축물)에는 준법으로 덩어리진 산들이 창문을 통해 바다처럼 흘러 들러오고,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날개 달린 제강(淛江)이 둥둥 떠다니며 개미처럼 작은 인간들이 이 공간 속을 소요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속의 산이나 미술관 등의 건축물은 자신이 실제로 다녔던 곳을 그린 진경이라고 말한다.

홍경택_Libary-Triangle zone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60.6×72.7cm_2011 홍경택_서재-주호 Library- Juho_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72.7×91cm_2016
홍경택_서재-골프장 Library-Golf Course_ 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94×259cm_2014 홍경택_서재-에베레스트산 Library-Mt. Everest_ 리넨에 아크릴채색, 유채_194×259cm_2014
홍경택_서재-앵무새가 있는 서재 Library-Library with parrot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62×130cm,_2009 홍경택_서재-낙원 Library – Paradise_리넨에 유채_162×130cm_2016

홍경택은 책가의 격자 안에 책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시각적 재현을 통해 주체의 소우주를 구현하는 책가도의 전통을 흥미롭게 현대적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세계를 책가의 격자에 담고 있는 작가의 '눈'은 강박적이라 할 만큼 매우 세밀하고 집요하며, 그의 책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물들의 표면은 방금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처럼 매끄럽고 불멸할 것처럼 반짝거린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우주는 수평과 수직의 이원적 세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워진/눕혀진 책더미, 박제된 죽은 새/공간을 날고 있는 새, 불이 켜진/불이 꺼진 촛불, 눈 덮인 에베레스트 산/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골프장 등 상반된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운동하는 이중적인 구조에 대해 그는 수평의 구조는 자연과 종교에 대한 메타포이며 자상한 어머니인 동시에 난폭한 아버지를 의미하고 수직 구조는 문명이나 과학의 힘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직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언젠가 눕는다.' 라고 말하는 작가주체는 '책가도'의 소우주에서 세상의 균형을 주재하는 절대적 존재일 것이다. ■ 박현화

2부: 깊은 감성의 실천-서술적 풍경으로서의 분청 제2부 '서술적 풍경으로서의 분청'은 공예 영역으로 '깊은 감성의 실천'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공예'란 1922년에 창설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제3부에 설치된 '서예부'를 대체하여 1932년 제11회전에서 '미술'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이 공예의 도자는 전통적인 민예(民藝)가 아니라 근대적인 미술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 제2부의 전시는 호남의 지역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호남을 예향(藝鄕)이라고 부를 때 많은 경우 남종화(南宗畵)를 언급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도자 공예의 역사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와 무문토기, 철기 시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통이 내려온 영암의 구림마을 요지, 고려시대 '순청자'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강진 지역,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내지로 생산지를 옮겨 발전시킨 분청사기 등의 전통을 계승한 곳이다. 특히 조선 초기에 궁궐에 공납할 정도로 우수한 질을 유지하였던 분청사기는 비록 청화백자로 명성이 대체되었지만, 서민에 스며들어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제2부 전시의 '깊은 감성의 실천'은 이러한 전통의 계승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전통의 계승은 형식의 답습이 아니라 그 형식 속에 역사적으로 누적되어온 감성을 실천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감성은 단순히 동물적 감각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속에 축적된 역사적 감성이다. 현대 중국 미학자 리쩌허우는 이를 인류학적 감성이라고 말하였다. '깊은 감정'은 바로 인류학적 감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전시의 4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분청에 녹아든 인류학적 감성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신감성(新感性)'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이들은 각자 독특한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지는 미감적 특징은 자연적이면서 순박하다. 고유섭이 말한 구수한 큰 맛, 즉 순박함에서 우러나는 넉넉한 큰 맛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흙을 소재로 한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들 안에 축적된 깊은 감성의 발로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형적 특징으로 우리 주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경치나 형상을 언급할 수 있다. 기법적으로는 분청사기의 청화문이나 철화문에서 보여주는 자유로운 선을 도조, 설치, 평면 등의 형식에 맞게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김문호_한옥,탑_월선토, 덤벙, 귀얄기법, 장작가마 소성
김문호_다완_월선토, 덤벙, 귀얄기법, 장작가마 소성
김문호_달항아리_월선토, 덤벙, 귀얄기법, 장작가마 소성

김문호의 작품은 전통미술의 특징인 자연주의적이고 순박한 신라시대 토우의 특성을 가진다. 그의 관심은 현대의 수직과 수평의 직선 조형에 압도되어 소홀히 되었던 넉넉한 곡선에 있다. 그는 "다랑이논의 뭉치고 풀어지는 굴곡진 선들, 산속의 날짐승들이 지나다니다 만들어진 길의 형태, 즉 아리랑 선을 표현하며," 또한 그 선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사찰이나 탑, 그리고 동물이나 식물의 형상들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대 과학 문명에 의해 사라지는 전통의 감성을 시각적 형상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감성에 머물지 않는다. 바로 현대의 신감성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예스럽지만 현대적 감각이 드러난다.

박일정_木人의 춤_도자, 나무_643×285×148cm_2023
박일정_木人의 춤_도자, 나무_643×285×148cm_2023_부분 박일정_매화_도자, 나무_53×122×62cm_2022

박일정의 작품은 간혹 시골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성황당 나무와 같은 신목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고 있다. 그의 설치 작품은 형식적으로 여러 형태의 풀들이 자유롭게 돋아난 긴 다리와 나무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이나 동물, 풀, 나무 등이 그 안에서 성장하는 생명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형상의 배열이 아니라 서로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생명의 조화를 표현하는 우주의 세계이다. 따라서 나무나 다리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

윤신의_기억을 담다_적토, 화장토, 분청 기법_100×47×13cm_2020
윤신의, 내 기억에 너는 내 발아래인데 이제는 내가 너의 그늘에서 산보를 하고 있다_적토, 분청 기법, 장작가마 소성
윤신의_세상을 다 담을 수만 있다면_적토, 분청 기법, 장작가마 소성

윤신의의 작품 세계는 형상의 구현보다 흙을 만지고 형태를 만들며 가마에 불을 붙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난 태도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의 작업은 세 가지 특점을 갖는다. 하나는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지거나 빗으면서 형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토기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철기 시대 이전 신석기 시대에 제작하던 방식이다. 두 번째는 가마에서 완전한 연소를 통해 일어난 광택 있는 빛깔이 아니라 소나무가 완전히 연소하지 않고 나온 연기가 침투하여 만들어 된 청동기 시대의 흑도와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청동기 시대에 이 흑도는 주로 제례용으로 사용된 특수 토기이다. 세 번째는 그 행태가 마치 백제 유민들이 만든 비상(碑像) 불교 조각과 같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그의 작품 세계를 규정한다. 수날법에 의한 기법은 원초적인 감각으로 되돌아가고, 검은 표면은 종교적인 분위기로 둘러싸이게 하며, 비상에는 백제 유민들이 그들의 소원을 담아 천불상을 사방 표면에 새긴 것처럼, 자신의 모든 기억과 이에 의해 엮어진 이야기를 풀어내어 산이나 언덕, 바다 등 자연의 형상을 추상화시키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정인혜_겹으로 쌓인 기억_석기질토, 고화도유약, 코일링, 1240도, 산화소성_가변설치_2020
정인혜_겹으로 쌓인 기억_석기질토, 고화도유약, 코일링, 1230도, 산화소성_가변설치_2020
정인혜_겹으로 쌓인 기억_석기질토, 고화도유약, 코일링, 1230도, 산화소성_가변설치_2020 정인혜_비밀서랍장_석기질토, 고화도유약, 코일링, 1230도, 산화소성_가변설치_2022
'상실의 캡슐'로서의 전통展_무안군오승우미술관 정인혜 섹션_2023

정인혜의 작품은 위의 세 작가와 구별된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인공품에 관한 형상이다. 항아리, 축구공, 쓰레기통, 물가퀴, 소방구, 고무공, 소방 기구, 옛 시계, 대리석 기둥, 물감 파렛트, 심지어 속옷이나 양말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거나 사용하는 도구를 소재로 삼았다. 그렇다고 그 일상 물체를 사실적으로 제작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일상과 우연이 마주치면서 잠재된 기억을 일으켜 작품으로 형상화한다. 따라서 그녀의 소재는 과거의 것으로 여러 현대적 기억을 통해 현재화된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과거를 현재 속에 재현시킨다. 다만 그 물체의 색을 탈색시켜 기억의 물체임을 암시하면서, 현재적 요소로서 형태를 매우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물체에 오랜 기간 색을 중첩시키고 시간을 누적시키면서 "기억의 시간성을 사물에 부여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성을 갖는다. ● 불교에서 화엄(華嚴) 사상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인타라망의 진주"가 있다. 인타라망 진주는 개개의 진주가 모두 명주로 꿰어져 연결되어 있는데, 이 망에는 무수한 진주가 진주마다 서로를 비추고 있어, 구슬마다 모두 수많은 진주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진주 하나를 들어 보면, 아울러 여기에 투영된 수많은 진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진주를 고립적으로 떼어내어 본다면, 그것은 단지 평범한 구슬이 되어, 더 이상 인타라망의 신비한 구슬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화엄사상의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다.(一卽多, 多卽一)"를 말하는 것이다. ● 여기서 이타라망 진주를 언급하는 것은 이번 전시에 초대된 8명 화가의 작품은 각각 독립적인 세계를 갖고 서로서로 반영되어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루고, 그 큰 세계는 또한 각각의 작품에 반영되어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이 서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든, 각각 개인의 욕망을 구현하고 있든, 그것이 모여 하나의 현대적인 집단 욕망을 구현하고 있다. 여기서 전통은 과거의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개방적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작은 지방의 미술관에서 계획하고 있는 이번 전시회의 숨은 내용인 것 같다. ■ 조송식

* 8폭~10폭 형식의 병풍은 좌측, 정면, 우측의 구도이며, 높이는 대략 180~200cm 사이로 아래 위의 3단으로 이루어져 성인 남성이 올려다보는 대규모 그림이다. 책가도의 평균 높이는 140~190cm, 가로 300~600cm에 이르며 이는 서양의 바로크 정물화보다 규모가 훨씬 큰 그림이다. 최수정, 앞의 글, pp.147-150 참조.

Vol.20230211b | '상실의 캡슐'로서의 전통展

@ 60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