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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309_목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금~일요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점일 휴관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SHINSEGAE GALLERY CENTUMCITY 부산 해운대구 센텀남대로 35(우동 1495번지) 신세계 센텀시티 6층 Tel. +82.(0)51.745.1508 shinsegae.com
신세계갤러리에서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중견작가 방정아(1968~)의 신작을 소개하는 『욕망의 거친 물결 Rough Waves of Desire』展을 개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1』의 최종 4인에 선정되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입지를 다진 방정아는 한국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환경, 핵, 여성 문제 등 정치, 사회적 이슈를 주로 다루어 왔습니다. 2023년 봄을 맞이하여, 기존의 다소 무거운 주제보다는 작가 자신과 주변 인물, 일상적 환경에 집중한 신작을 선보입니다. ■ 신세계갤러리
겹친, 풍경, 되기 ● 방정아가 그린 풍경 속에는 종종 여자가 등장한다. 작품을 통해 조명되는 사회 중심과 변두리에 있는 다양한 군상의 여성들은 명실공히 작가의 작업을 대표하는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이 친숙한 풍경에 이례적으로 남성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심지어 그들은 고풍스러운 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명 '백작 놀이' 연작은 여러 면에서 작가의 예술적 실험과 새로운 변화를 암시한다. 마치 메모를 남기듯이 일상에서 마주친 순간, 사건, 혹은 사람들을 느슨한 개념적 연결성 속에서 그림으로 표현해 온 방정아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하나의 주제를 설정한 뒤 다각도에서 백작 놀이를 다룬다. 그 방법론으로 최근 몇 년간 몰두해 온 핵폐기물과 같은 환경적, 사회적 이슈와는 다르게 작가 자신과 주변 인물, 환경에 집중하며 다양한 '되기(becoming)'의 모습들을 탐구한다.
역할 놀이는 초현실적 상상력과 일시적 몰입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를 연기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쩌면 본능적인 것일까? 우리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 소꿉 놀이하며 자연스럽게 "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반복해 본 적이 있다.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어디서 비슷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작가가 주목한 곳은 카페다. 전시의 대표작이기도 한 「백작 놀이」(2023)는 실제로 작가와 친구들이 영도에 있는 한 카페에서 연출한 상황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카페는 가상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으로, 손님들은 정교하게 조성된 인테리어를 통해 유럽의 한 도시에 와있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숲속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3의 공간'으로 현대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카페는 어쩌면 연극 무대보다도 더 그럴싸해 보이는 연출된 장소일지도 모른다. 「백작 놀이」에서 방정아 자신으로 보이는 여성은 우아한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엉뚱하게도 호랑이 인형을 안고 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서로를 마주하는 호랑이와 화폭의 구성을 통해 작가는 애매모호함을 극대화한다. 화면 속 인물들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있나? 배경에 보이는 누드의 모습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들은 귀족들인가? 화면 속 장면들은 실재와 허구, 일과 유희, 계획과 우연을 넘나들며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두 남성은 작가와 의뢰인과 리모델링 업자로 만나 이후 동료이자 친구로 지낸 이들로, 작가와 함께한 놀이에서는 각각 백작과 공작을 맡고 있다. 그들은 작가가 그린 복고풍 감성이 느껴지는 카페, 고풍스러운 느낌의 수영장이 있는 어느 실내, 편의점 앞 테이블, 바닷가와 같은 일상 속 공간을 배경으로 때론 귀족의 모습을 하고 고상하게 토론을 펼치거나, 셔츠 차림으로 결심을 다지기도 하고, 「철퍼덕」(2023) 앉아서 힘 빠진 뒷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말하는 "고정화되지 않은 상태"는 이렇게 끊임없는 '귀족-되기', 혹은 반대로 '자신-되기'의 과정을 반복하는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드러나며, 이는 「고상한 토론」(2023)에서 보이는 석고-인체상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표출된다. 인간과 비인간(non-human)의 모습을 한 두 객체는 또 다른 무언가로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읽힐 수 있지만, 반대로 기존의 정형화된 삶과 인식의 형태를 탈피하고자 하는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주기적 깨달음」(2023)은 유럽의 고전 회화를 상기시키는 초상화로, '되기(becoming)에' 대한 작가의 사유, 혹은 깨달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재와는 다른 모습의 사회 계층이 되거나, 이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 혹은 인간 이상이 되기 위한 시도들로 작품의 논의를 확장한다.
작가에게 스케일은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설정하는 역할을 하거나 조형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번 전시에서도 공간을 가로지르는 대형 현수막부터 소형 회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욕망의 거친 물결」(2023)과 동일한 제목의 현수막 작업은 최근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대형 걸게 형식의 회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그는 천에 크레파스로 그린 2018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에서 선보인 「플라스틱 생태계」(2021), 그리고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 중인 「핵 좀비들 속에서 살아남기」(2022)를 통해 압도적인 규모의 이미지가 선사하는 시각적 경험과 무게감(혹은 가벼움)을 실험한 바 있다. 이번에는 흥미롭게도 벡스코에서 홍보용으로 부착되었던 폐현수막을 사용하고, 이제는 무의미해진 문구들이 그림의 배경 속에 스며들게 했다. 거친 파도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붉은 얼굴들은 생경한 모습을 연출하며 현수막 속 화면을 유영한다. 폐현수막이라는 작가의 선택은 유독 백화점이라는 고도로 상업화된 공간과 만나 욕망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부각한다. 펄이 포함된 물감으로 이루어진 선들은 특유의 반짝거림으로 키치(kitsch)함과 팝(pop)스러운 요소를 강조하며 자칫 날 선 비판으로만 읽힐 수 있는 작품에 일종의 무심함을 더한다. 굽이치는 물결에 휩쓸려가는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자. 도취한 듯, 의연해 보인다. 작가는 이렇듯 욕구의 힘을 포착하고 표현할 뿐 이에 대한 비판적인 판단은 유보한다.
「욕망의 거친 물결」에서 알 수 있듯이 방정아의 작업에서 제목은 작가의 소소한 고백이 되거나, 장면에 대한 간결한 설명, 또는 직. 간접적인 인용구가 되기도 한다. 때론 제목이 화폭에 일부로 들어와 조형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화면을 구성하는 강렬한 색상의 테두리는 글자가 되어 문구로 작동하기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형태의 선들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공작새'를 통해 '공작 놀이'의 주제를 은유하는 작가의 언어유희에서도 발견된다. 한 마리의 고고한 공작새가 풀 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한 「함께 걸었네」(2023)의 제목은 작가가 감명 깊게 본 아피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 감독의 「메모리아」(2021)의 영감이 된 자크 투르뇌르(Jacques Tourneur)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네」(1943)에서 차용한 것이다.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제시카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의 정체를 찾아 떠나는 치유의 여정을 담은 「메모리아」는 투르뇌르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제시카가 무언가를 향해 이끌린다는 설정과 공명한다. 방정아의 작품 속 공작새도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이끌려 무성하게 자란 풀숲 사이를 거닌다.
어쩌면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장면들도 마찬가지로 작가의 관심과 시선을 이끈 무언가에 대한 탐색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주변 인물과 식물, 어떤 순간과 느낌, 욕망과 감정, 물건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상이한 것들이 어색하게 빚어내는 조합이 포함된다. 작가는 이런 예기치 못한 공존, 또는 조합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숲 숲 고마워」(2023)는 작가의 집 베란다에 어느덧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존재하기 시작한 각종 식물을 그리며, 그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화분 속 영토를 지키되, 뻗어나간 줄기들과 잎사귀가 복잡하게 겹치고 얽혀 공동체를 이룬 베란다 속 숲은 각기 다른 인간의 모습과 그들이 영위하는 삶이 뒤섞여 일궈내는 사회라는 숲과도 퍽 닮아있다.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과 공생의 지혜, 그리고 생존을 향한 혈투가 빛과 그림자처럼 공존하는 숲은 아름답고도 두려운 곳이다. 작가는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때론 부러움이나 연민의 시선으로 곳곳에서 발견되는 숲의 모습을, 즉 사회를 포착한다. 그의 회화가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지만, 단순히 정물화나 인물화 또는 풍경화로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층위로 이루어진 '숲'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임수영
Vol.20230309d | 방정아展 / BANGJEONGA / 方靖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