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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318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23_0318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강호 GALLERY 江湖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32길 22-1 2층 Tel. +82.(0)2.764.4572 gallery강호.com
사진가 이창준이 사진전 『모호(模糊/母好)』를 연다. ●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및 순수사진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 디자인전공 졸업한 이창준 작가는 고등학교 재학 중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 브루스 데이비슨 (Bruce Landon Davidson)을 열렬히 좋아했으며 대학 시절과 대학원 재학 중에는 인물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하여 「Cult族」과 「코스-프레(cos-play)」 시리즈로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이번 전시에서 이창준 작가는 짧고도 긴 3년의 투병 생활을 했던 어머니와의 여행 중 만난 바다 얘기를 한다. 나이 70이 넘어 바다를 처음 본 어머니는 아들과의 여행에서 만난 바다를 가장 좋은 기억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바다를 참 좋아하셨다고 한다. 이북 내륙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변을 겪은 작가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바다를 작가도 좋아한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부재를 겪고 난 다음 지금의 바다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이창준 작가의 바다 사진은 어머니에 대한 향수, 애도와 모종의 연관이 있어 보인다. ('母好한 바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의 장소성 이자 양수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히 바다는 여성이자 어머니의 존재로 치환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창준 작가가 바다 사진을 찍은 계기를 '하나는 바다를 좋아하신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그리움 내지 모종의 애틋한 감정이다. 다른 하나는 사진을 흔히 찰나의 시간을 담는 것으로 여기는 그 시간성에 대한 모종의 반성이다.'라며 두 가지로 나눴다. ● 즉, 시작은 어머니로 시작되었지만, 사진은 사진의 특성인 "시간성"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창준 작가는 니콘이미징코리아에서 프로담당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사진(ISO)전문위원이다. 한편으로는 사진의 원리와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 이창준 작가의 눈으로 본 바다에서의 사진적 시간. 일반적으로 길지 않은, 짧은 10초 내외의 시간이지만 사진의 시간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담긴 바다 사진들은 2023년 3월 15일부터 31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32길 22-1 갤러리 江湖(강호)에서 만날 수 있다. ■
이창준-모호模糊/母好한 바다 사진 ● 이창준은 직사각형의 프레임에 들어온 수평의 바다를 간결하고 단순하게 보여준다. 하늘과 바다, 모래와 돌로 채워진 해안가만이 적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계절과 시간의 기미는 알기 어렵고 인간의 자취는 부재하다. 따라서 전적으로 단호한 수평의 선과 형언하기 어려운 색으로만 보이는 자연/바다 이미지가 화면을 색면 추상처럼 채우고 있다. 그 사이로 빛들이 아름답게 생선의 비늘처럼 또는 자개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이 선/색면은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미세한 차이를 반복하면서 미세하게 흔들린다. 특정 장소, 바다가 목적이 아니라 보편적인 바다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사진은 장시간 노출을 통해 찰나의 순간이 아니라 축적된 시간, 누적된 시간을 담고자 하며 상투형의 바다 사진에서 벗어나 조형적인 아름다움에 유념하면서 바다를 촬영하고자 했다. 익숙하고 낯익은 장면의 바다 사진인 듯 하지만 실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장시간 노출된 카메라 렌즈의 도움으로만 포착된 장면이라서 무수한 시간, 누적된 시간의 두께가 표면을 채우고 있는 사진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사진에 담겨있는 일반적이고 익숙한 순간적인 시간에 저항하고 있다. 그와는 다른, 느리고 오랜 시간을 한 화면에 담고 있다. 그렇게 사진은 긴 시간을 담는 용기의 역할을 한다.
작가에 의하면 이 바다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의해서라고 하는 데 이는 나이 70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는 어머니의 다소 충격적인, 마음 아픈 사실에 기인한다. 이후 작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바다를 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몇 차례 바다를 가게 되었고 이후 어머니의 부재를 겪고 난 다음 지금의 바다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바다 사진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향수, 애도와 모종의 연관이 있어 보인다. ('母好한 바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의 장소성이자 양수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히 바다는 여성이자 어머니의 존재로 치환된다.
그렇다면 이창준이 바다 사진을 찍은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바다를 좋아하신 죽은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그리움 내지 모종의 애틋한 감정이다. 다른 하나는 사진을 흔히 찰나의 시간을 담는 것으로 여기는 그 시간성에 대한 모종의 반성이다. ●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사진 에세이 『밝은 방』을 통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특정한 사진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사진과 죽음을 연관시키는 철학을 전진시키고 있다. 여기서 바르트는 자기 어머니의 젊은 시절의 사진, 지극히 사적인 사진을 강조하면서 사진에서 재현된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과 '인연'이 있을 때 에만 전적으로 힘을 지닌다고 보았다. 사랑과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매우 낭만적인데 사실 사진 역시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를 누군가와 동일한 강도로 공유하기란 곤혹스럽다. 사진의 외시성이 지닌 재현이 확보해 주는 것은 대상의 실재다. 그러나 진실한 사진은 단지 대상의 식별에 멈추지 않고 '대상을 되찾게 해준다'.
그런데 이는 결국 그것을 바라본 자의 내면과 의식에서만 가능하다. 대상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를 '모호하고 유연하며 심지어는 냉소적이기까지 한 현상학'이라 칭한다. 그것이 사진의 특이한 존재론이다. 이미 존재했던 것(과거-죽음-부재)이 지금 현재의 시간 위로 느닷없이 출몰하는 것, 그래서 현재의 시간 위에서 과거의 시간을 접하는 것, 이른바 '유령'을 보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결합이 사진의 층위에 놓여 격렬하게 유동한다. ● "사진은 죽은 것의 살아 있는 이미지다."라고 바르트는 말하는데 바로 그것이 사진의 푼크툼일 것이다. 이창준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는 실상 일반적인 수사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외상적인 이미지들의 층위에 존재하는 바다다. 여러 시간과 헤아릴 수 없는 단상과 억누를 수 없는 감정, 그리고 애틋한 그리움 등을 담아 처연하게 엎드려 있는 바다는 따라서 결코 단일한 얼굴로, 획일적인 형과 색으로 출현할 수 없기에 마냥 미끄러지면서 반복, 회귀한다.
빛은 대상의 이미지를 기록하고 그 이미지를 보여준다. 사진에 찍힌 대상과 그것을 보는 관자의 눈을 연결하는 끈은 빛이다. 이 빛은 시차를 거느린다. 촬영하는 시간과 사진이 관람자에게 다가오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의 경우는 앞서 바르트의 언급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전자의 경우가 이창준의 사진 촬영에 있어 특히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 작가는 통상 5분 이내의 장노출을 통해 바다를 촬영했다. 구체적인 장소, 풍경에 들어와 있는 시간의 흐름, 양을 누적시킨다. 풍경은 비어있지 않고 다양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공기. 바람, 온도, 시간과 밀도, 중력 등이 가득할 것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창준의 사진은 흔히 말하는 '결정적 순간'을 찍은 것이 아니라 느리고 차분하게, 가능한 한 시간의 흐름을 저장해 두었다. 대상도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대상을 둘러싸고 쌓이는 시간은 사진에 의해서만 보여지는 시간이다. 그로 인해 바다는, 부분적으로 모호한 이미지로 흐려지거나 멈춰있다. 순간 시간 속에 지치거나 흔들리는 세계의 낯선 얼굴이 드러나 있다. 이 모호한 바다 사진 역시 객관적이고 재현적인 사진에 의문을 던진다.
사실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으로 촬영한 사진 역시 재현대상으로서 객관적인 대상을 전달하기보다는 그것과 마주한 특정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면적인 형상을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로고스와 카이로스(순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등이 착잡하게 뒤섞인 복잡한 공간이다. 그것들이 복잡하게 선회하고 있다. 따라서 보이는 대상 중심의 사유에서 벗어나서 시선의 무의식을 중시하고 느낌의 찰나를 중요시 하면서 생성과 시선의 무의식을 중심에 두었던 것이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 지닌 핵심적인 의미임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창준이 찰나적 시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긴 시간을 의도적으로 담아내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보이는 세계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 비가시성과 모호함으로 가득한 세계에 대한 사진적 접근으로 이해 된다. 자기 앞에 자리한 세계/바다는 절대적 타자이고 엄밀히 말해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언어와 문자 이전에 자연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사진은 이를 창백하게 지시하는데 사진가가 표상하는 자연 역시 바로 이름 지을 수 없고 모호한 것, 그래서 다만 '그것(it)'일 수 밖에 없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곳을 채우고 있는 변화무쌍한 추이를 따라가고 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컴컴한 내면과 무의식의 미로를 조심스레 걸어가 볼 뿐이다. ■ 박영택
나의 어머니는 나이 70이 넘어서 처음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그 바다를 참 좋아하셨다. 짧고도 긴 3년의 투병 생활 중에 나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나와 가장 좋았던 기억이 바로 함께 바다를 보러 간 것이라고 했다. 이북 내륙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변을 겪은 나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바다를 나도 좋아한다.
이제... 나는 바다에서 시간을 보고 있다. 여기 담겨 있는 시간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짧은 10초 내외의 시간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사진의 시간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를 통해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바다를 보는 듯하지만 사진속에 담기는 시간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 이창준
Vol.20230315d | 이창준展 / YICHANGJUNE / 李昌俊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