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억 투쟁, 새김과 그림 4·3 The Struggle for Memory, Woodcut and Painting

박경훈展 / BAKKYUNGHOON / 朴京勳 / printing.painting   2023_0330 ▶ 2023_0618 / 월요일 휴관

박경훈_그럼에도 밭을 일구다 Plow the field nonetheless_ 한지에 목판화_68×200cm_2022

초대일시 / 2023_040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광주시립미술관 GWANGJU MUSEUM OF ART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본관 2층 제3,4전시실 Tel. +82.(0)62.613.7100 artmuse.gwangju.go.kr

매년 4월, 제주에서는 그곳만의 제의(祭儀)를 모시곤 한다. 4·3평화공원에 1만여 도민이 모여 통곡으로 4·3 영령들을 모시는 위령제가 그것이다. 75년 전 이 섬에 몰아닥친 불길한 광풍은 오랜 후유증을 앓게 했다. 그 세월은 제주 섬 모두의 인내와 고통과 살아남은 어머니들과 모든 것을 보고 몸으로 껴안았던 한라산의 시간이었다. 처음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말은 모두의 몸에서 삭고 녹아내려 나(我)와 너를 경계했고 보이지 않는 불신의 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가라앉은 침묵은 군사독재정권이 끝날 무렵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진실을 찾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물결을 환청으로 만들어냈다. 제주 4·3의 모든 것은 반드시 진실을 찾아 드러내야 할 명확한 실체였으나 만질 수도 볼 수도 들어줄 이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진실은 바람이 되어 세상 곳곳에 제주의 울음을 실어 날랐다. ● 이번 전시는 실체 없이 떠도는 유령, 지울 수 없는 환청으로만 들려오는 4·3에게 제 몸과 목소리를 돌려주자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소개(燒開)로 인해 빼앗긴 곤을동, 소길리, 아라동 인다라, 애월 봉성리 등의 마을이며 사기그릇, 깨진 옹기, 더 이상 물이 솟지 않은 우물터에 보내는 작은 위무의 제의이자 불탄 마을의 흔적 위로 몸을 섞는 대숲의 바람과 오랜 상흔을 안은 채 이 봄에도 푸른 잎을 틔우는 팽나무에게 보내는 생명의 눈물겨운 경외요, 위무(慰 撫)의 바람이기도 하다.

박경훈_불복산 Disobedient mountain_한지에 목판화_76×200cm_2022

작가는 제주 4·3항쟁에 관해 지속적으로 천착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제주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발동하며 광기(狂氣)의 피바람이 내포한 진실을 마주한다. 먹고 자고 마시며 부르는 노래 등 삶의 전부가 피 울음의 토대 위에 존재한다. 자신이 살고있는 땅의 허물과 절망을 직시하고 증언한다. 칼로 나무판에 광기를 새기고 카메라를 들고 제주 전역을 누비며 땅의 역사를 기록하고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밟고 서 있는 땅의 오욕을 직접 표현한다는 것은 쇄신이고 변형이고 변태이며 탄생이고 부활이다. 이 새로운 탄생은 구원으로의 이어질 것이며 실존적 시각의 전환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작가에게 이는 새로운 창조적 발로이자 운명의 힘을 거스르는 저항적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겠는가.

박경훈_두무인명상도(無頭人冥想圖) Painting for the meditation of headless people_한지에 목판화_120×186cm_2018

제주 4·3은 1948년 4월부터 1954년 9월까지 경찰과 우익단체가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을 일컫 는다. 제주 4·3평화공원에 1만4231기의 위패가 모셔져 있지만 많게는 3만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가장 참혹한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무장대'라고 표현했지만 당시 무장대는 350여 명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제주 4·3사건은 사회적 공론은커녕 1978년 현기영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에서 언급됐을 뿐 금기시된 주제였다. 그러나 금기시되 는 주제는 언제든 스스로 베일을 벗게 마련이다. 진실은 진실이기 때문에 더욱 참혹하게 주변을 공포에 빠트리고 공동화를 부추긴다. 현기영으로부터 9년 이 지난 1987년 3월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이 사회과학전문지인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되었다. 「한라산」은 모두 5개의 장과 25개 절로 이뤄진 1300여 행의 장편서사시로 4·3의 역사적 정당성과 군경의 참혹한 자국민학살을 폭로했다. 시(詩)에는 불온 딱지가 붙었고, 시인은 옥고를 치렀다.

박경훈_구럼비, 이 정경 그대로 평화다_낮 Gureombi, this scene is peace as it is, daytime_한지에 목판화_60×90cm_2018

한국 사회에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계는 사회적 정치적 암묵적 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 어디에서도 역사적 기록은 허락되지 않으며, 국가안보를 이유 로 자율성은 통제되고 극도의 국가폭력이 정당화된다. 당연히 4·3은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폭동'으로 취급될 밖에. 미군정과 한국 정부의 눈에 제주의 백성은 귀신 혹은 동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체제에 저항한 존재를 비인간·비 국민으로 규정했고, 학살은 국가안보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4·3이 비국민-제주에 대한 국가 주도의 절멸 행위였다면 개발 담론은 국가의 입맛대로 지역을 재편성하려는 또 다른 폭력이었다. 해방 이후 시작된 지역의 근대화가 '국가폭력'과 '개발'이라는 상반된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은 제주 4·3 항쟁 진압 직후 일었던 '재건' 움직임이 잘 말해주고 있다. 제주는 이제 신혼여행지로 각광(脚光) 받는 관광지가 되었고, 4·3항쟁 은 잊힌, 나라 밖의, 이 나라의 일이 아닌 금기로 왜곡되었다.

박경훈_옴팡밭 Ompang Field_한지에 목판화_76.8×200cm_2023

4·3 75주년이다. 4·3은 광주의 5·18민주화운동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국가폭력이 그러하며 자국민에 대한 군인의 총검학살이 그렇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 한다'는 조지 오웰스의 말을 떠올린다. 미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억과 흔적 을 장악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위에서 미래를 구상하는 것만이 과거를 정직하게 볼 수 있게 하리라. 부끄러운 과거는 망각과 왜곡의 대상이 아님 을 우리는 직시한다. 국가에 의해 생산되는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은 억압받는 민중들의 대항기억(counter memory)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한다. 따라서 역사의 전개는 지배적인 기억과 대항기억 사이의 변증법적 투쟁으로 점철되곤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것은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탈냉전의 반(反)헤게모니 (hegemony) 투쟁이기도 하다.

박경훈_수장(水葬) Buried at sea_한지에 목판화_100×33cm_2022

그동안 4·3을 보는 시각도 '남로당의 사주에 의한 공산폭동'이란 관제기억과 '민중이 주체가 된 자주항쟁'이란 대항기억 사이의 길고 긴 투쟁의 시간대 속에서 존재했다. 3만이 넘는 4·3희생자의 대다수가 군경 토벌대의 무차별 과잉진압에 의한 것임을 국가 는 뒤늦게 사과했다.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함으로써 오랜 세월 제주도만의 가슴을 짓누르던 지배적 기억에도 균열이 일고 있다. 그러나 대항기억이 승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은폐된 역사의 진실은 존재한다. 4·3 문제를 화해와 상생으로 포장하려는 국가의 주도적 관점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한다. 그것은 미국의 개입을 비롯해 양민 학살에 대한 모든 진실이 규명되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배상,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제시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역사의 땅 제주에서 우리의 바람은 여전히 미완성의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왔으며 마땅히 짊어지고 가야 할 엄중한 세월의 더께이며 멍에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들이 돌아갈 고향은 미흡하기만 하다. 유령으로 떠돌고 있는 그들에게 완전한 귀소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 전시는 작가의 첫 번째 발걸음이다. ■ 광주시립미술관

Every year in April, Jeju holds its own rite. It is a memorial service in which approximately 10,000 Jeju residents gather at 4·3 Peace Park and mourn the victims of the Jeju April 3 Uprising massacre. An ominous gale hit the island 75 years ago leaving long-lasting aftereffects. Those years were the time of Hallasan that witnessed and embraced the Jeju people's patience and pain, surviving mothers, and everything on Jeju Island. At first, everyone kept their mouths shut. The words held in their mouths melted down into their bodies, made all cautious and paranoid of each other, and created an invisible wall of distrust. And yet, they began raising their voices by the end of the military dictatorship, and people in search of the truth engendered auditory hallucinations with invisible waves. ● Everything about Jeju 4·3 was something to be unveiled, but it was like This exhibition has been designed to give a voice to the Jeju April 3 Uprising that has existed as an insubstantial apparition. This show is a small soothing rite offered to about 130 deprived villages such as Goneul-dong, Sogil-ri, Ara-dong Indara, and Aeweol Bongseong-ri and their broken stoneware, earthenware, and wells from which no water can be drawn. This is also tearful reverence for life and a wind of consolation to the hackberry tree that is fraught with scars but produces green shoots in spring. ● Bak Kyung Hoon has delved deeply into the Jeju April 3 Uprising. The artist, who was born and raised in Jeju, absorbs and activates everything in Jeju, facing the truth implied by the bloody wind of madness. Everything in life, all Jeju people eat, drink, and sing is on the basis of bloody weeping. He faces up to and testifies on the defects and despair of the land he lives in. He has never stopped recording the land's history, engraving madness on a wooden plate with a knife and traveling all over Jeju with a camera. To express the disgrace of the land directly is renovation, transformation, metamorphosis, birth, and resurrection. This new birth will lead to salvation and may result in a shift in existential perspectives. Wouldn't this provide the artist with a new creative outlet or an opportunity to resist the force of destiny? ● Jeju 4·3 refers to the massacre of civilians committed by the police and right-wing groups from April 1948 to September 1954. Although 14,231 memorial tablets are enshrined in Jeju 4·3 Peace Park, it is estimated that as many as 30,000 civilians were slaughtered. This is the most horrific massacre of civilians since World War II. The government described it as 'an armed unit' but the armed unit numbered only about 350 people at the time. The Jeju April 3 Uprising was a subject considered taboo and was not open for public discussion or opinion. It was mentioned only in Uncle Suni, a 1978 novella by Hyun Ki-young, which was the first ever written reference to the Jeju massacre. Any taboo topic, however, always reveals itself. In March 1987, nine years after the publication of Hyun's novel, Lee San-ha's epic Hallasan was made public through the first issue of Nokdu Book Review, a social science journal. This long epic of 1,300 lines with 5 chapters and 25 verses confirmed the brutal massacre of the people by the military and police, asserting the historical legitimacy of the April 3 Uprising. This poem was branded subversive and seditious, and the poet was imprisoned. ● In Korean society, the boundaries between what can be said and what cannot be said are implicitly defined socially and politically. Historical records are not allowed anywhere, autonomy is regulated, and extreme state violence is justified for the reason of national security. Accordingly, the uprising was deemed a 'riot' raised by those rebelling against the system. In the eyes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nd the Korean government, Jeju people were like ghosts or animals. Anti-communism in Korea defined those who resisted the system as 'non-humans' and 'non-people', and the genocide was justified in the name of national security. If Jeju 4·3 was an act of state-led annihilation of 'non-people', development discourse was another form of violence to reorganize the region as the state pleased. The fact that the modernization of the region, which started after the liberation, came in the opposite forms of 'state violence' and 'development' is well shown by the 'reconstruction' movement that took place immediately after the suppression of the uprising. While Jeju Island has currently become a popular honeymoon destination, the 4·3 uprising has been distorted as a forgotten, out-of-country, taboo that is not a matter of importance to the nation. ● This year marks the 75th anniversary of the Jeju April 3 Uprising. This incident is strikingly similar to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in that both involve the use of state violence and the bloody massacre of fellow countrymen by the military armed with guns and swords. We can recall the words of George Orwell,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e have to control the memories of the past to control the future. We can honestly view the past only by envisioning a future based on the universal human values of freedom and equality. The shameful past should not be subject to oblivion or distortion. The dominant memory produced by the state constantly conflicts with and confronts the counter-memory of the oppressed people. Thus, the progress of history is often fraught with dialectical struggles between dominant and counter memories. That is a post-Cold War anti-hegemony struggle against Cold War, anti-communist ideology in our modern history. ● Perspectives towards the Jeju Incident have struggled between the state memory of 'a communist riot abetted by the Workers' Party of South Korea' and the counter-memory of 'an autonomous struggle in which the people become the subject'. The state belatedly apologized that the majority of the more than 30,000 deaths were caused by the military and the police punitive force's indiscriminate and excessive suppression. A rupture in the dominant memory that has weighted Jeju people down for so long is occurring as the president publicly apologized and cited the poem Hallasan. Even so, it cannot be said that the counter-memory has won. There is still some concealed truth. The state-led viewpoint that tries to sugarcoat the April 3 issue in the name of reconciliation and coexistence raises several problems. It is because it is an alternative that can only be proposed after all relevant facts and truths pertaining to US involvement and the slaughter of innocent people are clearly investigated, and compensation, indem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honor for victims are made. In Jeju, a land of history where no days are free from wind, our wish still remains an incomplete task. It is the weight and yoke of the severe years we all have carried and have to bear. Their homeland is still insufficient and imperfect. We have to provide them with a complete haven for their homecoming. This show is the artist's first step. ■ Gwangju Museum of Art

Vol.20230330g | 박경훈展 / BAKKYUNGHOON / 朴京勳 / printing.painting

Art Peac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