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ve by Five

춘천문화예술회관 30주년 2023 춘천문화재단 기획사진展   2023_0405 ▶ 2023_0427 / 월요일 휴관

개막식 / 2023_0405_수요일_02:00pm

참여작가 구본창_김녕만_박형렬_방병상_심상만

주최,주관 / 춘천문화재단 후원 / 춘천시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춘천문화예술회관 Chuncheon Cuture & Art Center Gallery 강원도 춘천시 효자상길5번길 13 (효자1동 산40-12번지) 전시장 Tel. +82.(0)33.259.5859 www.cccf.or.kr

5 x 5 : 차이를 지닌 낯선 기호들 ● 김녕만, 구본창, 심상만, 방병상, 박형렬의 사진은 저마다 각기 다른 사진적 주제를 표방하고 있다. 이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다어어그램을 그린다. 그 소재는 각자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매개들이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호출한 단서들이자 관심을 갖는 주제가 된다. 사진작가가 공유하고 있는 질문, 다시 말해 생각이나 감정의 상태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이를 풀어 내려한 것이 그들의 작품이다. 김녕만의 사진이 정통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에 해당한다면 구본창과 심상만의 사진은 재현적 사진이면서도 그로부터 조금 미끄러져나와 있다. 보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랄까, 매혹적인 연출을 통해 가다듬고 있다. 이에 반해 박형렬과 방병상의 사진은 개념적 성격이 강하다. 세대를 달리하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일상의 체험이나 그로인해 배태되는 문화적 관심사가 특정한 소재를 통해 발현되고 있음은 흥미롭다. 이 땅 토착인의 얼굴, 백자항아리, 자연사박물관의 박제된 동물들, 개발 논리 속에 해체되는 땅의 지도화, 시뮬레이션화 된 군사게임의 이미지들이 이들이 다루는 소재들이고 주제에 해당한다. 그 스펙트럼이 넓고 아득하다. 그만큼 관심사들이 다양하고 사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다. 이들이 지향하는 작업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대신 개별성의 뿌리를 거느린 체 직립하는 하나의 나무들과도 같다. 그 나무들이 키워내는 줄기와 잎사귀와 열매, 그리고 그것들이 드리우는 그늘의 강도도 저마다 다르다. 어쩌면 이 전시는 그러한 차이와 편차를 제공하는 자리다. 공유성이 아니라 개별성으로, 교집합이 아니라 다양한 차이에 근거한 작업 세계를 펼쳐 보인다. 니체에 의하면 고정적 진리란 없다. 진리의 나타남이란 단지 '관점 수립의 문제'인 것이다. 새로운 진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기존의 가치와 진리에 대한 비판에서 나오며 그 기존의 가치를 비판에 부치는 것이 바로 '힘의 의지'란다. 존재자들이란 힘의 외관이기에 힘의 의지는 존재자들이 서로 부정하지 않고 차이를 지닌 상태로 나타나게 해주는 요소이다. 니체를 이은 들뢰즈를 비롯한 탈근대철학자들이 제기한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나'에 집착하는 존재론을 깨는 것이 되었다. '나'를 알려면 "문밖"의 '낯선 기호'(들뢰즈)와 부딪쳐야 한다. 그때 비로소 사유가 발생한다. 외부와의 마주침이 없으면 사유와 생성과 변화 역시 없다. 그러니 변화의 계기는 낯선 기호인 다른 사람과의 마주침에서 온다. 여기서 예술작품은 나온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나'를 벗어나 외부의 입장에 설 수가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내'가 남이 될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변화의 계기는 주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가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런 자기객관화의 능력을 지닌 이가 결국 성숙한 존재가 되고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카프카의 통찰에 따르면, 성숙한 이는 '나'와 세계의 투쟁에서 언제나 후자를 지지한다. 그는 다양하고 풍부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의 왜소함과 한계를 독자나 관객이 절실히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걸작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걸작의 캐릭터들은 독자에게 낯선 기호이고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극복하는 일은 다른 이의 예술작품, 그 걸작과의 접촉/만남에서 온다. '나'를 벗어나 외부의 입장에 서는 유일한 순간이자 '재현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간이 그것이다. 여기 5명의 사진가들이 모였고 그들이 개성적인 작품이 선을 보인다. 이미 이들의 초상과도 같은 이 선명한 개별성을 지닌 작품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서, 차이를 노정하면서 우리에게 사진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사진이란 예술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낯섦과 차이를 제공한다. 현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친숙한 생각을 문제 삼으며, 항상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을 바꿔놓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해준다. 좋은 사진이 그렇다. 표면 위에 부착되어 있는 사진의 이 의미는 단지 기록이나 재현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통해 가시적인 것 너머의 것을 지시하거나 의미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동시대 시각이미지의 여러 작업들과 공유성을 지니며 밀고 들어온다. 5명의 사진이 각기 다른 차이를 지니면서 말이다.

ⓒ김녕만_유머가 있는 풍경-072_100×67cm_1975

김녕만 ● 김녕만은 1970년 이후 자신의 고향인 전북 고창지역의 여러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의 토착문화가 우리의 현실에서 급격히 사라지는 격렬한 시간이었다.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변곡점에 섰던 시기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였고 산업화와 도시화의 광풍이 전국토를 휩쓸던 때였다. 김녕만은 그렇게 급변하는 도시와 농촌 모두를 피사체에 담았다. 이제는 가까우면서도 아득히 먼 옛날 같은 이미지가 된 사진이다. 그의 사진이 큰 힘을 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향 사람들을 찍었을 때다. 이른바 '한국의 토박이 문화'에 주목한 그 사진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보았고 따라서 가장 잘 알고 있고 감정이입이 되는 풍경이자 장면이자 누구보다도 그네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시골 사람들의 순후함과 정겨움이 마구 엉긴 이 흑백의 기록 사진들은 1970년대의 충실한 사회적 기록이자 당대를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삶의 정경이 고스란히 들어와 박혀있다. "나의 주변을 열심히 사진 찍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한 페이지가 기록되었습니다"(작가노트) 그의 사진 언어는 사실적이면서 서정적이고, 직접적이지만 은유적이고 또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여유를 찾아내는 해학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작가 특유의 위트와 풍자가 섞인 독창적 시각으로 충실한 사진기록을 이어온 작가라는 것이다.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감각이 짙은 이 지역 출신의 유전자가 사진에 배어 나온다. "웃음 속에 눈물도 있고, 생활도 배어 있고, 인간미도 들어있는, 말하자면 판소리 같은 사진을 해보고 싶다. 이미 문학에서, 음악에서 또 그림에서 표현되어 왔던 우리의 해학을 사진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 사진이 '판소리와 같은 해학 사진'이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다만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그런 사진이길 바란다"(김녕만)

ⓒ구본창_AAM 01_154×123cm_2011

구본창 ● 구본창의 여러 사진 중 이 백자/달항아리 사진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마치 인물의 증명사진과도 같은 정면상의 구도로 포착한 백자는 담백하고 소박하면서도 은은하고 매혹적인 연분홍빛과 백색의 버무려진 색채 속에서 빛을 낸다. 매끄럽지 않고 비정형으로 된 항아리의 형태와 눈에 띄는 얼룩으로 인한 불안전함의 고아한 백자의 미를 사진으로 포착하는 동시에 작가의 감성에 의해 분홍빛 색조로 베일링되고 백열조명이 이용(간접조명으로 촬영연출)되고 두꺼운 사합지에 프린트되었다.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아 오브제/백자기물은 마치 공중부양하고 있는 듯한 묘한 공간감을 보여준다. 2004년도부터 시작된 이 작업에 대해 작가는 "달항아리가 세월이 흘러서 때가 타고 오래된 느낌과 100년 200년 전에 썼던 그 사람들의 숨결을 내 사진에서 다시 보여주고 싶다." (작가노트)고 적고 있다. 모든 사진은 존재와 부재의 갈림길이라고 보는 구본창에게 이 백자사진 역시 존재하지만 그 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이기도 하다. 순백자가 가진 여백, 비정형성,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등을 조명한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애틋한 것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다. 불완전한 대상에 대한 친근감,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읽어내는 삶의 통찰, 일상적 삶과의 교감의 순간 등이 기본적인 정서에 깔려 있는데 작가는 백자의 형태를 빌어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이는 유물에 상상이 개입할 여지를 제공하는 편이다. 대상과 배경 사이 흐릿한 경계선, 몽환적인 핑크톤의 부유하는 듯한 느낌, 평면적인 동시에 입체적인 효과,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적 이미지 등이 몽환적이며 매력적이다.

ⓒ심상만_Super-topia 10_244×366cm_2010

심상만 ● 심상만은 자연사박물관에 자리한 동물들의 박제와 배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촬영해 흡사 실제 동물들이 자리한 풍경을 접하는 착시를 유발한다. 이것은 일종의 가짜 아프리카초원지대 내지 아마존의 밀림 등 동물들의 서식지에 해당한다. 흑백의 사진은 실재와 환영 사이를 기묘하게 가로질러가면서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를 신무릉도원이라고 부른다. 전세계 어느 곳에 위치한 자연사박물관에서 한결같이 마주볼 수 있는 낙원의 풍경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비껴나 있고 그 경계가 또한 애매하다. 사진의 착시는 실제의 망각을 부른다. 오지에 가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오늘날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인간의 개입에 의해 동물들의 생존과 그 서식지는 거의 사라져갔다.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해졌거나 이렇게 이미지상으로만 허구적으로만 가능한지 모르겠다. 동물원과 자연사박물관 등은 사라지는 동물과 자연환경을 비현실적으로 가두어둔 곳이다. 시간과 생명이 멈춘 곳에 동물들은 조악한 풍경, 유사풍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살아있는 시늉을 한다. 그것들은 이상한 재현물이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붙어있는 유령 같은 존재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영에 빠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현실과 비현실의 중첩을 보여주는 이 사진은 낙원/무릉도원의 앞과 뒤에 다름아니다.

ⓒ박형렬_Figure Project_Earth#58(8,3,4,1)(From the Paper-Tearing)_150×100cm_2016

박형렬 ● 박형렬은 인간이 생태 환경을 점유한 역사를 성찰하고 이를 작업에 표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작가다. 이른바 '땅'에 대한 개념적인 작업을 시도한다. 그것은 설치, 퍼포먼스, 사진 등의 여러 방법론으로 등장한다. 땅은 물리적 지지대이자 특정 공간과 장소이기도 하고 자본과 정치, 역사와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읽힌 곳이자 일상이 전개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 이 한국 사회에서 땅은 결코 순수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다. 그는 생존의 터전이자 투기의 대상이고 자본의 본리에 포박당한 여러 땅들을 제시한다. 개발과 이윤의 논리가 지도마저 바꿔버린 서해안 간척지, 아직 아무도 찾지 않지만 개발을 목전에 둔 수도권의 땅, 인간의 욕망으로 사라져 이제는 기록으로만 남겨진 산과 평야 등이 그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여러 방식의 작업들은 인간과 수많이 많은 관계를 맺어온 땅의 모습이고 그러한 개발 논리, 끝없이 변형되고 지도화되는. 상처받은 땅들의 초상이다. 그는 땅에 여러 기하학적인 형태를 새기면서 상처, 인위적인 흔적을 남긴다. "제 작업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그 안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갖는 도시와 자연에 대한 아이러니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을 마치 소유할 수 있는 것처럼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발생하는 풍경의 흉험하고 이질적인 모습들을 접하면서 심화되었습니다. 저는 척박하고 보잘 것 없는 땅을 찾아다니며, 때로는 땅을 조각하거나 파헤치는 식으로 일시적인 형상을 구성하고 촬영 후에는 파냈던 땅을 다시 덮어 인간의 폭력적 개입의 흔적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 목적은 자연은 단순한 소비대상이 아닌, 나라는 인간과 내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주체적 존재로 취급하기 위해서입니다...인간에 의해 폭력적 지배 구조의 형상화를 통해 드러란 균열의 흔적과 이어진 치유의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이 만든 도시 풍경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사하고자 하였습니다." (작가노트)

ⓒ방병상_S.G#07_80×91cm_2016

방병상 ● 방병상의 작업은 이른바 밀리터리애호가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분단상황인 대한민국에서 밀리터리 애호가들이 누구이며 이들의 활동이 무엇인지를 흥미롭게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이자 보고서의 형식을 지닌다. 밀리터리 군사무기에 대한 관심을 넘어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려는 인터넷 활동가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밀리터리 서바이벌게임, 전쟁무기 프라모델 동우회, 해병 동우회, 밀리터리 컴퓨터게임 동우회, 모형비행기 동우회 등에서 취미 활동을 한다고 한다. 방병상의 'Military Spectator 프로젝트'는 2013년 가을부터 밀리터리 동우회인 '자국넷' 기자회원에 가입하여 육·해·공 군대행사나 전술훈련에 참가하여 사진과 글로 취재를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 기사를 올리는 활동을 하면서 시작된 작업이다. 전쟁무기의 다양성과 테크놀로지에 대해 매료되어 시작된 작업이다. 「공간의 게임」시리즈는 육해공의 모의전투현장에서 촬영된 각종 실전무기들을 일상의 풍경 곳곳에 합성한 사진작업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전쟁무기는 일상 속이 각종 미디어 속에서 보이고 있는 실체 없는 스텍터클한 풍경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각색된 허구의 풍경으로 전복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외 여러 시리즈는 인간의 시각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디테일과 다양한 표정을 지녔다. 전쟁 무기의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심리적 신비화를 넘어서 비물질적인 아름다움과 기이한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 박영택

5 x 5 : Bold Depictioin ● 술이부작(述而不作),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로 예전부터 있는 것으로 기술할 뿐 새로 지어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진의 본질적 역할을 표현할 때도 이 말은 손색이 없다. 예술의 대상은 없던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 안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시각적 리듬과 톤을 탐색하고 보는 자의 내면에 동조를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창조주 신은 진흙으로 자신을 닮은 창조물들을 빚어낸다. 창조물들은 개별적 이름으로 불리지만 흙이라는 원래 있는 것으로부터 다른 이름과 형태를 부여 받아 생겨났기에 이 또한 술이부작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에서는 흙(地) 외에 물(水), 불(火), 공기(風) 등의 기본 요소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구성요소의 숫자만 늘었지 술이부작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흙은 형태를 가진 거의 모든 존재물들의 근원이며 토대가 된다. 이 사실은 세월이 흘러도 마찬가지다. 흙의 집합은 땅이다. 흙이 물질적 차원의 출발선이라면 땅은 정신적 차원의 모태, 근원, 원산지, 고향, 본성(本性)을 대변한다. ● 인간이든 동물이든 알게 모르게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의 귀소본능이 남아있다. 흙과 땅에서 비롯되었다면 분명 의식의 저편 어딘가에서 흙과 땅은 우리에게 멀리 가지 말라고 은은한 손 짓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노스텔지어(Nostalgia)라 불리는 그 신호는 현실의 유혹과 위기에 빠져 정신없이 방황하고 있는 현대의 인간들을 불러들이는 사이렌 요정의 노래와도 같다. 그 음률은 자신의 창조물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다. 그 반대다. 흙과 땅은 자신으로부터 창조된 뭍 생명들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대가 없는 사랑을 베푼다. 우리는 그것을 대지와의 접신 즉 접지(接地, Earthing)라고 부른다. 대지는 자신과 맞닿아 있는 기계나 사람의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인 에너지를 흡수하고 안정된 상태로 회복시켜 준다. ● 물리적 심리적 모태로부터 멀어져 있기에 막연한 귀향에 대한 본능은 시각적 형태로, 청각적 형태로, 언어적 형태로 그리고 아주 다양한 태도와 자세로 표출된다. 예술은 그렇게 우리에게 각자의 정서적 심리적 고향을 암시하고 그려보도록 하며 불안과 고독, 소외, 방황이라는 열병을 잠시 가라 앉혀 준다. 땅이라는 오브제는 언제나 변치 않고 늘 본성(本性) 그대로를 유지하는 진여(眞如)의 존재다. 그리하여 물질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서적 차원에서 우리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이며 모든 상처와 열기를 다 보듬어 안아 줄 태초의 땅을 상징한다. 그것을 찾아가려는 작가들의 노력은 여러 방식과 모습으로 가시화된다. ● 이 번 전시는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5인의 작품들을 통해 땅을 매개로 단절되고 잊고 있던 우리 자신의 원초적 고향을 탐색하고 기억하게 하는데 의미를 두고자 하였다. 땅이라는 오브제는 직접 드러나기도 하고 암시되기도 한다. 구본창은 덜어내고 절제하고 집중해가면서 태초의 상태로의 환원을 추구하였다. 흙으로 빚은 단순한 도자기의 담백한 초상화에서 화려함과 복잡함에 가려진 우리 내면의 순수하고 꾸며지지 않은 원초적 자화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심상만은 태초의 유토피아적 땅을 암시하면서 망각하고 단절되어 있던 심연의 땅과의 접지를 시도하였다. 인간 중심의 인식과 분별이 땅으로부터 분리와 거리감을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이 없는 자연과 동물의 모습으로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김녕만은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키는 방법으로 무의식 속에 베어 있는 향수(鄕愁)를 자극하고 있다. 과거의 가식적이지 않고 소박하고 소탈한 일상의 장면은 우리의 본래 성품을 일깨워 줄 뿐만 아니라 메마른 현대인들의 영혼의 땅에 비를 뿌려 촉촉한 정서적 비를 뿌려줄 것이다. 현실에서의 물리적 땅은 인간의 사심(私心)에 의해 그 순수성이 상실되고 오염되어 있는 상태다. 박형렬은 땅이라는 오브제가 담고 있는 다층의 메시지와 상징들을 들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일깨우고자 하였다. 2차원적으로 보면 물리적인 땅에 불과하지만 그 땅은 우리의 탄생과 죽음, 삶의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영적 아카이브이다. 그래서 땅의 상처와 아픔은 곧 우리의 상처와 아픔이 된다. 땅은 또한 우리가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그 어떤 것을 대변한다. 방병상은 단순히 군사적 시위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미를 연장시켜 보면 우리 삶과 존재의 근원적 토대가 무엇이며 그것이 상실되게 되면 어떠한 비참함을 겪게 되는지 새삼 일깨워 준다. 세계 각국의 영토분쟁과 긴장이 극에 달해 있는 요즘 상황에서 땅 뿐만 아니라 소외되어 가는 인간 본성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5 by 5'는 이렇게 각기 다른 방식과 톤이지만 본원, 본성으로의 회귀라는 감출 수 없는 작가들의 소명을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5 by 5'는 아날로그 통신에서 신호의 강도와 선명도가 각각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다. 동시에 일상에서는 어떤 일이 순조롭게 뜻하는 바대로 잘 진행되고 있을 때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구본창', '김녕만', '박형렬', '방병상', '심상만'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국 사진 역사에 굵고 묵직한 이랑을 일궈냈으며 그들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 없이 늘 다차원의 의미를 방사하고 있다. 이들 작가들이 그들의 소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들의 신호가 워낙 강렬하고 뚜렷하기에 사실은 '5 by 5'라는 수식어로도 다 묘사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신호의 파장처럼 이들이 함께 만드는 공명이 우리에게 비판적이면서 주체적으로 미래를 읽어갈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줄 것이다. 30주년을 맞아 이번 전시를 펼치는 춘천문화예술회관은 '5 by 5'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 김희정

Vol.20230410a | Five by Five-춘천문화예술회관 30주년 2023 춘천문화재단 기획사진展

Gwangju Bienn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