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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23 주식회사앨리스 복합문화공간 시각예술분야 전시지원사업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기억의집 1920 Memorial House 1920 전남 순천시 호남길 45 (행동 135번지) 순천문화의거리 blog.naver.com/dd9904 @memorialhouse1920
기묘한 감각의 세계, 그로부터의 인식하게 되는 존재에 대하여 ● 김명실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는 사실적이지만 추상적 느낌이 감지되는 미묘한 느낌을 전해주는 특이한 회화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 이 화면을 접하게 되면 격자무늬의 천이나 타일이라든가 고채도의 물감이 담긴 플라스틱병에 눈길이 머물게 되면서 시각적인 흥미로움을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사물들이 등장하고 이 같은 사물들이 벽과 같은 평면 위에 선에 의해 매달려 있기도 하며 특히 액자 혹은 창틀과 같은 프레임 안에 배치되어 있다거나 전기 코드나 여러 가지 소품들에 의해 낯선 상황이 연출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시선은 화면 내의 여러 요소들을 향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되리라고 본다. ● 작가는 이 미묘한 느낌들에 대해 그의 작가노트에서 촉지적 감각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햅틱(haptique)이라는 개념에 비유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시각과 촉각이 뒤섞인 공감각적 지각의 가능성에서 자신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것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작업은 사실 손으로 그 두께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범위 안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던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마치 하나의 레이어를 올리듯이 매번 페인팅의 색을 올려갔으며 명암에 의한 착시적 입체감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물감의 두께감을 손으로 만지면 피부에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물감의 층을 만들며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시각적이며 촉각적인 감각의 장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 그러나 김명실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점은 그러한 감각의 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촉지적 감각을 환기시키는 화면과 이와 같은 감각을 통해 대상을 지각하는 자아의 존재론적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인 타자적 세계를 연결시키는 통로라고 볼 수 있지만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하여 생물학적 전기 신호의 연장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측면에서 확장적 위치를 점하게 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공존적'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촉각과 시각이 융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에서 감각이라는 것은 물질과 몸이, 그리고 보이는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가 일체감을 갖게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김명실 작가의 작업에서 햅틱(haptique)이라는 것은 대상을 보고 만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는 순간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되는 존재론적 경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경험이란 현전(presence)으로부터 감각하게 되는 실제감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프레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빛과 그림자를 그려냄으로써 만들어낸환영적 프레임과 실제로 만져지는 두께감의 차이는 시각적 실제감에 몰입되는 것과 그 환영적 프레임으로부터 각성하는 것 사이에서 현실 인식에 대해 음미해 볼 수 있는 좋은 장치가 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아마도 촉지적 감각을 통해 이 양극 사이를 연결하는 감각이면서 대상과 주체 사이의 공존감과 일체감을 동시에 양가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김명실 작가가 말하는 '기묘한 햅틱의 세계'라는 것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작가 스스로 경험한 바로 이와 같은 기묘한 감각적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업 가운데 평면 위에, 그리고 프레임 안에 압축해 놓은 것 같은 입체 공간은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보일 정도로 평면에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얇은 두께로부터 느껴지는 촉각적 감각들은 환영과 실제 사이를 분열시키면서 지속적으로 현전을 각성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을 보는 관객들에게는 어디까지가 일루전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어디까지가 실제 만져질 수 있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만져질 것 같은 것인지, 감각은 계속 미묘한 세계 안에서 맴돌기만을 계속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혼란스러움은 오히려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세계와 현실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감각하는 것과 실제하는 것의 범위와 한계를 인식하고 각성할 수 있는 경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승훈
Vision ●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Vision은 공존적이다. ●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일상적이면서 이상적이고, 구상적이면서 추상적이고, 인테리어 셋팅공간이면서 추상적 색면 분할이고, 사물은 앞(정면)만 보이고 그 뒤를 알 수 없는 오브제(object)이다. ● 그것은 눈적(시각) 공간도 아니고, 손적(촉각) 공간도 아니며 다만 눈으로 만지는 그러한 바라봄의 공간이다. 기묘한 햅틱 세계이다.
Haptique ● 햅틱(haptique)은 광학적(optique) 시각과는 다른 시선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감각이다. ● 우리말로 '촉지적'이라고 번역되는 햅틱(haptique)이라는 감각개념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Gilles Deleuze, 1925∼1995)가 오스트리아 미술사학자 리에글(Alois Riegl, 1858∼1905)을 경유하여 그의 글에 인용하였다. 리에글은 이집트의 저부조(bas-relief)에 대한 근접시각의 의미를 가지고 이 개념을 사용하였는데, 들뢰즈는 그의 발상을 이어받아 햅틱 개념을 적용하여 독특한 회화 철학을 논하였다. ● 'haptic(haptique)'은 서로 상관이 없는 눈과 촉각 사이의 외부적인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를 혼합하는 일종의 '새로운 시선의 가능성'이다. 들뢰즈가 햅틱 공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손-눈의 종속 관계가 없는 공간이다. 그것은 눈적 공간도 아니고, 손적 공간도 아니며, 다만 '시각이 촉각처럼 행동하는' 그러한 바라봄의 공간이다. ■ 김명실
Vol.20230603j | 김명실展 / KIMMYEONSIL / ???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