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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 블로그_blog.naver.com/magenta05 인스타그램_@artist_sunme
초대일시 / 2023_0608_목요일_05:00pm
축하공연 / 2023_0608_목요일_05:03pm_유용주(대금)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린파인아트 갤러리 서초 LYNN Fine Art Gallery Seocho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47길 56 Tel. +82.(0)2.544.2639 www.lynnfineart.org
꽃은 오묘한 존재이다. 매서운 겨울을 이겨낸 식물만이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견딤의 거친 시간을 펼쳐 보이기라도 하듯이 응축되어있던 엄청난 에너지로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마음껏 뽐낸다. 이는 마치 COVID-19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 우리의 상황과도 같다. 지금 우리의 시간 역시 고통과 견딤의 터뜨리는 꽃과 같은 시간이다. 선미 역시 꽃의 아름다운 순간만이 아니라 그것을 피워내기 위해 오랜 작업의 시간 동안 맨손으로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오려내고 겹치고 붙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담아내는 작가이다, 선미가 이번 전시 '시간의 개화(開花)'에서 보여주는 시간과 꽃은 각각 두 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 우선 선미는 20여 년 동안 하드보드지를 일일이 오리는 힘든 작업 과정을 고수해오고 있다. 약 19년 전 나와 만난 신진작가 선미는 밝고 유쾌한 인상을 지닌 작가였고 그의 작품 역시 밝은 색채와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 작품마다 작가의 노고가 함께 한 시간은 매우 길었으며, 힘들었다. 즉 선미의 꽃은 단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어깨에 굳은살과 손목의 통증이 생길 정도로 신체적 아픔을 감내하는 시간을 통해 피어난 꽃이다.
다음으로 선미는 조선시대의 '화조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롭게 표현하면서, 과거의 시간을 새로운 시간으로 소환하여 꽃을 피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 중 우리가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19세기 화백 우봉(又峰) 조희룡의 '홍백매 8곡병'을 차용한 것이다. 조희룡은 19세기 화단의 유행을 이끈 '벽오시사(碧梧詩社)'를 이끈 주요 인물로, 당대 문인화의 사색적인 산수화의 절제적인 성격에서 과감히 벗어나 조형미를 마음껏 펼쳐냈던 이였다. 그는 헌종의 총애를 받아 금강산을 유람할 기회를 얻었고, 이때 시와 그림 작업을 마음껏 펼쳐내었으나 철종 시대에 정치적 문제로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삶은 꽃을 피워낸 나무처럼 다양한 사건으로 얽혀있었다. 그의 호는 우봉 외에도 다섯 개가 더 있는데 그중에서 매수(梅叟)는 '매화노인'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만큼 그는 매화를 사랑하였고, 화폭에 담아내길 좋아하는 이였다. 조희룡은 매화를 그리면서 "줄기 하나를 치더라도 용을 움켜잡고 범을 잡아야 하며, 꽃 한 송이를 그려 넣더라도 구천(九天)에서 현녀(玄女)가 노닐 듯해야 하며, 한 줌의 벼룻물을 곧 푸른 바다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조희룡의 매화의 기세는 용과 범을 잡는 힘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조희룡이 매화를 통해 거센 남성의 표현법을 추구하였다면, 선미는 그것을 재해석하고 화단에 직접 심은 홍매화를 관찰하며 온화하고 밝은 시선으로 재현하였다. 그리고 하드보드지를 겹겹이 쌓아 올려 용이 솟구치듯 구불거리며 올라간 거센 줄기를 표현했다. 따라서 선미의 매화는 원작보다 화사한 봄의 기운을 담아 과거의 시간을 개화하게 되었다. 작가 선미가 중요하게 다루는 홍백매의 그림 역시 흥미로운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개 홍매화가 먼저 피고 이후 백매화가 피는데, 이 장면에는 이 두 개의 매화가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미는 조희룡이 다루었던 한 장면에 묶인 다중의 시간을 21세기로 가져와 새로운 시간으로 펼쳐낸다. 이외에도 선미는 신사임당의 '화조도'를 재해석해 새로운 매체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듯 조형적으로 의미론적으로 더욱 발전한 선미의 작업은 아마도 지난 전시에서 사군자를 철학적 주제로 다루면서 더 깊고 풍부한 사색을 하였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미의 꽃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작가는 항상 꽃을 관찰한다. 심지어 하동에 있는 그의 가족들은 마당에 매화를 심어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날마다 사진과 메모를 보낸다. 그러한 노력으로 작가의 꽃은 하이퍼리얼리즘 페인팅이 지니는 사실적 이미지보다 꽃의 성격과 의미를 드러내면서 더욱 사실적인 가치로 표출된다. 예전 작업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구상에 추상적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추상적 요소는 꽃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과 날마다 달라지는 그것의 모습을 담기 위한 모종의 공백의 공간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선미의 작품들은 정신적 고민과 더불어 거친 노동의 시간과 함께하는 수공예적 노고가 언제나 함께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선미의 꽃은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 선미는 봄의 전령이자 상징인 꽃의 과거와 미래를 사유하는 작가이다. 이 글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꽃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견뎌낸 식물만이 피워낼 수 있는 것으로, 새로운 시간을 개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움을 뽐내는 듯 보이지만 결국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날마다 소리 없는 투쟁을 벌인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영혼을 파는 청년이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미(美)'의 상징에서 '죽음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만다. 지금 우리 곁에 피어있는 꽃들도 언젠가 그 아름다움을 바닥에 떨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레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열매를 맺고, 다시 탄생할 수 있는 씨앗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미는 꽃의 이미지에서 열매와 씨앗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꽃은 드라마틱한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열매를 품고 있으며, 거친 시간을 견뎌 낸 진정한 승자의 자태를 지니는 꽃이다.
겨울과 같던 팬데믹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지금 새로운 희망의 시간이 찾아오리라는 기대감에 충만해 있다. 모든 꽃은 인고의 결과물이며, 그것은 매 순간 움직이고 변화하며 분투한다. 따라서 길게는 두어 달 동안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 역시 그의 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지만, 선미의 작품은 매우 긴 시간과 거친 수고와 함께 꽃으로 피어났다. 앞으로 그가 새로 만들어갈 수많은 열매를 기대한다. ■ 김지혜
Vol.20230607e | 선미展 / SUNME / 善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