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23_0615_목요일_05:00pm
기획 / 반이정(미술평론가, 아팅 디렉터)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아팅 arting gallery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40길 13 2층 @arting.gallery.seoul
미술을 창작하는 작가 그룹과 그것을 기획하거나 평론하거나 연구하는 이론가 그룹은 미술이라는 접점을 구심점으로 공동체로 묶이지만, 둘은 서로 다르며 나아가 정반대인 점도 많다. 음식을 구심점으로 미식가나 음식 비평가가 셰프와 대비되는 걸 떠올리며 이해해보자. 이런 사정으로 수십 년 이상 미술 이론가로 세간에 알려진 이가 작품을 창작한다는 사실은, 갤러리스트인 내겐 눈에 띠는 전시 기획과 연결 짓게 만든다. 말미에서 요약하겠지만 미술사가 노성두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94년 이래 학계와 대중매체라는 성격이 상이한 두 분야에서 이름을 동시에 알린 예외적 인물이었다. 미술사학자로 캐릭터가 굳은 인물에게 첫 미술 개인전을 제안하는 건, 중식 셰프로 알려진 이연복에게 이탈리아 요리의 맛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하는 것과도 흡사하고, 더 정확히 비유하면 음식 비평가 황교익에게 그가 평소 깎아내린 무수한 음식 목록을 나열하고 “당신이 직접 그걸 만들어보라.”고 요청하는 것과 닮았다.
미술 이론가 그룹에서 작품을 창작 발표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있어왔다. 불과 지난 5월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인 전시 기획자 김노암은 전업 작가 주재환과 2인 전을 열었고, 중견 미술 평론가 김원방은 토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렇지만 두 사례는 미술사가 노성두의 개인전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한국 미술 현장에서 활약하는 이론가 그룹의 절대 다수는 미술대학 실기 전공자 출신이다. 김노암도 학부 전공이 회화였고, 김원방도 학부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프랑스 유학 중에도 입체조형을 전공했다. 둘 다 미술 창작의 수련기를 거친 경우란 얘기다. 이처럼 실기 전공자가 창작으로 일시 귀환하는 것과, 초지일관 이론가였던 이의 창작은 질감부터 다르다. 덧붙여 현장 미술 이론가 그룹의 전공이 예술학인 데 반해, 미술사학자 노성두의 전공은 철학이다. 학문 분과도 틀리다. 노성두의 미술 작품이 전시된 걸 처음 본 건 작년. 2022년 10월말 부친의 1주기를 추모하는 친형과의 2인 전을 전문 전시장이 아닌, 빈 사무 공간을 전시실로 꾸며 열었다. 고인이 된 부친을 향한 추모의 방편을 남달리 시도한 것 정도로 생각하며 나는 당시 전시를 봤다. 한데 몰랐던 사실을 그와 대화하며 알게 됐다. 지금은 종적을 감춘 서교동 복합문화공간 ’문화본부‘가 운영한 ’갤러리815’가 있었다. 그곳에서 열린 2017년 그룹전에 그가 출품한 이력이 일찍이 있었다는 것. 나아가 중학생 때는 미술반에 가입했었고, 고향에서 상경해서 전학 간 국민학교 시절 사생대회에 나가서, 경상도에서 막 올라온 그가 그린 그림을 서울 토박이 동급생이 빌려서 출품했다가 1등상을 서울 친구가 대신 받는 촌극도 있었단다.
노성두의 첫 개인전은 미발표 신작으로 꾸렸다. 7개월 앞선 2인 전에 비해 완성도가 눈에 띠게 올라갔다. 선별된 작품 중에는 그의 전공 분야와 친숙한 주제에서 영감을 얻은 종교화, 그리스 신화, 오달리스크처럼 미술사의 고정된 도상, 혹은 드가, 세잔, 반 고흐, 베이컨의 화풍을 차용하되 독자적으로 변주한 소품들도 보인다. 출품작 중에는 친분 있는 재미在美 화가 이지현의 그림을 변형한 회화까지 보이니, 이미 완성도를 승인받은 다종의 미술품에서 영감을 받아 변형시켜 자기화 한 결과물이 첫 개인전의 한 면모라 하겠다.
프랑스 공쿠르상(2013년)을 수상한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간 『우리 슬픔의 거울』의 국내 출간에 맞춰 진행된 국내 언론 인터뷰를 보니, “당신의 벗은 모습을 보고 싶소.”처럼 선정적인 도입부로 소설을 연 이유에 대해, 소설가는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에 들어설 때와 같은 마음을 독자에게 심어, 소설의 안으로 끌고 들어와야”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더라. 성적 호기심을 “독자와 맺은 무언의 계약”이라고 그는 규정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기승전결에 담는 문학이건 시각 자극에 집중한 미술이건, 현실에선 가능하기 힘든 상황을 재현하는 점에선 같고 그것이 예술에 정체성을 준다. 루이 15세의 요구로 나이 15세인 자신의 애첩 루이스 오 머피의 누드를 그린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마드모아젤 루이스 오 머피」(1752)나, 장레옹 제롬의 「배심원 앞의 프리네」 혹은 「노예 시장」같은 그림은 제목과 내용으로 볼 땐 인물화 내지 신화와 역사를 재현한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림 자체만 두고 보면, 관음적 욕구나 보는 이의 리비도 충족을 허구적으로 수행할 목적이 컸을 게다. 이처럼 예술의 비밀스런 역할은 노성두의 첫 개인전 출품작 중에도 한 묶음으로 분류될 법한 작업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작가의 저의야 어떻건 말이다. 들통 나기 쉬운 깨알 같은 비밀을 많이 간직한 인물의 속내가 대략 50여점의 첫 개인전 출품작에 묻어있다. ■ 반이정
노성두(1959) ● 독일 쾰른대학교 서양미술사 고전고고학, 이탈리아 어문학을 전공한 후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 알베르티의 『회화론』처럼 미술이론 전공 도서를 번역하기도 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반 고흐, 그리스 미술처럼 일반 교양인에게 친숙한 주제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때론 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 1,2』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처럼 제목에서 감이 오는 청소년과 저학년 대상 도서도 펴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론』이나,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주제로 학술 논문을 30여 편 발표했으며, 저서와 번역서를 총망라하면 120여권에 달한다고 한다. 생애 첫 개인전 기간 중에도 12일 일정의 ’북부독일 인문학 여행‘이라는 여행 상품의 해설자로 출국이 예정되어 있다.
Vol.20230607g | 노성두展 / NOHSEONGDOO / 盧晟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