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윤소연展 / YOONSOYEON / 尹素蓮 / painting   2023_0609 ▶ 2023_0625 / 월,화,공휴일 휴관

윤소연_행복한 자유낙하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2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20105g | 윤소연展으로 갑니다.

윤소연 블로그_blog.naver.com/soyeun94                      페이스북_www.facebook.com/soyeon.yoon.965 인스타그램_@soyeun79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6:00pm 일요일_01:00pm~05:00pm / 월,화,공휴일 휴관

도로시살롱 圖路時 dorossy salon 서울 종로구 삼청로 75-1 (팔판동 61-1번지) 3층 Tel. +82.(0)2.720.7230 blog.naver.com/dorossy_art @dorossysalon

크고 하얀 천을 위에서 아래로 떨구어 드리운다. 자연스럽게 드리워져 내려 앉은 흰 천 위에, 크고 작은 하얀 상자들을 쌓아 올린다. 원하는 모양이 나올 때까지, 상자 위에 상자를 올렸다가, 또 내렸다가, 쌓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상자가 마음에 들게 쌓아졌으면, 상자 탑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주고, 사진을 찍는다. 마음에 드는 구도가 나올 때 까지, 찍고 또 찍는다. 사진관에서 잘 갖춰진 배경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증명사진을 찍듯, 정성껏 쌓아 올려 만든 상자 탑의 독사진을 찍어 준다. 그렇게 수 십 장의 사진이 나온다. 눈으로 봤을 때와, 사진으로 찍어 인화되어 나온 평면의 모습은 또 다르다. 그 중 가장 마음데 드는 사진을 한 장 골라 들고 이젤 앞에 앉는다. 까만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이제, 그림을 그릴 준비가 되었다. 윤소연 YOON So Yeon 작가의 최근작, '시작을 위한 시작 Beginning for Beginning (2022)'은 그렇게 나온 작품이다. ● 윤소연은 일상을 그린다. 아니, 일상을 그려왔다. 무엇보다도 택배상자에 담은 일상을 그리는 작가로 우리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작가이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택배상자를 솜씨 좋게 쌓아 올리고, 그 안에 커피 마시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듣고 식물을 키우고 재봉질을 하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아 그려 평범함에 특별함을 더해주며 우리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드는 작품을 보여줘 왔더랬다. 마치 인형의 집을 꾸미듯, 실재하는 공간의 모습을 바탕으로 거기에 작가가 꿈꾸는 요소들을 더해 택배상자라는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 재구성함으로써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내가 지내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낸 작가의 택배상자 집들 속을 들여다 보며 우리 또한 나는 어떤 공간을 어떻게 꾸며 지내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 소녀 같은 작가의 꿈꾸는 일상을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기도 했었다. 높은 건물을 짓듯 작가가 쌓아 올린 택배상자들 안에는 실내풍경이 있기도 했지만 하늘과 바다, 숲, 들판과 같은 자연풍경이 함께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간간이 , 택배상자들 위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운동화, 가방, 커피잔, 그리고 함께 사는 어머니가 키우는 화분과 같은 그의 일상의 아이템들이 얹어져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작가의 작은 '꿈꾸는' 공간들은 택배상자 뿐 아니라 역시나 흔하디 흔한 종이가방(쇼핑백) 안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과점과 커피전문점 쇼핑백에 담긴 나만의 공간들이라니. 쇼핑백 안에는 작가의 방도 들어가고, 작가가 며칠 동안 바라 보았던 하늘도 들어가고, 미술관 가는 길에 보았던 풍경들도 들어갔다. 수직으로 하늘 높이 쌓아올려졌던 택배상자와 다르게, 쇼핑백은 수평으로 바닥에 길게 혹은 넓게 늘어세워졌다. 그렇게 윤소연의 일상은, 윤소연 작가가 매일 보고 겪는 일상 공간의 풍경과 물건들은 택배상자에 담겨, 종이쇼핑백에 담겨 작가가 원하는 곳 구석구석으로 작가와 함께 돌아다니고 또 그림으로 탄생했더랬다. 그랬다. 윤소연은 분명히 일상을 그리는 작가였다.

윤소연_우리의 여정이 다를지 모르지만, 마음은 항상 연결되어 있어_캔버스에 유채_45.5×45.5cm_2023

윤소연의 그림에 하얗게 드리운 천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며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기 시작했던 2020년부터이다. 작가는 문득 한 번도 홀로 주목받지 못했던 일상의 오브제들에게 '독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졌다고 했다. 포장상자, 쇼핑백, 찌그러진 종이컵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처럼 흰 천을 배경에 드리웠고, 그 앞에 오브제를 단독을 놓고, 조명을 비추고, '독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독사진'을 바탕으로 작가의 손길을 더해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사물의 초상화' 시리즈의 탄생이다. 작가의 일상 공간 안에 자리했던, 택배상자 안에 혹은 택배상자 위 한 모퉁이에 살포시 혼자 놓여 세심한 이의 눈길을 잡았던 작가가 의미를 부여해준 일상의 오브제들은 늘어진 흰 천 앞에서, 무대 앞에서 주인공이 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었다. 정체를 알 수 없어 인류에게 미칠 해악의 정도를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라는 고약한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이제까지 일상이고 평범했던 것들이 더이상 평범하지 않고 '보통 ordinary'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 시절, 평범했던 일상을 그린 윤소연의 『보통의 시간 Ordinary Times (2020, 도로시 살롱)』은 더욱 더 특별해졌고, 평범한 사물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독사진을 찍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그의 새 작업 『사물의 초상(2021, 갤러리 정)』 역시 더욱 특별하고 애잔해졌다. 사물 뒤에 희고 큰 천을 드리워졌을 뿐인데, 매일 보던 평범한 보통의 물건에서 빛이 난다. 구석구석 뜯어 보게 되고, 하나하나 의미를 찾게 된다. '독사진'의, '초상화'의 효과였다. 더불어 윤소연 작가의 진실하고 성실한 작업의 효과이기도 했다. ● 윤소연은 평범한 것에 특별함을 더해 주는 크고 흰 천의 효과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천을 드리웠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주름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까지 윤소연은 택배상자 탑이나 종이가방 무더기들의 입체감은 실제와 똑같이 그려주면서, 그 배경은 평면성을 살려 단순하고 밋밋하게 흰색에 가까운 환한 단색으로 표현했었다.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 배경으로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그려 넣었던 르네상스 이후의 관습에서 벗어나, 캔버스의 평면성을 강조하며 벽과 바닥조차 구분할 수 없는 단순한 단색 배경으로 모던함을 더해주었던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Le fifre ,1866,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 같다고나 할까. 평평하고 단순하여 거의 투명하게 느껴지는 배경은 쌓아 올린 택배상자의 입체감과 수직감이 더욱 잘 느껴지게 만들어졌고, 때로는 택배상자 탑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주었었다.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공간인 택배상자 속 작가의 '꿈꾸는 공간'이 더욱 돋보여 집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물의 초상'을 그리다 보니 높이가 고작 1-2cm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작은 천주름들이 만들어내는 입체감에서 모던하고 담백했던 기존의 단색 배경과는 다른, 회화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오로지 명암과 채도로만 만들어 내는 평면 위의 주름은 작가에게 만만치 않지만 도전하고 정복해야 할 매력적인 요소였다. '사물의 초상' 뿐 아니라 택배상자 시리즈에도 써보고 싶어졌다. 사실, 일상의 풍경을 택배상자에 담아 그렸던 그의 기존 작품도 일종의 정물이고, 초상이다. 택배상자와 종이쇼핑백이라는 정물을 모아 그리고, 그 정물 안에 일상의 모습과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의 풍경을 그려 넣은 그의 그림은 정물과 풍경이 공존하며 동시에 주인공인 이중적 구조의 작업이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캔버스 화면의 평면성과 주인공인 정물(사물 objet – 택배상자와 종이쇼핑백)의 입체성을 모두 살려주고, 정물의 내부에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 실재의 풍경을 재구성하여 그려 넣어 실재하지 않는 풍경, 정물을 그려낸,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초현실적인 정물, 초현실적인 풍경이다. 한 화면에서 양립하며 공존하는 윤소연의 정물과 풍경이, 배경에 희고 큰 천을 드리우면서 예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더했다. 정물은 더욱 돋보이고, 풍경은 더욱 신비로와진 것이다. 작가는 그 시작마저도 작품으로 그려냈다. 앞서 언급한'시작을 위한 시작 (2022)'이 그것이다.

윤소연_내가 지구를 지키는 방법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3

본격적으로 택배상자와 종이쇼핑백 속에 쌓아 담은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한 『잠시 쉬다 A Little Break(2018, 도로시 살롱)』와 『보통의 시간』에 이어 『사물의 초상』을 지나 오늘의 『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My Calm and Serene Fortress』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끊임없이 '풍경 scenery'과 '정물 still life' 두 마리의 토끼를 양 손에 잡고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자신이 '꿈꾸는' 일상을 그리는 데에 집중해 왔다. 처음에는 실내 풍경을 그리던 작가는 점차 시선을 밖으로 돌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과 매일 올려다 보는 하늘, 여행 중에 만났던 숲과 바다를 일상의 풍경 안에 함께 넣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집순이'인 작가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지낼 수 있다고 '꿈꾸는' 이상적인 환경의 실내 풍경을 택배 상자 안에, 종이 쇼핑백 안에 넣어 그리며 위안을 삼았고, 이따금 그 실내 안으로 눈 내린 들판,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같은 바깥의 풍경을 들여 놓았다. 윤소연이 그리는 자연 풍경은 반드시 집에서 멀리 떠나야 볼 수 있었던 숲과 바다와 같은 외지에서 만난 자연의 풍경이도 했지만, 집 밖으로 움직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기도 했다. 그가 그리는 집 밖의 풍경 중 많은 수는 '하늘'이 압도적인데, 이는 굳이 밖으로 나가거나 멀리 떠나지 않고도 충분히 바라 보며 즐길 수 있고, 매일매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하늘'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공동체의 필요와 요청에 의해 집안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코로나 시절에 윤소연 작업의 주인공이 된다. 창문 밖으로 눈길만 돌려도 볼 수 있는 하늘이지만, 언제든 원하면 밖으로 나가 올려다 볼 수 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하늘이지만 이제 원한다고 아무때나 나가서 볼 수 없다는 뜻밖의 '이동'의 제약과 맞물리며 '푸른 하늘 blue sky'는 새롭게 작가의 일상 속 풍경에서 특별하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코로나로) 밖에 나갈 수 없으니 밖의 풍경을 안으로 들여 온" 것이었다.

윤소연_꽃길_캔버스에 유채_33.3×45.5cm_2023

윤소연의 작업실엔 수십, 수백장의 하늘 사진이 있다. 『보통의 시간』을 준비할 때만 해도 그의 작업실엔 수십, 수백장의 택배상자와 사물들의 사진이 있었다. 택배 상자를 쌓아 건물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이 원하는 공간들을 만들어내던 작가는 이제 하얀 상자를 쌓아 탑을 만들고 그 표면에 하늘을 그린다. 천장과 벽과 바닥이 분명했던 택배상자 속 공간들은 이제 여섯 면의 하늘이 만들어 낸 하늘육면체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윤소연이 그리는 하늘은 상상의 하늘이 아니다. 그가 직접 보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인화해낸, 실재했던, 실존했던 하늘이다. 우리가 숨쉬며 살고 있는 삼차원 입체 공간안에 존재하는 하늘은 윤소연의 사진 속에서 평면이 되고, 이 평면은 다시 윤소연에 의해 육면체의 표면에 그려져 새로운 입체로 재탄생한다. 하늘로 덮인 육면체는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또 다른 새로운 입체가 된다(행복한 자유 낙하 Happy Free Fall, 2023). 윤소연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다. 아니, 실재했던 하늘이니 어쩌면 그 세상은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세상일 수도 있겠다. 그 하늘 아래 어디쯤에 우리가 일상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다만, 평온과 고요를 담아 새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각도로 만들고 바라보기에, 윤소연이 만들어 낸 그 '새롭고 또 새롭지 않은' 그 하늘로 둘러 쌓인 세상 안에서 작가는, 또 우리는 조금은 더 평온하고 고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늘상자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작가는 이어 그 하늘 아래 숨어 있던 들판과 마을을 보여주기도 하고 (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My Calm and Serene Fortress, 2023), 하늘상자 안에 숨겨 놓았던 자신의 방을 살짝 열어 보여주기도 한다(이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I Think I can sleep now, 2022). 하늘상자 안에서 보름달이 떠오르기도 하고( 푸른 낮은 찬란한 밤으로 향하고 Blue Day Heading for Brilliant Night, 2022), 한가로이 종이배가 호수 위를 떠다니기도 한다(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작품에서 하늘상자 주변으로 크고 작은 종이비행기들이 날아다닌다. 새털같이 가볍고 자유로운 종이비행기와 종이배는 그 어떤 제약도 받디 않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비행하고 항해하는 중이다(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2023, 행복한 자유 낙하, 2023). 일상의 풍경을 담고 있던 택배상자가 하늘상자, 하늘육면체로 변했다면, 종이쇼핑백도 새로운 풍경을 담았다. 맑고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돌고래가 뛰어 노는 깊은 바닷물을 담고 있는 흰 쇼핑백들이 흰 천위에 드리워져 넘실대는 바다의 덩어리를 흰 종이쇼핑백과 흰 천이 감싸 안고 있다면 (고요한 우연 Silent Coincidence, 2022) – 젖지 않고 바닷물을 담고 있는 종이쇼핑백과 천이라니! 게다가 종이쇼핑백 안의 바닷물은 찰랑찰랑 딱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담겨있다 – , 흔하디 흔한 누런 크래프트 종이 쇼핑백 안에는 맑은 공기와 바람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푸른 숲과 하늘이 가득하다(꿈꾸는 화양연화 Dreaming the Most Beautiful Moment in Life, 2023). 그리고 자연을 한가득 담고 있는 이 쇼핑백들 중 맨 앞의 정 가운데에 있는 쇼핑백 안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담겨있다. 윤소연이 실제로 작업하는 작업실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면서 하늘을 담고 있는 쇼핑백이 놓여 있는,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현실과 초현실이 공존하는 '꿈꾸는 화양연화'는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공간이고, 이상적인 시간이다.

윤소연_꿈꾸는 화양연화_캔버스에 유채_130.3×130.3cm_2022

작가가 새롭게 창조한 하늘과 숲, 바다의 안과 밖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떠다니는 종이비행기와 종이배는, 하늘을 품은 종이로 접어 만들어져 정물의 주인공으로 우리 앞에 선보이기도 한다. 하늘을 찍은 사진 수십장, 수백장을 만지작 거리던 작가는 이 사진으로 종이배를 접고, 종이 비행기를 접어 늘어 뜨린 흰 천위에 항해하고 비행하게 한다. 하늘로 접은 비행기와 배가 흰 천위에서 노니는 광경은 가히 초현실적이다(나만의 격납고 My Own Hangar, 2023, 우리의 여정이 다를지 모르지만, 마음은 항상 연결되어 있어 Maybe our journeys are different, but our hearts are connected, 2023, 수평선 너머 Beyond the Horizon, 2023)). 나아가 하늘로 접은 종이배 한 척은 하늘상자들을 가득 싣고 푸르디 푸른 항해를 하기도 한다 (파란 항해 – 보물선 Blue Sailing – Treasure Ship, 2023). 그러다가 문득 작가는 접었던 종이배와 종이비행기를 다시 펼쳤다. 접었던 선의 자국만 남은 하늘사진은 더이상 종이배도, 종이비행기도 아니다. 종이배였던, 종이비행기였던 하늘사진을 뒤집는다. 그리고 그 위에 Freedom, Empathy와 같은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살며시 써준다. 종이배이면서 종이배가 아니고, 종이비행기이면서 종이비행기가 아닌, 하늘이면서 하늘이 아니고, 자유로울 수도 있으면서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는, 다양한 양면성과 양립을 보여주며 이제 작가는 다시 '종이접기'와 다시 펼치기에 집중한다. '같이 하늘을 펼쳐보자 Let's spread out the sky(2023)'과 'Emphaty 공감 (2023)'을 모두 본 사람은 이 두 작품이 같은 종이의 양면임을 추측할 수 있지만, 같은 종이가 아닌 다른 각각의 종이일 수도 있다. 보이는 것이 진실일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는 불편한 진실. 진실은 이 게임을 시작한 작가만이 안다. 종이배를 접는 과정을 그린 '종이배 Paper Ship (2023)'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초록초록하고 예쁜 꽃무늬 천 위에 올려진 종이배를 접었다 핀 종이인 것으로 보이는 접은 선 자국으로 가득한 녹색 종이 'The Flower Way 꽃길 (2023)'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뒷면에는 어떤 그림이 있는지 알수 없다. 작가가 우리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꽃길만 걷자는 희망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 같다는 느낌과 평범한 종이접기의 흔적이 하나의 작품으로 재창조되어 아름다운 힘을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할 뿐이다.

윤소연_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_캔버스에 유채_91×60.6cm_2022

하늘로 접은 상자, 하늘로 접은 비행기, 하늘로 접은 배, 하늘을 담은 하늘상자, 하늘과 숲과 바다를 담고 있는 종이쇼핑백, 그리고 그 가운데 간간이 숨겨져 있는 혹은 살짝 보이는 작가의 일상 공간들. 여기에 쌓아 올린 하늘상자와 자연을 담은 쇼핑백들 주변으로 작고 귀여운 종이비행기들이 경쾌하게 날아다니고, 종이배들이 유유히 떠다니며, 구석구석 어딘가에 초록초록한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숨어있는 현실과 초현실이 공존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작품은 어쩌면 푸른 숲 한 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정육면체 하늘상자와 그 안으로 살짝 보이는 숨어 있는 작가의 방(이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2022)과, 역시 푸른 숲 한 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금속판으로 접은(!) 정육면체 상자와 그 안으로 살짝 보이는 지구(내가 지구를 지키는 방법 The Way I Guard the Earth, 2023)가 아닐까. 하늘을 접어 만든 상자도 모자라 금속판을 접어서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지구를 담아 지켜내겠다는 현실적이면서 초현실적인 작가의 의지는, 코로나 시절 인류가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과 이 위기는 우리가 지구를, 자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서 생긴 자책과 반성의 반영이다. 동시에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윤소연_시작을 위한 시작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22

윤소연의 '행복한 자유낙하(2023)'을 보고 누군가가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의 작품이 생각난다고 했다. 하늘에서 사람이 비오듯 내리는 그림인 '골콩드 Golconde (1953, 미국 휴스턴 메닐 컬렉션)'가 떠오른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윤소연의 작업을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실과 초현실, 실재와 가상을 한 화면에 적절히 어우러지게 그려내는 그의 작업은 다분히 '골콩드' 못지 않게 환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정물 속에 풍경이 있고, 풍경이 정물이 되며, 현실이 환상의 일부가 되고, 환상이 현실의 일부가 되는 이중적이고 양립적인 이 묘한 매력의 작업이 나오게 된 것은 내향적이고, 성실하며, 정의롭고, 순수한 윤소연 작가가 약육강식의 거친 현실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는 것과는 다른 거친 세상이 주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외부의 요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 "일상의 소소함으로 가득찼던 상자와 가방은 정갈한 천 위로 자리잡아 정물인듯 아닌 듯 그 어디쯤에 있다가 배와 비행기를 만나 더 넒은 곳을 향해 가려고 한다. 정해지지 않은 그 곳은 떠 있기도 하고 가라 앉아 있기도 하는 또 그 어디쯤. 명확하지 않다. 바다가 하늘이 되기도 하고 하늘은 숲으로 변했다가 다시 천위로 내려 앉아 정물이 되기도 하며 가장 이상적이고 안전한 세계를 찾아가는 중이다. 불안이 없는 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로..." (2023. 4. 윤소연 작업노트 중에서) ● 진부한 표현이지만, 예술을 통해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남이 만들어 낸 창작물을 통해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감을 통해 갈등을 해소한다. 또한 예술활동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윤소연의 작업은 아마도 그 두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순간이 아닐까.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실존하는 것과 실존하지 않는 것, 현실과 초현실, 하늘과 바다, 앞과 뒤, 풍경과 정물같이 양립 가능하면서 동시에 양립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적절히, 자유롭게, 꿈꾸듯 그러나 번민과 고통속에 그려내며 치열하게 불안을 해소하고 안도하는 윤소연 작가의 『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평온하고 고요한 '꿈꾸는 화양연화'를 떠올리고 행복해 진다. 창작자와 감상자(창작물의 소비자)의 예술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작가가 치열하게 그려낸 『평온하고 고요한 나만의 요새』 안으로 숨어 들어가며 그가 느끼는 안도감을 함께 느끼는 그 순간 말이다. ■ 임은신

Vol.20230609f | 윤소연展 / YOONSOYEON / 尹素蓮 / painting

@ 우민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