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징후들

미국의 매체 평론가인 닐 포스트먼은 성찰 없는 미디어 세대를 위한 저서 '죽도록 즐기기'를 통해 공상과학소설의 대표적인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비교하며 매우 흥미로운 견해를 밝혔다. 포스트먼에 의하면, 조지 오웰은 책을 금지하는 사회를 두려워했다. 권력집단에 의해 정보가 차단되거나, 진실이 감추어지고 형벌에 의해 사회가 통제되어 결국 대중들이 두려워하는 것들로 인해 사회가 쇠퇴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에 헉슬리는 책을 읽지 않는 사회를 걱정했다. 과도하게 많은 정보가 주어진 탓에 도리어 대중이 무의미한 소식들에 열광하여 진실이 파묻히게 될 것을 우려했다. 또한 잉여 된 쾌락을 스스로가 통제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인해 사회가 붕괴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각각 1932년과 1948년에 쓰여진 이 고전들은 약 90여 년 후의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국가의 미래를 대체로 비슷하게 예측했다. 우리의 전시는 헉슬리의 흥미로운 상상에서부터 출발한다.

김용민_상실의 징후들_00:02:55_2023

김준_Blue jean blue-rocker_루핑 애니메이션_00:08:15_2020

김지오_어느 가수의 자연어 해킹_1채널 비디오, 사운드 인스톨레이션_가변설치_2023

소설이나 영화 등과는 달리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미래 사회를 표현하는 예는 의외로 드물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미래주의가 발생하긴 했지만, 기존의 사회적, 예술적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일종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갈래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는 몇몇 예술가들에 의해 '공상과학미술'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21세기에 들어서며 개념미술의 일반화와 함께 주류에서는 벗어나게 되었다. 공상과학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한 세기 가까이 논쟁 중이다. 그러나 대체로 가장 영향력 있는 SF작가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정의를 따르는 편이다. 그에 의하면 공상과학이란, '미래와 과거의 현실 세계에 대한 충분한 지식에 기반하여 언젠가 발생 가능하리라고 여겨지는 사건들을 현실적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철저한 현실 기반적 결과물만이 미래를 유추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김형기_Artifical surface_ 플렉시블 네오픽셀 LED, 비디오 플레이어, 3D 금속 구조물_200×150×100cm_2021

배준성_The Costume of Painter -at the studio-blue w2_ 캔버스에 유채, 렌티큘러_227.3×181.8cm_2022

신기운_나무가 없다_단채널 영상_2023

우리는 이번 전시 『상실의 징후들』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술가들이 목격한 시대상을 작품으로 제시하고 관람객은 그것을 기반으로 '미래의 사회'를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애초에 과학기술과 인류의 발전은 인간의 욕망과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고도화된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이상은 없고 욕망만이 존재한다. 물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이 미래 사회의 전반적 수준 상승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나날이 공고해 지고 있는 반면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삶은 그야말로 위태롭기 짝이 없어 보인다. 현대인들은 사유 없이도 삶의 영위가 가능하다고 믿는 눈치이고, 대상이 부재된 소통에 익숙해진 탓에 관계 형성의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인과 관계가 발생하지 않으니 자아 또한 주체적이지 않다. 자아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개척하기 보다는 기피해 버린다. 삶을 대하는 주체들의 이러한 냉소적인 태도들은 이제는 매우 보편화 되었으나 사실 세기가 바뀌기 이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부작용이었다. 불과 20여 년 만에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발전했고 구성원들 또한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시각각 변한다.

심승욱_구축 혹은 해체-부재와 임재 사이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5

왕지원_Pensive mechanical Bodhisatta s_ 우레탄, 금속재료, 기계, 전자 장치(CPU 보드, 모터)_74×30×40cm_2010

지누박_노모어 아트 엔솔로지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나무, LED_가변설치_2023

어느새 현재가 되어버린 과거의 미래를 살아가는 관람객들에게 『상실의 징후들』은 또다시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미리 선보이는 공상과학 전시가 아니다. 우리의 전시는 동시대에서 목격되는 기형적 현상들과 징후들을 추적하여 도래할 미래를 경고하는 성격의 전시가 될 것이다.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전통적인 예술의 표현 방식과 사용 재료의 구태를 뒤로 하고 형식과 경계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만 섭외했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작가들이 표현한 현대미술이라는 차가운 중압감 앞에서 자칫 압도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를 추적하는 작가들의 시선은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할 것이다. 우리의 전시는 저항 없는 시대에 대한 애도이며 동시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시가 삶의 방향을 변경시킬 순 없을지라도 삶을 대하는 온도는 변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윤상훈

홍성철_String-Hands_0322_혼합재료_119×200×10cm_2017

KDK_sf.B-5_나무 프레임, 플렉시글라스에 C 프린트_140×180cm_2006

Neil Postman, an American media critic, expressed a very interesting opinion by comparing George Orwell's '1984', a representative classic of science fiction and Aldous Huxley's 'Brave New World', through his book 'Amusing Ourselves to Death' which was written for the media generation of the time whose work lacked introspection. According to Postman, George Orwell feared a society that banned books. He predicted that in a society that prohibits books, information would be blocked by authority groups, or the truth would be hidden and society would be controlled by punishment, and eventually society would decline due to what the public feared. Aldous Huxley, on the other hand, worried about a society that didn't read books. He feared that because the public was given too much information, they would be enthusiastic about meaningless news and as a result, the truth will buried. He also predicted that society would eventually collapse due to what the public liked because they could not control the surpluses pleasure themselves. These classics, written in 1932 and 1948, respectively, largely made similar predictions for future societal systems and the capitalist state about 90 years later. Our exhibition starts with Huxley's interesting imagination. ● Unlike novels and movies, examples of expressing future societies in the history of art are surprisingly rare. Although futurism arose in Italy in the early 20th century, it would be right to see it as a branch of the avant-garde movement to overthrow the existing social and artistic system. In the mid-1970s, the term 'sci-fi art' was commonly used by some artists. However, as we entered the 21st century, it was removed from the mainstream with the generalization of conceptual art. The exact concept of science fiction has been debated for nearly a century. However, it generally follows the definition of Robert A. Heinlein, the most influential sci-fi writer. According to him, sci-fi is "realistically guessing events that are regarded to happen one day based on sufficient knowledge of the future and the real world of the past." In other words, only a thorough reality-based result can be a medium to infer the future. It is nothing more than a fantasy to imagine the future without being based on 'reality'. ● We wanted to show the audience a future which is likely to become a reality through the exhibition, 『SIGNS OF LOSS』. More precisely, presenting the phases of the times witnessed by artists and make the visitors infer the 'future society' based on it is our goal. In the first place,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humankind has continued to satisfy human desires and ideals. However, in an advanced modern society, there is no more ideals, but only desire. Obviously, it is self-explanatory that the continuous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expansion of various communication will bring about an increase in the overall level of future society. The system is getting more solid day by day, but individual lives who make the system up seem to be literally at stake. People nowdays believe that managing life is possible without thinking, and they don't feel the need to form a relationship because they are used to communication without an object. They don't have relationships with anyone other than themselves, so the ego is also not independent. Because they have doubts about the sustainability of their ego, they avoid it rather than pioneering the future. These cynical attitudes of the subjects and the way they are treating their lives have now become very common, but in fact it was a completely inconceivable side effect before the centuries changed. In just over two decades, the world has developed so fast and its members are also changing unpredictably by the minute. ● 『SIGNS OF LOSS』 is not a sci-fi exhibition that pre-shows a splendid future to the visitors who lives the future of the past that has become the present. Our exhibition is an exhibition that tracks the deformed phenomena and signs witnessed of the same age and warns of the remote future which will come to us. The artists participating in this exhibition were recruited only as artists who are trying to escape the obsession of form and boundaries and leaving the old ways of expressing traditional art and materials used. From the perspective of visitors, they may be overwhelmed in the face of the cold pressure of contemporary art expressed by the artists. However, the gaze of artists tracing the era will be endlessly warm and cozy. Because our exhibition is a mourning for an era without resistance and its purpose is to give it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its contemporaries. Although our exhibition may not change the direction of your life, we hope the temperature with which you treat your life can change. ■ 윤상훈

Vol.20230610e | 상실의 징후들 SIGNS of LOS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