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Somewhere

안희정展 / ANHEEJEONG / 安熙貞 / photography   2023_0913 ▶ 2023_1126 / 월요일,9월 29일 휴관

안희정_곳-별량 농협창고 Somewhere- Storehouse of Byeollyang Agricultural cooperative, Suncheon_피그먼트 프린트_148×21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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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23_0913_수요일_04:00pm

주최,후원 / 광주시립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9월 29일 휴관

광주시립사진전시관 Gwangju Museum of Photography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60 광주문화예술회관 별관 Tel. +82.(0)62.613.5405 artmuse.gwangju.go.kr @gwangjumuseumofart

여기보다, 어딘가에 ● 광주시립미술관 사진전시관에서는 매년 사진·예술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2023년 하반기에는 근대에 만들어진 건물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낯설게 만들어서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안희정작가의 『어딘가에』전을 개최한다. ● 안희정은 2005년 광주대학교에서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한 이후 꾸준히 작업을 하며, 자신만의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작가는 어린시절 가장 기뻤던 기억이 자신의 방이 생겼을 때였다고 회상한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혼자만의 공간, 끝내는 나만의 집으로 귀결됐던 갈망이 지금까지 이어져 안희정 작가의 작품에는 늘 어떤 공간이 등장한다.

낯설음과 미학적 가치 ● 초기작인 'Cube'연작이나 'Sewingscape'연작에서 볼 수 있는 익명의 건물들을 시작으로 근대에 지어져서 6.25전쟁을 비롯하여 한국의 굴곡진 역사를 겪으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축물들을 찍은 '곳(Somewhere)'연작을 보면 알 수 있듯 안희정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어떤 곳', 장소가 등장한다. ● 안희정의 작품은 카메라를 이용하여 건축물을 찍고, 후보정을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건물의 정면뿐만 아니라 측면과 건물의 상단까지 모든 면을 촬영한다. 그리고 이 사진을 무명천에 프린트한 후, 바느질하여 조형물을 제작한다. ● 작가가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건축물들은 보통 근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그만큼 익숙하기 때문에 그저 지나치는 배경이 되어버린지 오래된 곳들이다. 안희정은 이런 건축물에 무거운 철근 대신 가벼운 솜이 가득 채우고, 딱딱한 콘크리트 대신 부드러운 무명천을 씌워 바느질로 연결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속성의 변화로 첫 번째 낯섦을 느낀다. 이 낯설음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건물들의 건축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 두 번째 낯섦은 이 조형물을 원래 있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 설치하는 것에서 야기된다. 작가는 자신이 찍은 건물들을 모두 '집'이라 표현한다. 실제로 작가가 촬영한 곳은, 개인의 '집'이 아닌 일제강점기 때 식민 지배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거나 학교, 창고로 쓰이던 곳들이다. 하지만 안희정은 자신이 만든 조형물을 전시장 혹은 낯선 곳에 두는 것으로 원래 건물이 가지고 있던 역사성을 지운 익명의 건물이 되어 누군가의 '집'이 된다. ● 관람객들은 자신이 알던 건물의 역할이 지워지고, 원래 있던 장소가 아닌 작가가 조성한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 누군가의 '집'에 낯섦을 느끼게 될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건물의 역사성을 지운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새로 조성된 곳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곳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집을 떠올린다면 그곳에 당신만의 새로운 장소성이 성립될 것이다. ● 이번 전시는 안희정 작가가 2005년부터 약 20여년 간 발전시켜 온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오면 작가가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곳-Somewhere' 연작의 2023년 버전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을 관람하며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보면 직접 천으로 만들어낸 건물 조형물의 실물 또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신작인 '사진 집(家)' 연작 또한 만나볼 수 있다.

안희정_곳-구 전남도청 Somewhere- Former Jeonnam Provincial Government_ 피그먼트 프린트_210×148cm_2023

곳-Somewhere ● 안희정이 처음으로 시작했던 'Cube'연작은 오래된 건물의 창이나 문을 찍어서 천에 인쇄한 후 솜을 넣어 네모난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건물의 형태가 온전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Sewingscape'연작부터이다. 이때부터 작가는 카메라로 찍은 건물의 전개도를 바느질로 엮어 실제와 유사하게 만들어 전시장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2010년 시작한 '곳-Somewhere'연작에서부터 조형물을 새로운 장소에 두고 또 사진을 찍어 조형물이 아닌 다시 사진의 형태, 즉 평면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곳-Somewhere 2023'연작 중 아무것도 없는 자연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집이 있다. 어떤 작품은 사람이 다니며 생긴 듯한 길 때문에 마치 저곳이 진짜 존재하는 장소 착각을 들게 한다. 그러다 다른 작품을 보면 풀이 우거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을시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것도 있고, 건물보다 큰 꽃과 꽃잎이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어떤 곳은 실제 건물의 용도와는 전혀 다르게 동화 속 세상같기도, 제주도의 관광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곳, 안희정은 그곳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자 했다. 당신이 현실에서 봤던 곳을 떠올리건, 상상으로 꿈꿔왔던 그곳이건, 찾을 수 있는 어떤 곳이 있었으면 한다.

사진집(家) ● 두번째 섹션인 '사진집(家)' 연작 또한 2023년 신작이다. 이 연작은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들이 눈에 띈다. 첫번째로 기존에 평면으로 제작된 작품들에는 늘 등장했던 배경과 작가가 만든 조형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무명천을 바늘로 엮어 만들었던 조형물 대신 전개도가 화면 가득 채워져 있다. 풍경의 부제로 인해 건물 자체에 집중을 하게되는데, 입체적인 건물을 평면으로 펼쳤기 때문에 건물이 다소 부자연스럽고 낯설게 느껴진다. 건물의 정면과 측면, 뒷면까지 하나로 이은 작품은 유독 비정상적으로 길게 보인다. 이 모습은 마치 기존의 원근법을 파괴시키며 자유로운 공간구성을 보여준 세잔으로부터 시작해 피카소의 큐비즘으로까지 이어졌던 다초점으로 바라 본 건물같다. ● 또 한가지 다른 점은 작품을 자세히 봤을 때 이전 작품에는 한번도 등장한 적 없던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건물 앞에 놓여있던 화단이나 환풍기, 심지어 쓰레기까지 작가는 지우지 않고 두었다. 이는 사진이라 가능한 순간포착과 현실감이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유머러스는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진이란 매체로 인해 너무 선명하게 대상이 보이는 것은 경계한다. 때문에 일부러 후작업으로 저화질로 만들거나 천에 프린트해서 다큐멘터리 사진인 것처럼 보이는것을 방지한다. ●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조형물을 둘 장소를 선택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 위치시키고, 사진을 찍을 구도를 잡거나 포토샵으로 후작업을 할 때 본인의 내면이 알게모르게 반영이 된 것이라 시인한다. 하지만 작가의 개입은 거기까지다. 제목에도 본래 건물의 명칭만 써두었을 뿐 자신의 의도를 숨긴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소의 명칭을 밝히는 것도 관람객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서이지, 그곳을 떠올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주로 '곳-Somewhere' 혹은 '사진집(家)'등 연작의 이름으로 명명한다. ● 작가는 이번 전시의 관람자들이 자신이 작품에 만든 미지의 그곳을 보며 어딘가에 있을 당신만의 집의 의미를 찾고, 기억 혹은 향수를 찾아서 나가길 바란다. ■ 이혜원

안희정_사진집-군산 세관 Photo House- Former Gunsan Customs_UV 프린트_33×86cm_2023

집에 대한 소고(小考)1. 햇살이 뉘엿하게 기운 시간이었다. 태풍이 한차례 지나갔지만, 아직 무더위가 남아 있는 동명동의 골목을 찾아들었다. 작은 카페들, 식당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 "사진공방"이라는 상호가 적힌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번에 전시될 작품의 프린트 기계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커다란 인화지에는 수풀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에서 작고 아담한 창고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프린트가 진행되면서 인화지가 둥글게 말려져 있어서 전체를 다 볼 수가 없었지만, 문득 황량한 대지에 오롯이 남아 있는 집 한 채가 생각났다. 도로시아 랭(Dorothea Range, 1895-1965)이 찍은 트랙터 아웃(Tracted Out, Childress Country, Texas 1938)이라는 오래된 사진 속 집이다. 트랙터가 밭을 갈고 난 후 골이 깊이 파인 밭의 끝자락, 지평선에 작은 집 한 채가 걸려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이 보편적 정서를 반영하면서 충분한 미적 완성도를 내재하는 경우, 단순한 재현이 아닌 시공의 조화를 꾀하게 된다. 그것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상상력의 응답 방식을 취할 수 있겠지만,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현상적인 것. 경험의 층위에서 느껴지는 기억의 환류는 한낱 과거 시제를 향할 뿐일지라도 어떤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곧, 작가의 의지의 발로인 셈이다. 도로시아 랭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혹독한 빈곤 상황을 기록했기 때문에, 밭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집 한 채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어쩌면 도로시아 랭의 사진이 지금 프린트되고 있는 사진과 어떤 유사성이나 동질감이 있는지는 아직은 잘 모른다. 그러나 대지라는 장소성과 집이라는 대상이 지닌 분위기에서 감정의 골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시대를 향한 절망과 체념이 묻어있는 장소를 지금 이곳으로 데려와 볼 수 있는 것이다.

2. 안희정 작가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 등록문화재의 오래된 건물들을 촬영했다. 하지만 촬영된 사진을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그 건물을 샅샅이 알아야 하는 것처럼 좌우사방을 조감하고, 급기야 물리적으로 똑같은 형태로 재현해 낸다. 그리고 그 대상이 놓일 지점을 면밀히 관찰하고 새로운 집을 짓듯이 터를 잡은 뒤, 집(건물)을 세우고 다시 촬영을 하여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 집은 누군가의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이다. 작가는 창고,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축물 등을 총칭해 "집"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건축은 집이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집의 생애사를 찾고자 했으며 사진을 통해 새로운 거처로서의 공간을 탐색해 왔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무수한 개인사와 인류의 굴곡진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집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되어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발자국들로, 소란스러운 소리들로 공간들이 채워지면서 집은 안팎으로, 다양한 흔적과 상처가 만들어진다. 발화하여 하염없이 떠돌다 가만히 내려앉는 먼지처럼 수많은 생들이 그곳을 거쳐가는 것이다. ● 집은 또한, 물리적 형태의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은 인간 삶의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불행의 역사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양면성으로 인해 집이라는 대상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과 편파적인 기억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집은 우리 삶의 정서적 공간으로서 인간 성장의 가장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작가가 그동안 찾아다닌 것은 오래된 시간을 머금은 집들이다. 그것은 직접 소유해보지 못한, 아니 소유할 수 없는 그런 집들이다. 공적, 사적 영역의 집들을 채집하고 대상을 조직화하여 스스로의 캔버스에 펼쳐 놓는 작업. 계획된 체계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상상력의 세계에서 다른 영역을 구축하려는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다.

안희정_사진집-이화여고 심슨기념관 Photo House- The Simpsons Memorial Hall at Ewha Girls' High School_ UV 프린트_50×70cm_2023

3. 작가의 초기 작품 「큐브」를 보면, 골목 안의 덕지덕지 붙어 있는 집들을 고르고 떼어내어 육방체의 큐브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객체로서의 전이 과정을 통해 집(家)이 집(集)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각각의 독립된 공간이지만 과거에는 독립적이기보다는 공동체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더 많았던 집들이다. 그것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사람이 드나들며 일상의 생활을 영위했던 곳이었다. 작가는 집의 기억, 공간의 이미지를 입방체 안에 담는 행위를 통해 집이 집단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손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익숙해 있었던 듯, 사진을 결합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공간감을 보여주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천에 덧댄 이미지를 기우고 꿰매면서 사진을 입체적으로 조각화는 과정. 천에 입혀진 이미지는 대칭, 교차되면서 중량감을 내려놓고 미묘한 겹침과 중첩을 통해 조형적으로 재구성되었다. 큐브는 외형의 입체감을 사진 이미지로 덧대고, 원형적인 형상을 구조화한 단편적이면서 진화된 형태로 재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견고한 시멘트나 벽돌, 혹은 철제로 지어진 집들이 말랑말랑하다. 무른 집, 딱딱하게 굳은 물성이 아니라 동화 속 초콜릿이나 비스킷으로 지은 집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다." 큐브 서문을 쓴 최현주의 글에서 "말랑말랑하고 무른 집"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온기가 존재하고, 세상은 따뜻하고 소통이 가능하다고 말로 대체된다. 작가 또한, 작은 바늘이 뚫고 들어가 나오고도 남을 얇은 섬유질의 경계처럼 유연한 큐브 안에서 "소통"을 원한다고 했다. ● 집-소통이라는 작업적 화두는 두 번째 작업 「Sewingscape」에서 더욱 극명화된다. 집화된 집들이 분산되고, 각 개체로의 독립이 되었다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최초의 내 방이었던 성냥갑만 한 작은 방으로부터 비롯한 방-집-공간의 욕망은 급기야 피아노교습소, 약국, 식당, 상점 등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하나의 마을이 형성된다. 굽어진 골목길이 생기고 사이사이 작은 공터도 생긴다. 이제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놀이를 즐기거나 수다를 떨 것만 같다. 작가는 집, 이라고 말할 때 마음속에 집 한 채가 생겨난다고 했다. 집에 대한 집착으로 비롯된 일련의 과정들을 "소통"이라 말하고 있지만 불통의 관계 혹은, 낡고 누추하지만 내 삶의 보금자리가 거기였으면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두 번에 걸친 큐브 형태의 작업 과정을 통해 일상생활과 밀착된 삶, 주변부의 집들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졌다면, 세 번째 작업인 「Somewhere」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재료의 한계성을 넘고자 입방체 큐브 형태의 전시 방식을 벗어나, 건물의 면면을 촬영한 뒤 편집 작업을 통해 건물의 전개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다시 천이나 종이에 출력하고 바느질로 꿰맨 뒤, 불특정 장소에 배치하고 사진을 찍는 방식을 취한다. 이 작업들의 대상들도 근대에 지어진 등록문화재로 등재된 건물들이며 시대적 의미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자 했다. 전시 형태는 이전의 형식과 유사하되, 촬영되어 인화된 평면 사진을 더러 추가했다. 오브제를 중심으로 미니멀한 평면사진을 내보인 것이다. 이때부터 작가는 장소의 패턴을 바꿔가며 대상을 결합하는 과정에 집중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작가는 집합체인 도시, 그 도시가 가진 익명성에서 드러나지 않으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인간 내면의 이야기로 풀어가고자 했다.

안희정_사진집-구 호남은행 Photo House- Former Honam Bank_UV 프린트_50×70cm_2023

4. 「Somewhere2023」으로 돌아와 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 제목에 연도만을 추가했다. 근대 건축물에 대한 대상의 변화는 크게 없으며, 오브제의 재료가 천에서 종이로 바뀌었다. 종이를 통해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대상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불특정 장소가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황량한 초원에 유랑하는 집처럼 표류하고 있다고나 할까. 비록 먼 우주에 하염없이 던져진 것처럼 보이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구도와 형태, 거기에 더해 자연의 색감과 질감을 품고 있는 콜라주 같기도 하다. 감각적이다. 그래서 조형적 매력과 오브제를 더욱 선명하고 밀도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다소 엉뚱한 공간 매칭, 그래서 더욱 역설적으로 빚어진 하나의 세계, 정형화된 질서에서 벗어난 낯섦이 발화된다. ● 사진은 배치를 통해 더욱 구도화된다. 배열된 것들 사이에서 일종의 질서가 요구되고 합리적인 형태에 부합하도록 강요된다.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대상의 작은 부분까지 간섭하고 배치하는 행위에 가담했다.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난 집들이 새로운 공간을 지배한다. 재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빈 공간, 그 공간을 이용하는 존재들이 의미를 부여받는, 곧 장소가 된다. 이렇게 기반이 형성되고, 다채로운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 그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헤테로토피아가 될 것이다. 작가에 의해서만 의미가 부여되는 맥락화된 공간, 'heteros(다른)'와 'topos(장소)'에 앉혀진 'Somewhere(곳)'이기 때문이다. ● 존 버거는 "예술가로 하여금 눈앞에 있는 물체를 쳐다보고 마음의 눈으로 분해한 다음 다시 조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드로잉이라는 실질적인 행위다."라고 말했다. 안희정 작가는 집-공간-장소에 대한 무수한 드로잉을 그려왔다. 그녀의 눈으로 건물의 내외부를 들여다보고 분해하고 또 분석하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그래서 마음의 바닥까지 훑어서 지금까지 쌓아 온 관찰 내용을 발견하도록 애써 왔다.

5. 작고 아담한 창고 하나가 풀밭 저 멀리에 있다. 풀숲 사이로 끊길 듯 위태롭게 이어진, 아주 좁은 길이 나 있다. 창고의 푸른색 문은 도무지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그곳에 다다라 빈 공간을 따뜻하게 덥히고 또 누군가와 가벼운 일상에 대해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눌 때, 작가가 꿈꾸는 소통의 집으로 재생될지도 모를 일이다. ● 지난한 시간을 견디며 작가로서도 어딘가 내던져 있다는 느낌이 많았을 것이다. 이번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집을 관찰하는 관찰자로서 자신을 둘러싼 집과 장소라는 환경에 대해 질문해 가는 여정으로 보인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집이라는 오브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예술적 경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 왔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의 집들, 마른땅이거나 풀숲이거나 고독하게 안착한 외관을 통해 누군가의 생애를 누군가의 시절을 기억하게 된다. ● 집이란, 우리에게 아직도 불완전한 영역이다. 오래된 집에 난 상흔에 홀로 연고를 문지르고 있을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 당신의 집은 어디 있습니까? ■ 지성배

안희정_어딘가에展_광주시립사진전시관_2023

곳, 미지의 그 곳을 지난다. ● 집은, 유형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가장 실용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러나 기억 속에만 남을 수도 있는 추상의 형태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가깝고도 멀 수 있는, 애착의 장소이다. 집이 나이를 먹는 것은 장소의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집에 새겨지는 시간은 유한한 모든 것들이 그렇듯 존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함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 오래된 집은 장소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용적률 게임에서 쉽게 기권하며 물러나고 만다. 어떤 이의 소박한 집이든, 쇠락한 부자의 이층집, 누군가의 꿈과 희망의 아파트, 남의 나라에 세운 약탈의 증거물로 남은 적산이든…… 집들은 시간이 흐르면 이내 사라 질것이다. 그것은 내가 건물을 의인화 하는 것처럼 쓸쓸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래된 집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시간의 응축 때문이다. 그것은 고대와 중세와 르네상스, 근대를 거쳐오고 국가와 이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화된 시간을 의미한다. 오래됨이 물리적인 낡음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 곳이라는 말은, 어떤 지점에 이르는 장소, 추상적인 개념(인식)이 맞닿은 장소 일수도 있고 물리적인 이동의 실체가 정지하는 곳 일수도 있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 결국. 결정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어떤 공간이다. 개인과 전체의 역사가 좌표를 거쳐 이동하고 꿈틀거리다가 내가 살아있는 현재, 마지막에 장소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곳,이라는 것은 너와 내가 만나게 되는 예측할 수 없는 에너지일 거라는 생각이다.

안희정_어딘가에展_광주시립사진전시관_2023



거주하기 위해 사람들은 장소를 만들고 그 장소로 다시 거주하기를 배운다고 건축가 김광현은 말했다. 또 어디에 사느냐가 그의 정체성이 되어버리는 거주의 논리가 우리에게 작용한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히 집에 집착하고 장소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본능적인 것이 아닐까. 더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 우리가 집에 대해 느끼고 싶어 하는 처음의 것이기 때문이다. ● 내가 거주하는 이곳의 건물, 집들이 가지는 건축적인 디테일들과 다앙한 형식들은 마치 각자다른 개성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 집합체인 도시. 도시가 가진 익명성과 드러나지 않으면서 드러나는 아이러니는 집이 가진 것이 건물의 의미만이 아니라 인간내면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 그 집이라는 대상이 가진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집의 의미와 형태를 재해석하고 기록한다. 작업은 다층적인 과정으로 진행된다. 실제 건물이 있는 곳에 가서 건물의 면면을 사진으로 촬영한다. 앞면, 뒷면, 곳곳의 디테일, 가능하다면 지붕까지. 촬영된 사진을 편집작업을 통해서 건물의 전개도를 만든다. 그 전개도를 천이나 종이에 출력해서 입체로 바느질하거나 연결하여 만든다. 그리고 만들어진 오브제와 어울리는 불특정의 장소에 설치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다시 한번 사진으로 기록한다. 다시한번 장소화 하는 작업은, 우리가 어떤 장소와 건물(집)에 대해 느끼는 것은 이념이나 역사를 초월하여 가지는 집에 대한 근원적인 추억과 노스텔지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안희정

Vol.20230912e | 안희정展 / ANHEEJEONG / 安熙貞 / photography

@ 우민아트센터